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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와 HIV, 차이를 아시나요? '둘이 다른 거라고? 같은 거 아니야?' 생각하시는 분 많으실 겁니다. 에이즈는 증상이고요. HIV는 바이러스 이름입니다. HIV라는 바이러스에 걸리면 그중 일부 환자만 에이즈라는 증상을 겪습니다.
'에이즈 환자면 다 죽던데.. 손만 닿아도 옮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는 HIV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HIV 바이러스는 완치는 안 되지만, 억제가 가능합니다. 꾸준히 약만 먹으면 증상 없이 다른 사람들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거죠. 당뇨나 천식처럼 완치보다는 조절에 무게를 두는 병으로 바뀐 겁니다.
손만 닿아도 옮는 바이러스였으면 지구는 진작에 멸망했을 겁니다. 전 세계 HIV 환자는 지난해 기준 3,790만 명이고요.(UN 통계) 우리나라 내국인 HIV 환자도 1만 2천여 명으로 추산되니까요.(질병관리본부 통계) HIV는 공기로 전파된다는 근거가 전혀 없고요. 거의 모든 감염자는 '성 접촉' 때문에 걸렸다고 응답했습니다. (질병관리본부 조사. 무응답자는 제외)
감염 경로가 동성 간의 성접촉 때문인지, 이성 간의 성접촉 때문인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데요. 가늠할 수 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지난해 대한내과학회지에 실린 연구 보고서입니다. 7개 대학 연구팀이 국내 HIV 환자 1천4백여 명을 상대로 역학조사를 했는데요. 감염 경로에 대해 환자들은 '동성+양성 간의 관계'가 59%, '이성 간의 관계'가 34%라고 응답했습니다. ('양성 간 성접촉'의 경우 '동성 간 성접촉'을 주로 하면서 극히 드물게 '이성 간의 성접촉'을 하는 경우기 때문에 '동성 간 성접촉으로 분류) 질병관리본부 통계는 '이성 간의 성접촉' 비율이 조금 더 높아서 결과가 반대인데요. 연구진의 역학조사가 더 신뢰성 있는 조사 방법으로 평가받습니다. 오랜 시간 추적 관찰한 코호트 연구 방법이거든요.
HIV, 에이즈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한 입법안 때문입니다. 지난 12일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요. 인권위법 2조 3항을 보면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나이..." 하면서 여러 차별 조건을 써놨는데 이 중 '성적(性的) 지향'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걸 삭제하자는 게 안 의원의 발의안입니다. 이 단어 때문에 "신규 에이즈 감염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급증하는 등의 수많은 보건적 폐해들이 초래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겁니다.
'성적 지향'이 담긴 법이 만들어진 건 2001년입니다. 그때 이후 신규 에이즈 감염이 '급증'했는지 통계를 보면 나오겠죠. 우리나라 신규 HIV 환자는 1985년 첫 환자가 발견된 뒤 꾸준히 늘었다가 2010년대 들어서는 1천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법 때문에 신규 감염자가 늘었다면 2001년 이후로 통계 수치가 '급증'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전부터 꾸준히 늘었고 2001년 이후로도 꾸준히 늘었습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도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 일축했고요. 관련 전문가들 역시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90년대 이후 HIV 환자가 늘어난 건 복합적인 이유입니다. 이전보다 더 다양해진 성 문화도 영향을 끼쳤을 거고요. 검사 방식이 늘어난 것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채혈하면 혈액에 HIV 바이러스가 있는지 없는지 검사하는 것도 나중에 도입돼서 영향을 끼쳤고요. 군대 갈 때 신체검사에서 HIV 검사를 하는 것도 나중에 추가됐습니다. 즉, 병 자체가 늘어났다기보다는 자기가 에이즈 환자인데도 몰랐던 사람들이 검사를 통해 새로 알게 된 거죠.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교수
(HIV, 에이즈) 발견이 증가한 거예요. 검사를 더 할 수 있게 된 건데, 자발적인 검진은 늘지 않았어요. 의료기관을 통한 검진이 늘어났거든요, 실제론. 다른 수술 같은 것 받으시면서 검진하면서….
특히, 늘어난 신규 환자 대부분은 외국인입니다. 내국인 환자 수는 제자리 수준입니다. 밑에 표를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죠. 인권위법 조항 하나 때문에 외국인 에이즈 환자가 급증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죠.
이 발의안이 문제가 되는 건 동성애 혐오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의안에 적힌 내용 보면 일부 개신교와 극우단체가 그동안 주장했던 논리와 매우 비슷합니다. 이런 주장이 국회 입법 과정까지 올라온 겁니다. 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거죠.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했듯, HIV≒에이즈 환자의 거의 전부는 성 접촉 때문입니다. 통계로 입증됐습니다. 그러니까 콘돔을 끼면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방법을 더 확실하게 홍보하고,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사실이 뭔지 알리는 게 에이즈를 박멸할 수 있는 대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법을 만든다면 모를까, 마치 동성애 자체를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규정하고, '차별을 용인하는' 법까지 만들려고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이 신발을 안 신어서 발이 까지면 신발을 신게 해야지, 신발 안 신은 사람 전부를 차별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특정 성 접촉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닌, 전체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에이즈를 음지로 내모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관리 자체가 안 된다면 HIV 바이러스는 음지에서 더 빠르게 퍼져나갈 테니까요.
안상수 의원은 처음 발의한 법안을 철회하고 지난 21일 새 법안을 올렸습니다. 내용은 거의 똑같습니다. 발의한 사람 수가 조금 달라졌을 뿐입니다. 첫 발의에 동참한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의원, 이개호 의원은 입장을 번복하면서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두 번째 발의한 법안에 동참한 국회의원은 44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