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의 고백, "살기 바빠 진실 외면.. 부끄러웠다"

2019. 11. 15. 10:22■ 문화 예술/영화 이야기

조진웅의 고백, "살기 바빠 진실 외면.. 부끄러웠다"

이선필 입력 2019.11.14. 18:33

                         

      
[인터뷰] < 블랙머니> 의 괴짜 양민혁 검사 역.. "영화적 재미 충분해"

[오마이뉴스 이선필 기자]

▲  배우 조진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처음부터 끝까지 양민혁 검사였다."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은 조진웅을 이렇게 표현했다. 2003년 국가가 외환은행을 외국계 사모펀드에 헐값에 팔아넘긴, 일명 '론스타 먹튀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에서 조진웅은 사건의 실체에 우연히 접근하는 양민혁 검사를 연기했다. 

'우연히'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경제관료 및 관료 출신 인물들이 경제 범죄 집단과 결탁한 모피아가 일종의 악당으로 등장하는데 이를 양 검사가 의도치 않게 파헤치게 되는 과정이 꽤 코믹하다.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는 뜻.

영화적 재미   
▲  배우 조진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최근 삼청동 모처에서 만난 조진웅 역시 상업영화적 요소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충분히 상업영화적 기능이 있다"면서 그는 "캐릭터 성격을 살리고 양민혁 그 자체가 되려 노력했다. 그래서 부산 사투리도 넣자고 제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 이 작품을 택한 근본적인 이유는 부끄러움에 있음을 고백했다.

"분명 나도 그 당시 숨 쉬며 살고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왜 이리 몰랐나 싶더라. < PD 수첩 > 등에서 분명 방송했을 텐데 왜 관심을 안 가졌지? 촬영 현장에 가니 더욱 뜨거워지더라. 굳이 해야 하는 이야기라면 출연 안 했겠지만, 국민을 우롱하고 나도 몰랐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제 조카가 20대인데 그 친구를 보면서도 참 세상에 관심 안 갖는다 한심하게 생각하기도 했거든. 제 대화 창구 중 20대는 조카가 유일하다. 근데 <블랙머니> 보고 나서 모피아들을 향해 욕을 하더라(웃음). 

저도 20대에 연극밖에 몰랐다. 이제라도 이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먹고 살기 바쁘다며 이런 일에 관심도 안 가졌다. 정지영 감독님이 우리 아버지랑 동갑인데 날카롭게 이 문제를 다루신 것이다. 대학생 때 아버지가 제게 이랬다. '너희들 스스로 지성인이라 말하지 말아라. 내가 보기엔 덩치 큰 벌레들 같다'고. 그땐 부정했는데 지나고 나니 부끄럽더라. 나도 몰랐는데 내 조카, 내 친구들, 선배들과 공유해야겠다. 양민혁이 돼서 (진실을) 고하자고 생각했다."

진지한 마음과 함께 영화의 재미를 생각했던 그는 상대역인 이하늬와 함께 호흡을 맞춰갔다. 영화가 마냥 진지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이 두 배우의 조화 덕일 것이다. 현장에서 두 배우는 여러 아이디어를 내며 감독과 함께 고민했다는 후문이다. 
 
▲  영화 <블랙머니> 스틸컷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여전히 엘리트 집단이 지배"

우연인지 필연인지 <블랙머니> 개봉 전후로 사법개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무분별한 표적 수사, 견제 받지 않는 비대해진 검찰 권력 구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날로 강해지고 있는 것. 영화 주인공이 평검사이고, 그 역시 검찰 내부 조직 논리로 번번이 수사에 장애를 느낀다는 설정이 지금 시국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조진웅은 "정지영 감독님이 이걸 예상하고 만들었다면 그분이 모피아다"라고 재치 있게 운을 뗐다.

"우연히 시기가 그리 됐는데 국민들이 염원하고 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다. 검찰개혁이 화두고 조금씩 준비해왔다고 본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들 정도로 이슈가 됐다. 조카가 이런 현상을 알아가는 것에 거부감이 있더라. 이미 어른들이 너무 복잡하게 환경을 만들어 놨다. 비판하고 알기 어렵게 해놓은 거지. 젊은 친구들은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도록 말이다. <블랙머니>는 그래서 그런 걸 알 수 있게 담았다. 필히 시청해야 할 영화지(웃음)."

조진웅은 "론스타 사건 때 눈 감았던 관료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며 "영원히 이런 구조가 반복될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가 변하고 국가가 변해도 자본주의는 변하지 않는다'는 영화 속 대사 일부를 인용했다.

그 두려움에도 조진웅은 꾸준히 실천하며 자신을 성찰 중이다. 공식석상마다 그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기리고 기억하는 추모 리본을 달고 나온다. 최근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선 시를 낭송했다. 이 질문에 그는 숙연해졌다.

"그날 4월 16일은 전 국민이 무기력한 날 아니었나. 어른인 게 너무 미안했다. 솔직히 어떤 때는 리본 다는 걸 까먹고 나가기도 한다. 주변에선 우려하기도 하고. 글쎄... 제가 느끼는 무력감이 있다. 그게 아마 눈으로 보이는 몇십 킬로그램짜리였다면 어깨에 계속 이고 다녔을 것이다. 무엇으로 그 아픔이 보상될 수 있을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러기 위해 이 일을 하면서 주인공의 위치에 있는 걸 수도 있다. 제가 단역일 때 뭐라고 얘길 해도 잘 안 들어줬거든(웃음)." 
 
▲  배우 조진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조진웅은 "그래도 절망할 수는 없다"며 "남은 똥은 치우고, 앞으로 똥을 안 싸게 하면 된다"며 "<블랙머니>는 우리가 함께 알아야 할 의무가 있기에 만든 것이고 이런 현실을 인지하자는 것이다. 인지하면 암울함이 줄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회에 고발할 게 얼마나 많나. 론스타 먹튀 사건 역시 지금도 진행 중이기에 정신 차려서 유의 깊게 지켜보자는 거다.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 가담해야 하는 거고. 제 스스로는 비릿하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정직하게 살면 된다. 좋은 사람 주변엔 좋은 사람이 모인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반성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년 정초에 기도하는 게 올해는 작년보다 덜 비겁하게 살게 해달라는 거다. 죄 지은 게 아니면 당당하게 얘기했으면 좋겠다. 지금 와선 전 겁나는 게 없다.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잘못한 게 없으면 무서울 게 없는 거지. 좀 더 정정당당하게 살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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