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12. 22:42ㆍ■ 여행/세계 여행 안내
사파리 차 막은 사자·진흙 목욕 코끼리..'생생 다큐' 세렝게티
최흥수 입력 2019.11.12. 18:35 수정 2019.11.12. 22:33
세계 최대 야생 국립공원 탄자니아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 분화구
먹이를 찾아 강을 건너야 하는 누 떼, 뒤에서는 끝없는 행렬이 밀려들고 앞은 폭우로 불어난 강물이 집어삼킬 듯 넘실댄다. 드디어 선두 그룹의 몇 마리가 용감하게 강물에 뛰어들자 수백 마리의 들소가 진흙 빛 탁류 속으로 뛰어든다. 거센 물살과의 사투에서 겨우 살아남았나 하는 순간, 강 언저리의 악어가 커다란 아귀로 순식간에 다리와 목을 공격한다. 물속으로 끌려 들어간 누는 사력을 다해 보지만 결국 악어의 먹이가 되고, 몇몇 동료의 희생으로 무리는 먹이가 풍부한 새로운 초원에 무사히 안착한다.
자연 다큐멘터리에 너무 익숙한 탓일까. 세계 최대의 야생 국립공원, 탄자니아 세렝게티에서 아쉽게도 그런 극적인 장면은 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장기간 촬영하고 정교하게 편집한 다큐멘터리도 담지 못한 ‘직관(직접 관람)’의 감동과 여운은 컸다.
◇세렝게티의 축소판, 세계 최대 응고롱고로 분화구
마사이족 언어로 ‘끝없는 평원’을 의미하는 세렝게티(Serengeti)는 탄자니아 북서부에서 케냐 남서부에 걸쳐 있는 거대한 자연보호구역이다. 국립공원 면적만 1만4,750km²로 강원도보다 조금 작다. 남쪽의 탁 트인 초원, 중심부의 사바나, 그리고 수목이 우거진 서북부 목초지로 형성된 세렝게티에는 두 계절만 반복된다. 3월부터 5월까지 우기가 이어지고 10~11월도 잠깐씩 비가 내리는 소우기다. 비가 온 후에는 대지가 푸르름에 뒤덮이지만, 건기에는 초식동물이 풀과 물을 찾아 이동한다. 최대 200만마리에 이르는 초식동물의 대이동은 남부 평원에서 북쪽 구릉지대까지 장대한 행렬을 이룬다. 드넓은 평원엔 강과 호수, 늪지도 곳곳에 산재해 있어 초식동물의 대이동과 함께 거대한 생태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탄자니아 서북부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에서 세렝게티 가는 길, 인구 27만의 지역 중심도시 아루샤를 지나 응고롱고로(Ngorongoro) 자연보호구역 입구까지는 깔끔하게 포장된 왕복 2차선 도로다. 도로 옆으로 사바나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이따금씩 소 떼를 몰고 이동하는 주민의 모습도 보인다. 방목하던 소 떼가 가끔 도로를 횡단하고 막대기 하나만 든 목동이 느긋하게 뒤따른다. 흡사 순례를 떠나는 중세 성직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세렝게티의 축소판이다. 산꼭대기에 물웅덩이가 형성된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과는 규모부터 다르다. 응고롱고로는 약 200만년 전 여러 개의 화산 활동으로 주변이 침식되면서 형성된 칼데라 지형이다. 분화구 지름만 약 20km에 달한다. 바닥보다 600m 높은 지점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지만,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만큼 허망한 행위도 없다. 어차피 한 컷에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규모를 보여 주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맨눈으로 전방 180도를 훑어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제대로 보려면 평평한 초원에 군데군데 습지가 형성된 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 입장료는 하루 1인 71달러, 차량 35달러. 물론 개별적으로 갈 수 없으니 현지 여행사 상품에 미리 포함된 금액이다. 출입구를 통과한 사파리 차량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로 끝없이 내려간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분화구는 점점 넓어져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이 든다.
평원에 개미처럼 보이던 것들이 모두 누와 얼룩말이다. 물소 몇 마리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언덕길을 내려가 바닥에 닿자 물이 조금 고인 습지에서 풀을 뜯던 누 떼와 얼룩말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서 도로를 가로막고 이동한다. 정말 느릿느릿 세상 바쁠 것 없는 걸음걸이다. 질서와 차례가 인간 문명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정체를 빚을 때면 아예 걸음을 정지하고 한참 동안 멈추기도 한다. 서두르거나 허둥대지 않고 드넓은 초원을 가르는 모습은 평화와 평온 자체다.
응고롱고로에 세 마리밖에 없다는 코뿔소는 먼 발치에서 형체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종종걸음으로 귀여움을 독차지한 멧돼지 ‘품바’는 바로 코앞에서 짧은 다리를 꼬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360도로 분화구를 감싼 능선에는 구름이 걸려 있다. 자체 보호막인 셈이다. 시야는 눈길 닿는 산자락까지 선명해서 넓이와 높이가 쉬이 가늠이 되지 않는다. 거대한 비행접시가 내려앉은 것 같은 분화구, 야생의 천국이자 노아의 방주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사파리 차량은 분화구 한쪽 귀퉁이, 숲이 제법 무성한 지역에 일행을 내려 놓았다.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무(이곳에선 가시가 있는 나무를 통틀어 아카시아 나무라 부른다) 아래에 뷔페 식사가 차려져 있다. 응고롱고로 인근 주민들이 준비한 음식이다. 분화구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주민의 거주와 경작을 금지하고 있다. 열대 과일이나 고기를 곁들인 볶음밥에 걸쭉한 콩 요리를 덮밥 식으로 얹어 먹는 탄자니아 음식은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낯선 행성에서 즐기는 꿀맛 같은 소풍이다. 리듬감 넘치는 지명, ‘응고롱고로’는 마사이 언어로 워낭 소리를 흉내 낸 말이다.
◇코앞에서 펼쳐지는 진짜 야생 세렝게티
응고롱고로를 벗어나 세렝게티 국립공원으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대평원이 펼쳐진다. 신기루를 봤다. 지평선 끝에서 아른거리는 오아시스, 가까이 다가가면 물기는 사라지고 다시 끝없이 메마른 평원이다. 그게 실제 호수였는지 복사열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지구가 둥글다는 진리를 이 평원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파리 차량은 세렝게티의 비포장도로를 시속 60~80km 속도로 질주하며 흙먼지를 날린다. 이 메마른 초원에도 생명은 건재하다. 풀을 뜯던 톰슨가젤과 임팔라 떼가 무심하게 사파리 차량을 응시하고, 날지 못하는 타조도 두세 마리씩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이런 길을 두어 시간 달리면 드디어 드문드문 잡목 숲이 나타나고, 넓게 그늘을 드리운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무가 드넓은 평원에 섬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 위에 둥실둥실 떠가는 조각구름이 또 한 폭의 그림이다.
본격적인 사파리투어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우리에 갇힌 것도 아닌데 야생의 생명체가 ‘나 좀 봐 달라’며 관광객을 기다리겠는가. 사파리 차량이 찾아 나선다. 사자ㆍ표범ㆍ코끼리ㆍ하마ㆍ코뿔소 등 ‘빅 파이브’라고 부르는 동물이 쉬는 곳에는 어김없이 사파리 차량이 몰려든다. 때로는 10여대 이상 늘어서서 자리싸움을 벌인다.
다행히 사파리 차량은 세렝게티의 야생동물에게 철저히 이방인이다. 이따금 무심한 눈길을 줄 뿐 어느 동물도 차량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늘을 찾지 못한 사자가 느닷없이 사파리 차량 그림자에 드러눕는 난감한 상황도 벌어진다. 차를 엄폐물 삼아 톰슨가젤 떼에 접근하는 상황도 연출된다. 이쯤 되면 고가의 카메라나 망원렌즈도 필요 없다. 휴대폰으로 찍을 수 있을 정도로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이 ‘생생 다큐’다. 배부른 사자 가족이 나무 그늘 아래서 시체처럼 널브러진 모습도 보인다. 바로 옆 덤불 숲에는 이들에게 희생된 얼룩말 한 마리가 붉은 속살을 드러낸 채 쓰러져 있다. 인근 나무 위의 독수리도 식사를 마친 듯 느긋하다.
얕은 개울과 진흙 구덩이는 하마와 코끼리 차지다. 주로 눈과 귀만 드러내던 하마가 3톤의 거구를 물 위로 드러낸 채 ‘배설물 털기’ 시범을 보이는가 하면, 코끼리 가족은 진흙 목욕으로 한낮의 열기를 식힌다. 서로 긴 코를 감고 상아를 부딪히며 싸우다 일행을 놓치고 부랴부랴 뒤따르는 모습도 목격된다. 해질녘 숙소로 돌아오는 길, 노을빛을 받은 기린의 몸매는 유난히 길쭉하고, 붉은 기운이 흩뿌려진 초원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는 야생동물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세렝게티의 밤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양철 지붕에 커다란 텐트를 친 오두막 형태의 숙소, 로지(lodge)에서 보내는 하룻밤도 특별하다. 호화스럽다 할 수는 없지만 침대와 화장실, 욕실 등 필요한 것은 제대로 갖췄다. 숙소에서는 체크인할 때 호루라기가 붙어 있는 열쇠를 나눠 주며 살벌한 주의 사항을 덧붙인다. 원숭이가 물건을 훔쳐 갈 수 있으니 지퍼 출입문을 꼭 잠글 것, 밤에 이동하는 동물이 많으니 절대 숙소 바깥으로 나가지 말 것, 식당에 가거나 위급한 경우에 호루라기를 불어 직원을 부를 것.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등을 비춰 보니 숙소 바로 앞에서 얼룩말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야간 사파리투어 때 무리 지어 돌아다니던 하이에나 떼가 떠올랐다. 로지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잠시 야생에 내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은 새들의 지저귐으로 눈을 뜰 수 있었다.
질주하는 야생마, 이를 추격하는 맹수 등 생생한 약육강식의 장면만 상상했다면 세렝게티 사파리가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은 인간의 생각대로 연출되거나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의 자연이다. 조금 아쉽고 감질나는 것도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한 부분이다.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세세하게 동물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라는 자각과 겸손이다. 인생의 한 순간 야생의 대평원에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세렝게티의 감동과 여운은 오래도록 남는다.
◇알고 가면 ‘하쿠나마타타’, 탄자니아 여행 팁
탄자니아의 공용어는 스와힐리어다. (영어도 초등학교부터 배워 국민 대부분이 능숙하다.) 한국인에게는 낯선 언어지만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언 킹’의 주제가이기도 한 ‘하쿠나마타타’는 누구나 들어 본 익숙한 말이다. 케냐의 밴드 뎀머시룸이 ‘잠보브와나(Jambo Bwana)’라는 제목으로 처음 불렀고, 독일의 보컬 그룹 보니엠이 영어로 선보인 ‘잠보-하쿠나마타타’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쿠나마타타’는 한국어로 ‘문제없어’ 정도로 해석된다.
지난해 탄자니아를 방문한 한국인은 약 7,800명, 아직까지 낯설고 준비할 것도 많다. 탄자니아는 비자 면제 국가가 아니다. 탄자니아 여행 허가 서비스 홈페이지(tanzaniaevisa.com)에서 온라인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요금은 50달러. 이와 함께 꼭 필요한 것이 황열예방접종 증명서다. 탄자니아 입국 시 공항에서 최소 10일 전에 접종을 했다는 증명서를 꼭 확인한다. 10일이 경과하지 않았으면 거액의 벌금을 물거나, 날짜가 지날 때까지 억류된다. 말라리아 예방약은 권고 사항이다.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모기 기피제 등을 넉넉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킬리만자로와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가려면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을 이용한다. 한국에서는 아디스아바바를 경유하는 노선이 가장 빠르다. 에티오피아항공이 인천~아디스아바바를 주5회 운항(약 13시간)한다. 아디스아바바에서 킬리만자로공항까지는 2시간40분가량 걸린다. 공항에서 응고롱고로 분화구까지 약 200km, 이곳에서 사파리투어가 진행되는 세렝게티 북부지역까지는 다시 200km 이상 이동해야 한다. 현지 여행사는 응고롱고로에서 2박, 세렝게티에서 3박 일정이면 여유 있게 사파리 투어를 즐길 수 있다고 권한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에는 포장도로가 없다. 다소간 흙먼지를 감수해야 한다. 마스크와 물티슈를 넉넉히 준비하는 게 좋다. 얇은 스카프도 도움이 된다.
탄자니아 실링이 공식 통화지만 호텔과 관광지에서는 달러도 받는다. 작은 돈이라도 낭비를 줄이려면 공항에서 현지 통화로 환전하는 게 유리하다. 현재 1달러의 가치는 약 2,300실링이지만 달러로 지불하면 편의상 대부분 2,000실링으로 계산한다. 단기간 여행이라면 현지 유심(U-Sim)카드보다 국내 통신사 로밍이 편리하다. 현지 유심은 저렴하지만 가입 절차가 까다롭다. 여권 복사뿐만 아니라 증명사진까지 촬영해 업로드하고 통신사로부터 승인을 받는 데까지 30분 이상 소요된다. 상대적으로 속도가 빠를 것이라는 기대도 버리는 게 좋다. 실제 로밍과 현지 유심 사이에 속도 차이가 없었다. 세렝게티 지역에서는 데이터 통신이 두절되는 경우가 많다. 호텔 와이파이도 로비를 제외하면 잡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와이파이도 속도가 느리기는 마찬가지다.
5성급 특급호텔이 아니라면 숙소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수영장까지 갖춘 고급 리조트도 여행객에겐 답답한 구조다. 보통 호텔 방은 출입문 맞은편이 창이나 발코니지만, 탄자니아의 숙소는 화장실로 막혀 있다. 출입문 옆에 창이 있지만, 여러 사람이 지나다니는 통로라 커튼을 열어 놓을 수 없다. 호텔 방에 들어가면 스스로 갇히는 구조다. 방 안 침대에는 네 기둥에 예외 없이 하얀 커튼이 묶여 있다. 공주님처럼 우아한 잠자리를 위한 장식물이 아니라 모기장이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끈을 풀어 커튼을 내리고 모기약을 뿌려 놓는 게 현명하다. 멀게만 느껴지는 탄자니아 여행, 이정도 알고 가면 ‘하쿠나마타타(문제없어)’다.
세렝게티(탄자니아)=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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