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11. 15:52ㆍ■ 국제/영국
다이애너가 "사랑하는 아빠"라 부른 필립공, 아들엔 엄했다
전수진 입력 2021. 04. 11. 14:57 수정 2021. 04. 11. 15:40 댓글 3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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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 필립공(맨 오른쪽). AP=연합뉴스
“아버님, 제 가정불화를 해결하고자 기울여주신 놀라운 노력에 얼마나 감사한지, 꼭 알아주셨으면 해요.”
고(故) 다이애너 왕세자비가 1992년 시아버지 필립 공에게 보낸 편지 일부다. 다이애너가 머물렀던 켄싱턴궁의 마크가 선명히 찍힌 이 친필 편지에서 다이애너는 필립공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Dearest Pa)’라고 불렀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이 지난 9일(현지시간) 영면했다. 장례식은 오는 17일 엄수 예정이라고 영국 왕실은 밝혔다. 에딘버러 공작 작위도 받은 그를 언급하는 영국 매체 보도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는 ‘책임감(duty)’과 ‘규율(discipline)’이다. 몰락한 그리스 망명 왕가 출신으로 평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필립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그의 삶을 지탱해준 두 가지다.
1951년 사진. 아들 찰스와 딸 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부. AP=연합뉴스
그러나 그도 사람이었다. 99년 이어진 삶 속에서 그는 때론 외도 의심을 받는 남편이었으며, 아들에겐 때로 너무 엄혹한 아버지였고 이혼 위기의 며느리에겐 용기를 주고자 했던 시아버지였다. 그의 삶의 궤적을 가족 관계 속에서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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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왕의 까칠한 남자, 결혼 10년 차 맞은 위기
필립공은 핏줄부터 훤칠한 키, 조각 같은 외모까지 갖춘 타고난 금수저였다. 왕조가 몰락하면서 어머니가 정신질환인 조현병을 앓고, 각별했던 누나를 비행기 사고로 잃었을지언정, 그는 가는 곳마다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를 선망한 이 중엔 훗날 영국의 통치자가 되는 엘리자베스 2세도 있었다.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스토아 학파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엘리자베스 2세가 스스로의 감정을 앞세워 손에 넣은 거의 유일한 존재가 남편이다. 13살 공주가 해군학교에서 다섯살 연상의 필립공을 본 뒤 사랑에 빠지고 둘은 편지를 주고받은 뒤 1947년 결혼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의 결혼사진. AFP=연합뉴스
왕의 남자가 될 줄 알고 한 결혼이었지만 평탄하진 않았다. 아들 셋, 딸 하나를 낳으며 다복한 가정을 꾸리긴 했지만, 결혼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결혼 초엔 필립공이 무용수와 같은 젊은 여성과 외도를 한다는 보도가 계속 나왔다. 왕실은 부인했지만,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결혼 10년째이던 1957년엔 위기가 현실화했다. 필립공이 아예 나홀로 여행을 떠난 것. 부인 엘리자베스 2세를 동반하지 않고 호주와 남극 일대를 해군 요트를 타고 순방했다. 당시 로열 커플의 이혼설 등은 영국뿐 아니라 영연방(the Commonwealth)의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필립공은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 책임과 규율로 돌아왔고, 부부는 73년을 해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머는 계속 돌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필립공에게 참다못해 테니스 라켓을 던졌다”는 등의 루머는 계속 나왔다. 존 F. 케네디 부부가 영국을 방문해 왕실을 예방했을 땐 필립공이 들뜬 모습을 보인 나머지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 여사와 뭔가 있는 거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다.
여왕 부부의 2018년 사진. AP=연합뉴스
결혼 50주년 파티에서 필립공은 이렇게 말했다.
“성공적인 결혼의 열쇠는 서로에 대한 아량(toleranc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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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아들의 유약함을 견딜 수 없던 아빠의 선택
찰스 왕세자는 필립공의 서거를 두고 BBC에 “어마마마를 오래 보필한 그의 에너지는 진정 놀라웠다”며 “여왕의 생애에서 그는 바위 같은 든든한 존재였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대해 “그립다”는 말도 물론 했다. 그러나 사실 필립 공과 찰스 왕세자는 애증의 관계다. 찰스 왕세자의 장점은 부드러운 성격과 예술에 대한 열정인데, 군인의 피가 흐르는 아버지에겐 이는 유약함에 지나지 않았다.
고든스타운 기숙학교. 사진 위키피디아, Anne Burgess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건 찰스 왕세자의 진학을 두고서였다. 왕세자 본인은 물론 왕실은 전통적 명문이자 윈저성에서 가까운 이튼스쿨을 원했지만 필립공은 자신의 모교인 스코틀랜드의 고든스타운 기숙학교를 고집했다. 엄격한 규율과 다양한 스포츠를 통한 심신수양이 교육 목표인 곳이다. 이곳에서 찰스 왕세자가 왕따를 당했다는 건 당시 영국 매체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찰스 왕세자는 “많은 것을 배웠다”며 무사히 졸업은 했으나 자신의 두 아들은 이튼스쿨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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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며느리에겐 한없이 다정한 시아버지
왕실에 시집·장가 오는 것의 지난함을 본인이 알고 있어서였을까. 필립공은 유독 왕가의 며느리나 사위들에게는 따스했다고 한다. 가장 각별했던 케이스는 물론, 찰스 왕세자에게 20대 초 어린 나이에 시집온 다이애너였다. 필립공과 다이애너비는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는데, 주로 결혼생활로 힘겨워하는 며느리를 다독이는 내용이 많다. 필립공은 “이 결혼생활이 흔들리고 있는 걸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너가 많이 애쓰는 것 잘 알고 있다”고 썼고, 다이애너는 “사랑하는 아버님, 그래도 아버님께서 저를 진짜로 위해주시는 것 감사하게 생각해요”라고 적었다.
다이애너비가 필립공에게 1992년 보낸 친필 편지 캡처. [더 텔레그래프 캡처]
그러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너비가 1996년 결국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뒤, 필립공도 다이애너와 사이가 멀어졌다. 특히 다이애너비가 연인들과 함께 밀회하는 사진이 매체에 등장하면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고 한다. 다이애너가 중동의 부호 도디 알 파예드와 함께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을 당시, 알 파예드의 가족 일부는 “필립공이 꾸민 짓”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이애너비의 장례식에서 걸어가는 왕족. 맨 왼쪽이 필립공이다. AP=연합뉴스
그러나 다이애너의 장례식에서 엄마를 잃은 어린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의 곁을 지켜준 건 필립공이었다. 영국 이브닝스탠더드는 당시 “윌리엄과 해리 왕자가 장례식에 어떻게 참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말이 많았는데, 필립공이 버럭 화를 내며 ‘엄마를 잃은 애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며 “‘아이들이 (관을 따라) 걷겠다면 나도 따라 걷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고 보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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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6분전이게 왜 기사거리인가요? 왕족이 있나요? 왕족이라고 자기들이 하니까 왕족아닌가요?
- 답글 작성댓글 찬성하기1댓글 비추천하기1
- 쭌니6분전이런것이 무은 이슈라고 우리나라 마지막 왕세손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 펜대믹에 자영업자들 굻어 죽을판에 뭔~상관 우리나라 살 궁리가 우선이고 백신이나 빨리 확보해서 맞게해라 늦장 부리다 결국 잘~ 하는 짖이다
- 답글 작성댓글 찬성하기2댓글 비추천하기1
- 지천명10분전편지에 쓰는 dearest 는 그냥 상투적인 표현일 뿐인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으로 해석하는 기자수준 하고는 참..
- 답글 작성댓글 찬성하기9댓글 비추천하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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