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언론인協 "한국, 징벌적 손배 도입땐 언론통제국가 될것"

2021. 3. 5. 08:50■ 문화 예술/방송 언론

국제언론인協 "한국, 징벌적 손배 도입땐 언론통제국가 될것"

양지호 기자 입력 2021. 03. 05. 03:56 수정 2021. 03. 05. 07:13 댓글 630

번역 설정

공유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조선일보 101년 창간특집 - 코로나 이후 미디어 산업]
해외 전문가들 "코로나 핑계로 표현의 자유 억압" 우려 목소리

한국이 러시아, 필리핀, 캄보디아와 함께 ‘코로나 이후 언론 탄압국 목록'에 오를지도 모른다. 바버라 트리온피 국제언론인협회(IPI) 사무총장은 4일 본지 인터뷰에서 “언론 보도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는 법률이 국내에 도입되어 언론 자유가 제한된다면, 한국을 ‘코로나 유행 시기 언론 규제를 도입한 국가’ 리스트에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래픽=양진경

현재 이 리스트에는 러시아·아제르바이잔·타지키스탄 등 17국이 올라가 있다. 이 중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은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2010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헝가리뿐이다. 트리온피 사무총장은 “이들 국가는 소위 ‘가짜뉴스방지법’을 비판 언론 통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상당히 문제적 상황(highly problematic)이라고 보고 한국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IPI는 전 세계 100국의 신문·방송 발행인, 편집인과 주요 언론인이 회원으로 있는 단체로, 지난해부터 코로나를 빌미로 한 전 세계 언론 자유 침해 사례를 수집해 발표하고 있다.

본지는 창간 101주년을 맞아 화상과 서면으로 해외 언론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례가 증가한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대럴 웨스트 부소장은 “IPI 리스트에 올라 있는 국가들은 가짜 뉴스 범람을 핑계로 언론 검열을 도입하고 있다”며 “권위주의 정부들이 팬데믹을 맞아 가짜 뉴스 이슈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언론을 위축시키려는 것”

해외의 언론 및 법률 전문가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같은 규제가 강화될 경우 언론 활동이 위축되는 현상(chilling effect)을 우려했다. 기자나 언론사가 처벌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 스스로 입을 닫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 언론법 전문가 찰스 글래서 변호사(전 블룸버그 고문)는 “미국에서 언론을 상대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은 대부분 ‘위축 효과’를 노린 것으로, 기자·신문사·방송사 등을 위협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팩트체크 기구인 폴리티팩트의 앤지 홀런 편집장은 “언론에 소송 걸기 쉬워질수록 위축 효과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제러미 캐플런 뉴욕시립대 뉴마크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민주 사회에서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다가 실수했다는 이유로 기자를 처벌한다면, 언론은 (불의를 목격해도) 침묵하게 될 리스크가 생긴다”고 했다.

이들은 잘못된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규제 당국이나 정부가 내세우는 불분명한 잣대는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글래서 변호사는 “언론은 잘못된(wrong) 뉴스를 전할 수는 있지만, 가짜(fake) 뉴스를 보도할 수는 없다”며 “가짜라는 단어는 정치적 비방 용어일 뿐”이라고 했다. 홀런 편집장은 “권위주의 정권이 진짜 보도를 두고 가짜 뉴스라며 막는 일들이 있었다”고 했다. 캐플런 교수는 “규제 당국은 기성 언론을 문제 삼지만, 대다수 허위 정보는 작은 매체에서 나온다”며 “현재 미디어 환경은 기성 언론이라는 거인과 수천 개의 작은 매체·개인들이 경쟁하다 보니 몸집이 큰 기성 언론들이 눈에 더 잘 띄는 것”이라고 했다.

”법 개정보다 가짜 뉴스 걸러내는 교육이 중요”

싱가포르는 2019년 10월 가짜 뉴스의 범람을 막기 위해 ‘온라인상의 거짓과 조작으로부터의 보호법’(Pofma)을 도입했다. 이는 정부 기관이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인터넷 사이트와 언론을 통제하는 법안이다. 그러나 이 법 입안에 참여했던 캐럴 순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사회 전체를 교육하는 것이 법 도입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법안 도입에 앞서 싱가포르는 정부와 주요 기관들이 협력해 학생·학부모·고령자를 대상으로 정확한 정보를 판별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며 “가짜 뉴스는 사회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기 마련이고 이를 막으려면 가짜 뉴스를 걸러내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존 루젠비크 케임브리지대 심리학 박사는 “가짜 뉴스는 메아리방(끼리끼리 모여 듣고 싶은 얘기만 주고받는 것)을 통해 널리 퍼지는데, 메아리방 형성을 막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 언론 보도 등 콘텐츠를 통제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지난 대선 당시 선거 조작 음모론으로 가짜 뉴스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이를 규제하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입법 움직임은 없다. 홀런 편집장은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따라 정부기관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은 가짜 뉴스의 주요 유통 경로인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가 가진 면책권(통신품위법 230조)을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양지호 기자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5

 

4

 

1

 

296

 

1

조선일보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

 

댓글 630MY

댓글 입력

세이프봇 설정

설정 버튼

  • 추천댓글도움말
  • 찬반순
  • 최신순
  • 과거순

 

 

  • Gini2시간전

    호소문인가? 글게 잘좀 하지 그랬나.. 조중동. 언론지수 조중동이 다 까먹은거 아닌가..

    답글 작성댓글 찬성하기204댓글 비추천하기4

  • dolbbi2시간전

    조선아 그래도 해야한다 니들의 횡포가 나무심해 폐간하자

    답글1댓글 찬성하기226댓글 비추천하기12

  • 트루2시간전

    그래서 대표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운영하는 미국이 언론탄압국가 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답글6댓글 찬성하기736댓글 비추천하기1

더보기

새로고침

 

많이본 뉴스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