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음 공존하는 북극나라..매년 땅 커지는 세계 5위 부국

2019. 11. 24. 08:41■ 여행/세계 여행 안내

불과 얼음 공존하는 북극나라..매년 땅 커지는 세계 5위 부국

최준호 입력 2019.11.24. 05:01 수정 2019.11.24. 07:03

[김종덕의 북극비사]
아이슬란드 스나이스펠스외쿨국립공원 [사진 아이슬란드 관광청]


⑥ 북극이사회 회원국 아이슬란드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는 비록 인구 35만 명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이지만, 북극써클에서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미국ㆍ캐나다ㆍ러시아ㆍ노르웨이ㆍ핀란드ㆍ덴마크ㆍ스웨덴과 함께 8개국 북극이사회의 당당한 정식 회원국이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7만3191달러, 세계 5위다. 한국인에게는 3년전 한 국내 방송사의 TV프로그램 덕분에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가 되기도 했다. 국명(國名)이 아니었으면 테마파크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을 법한 이름 그대로 얼음왕국, 아이슬란드. 9세기경 노르웨이 사람들이 첫발을 내디딘 후 붙였던 첫 이름은 ‘스노우랜드’였다고 한다.

북위 64도8분에 위치한 수도 레이캬비크는 밤만 계속되는 극야나 해가 24시간 떠있는 백야현상이 나타나는 북극계선(북위 66.5도)내에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구상 주권국가의 수도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가 ‘연무(煙霧)로 뒤덮인 만’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매서운 추위를 가진 아(亞) 북극권이지만 화산으로 생긴 온천 수증기가 마치 연무처럼 바닷가 마을은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케플라빅 공항에서 레이캬비크로 가는 길에 만나는 아이슬란드의 첫 인상은 화산활동의 흔적으로 황량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닌 듯한 모호한 이중성을 느낀다.
아이슬란드는 그린란드와 북유럽 사이에 있는 남한 면적의 섬이다.


쥘 베른의 SF '지구 속 탐험'의 나라

내가 아이슬란드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10월이었다. 속설로 들은 그린란드에는 그린(green)이 없고 아이슬란드에는 아이스(ice)가 없다는 아재개그를 확인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폭풍 같은 비바람을 뚫고 아슬아슬하게 케플라빅공항에 내린 후 수도 레이캬비크로 가면서 바라본 버스 창밖 풍경은 우리의 제주와 닮아 있었다. 용암이 굳어 생긴 현무암 들판에 듬성듬성 보이는 초목들은 늘 부는 강한 바람 탓에 기울어 누워있었다.

지난해 6월 말, 여덟번째 아이슬란드를 방문했다. 이곳 해양법연구소와 공동으로 레이캬비크에서 콘퍼런스를 열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아이슬란드 최서단, 그린란드와 마주보는 덴마크 해협에 맞닿은 스나이펠스네스 지역을 찾았다. 이곳은 SF소설의 선구자이며 해저 2만 리의 저자인 쥘 베른의 또 다른 상상소설 ‘지구 속 탐험’(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의 주인공들이 지구 중심으로의 탐험을 시작하는 만년설이 덮인 스나이펠스외쿨산의 분화구가 있는 곳이다. 발음하기도 쉽지 않지만, 이 소설은 지구 속에 또 다른 지구와 바다가 있고 그곳에는 선사시대 생물들이 살고 있고 땅속 화산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 있는 루터교 교회 할그림스키르캬. 아이슬란드의 대표적 상징인 화산에서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데, 언뜻 보기엔 우주왕복선이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아이스란드 태생의 탐험가 레이프 에릭손 동상이 교회 앞에 서 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천년 전 그린란드 발견한 여정 시작된 곳

스나이스펠스네스 지역은 소설의 내용만큼이나 극적인 실제 이야기를 가진 곳이다. 노르웨이인으로 아이슬란드에 왔다가 결국은 그린란드를 최초로 정복하게 되는 바이킹 ‘붉은 에릭’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장에 동행했던 토마스 하이다 국제해양법재판관의 이야기를 빌리면 아이슬란드에서 그린란드로 가기 위해 바다를 건너다보면 스나이펠스외쿨산의 정상이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그린란드 동쪽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래서 스나이펠스네스 지역은 1000년 전에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섬인 북극의 땅 그린란드와 유라시아 대륙을 이어준 통로였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캐나다와 가까이 붙어 있고 이누이트들의 나라인 그린란드가 북아메리카가 아닌 유럽에 속하게 되었나 보다. 또한 이곳 사람들은 붉은 에릭의 아들인 에릭슨이 콜롬부스보다 500여년 앞서 북미대륙을 발견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스나이펠스네스는 아시아에서 동쪽 끝으로 이주한 그린란드인과 서쪽 끝으로 진출한 유럽계 정복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떠나 간지 수십만 년 만에 지구의 반대편에서 다시 만나 동서가 연결된 시작점인 셈이다.

아이슬란드는 소국이지만 수산업을 비롯하여 신재생에너지와 관광산업이 크게 발달한 곳이고, 북극해와 그린란드라는 거대한 얼음왕국을 배후에 두고 있어 지정학적으로도 중요성이 큰 곳이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수산업의 실리콘밸리’를 목적으로 레이캬비크 항 내에 설립된 아이슬란드 해양클러스터는 ‘생선의 완전 활용, 폐기물 0’이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고, 얼음과 화산 덕분에 전기에너지의 99%를 수력과 지열발전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90%의 가구가 지열 온수를 공급받고 있다. 화산 덕에 매년 2.5㎝씩 국토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해양국가답게 아이슬란드의 모든 동전에는 바다생물이 그려져 있다. 아이슬란드 친구들은 자기 나라는 ‘22세기 중심국가’라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자신감의 근원이다.

아이슬란드 동전에는 물고기가 새겨져 있는 게 특징이다. 수산업은 아이슬란드의 대표적 산업이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22세기 준비하는 해양과 북극의 섬나라

콘퍼런스에는 굿니 요한슨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직접 개회식에 참석해 자신이 역사학자로서 영국과 아이슬란드 간의 1958년 1972년 1975년 세 차례에 걸친 ‘대구(大口ㆍCod) 전쟁’을 주제로 학위를 받았고 그의 조부는 직접 영국과의 협상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북극해에 떠 있는 작은 섬나라인 아이슬란드가 가진, 수식어가 더 필요없는 해양문제에 대한 지도자의 자신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는 북극문제에 있어서도 독특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북극이사회의 한계를 인지하고 2013년부터 ‘북극써클의회(Arctic Circle Assembly)’를 창설하여 차별 없는 북극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올해부터는 북극이사회에서 의장국을 맡고 있으며 북극이사회 산하 6개 실무위원회 중에서 2개 사무국을 유치하고 있어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콘퍼런스 개최일은 지난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독일을 2대0으로 이긴 다음날이었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요한슨 대통령의 축하인사가 고마웠던 아이슬란드에서의 추억이다.

이제 북극에 대한 도전은 1000년 전처럼 생존을 위해 새로운 땅을 향한 모험이거나, 100년 전처럼 북극점을 정복하기 위한 탐험이 아니다. 북극문제는 초강대국 간의 세계전략과 에너지자원을 둘러싼 경쟁, 새로운 물류루트의 개척, 치열한 과학과 미래해양자원의 탐사, 기후와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수십만 명에 이르는 원주민의 삶과 서로 연결된 난제들 간의 복잡한 셈법이 작용하는 것은 물론, 여전히 서방국가만으로 구성된 북극권 국가들과, 북극에서 새로운 이해관계자로 등장하고 있는 동양권 국가들 사이에 또 다른 의미에서 동서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글로벌 의제가 되었다. 현재의 북극과 다가올 미래의 북극에 대한 서로 다른 여러 시점을 확인하고 북극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 협력과 공동 대응이 필요한 곳이다.
아이슬란드 최서단 스나이스펠스네스 지역의 바닷가.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아이슬란드의 스나이펠스네스가 11세기에 북극 그린란드로 건너가서 정복활동을 위한 유럽세력이 주도한 동서간 연결점이었다면, 1000년이 지난 21세기에는 한반도가 북극이 가진 인류 공통의 도전과제를 극복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동양세력이 주도하여 동서가 만나는 연결점이 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⑦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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