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컴한 방서 민망한 소리가..5년전 차마 못쓴 블랙수면방 취재기

2020. 5. 12. 10:18■ 법률 사회/性범죄·Me Too

컴컴한 방서 민망한 소리가..5년전 차마 못쓴 블랙수면방 취재기

이동우 기자 입력 2020.05.12. 08:13 수정 2020.05.1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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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지난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용인 66번째 환자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7일 오후 환자가 다녀간 클럽의 모습. 2020.05.07. dadazon@newsis.com


"남자친구 있으면 여기 오면 안 돼요, (여기는) 문란하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벌써 5년이 지난 2015년 7월의 기록이다. '블랙수면방'을 찾은 '남성' 이용자의 말이다. 수습기자 당시 취재를 위해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 '블랙수면방'을 찾았다. 최근 코로나19(COVID-19) 확진자들이 다녀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 곳이다.

5년 전 취재 이후 지금은 장소를 근처 다른 건물로 옮기긴 했지만 영업방식이나 내부 분위기 등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속칭 '찜방'은 남성 성소수자들의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한 만남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밀접한 신체접촉은 물론 성관계도 이뤄진다고 한다. 이태원 클럽을 다녀간 확진자가 들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의 온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2015년에 '블랙수면방'을 취재하고도 워낙 자극적이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으로 기사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에 찜방의 실상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뒤늦게 기사로 옮긴다.
어두컴컴한 수면방 내부…주변 곳곳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이태원 클럽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우려되는 가운데 1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상인은 "원래는 주말 이 먹거리골목에 사람이 아주 많다. 클럽발 코로나19 이후 사람이 확 줄었다"고 설명했다. 2020.05.10. chocrystal@newsis.com

카운터에 1만3000원을 주고 들어간 찜방의 첫 인상은 '어둠'이었다. 조명은 있었지만 코앞 얼굴조차 식별이 어려웠다. 휴대폰으로 발밑을 비춰가며 이동했다. 폭 1~1.5미터(m)의 복도 양옆으로는 약 1평(3.3㎡)의 방 10여 개가 늘어서 있었다.

온라인상 업소 설명은 사우나다. 사우나라는 설명과는 달리 사우나나 탕 시설은 없고 개별적으로 샤워만 할 수 있는 간단한 샤워부스 몇 개만 갖춰져 있을 뿐이었다. 업장 내 대부분 공간은 욕조시설이 아닌 휴게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

각 방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사람이 있는지 직접 커튼을 젖혀 확인해야 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몇몇 방에서는 이미 민망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아 주변 곳곳에선 입을 맞추는 소리와 신음이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복도 한쪽에는 휴게실이 마련돼 있었다. TV, 음료수 자판기, 재떨이 등이 있는 평범한 휴게실로 보였다. 입구 옆에 놓인 콘돔과 젤이 한가득 담긴 바구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수면방 찾은 이들 입모아 방문 목적 "성욕 해소"

수면방에서 만난 이들의 목적은 '성욕 해소' 하나다. 이 곳에는 규칙이 있는데, 로커룸 열쇠팔찌를 왼 팔목에 차면 보텀(Bottom·여성 역할), 오른 팔목에 차면 탑(Top·남성 역할), 발목에 차면 올(All·양쪽 모두) 성향을 표시하는 것이다.

천안에서 올라왔다는 A씨(2015년 당시 26세)는 "방에 사람이 누워 있으면 휴대폰 불빛을 비춰보고 성향을 확인한다"며 "맘에 들면 건드려 보고 반응이 있으면 관계를 하고, 거부하면 다른 방으로 간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적 만남보다는 한 번 만나고 헤어지는 곳"이라며 "이곳에 다니면 문란하다는 이미지가 있어 만나기 꺼려진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수면방을 찾는다는 대학생 B씨(23)는 "이곳에 오는 것은 주로 섹스가 목적이지, 남자친구를 만나려는 것은 아니다"라며 "서로 얼굴도 모르고 다짜고짜 섹스만 하는 곳이라 성병 위험도 있고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몇 기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수면방에서는 속칭 '물관리'도 이뤄진다. 업장에 들어서면 입구 초입에 '뚱뚱하신 분', '끼 부리시는 분', '45세 이상' 등은 출입이 제한된다는 공지가 붙어 있다. 한 마디로 이 곳은 20~30대 호리호리한 체격의 성형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성소수자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온 경우가 많다. 은밀하게 운영되고 있음에도 찜방은 언제나 이용자들로 붐빈다. 취재 당시 월요일 저녁임에도 찜방 내 각 방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찼고 복도에는 자신의 짝을 찾거나 짝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당시 업소 관계자에 따르면 평일에 100여명, 주말에는 250~300여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관계자는 "주말에는 누워있을 곳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며 "방에 입장하기 위해 복도에 줄서 있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전했다.
'조용한 확산' 우려, 국무총리 "특정 커뮤니티 비난, 도움 안돼"
[수원=뉴시스] 김종택 기자 = 경기도 용인 66번 확진 환자가 다녀간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추가 감염이 잇따르자 10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팔달구 한 클럽 앞에서 보건소 관계자가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방역을 하고 있다. 2020.05.10. semail3778@naver.com

찜방은 코로나19 확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좁은 공간에 여럿이 모여 밀접한 접촉이 이뤄지는데 위생을 위한 시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수건 한 장만 걸치고 돌아다니는데 마스크를 한다고 감염 예방에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찜방 등을 중심으로 한 지역감염 확산이 우려되는 이유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경기 안양시와 양평군에 거주하는 코로나19 확진자들은 지난 4일 오전 12시30분부터 5일 오전 8시30분까지 블랙수면방을 방문했다. 이 업소는 확진자 발생 직후인 지난 8일 휴업을 공지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성소수자에 대한 비난 여론도 커지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성적 접촉이 이뤄지는 등 위생 측면에서 감염 우려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다만 방역당국은 이른바 '아웃팅' 우려로 '조용한 확산'이 이뤄질 수 있다며 지나친 비판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비난은 적어도 방역의 관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접촉자가 비난을 두려워해 진단검사를 기피하게 되면 그 피해는 우리 사회 전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우 기자 canelo@mt.co.kr,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