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간 온전히 전해진 조선왕실 하사품 '기사계첩', 국보 된다

2020. 10. 29. 12:44■ 大韓民國/문화재 사랑

300년간 온전히 전해진 조선왕실 하사품 '기사계첩', 국보 된다

임동근 입력 2020.10.29. 10:39

조선 숙종 기로소 입소 기념해 제작.."삼중 보호장치 덕분에 원형 보존"
'경진년 연행도첩' 등 5건은 보물 예고

보물 제639호 기사계첩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300년 넘게 풍산홍씨 집안에 대대로 전해진 왕실 하사품 '기사계첩'(耆社契帖)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조선 숙종 때 화첩인 기사계첩(보물 제639호, 1978년 지정)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1978년 보물로 지정된 이 기사계첩은 1719년(숙종 45년) 숙종의 기로소(耆老所) 입소를 기념해 제작됐다. 계첩은 행사에 참여한 관료들이 계를 조직해 화원을 불러 만든 것으로, 오늘날 기념사진처럼 참석자 숫자대로 제작해 나눠 갖는 것이 풍습이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기로소는 나이 70세를 넘은 정2품 이상 문관을 우대하던 기구. 당시 숙종은 59세여서 때가 되지 않았으나, 태조 이성계가 60세에 들어간 전례를 따라 다소 이른 나이에 입소했다.

기사계첩은 기로소에 입소한 관료(기로신)들에게 나눠줄 11첩과 기로소 보관용 1첩을 포함해 총 12첩이 제작됐는데, 완성 시기는 1720년이다.

현재 기사계첩은 총 5건이 전한다. 이 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지난해 국보 제325호로 지정됐고, 이화여대박물관이 소장한 1건은 보물로 지정된 상태다. 2건은 비지정문화재다.

보물 제639호 기사계첩 속 홍만조 초상화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된 기사계첩은 현존 다른 기사계첩과 구성이 유사하다. 기로소 문신 임방(1640∼1724)이 쓴 서문, 경희궁 경연당 연회에서 숙종이 지은 글, 대제학 김유(1653∼1719)의 발문, 행사 참석자 명단, 행사 기록화, 기로소 문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초상화, 기로신들이 쓴 축시, 계첩 제작자 명단이 수록돼 있다.

그림은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경현당석연도(景賢堂錫宴圖),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순으로 실렸다.

다른 기사계첩과 차이는 '만퇴당장'(晩退堂藏, 만퇴당 소장), '전가보장'(傳家寶藏, 가문에 전해 소중히 간직함)이란 글씨가 있다는 점이다.

문화재청은 "이 글씨는 1719년 당시 행사에 참석한 기로신 중 한 명인 홍만조(1645∼1725)에게 이 계첩이 하사된 후 풍산홍씨 집안에 대대로 전승되어 온 경위와 내력을 말해 준다"고 설명했다.

보물 제639호 기사계첩을 보관한 내함(위 오른쪽), 호갑(아래 왼쪽), 외궤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이 계첩은 300년이 넘었음에도 하사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문화재청은 "이는 내함(內函, 궤 안에 담는 함), 호갑(護匣, 가방 형태의 보자기), 외궤(外櫃, 맨 바깥 상자)로 이뤄진 삼중 보호장치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즉 화첩을 내함에 넣고 호갑을 두른 후, 이를 외궤에 넣어 하사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 기사계첩은 조선 왕실에서 민가에 내려준 물품의 차림새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왕실 하사품이 일괄로 갖춰진 희소한 사례일 뿐만 아니라 제작 수준도 높아 화첩의 완전성을 돋보이게 한다"라고 밝혔다.

경진년 연행도첩의 산해관도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경진년 연행도첩'을 비롯해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1',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 '미륵원명 청동북'은 보물로 지정 예고 됐다.

'경진년 연행도첩'은 1760년 11월 2일 한양에서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으로 출발해 이듬해 4월 6일 돌아온 동지사행(冬至使行)의 내용을 영조가 열람할 수 있도록 제작한 화첩이다. 사행단을 이끈 홍계희가 쓴 발문에는 영조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잡혀있던 심양관 옛터를 자세히 살피라는 명을 내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심양관과 산해관의 옛터, 연경의 문묘 등 그림도 수록돼 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는 당나라 불경에 세조가 한글로 어미와 조사 등을 단 것을 기초로 판본을 만들어 금속활자로 간행한 불경이다. 줄여서 '원각경'(圓覺經)이라고도 불리는데, 고려 시대 이후 사찰에서 수행을 위한 교과목 중 하나로 채택돼 널리 유통됐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1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또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1'은 1481년에 홍문관 학자들과 승려들이 왕명을 받아 당나라 시인 두보의 '두공부시'(杜工部詩)를 내용별로 분류하고 우리말로 번역해 편찬한 '분류두공부시(언해)'의 권11에 해당하는 책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간행한 번역시집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은 17세기 승려 의천이 발원해 1663년에 제작된 마애불로, 경북 봉암사 옥석대에 자리한다. 제작 시기와 주관자, 명칭이 의천의 제자인 명찰의 문집 '풍계집'(楓溪集)에 수록돼 있다. 좌상은 높이 539.6㎝, 너비 502.6㎝다. 둥글고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콧날, 부드러운 눈매, 단정히 다문 입 등이 자비롭고 인자한 인상을 풍긴다.

미륵원명 청동북과 측면에 새겨진 명문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마지막으로 '미륵원명 청동북'은 측면에 음각으로 새겨진 명문을 통해 1190년(고려 명종 20년) 미륵원(彌勒院)에 걸기 위해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은 "12세기 청동북 중 비교적 큰 크기이며, 문양의 조각 솜씨가 좋고 주조 기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청동북 제작 기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예고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보 및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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