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60년 동거인 통장서 13억원 빼내 쓴 80대 집유

2019. 11. 9. 11:45■ 법률 사회/법률 재판 민사 형사

죽음 앞둔 60년 동거인 통장서 13억원 빼내 쓴 80대 집유

입력 2019.11.09. 10:05

"내가 부양했다" 소유권 주장..법원 "공동축적 재산, 계좌는 각자 몫" 유죄 인정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60여년을 동거한 반려자가 죽음이 임박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자 반려자 명의 계좌에서 거액을 인출해 쓴 80대 여성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민철기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88)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김씨는 1950년대부터 동거한 A씨가 2016년 폐암으로 위독해져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자 이후 약 1개월간 35차례에 걸쳐 A씨 계좌에서 13억3천만원가량을 빼내 개인적으로 쓴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에서 김씨는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벌기 시작해 달러 장사 등으로 많은 재산을 쌓았다"며 "A씨와 동거를 시작한 이후에도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A씨를 부양하며 계속 재산을 늘려왔다"고 주장했다.

달러상이라는 일이 강력범죄 표적이 되기 쉽고, 절세해야 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에 A씨 명의를 빌려 계좌를 개설했을 뿐 돈의 실제 소유자는 자신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과거 두 사람이 장사하면서 서로 역할을 나눴고, 여러 곳의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한 사실 등을 볼 때 두 사람이 수십억원대의 부를 함께 쌓긴 했으나 각자 일정한 몫을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공동으로 재산을 축적했고, 각자 자신의 명의로 된 은행 계좌를 개설한 다음 자기 몫의 수입을 예치해 둔 것으로 보인다"며 A씨 명의 계좌에 보관된 예금이나 인출된 자금은 모두 A씨 소유라고 봤다.

재판부는 A씨가 사망 직전 두 사람의 재산을 두고 "우리는 반반이야"라는 말을 하는 등 사정을 보면 그가 계좌에 보관된 예금을 자신의 소유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씨는 A씨와 60년 이상 동거하면서 경제적으로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은 삶을 살아왔고, 재산 형성 과정에도 많은 부분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가 A씨의 상속인들에게 피해액을 전부 돌려준 점과 고령인 점 등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x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