향토예비군의 날

2021. 4. 3. 00:22■ 大韓民國/국방 병역

1·21사태가 발생하였던 1968년 4월 1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향토예비군 창설식을 가진 뒤, 1970년부터 4월 첫째 토요일에 ‘향토예비군의 날’ 기념식을 거행해오고 있다. 이 날은 예비군의 노고를 치하하고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모범예비군과 부대에 정부포상을 실시하고 있다.

1973년 3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향토예비군의 날’이 포함되면서 「향토예비군의 날에 관한 규정」이 폐지되었다. 2006년 9월 6일 ‘향토예비군의 날’기념일자가 4월 첫째 토요일에서 4월 첫째 금요일로 변경되었다.

 

 

추억 역사방향토예비군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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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을 내가 지키자' 오늘은 향토예비군의 날

전국에서 예비군 방범순찰이 처음 시작된 1991년 4월 1일 밤 서울 성북구 종암동유흥가에서 예비군들이 손전등과 무전기를 들고 방범활동을 벌이고 있다.

입력 : 2017.04.07 09:41

 

'내 마을 내가 지키자' 오늘은 향토예비군의 날

 

오늘은 떠도는 소문으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우리의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날이다. 올해로 49년이 된 '향토예비군'의 전신은 1948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창설한 '호국군'이었지만 일년도 못 채우고 해체되었다. 그로부터 19년 뒤인 1968년 4월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의 대통령 암살 시도가 계기가 되어 향토예비군이 창설되었다.

 

향토예비군들은 농부에서 공무원까지 직업 여하를 가리지 않고 육군의 지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훈련 경보가 울리는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와 총을 들기도 했다. 창설 당시 제대로 된 장비도 없어 고무신을 신고 구멍이 난 바지를 입은 채 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예비군은 창설된 지 2년 동안 울진·삼척 무장공비 소탕작전 등 25회의 대규모 작전에 참여했고 지금까지 총 90여 회의 전투 현장과 태풍·폭우 등의  재난 현장에 출동하며 국토방위에 있어서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군대를 다녀온 이 땅의 남자들에게 예비군훈련은 많은 에피소드와 추억을 가져다주었다. 생업으로 인해 많은 남자들이 예비군훈련에 빠지는 일이 잦았고 남편이 출장 가서 부인이 대리로 왔다가 귀가 조치된 일도 있었다.

 

대한민국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1970년대는 혈기왕성하고 출산능력이 높은 예비군들이 중요한 피임수술 권장의 대상이었다. 그 때문에 정관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주기도 했다.

 

 

 

 

 

 

 

 

 

 

 

 

 

 

 

 

 

 

 

 

 

 

 

 

 

 

 

 

 

 

예비군의 


豫備軍의 날
향토 예비군의 날

주관처날짜

국방부
매년 4월 첫째 금요일

요약 예비군 창설을 기념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제정된 기념일. 1970년 2월 <향토예비군의 날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면서 기념되기 시작했다. 예비군은 1961년 법적 근거가 마련된 뒤, 1968년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해 4월 창설되었다. 향토예비군의 날에는 국방부 주관으로 기념 행사가 펼쳐지며, 관련 부대와 유공자에게 포상이 실시된다.

목차접기

  1. 개요
  2. 제정 이유
  3. 역사
  4. 관련 행사

개요

예비군 창설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 국민적인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예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예비군은 정규군과 달리 평시에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생활하다가 유사시 국토 방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편제된 비정규군을 의미하며, 1961년 <향토예비군 설치법>에 의해 제도가 마련되었고, 1968년 창설되었다. <향토예비군의 날>은 1970년 제정된 이래 매년 4월 첫째주 금요일 기념되고 있다.

제정 이유

범국민적인 안보 의식과 향토애를 통한 지역 단위 방위 체제를 확립하고, 향토예비군의 임무를 새롭게 다지며, 예비군의 노고를 치하하고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역사

향토예비군의 창설은 1968년 4월 1일이었지만, 1949년에 이미 예비군 조직이 운용된 적이 있었다. 1949년 육군에서 상설 예비군 조직인 '호국군'을 운용했으나 유명무실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정규군에 통합되었다. 1961년에는 <향토예비군 설치법>이 제정되었지만 역시 예산 사정으로 본격적으로 운영되지는 않았다가 1968년 1월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미국의 첩보함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을 계기로 그 해 4월 1일에 향토예비군이 창설되었다. 예비군은 그해 10월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 투입되어 약 2개월 동안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공비 소탕에 크게 기여했다.

창설 다음해인 1969년 4월 1일에 향토예비군 창설 제1주년 기념식이 실시되었으며, 1970년 2월 <향토예비군의 날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어 4월 첫째 토요일을 ‘향토예비군의 날’로 지정했다. 1973년 3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향토예비군의 날’이 포함되면서 <향토예비군의 날에 관한 규정>이 자동적으로 폐지되었다. 2006년 9월 6일에는 ‘향토예비군의 날’기념일을 4월 첫째 토요일에서 4월 첫째 금요일로 변경했다. 1961년 제정된 <향토예비군설치법>은 2016년 <예비군법>으로 개정되었다.

관련 행사

이날은 국방부 주관으로 예비군의 노고를 치하하고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기념식을 거행하여 모범예비군 및 부대에 정부포상을 실시한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기관에서는 최우수 향토사단 선발 부대를 표창하며, 관련 유공자에게 대통령,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표창을 수여하고, 각종 격려 행사를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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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국가기록원, 국경일과 법정기념일
  •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디에디터 / 한국백과사전연구소

브리태니커의 한국 대리인이자 백과사전과 지식을 연구하는 집단. 지금-여기에 맞는 지식의 내용과 구조에 관심이 깊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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