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9. 13:49ㆍ■ 문화 예술/文學人
https://v.daum.net/v/20240729133016623
[삶] "男은 모두 죽이고, 女는 군사 위문품으로 나눠주라 하다니"(종합)
"당나라와 거란, 백제·고구려·발해 멸망시킬때 똑같이 참혹한 짓"
"발해, 중국 베이징 근처까지 진격한 적 있어…산둥반도 점령하기도"
"남한 정치인들 국민신뢰 얻어야 남북한 통일 가능"…김홍신 인터뷰
[※ 편집자 주= 김홍신 작가의 인터뷰 기사는 분량이 많아 네 차례로 나눠 송고키로 했고 이번이 마지막 네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7월1일 [삶] '인간 시장' 김홍신 "국회의원 연봉, 공무원 과장급 정도면 충분", 두 번째는 7월8일 [삶] '인간시장' 김홍신 "국회의원들 간신 되면 그 손주는 어찌 사나", 세 번째는 7월16일 [삶] '인간시장' 김홍신 "南北 100년이면 타 민족처럼 돼 통일어렵다"라는 제목으로 각각 송고됐습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홍신 작가 [촬영 이은도](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폐하, 이 민족은 완악하고 굴종할 줄 모르고, 반드시 독립하는 민족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쳐들어가면 국서를 없애고, 사내는 다 죽여버리고, 계집은 우리 군사들에게 위문품으로 나눠주십시요"
작가 김홍신은 지난달 14일과 24일 연합뉴스와의 두차례 인터뷰에서 "당나라 장군들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면서 당 황제 고종에게 이런 건의를 했고, 황제는 이를 수용했다"면서 "거란의 임금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멸망시킬 때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쇠락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온다.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살인, 강간, 고문 등이 자행되는 일이 적지 않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예외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안보는 정치인들이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하는 분야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은 180여가지의 특권을 즐기면서 '권력 놀이'에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보 문제, 북한에 대한 대응에서도 당리당략을 우선시한다.
이러니 국민들은 정치권을 보면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정치 뉴스를 안 보는 사람들도 있다.
작가 김홍신은 국가 발전과 국민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소신을 버린 채로 왔다갔다 하면서 금 배지만 달고 다니는 국회의원들을 '간신'이라고 했다.
김홍신은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민족이 항상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발해는 중국 베이징 근처까지 쳐들어갔고, 산둥반도를 점령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내 작품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2007년에 발간한 '김홍신의 대발해'"라면서 "이 책은 강성했던 발해 역사를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작가 김홍신은 충남 논산에서 성장하고 건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소설 '인간시장'이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유명 인사가 됐다. 그는 1981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KBS, MBC 등에서 방송 활동을 하면서 특유의 말솜씨와 유머 감각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1996년 통합민주당, 2000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각각 비례대표 의원이 됐다. 의원 시절 8년 내내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아 '상습적 당론거부자'라는 별명이 붙었고, 매년 의정활동 1위 평가를 받았다.
국회의원 특권폐지를 위한 헌법개정 궐기대회 2024년 3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국회의원 특권폐지를 위한 헌법개정 100만 궐기대회에서 나라사랑공생시민운동본부 회원들과 시민들이 손팻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편집자 주= 바로 아래 내용은 7월1일 [삶] '인간 시장' 김홍신 "국회의원 연봉, 공무원 과장급 정도면 충분", 7월8일 [삶] '인간시장' 김홍신 "국회의원들 간신 되면 그 손주는 어찌 사나", 7월16일 [삶] '인간시장' 김홍신 "南北 100년이면 타 민족처럼 돼 통일어렵다"라는 제목으로 각각 송고된 기사를 요약한 것입니다.
국회의원 세비는 연간 1억5천700만원인데, 공무원 과장급 이하 정도의 월급으로 줄여도 충분하다. 월 400만원도 가능하다고 본다. 국회의원은 생계 수단이 아니라 봉사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KTX 특실, 비행기 비즈니스석, 공항 귀빈실, 공항 귀빈 주차장을 공짜로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의원회관 내 병원, 사우나, 이발관 등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국회의원 가족이 의원회관 내 병원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항공사가 국회의원에게 좌석 등급을 비즈니스에서 퍼스트 클래스로 올려주기도 하는데, 그건 100% 뇌물이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면책특권은 왕조 권력 같은 시절에나 필요한 것이므로 빨리 없애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원들이 정신을 차린다.
팬덤 정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무기다. 조만간 반성과 함께 반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개최하는 출판기념회는 검은돈을 받는 비리 창구다. 의원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책 몇부가 팔렸고, 돈은 얼마나 들어왔고, 그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공개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의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후보 공천을 좌지우지하면서 뇌물을 받는 일도 있는데, 이것도 말이 안 된다.
국회의원들이 1년에 두 번 해외 시찰을 나갈 때 관광 일정을 집어넣는 것도 문제다. 이들의 해외 시찰에 대한 보고서는 자세히 공개돼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각각 헌법 기관인데, 소신을 지키지 못하고 당 리더나 당 실세, 정치 팬덤에 굴복해서 왔다 갔다 하면 역사에 간신으로 기록될 것이다. 조만간 후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간신 행위 때문에 이 땅에서 사는 것이 괴로울 것이다.
정치권 특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국회의원 급여를 낮추고 특권을 없애면 놀라운 능력을 갖춘 각계의 인사들이 국회에 들어올 것이다.
국회의원 특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개혁 국민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위원회에는 정당 참가를 배제해야 한다.
남북통일은 가능하면 빨리 이뤄져야 한다. 분단 상태로 100년이 넘으면 식생활, 문화가 바뀌고 언어도 변하기 시작해 통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국들 모두가 남북한의 통일을 원하지 않고 있다. 이런 국제 정세가 바뀌어야 하고 북한 주민의 인식도 변해야 통일이 가능하다.
발해의 영토 [인터넷 캡처 사진]아래 내용은 김홍신 작가 인터뷰 네 번째 기사의 일문일답.
-- 지금까지 쓴 소설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
▲ '김홍신의 대발해'다. 법륜 스님의 말씀이 이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됐다. 그분은 "국회의원 10번하고, 장관 하면 뭐하나?. 잃어버린 발해 역사를 가져와서 역사 소설을 제대로 한번 써봐라"라고 했다.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님이 무슨 역사 이야기를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발해 관련 자료를 찾아봤더니 자료가 거의 없었다. 나는 이때부터 발해 관련 역사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 취재할 때 조선족 사학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던데,
▲ 석학 한 분은 중국에 있는 발해 역사 지역들을 안내했다.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동모산이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 근처에만 가도 중국 공안이 따라붙었다. 그분은 나를 대학교 조교라고 속여서 데려고 들어갔다. 발해 유적은 남아 있는 게 없었다. 모두 깨부숴져서 질그릇 조각 같은 것밖에 없었다. 중국 사람들이 다 없앴기 때문이다. 토성도 모두 무너진 상태였다. 다만 왕궁 자리, 우물 자리 등의 자국은 남아 있었다. 나는 이런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왔다.
2007년 '김홍신의 대발해' 출판기념회 작가 김홍신이 2007년 8월 21일 오후, 8년에 걸쳐 구상해 집필한 역사소설 '김홍신의 대발해' 출판기념회를 서울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열고 책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대발해'에 가장 애착이 가는 이유는 뭔가.
▲ 발해는 우리의 잃어버린 민족사인데, 이를 복원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킬 때 당의 장군들이 황제 고종한테 이렇게 말했다. "폐하, 이 민족은 완악하고, 굴종할 줄 모르고, 반드시 독립하는 민족 기질을 갖고 있으니 국서는 다 없애고, 사내는 모두 죽여버리고, 계집은 우리 군사들에게 위문품으로 나눠주십시요." 당나라 황제는 "그대들의 생각이 짐의 생각과 같다"라고 말하고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거란의 임금 야율아보기도 발해를 멸망시킬 때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 발해 주민들은 섬으로, 산으로 피신해야 했다.
-- 발해가 상당히 강성했었나.
▲ 732년에 대조영의 아들 대무예(무황.발해의 2대 황제)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요하까지 진격했다. 임금이 직접 정벌하는 친정(親征)에 나선 것이었다. 대무예가 거대한 강 요하를 건너간 것은 그 기개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무예는 중국의 북경 근처의 마도산까지 쳐들어갔다. 그때 당나라 현종이 군사를 보내서 그곳에 방벽을 세웠는데, 지금도 그 방벽이 남아 있다. 또 중국의 구당서와 신당서에는 "발해의 해적들이 졸개를 이끌고 와서는 점령하고 행패를 부리고, 자사(지금의 성장) 위준을 죽이는 못된 짓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수군 장수 장문휴가 산둥반도를 점령한 역사를 증명한 것이다. 한국의 역사서에는 이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다. 누가 쳐들어갔는지, 몇년도에 일어난 일인지 등에 대한 내용이 없다.
-- 본인이 쓴 에세이를 보면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우리 민족의 영광스러운 사실을 지워버리고, 중국에 예속되는 문구만 추려내어 우리 역사를 좋지 않게 기록했다'고 했는데.
▲ 그들은 고려 중기의 학자들이다. 당시는 약소국으로 중국을 섬길 때이므로 그렇게 쓰지 않으면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2021년 8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이어령 [연합뉴스 사진]-- 존경하는 문학인은 누구인가.
▲ 이어령, 박경리, 이병주, 홍기삼 선생님 같은 분들을 존경한다.
-- 고(故) 이어령 선생은 어떤 분인가.
▲ 설득을 잘하고 잘 가르치는 분이다. 예증을 들어서 설득한다. 그분에게는 명령어가 없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말씀이 좀 길다. 작고하신 최인호 형과 내가 이어령 선생님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나는 처음으로 명령조의 말씀을 들었다. 그분은 "상상력은 날아다니는 나비와 같은 것이어서 탁 채서 컴퓨터에 넣어야 하는데, 당신들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아직도 펜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자꾸 까먹고 잃어버린다"고 했다. 그분은 우리에게 컴퓨터를 배워서 이용하라고 했다.
-- 그때부터는 노트북에다 글을 쓰기 시작했나.
▲ 아니다. 그때 선생님 집 대문을 나오면서 최인호 형과 나는 죽을 때까지 계속 손으로 쓰자고 약속했다. 반은 장난기, 반은 결의를 다지는 의미에서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 노트북을 이용하면 글을 수정할 때도 편리할 텐데, 왜 고집을 피웠나.
▲ 그때는 괜히 그렇게 한 것이다. 타이핑하는 법을 배워보려고 한 적은 있었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지속하지 못하니, 타이핑을 배우는 데 실패했다. 내가 악기 하나 못 다루는 것은 이런 성격 때문이다. 나는 손으로 글을 써야 영혼을 꺼내 쓰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최인호 형은 죽을 때까지 손으로 썼고, 나도 지금 손으로 쓰고 있다.
-- 이어령 선생은 박식한 분이었다고 하던데.
▲ 철학, 문학, 예술, 심지어 체육, 과학기술, 문명사, 세계사 등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다. 독서를 많이 해서 그런 듯하다. 두뇌 활용 능력도 어마어마한 분이다. 내가 최인호 형 등과 함께 정초에 세배하러 그분 집에 갔는데, 정초가 끝나면 곧바로 문화부 장관에 취임할 예정이었다. 그분은 "이제 장관이 되니까 내가 전화를 자주 못 하고 자주 못 만나니 자네들이 틀림없이 섭섭하게 생각할 거다. 이건 백발백중이다. 그러니 자네들이 가끔 전화해라. 전화할 때 장난 좀 하지 마라. 예를 들어 "노태우 만세"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마라. 다 도청이 된다"고 하셨다.
소설가 최인호 소설가 최인호는 2013년 9월 침샘암으로 별세했다. 그는 서울고 2학년 재학 중이던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 '벽구멍으로'가 가작으로 입선해 등단했고, 1975년부터 2010년초까지 35년간 월간 샘터에 소설 '가족'을 최장기 연재했다. [연합뉴스 사진]-- 이병주 선생님과는 인연이 있나.
▲ 내가 소설 문학 작품상을 받았는데, 심사위원 가운데 한 분이 이병주 선생님이었다. 내가 고마워서 인사동에서 찻상을 하나 구입해서는 인사를 드리러 갔다. 당시 나는 이 선생님을 잘 모를 때였다. 그분의 집에 갔더니 선생님이 안 계셔서 사모님한테 찻잔을 건네주고 집으로 왔다. 저녁에 이병주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그는 "좋은 작품을 읽게 해줘서 내가 고마우니 내가 선물을 드려야지, 어떻게 김 선생이 나한테 선물을 하느냐"고 했다.
-- 본인은 소설가 최인호와 친하게 지낸 듯한데.
▲ 나는 등단하기 전에 최인호 작가에 대해 뒷담화를 많이 했다. 문학계에서 뒷말이라는 것은 뻔하다. 문학성보다는 상업성이 강하다는 비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과 자리를 같이 해야 했다. 함께 어떤 문학상 심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난감해진 나는 솔직히 이야기했다. "선배님 불과 얼마 전까지 저는 선배님을 뒷담화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더니 끌어안았다. 욕한 사실을 말하고, 이를 용서해달라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는 "아우가 나를 뒷담화 했듯이 다른 사람도 아우를 뒷담화한다. 그거를 이겨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의형제가 됐다.
1971년 공화당 박정희 총재로부터 부총재 임명장을 받는 김종필 [연합뉴스 자료사진]-- 본인은 김종필 전 총리와도 친하게 지냈다고 하던데.
▲ 그분은 공주고 출신이다. 내가 공주고 1학년 때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모교를 방문했다. 전교생이 들어갈 만한 강당이 없어서 학교 옥상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그때 전력, 수돗물 등 여러 현황의 수치들을 메모도 보지 않고 줄줄이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고 놀랐다.
-- 김종필의 성격은 어떠한가.
▲ 생각이 유연하고 포용력이 있었다. 그분이 짜증 내는 것을 거의 못 봤는데, 딱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친구가 북한에서 남한에 몰래 왔다. 김일성의 지시를 받고 박정희를 만나기 위해 내려온 밀사였다. 그때 박정희가 그 사람을 죽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살려서 북한으로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울 때이니 나는 진실을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분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그 사람은 죽었다고 했다. 그 말이 의심쩍어서 나는 3∼4차례 더 물었고, 그는 "내가 몇번을 이야기했냐, 왜 내 말을 못 믿느냐"면서 짜증을 냈다.
-- 아니라고 했는데, 왜 자꾸 물었나.
▲ 나는 그 내용을 글로 쓰고 싶었다. 당시 나는 소설 '인간 시장'으로 기가 올라 있었고, 아무것도 안 가릴 때였다.
-- 그 이후 김종필과의 인연은 어떻게 됐나.
▲ 나는 1996년에 15대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그가 총리 후보가 됐을 때 나는 국회의사당 단상에 올라 그를 강하게 비판했다. 나는 "더 큰 일을 해야지, 왜 총리를 하려고 하느냐. 총리를 하는 순간, 당신 인생은 끝이다"라고 했다. 회의가 끝나고 출입문을 통해 나오는데,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다른 말 없이 웃으면서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김종필 총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논산의 '김홍신 문학관' 모습 [김홍신 문학관 제공]-- 본인은 강연 등에서, 행복하려면 용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본인은 어떤 용서 경험이 있나.
▲ 아버지가 논산의 어머니 산소에 가고 싶다고 해서 논산에 모셔다드린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논산에 1주일간 머물렀고, 나는 논산에 다시 내려가 아버지를 승용차로 모시고 올라왔다.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어머니 산소에 가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치매 초기였다. 나는 다음 주에 모셔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혼자 서울 남부터미널에 가서는 논산행 버스를 타고 가다 천안에서 내렸다. 밤에 밖을 보셨는데, 천안을 논산으로 착각하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터미널에서 나와 공사장 근처를 지나가다 뺑소니 차량에 치여 돌아가셨다. 나는 소식을 듣고 천안에 내려가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가해자를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 가해자를 만나서 어떻게 했나.
▲ 경찰서에서 형사 2명이 양팔을 잡고 그를 끌고 나왔다. 그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 순간 나는 "용서할 테니 떨지 말라"고 하면서 그를 안아줬다. 경찰관에게는 "이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같이 서울에서 내려왔던 내 친구는 황당해했다. 그는 "네가 유명하면 얼마나 유명하다고 아버지의 원수를 용서하느냐"고 했다. 아산병원에 아버지 빈소를 마련했는데, 제일 먼저 오신 분이 동국대 총장을 지내신 평론가 홍기삼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나의 문학적 스승이었다. 그분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내 마음이 괴롭다"고 했더니 그분은 "돌아가신 아버지라면 어떻게 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나는 "아버지는 무조건 용서하라고 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분은 "그러면 자네가 잘한 것"이라고 했다. 그 가해자는 구속이 됐는데, 나는 그분을 용서해주라는 탄원서도 썼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홍신 [촬영 김수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 많이 먹지 않는다. 위를 가득 채우면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한다. 나는 음식점에 가도 먹을 양을 미리 덜어놓는다. 이렇게 하면 많이 먹지 않게 된다. 자기 전에는 108배를 한다. 나 자신, 가족, 국가와 민족,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 108배를 한다.
-- '김홍신의 대발해' 집필할 때 건강을 많이 해쳤다고 하던데,
▲ 요로결석과 손 마비가 왔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책상에 붙어 있으니 이런 증세가 왔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면 금방 마비가 풀리기는 하는데 2∼3개월 후에 반드시 재발한다. 집필하느라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도 왔다. 오랫동안 햇볕을 안 보니 피부병도 생겼다. 밖에 나오면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온몸이 새빨갛게 됐다. 피부과에 가도 목 부위는 해결되지 않아 스카프를 매고 다녔더니 사람들은 스카프를 잘 매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 음주와 흡연은 어느 정도 하나
▲ 술은 즐기는 편이지만 많이 마시지는 못한다, 담배는 재수생 시절부터 37년간 피웠다. 집필할 때 많게는 하루에 3∼4갑씩 피우기도 했다. 지금은 피우지 않는다.
-- 담배는 어떻게 끊었나.
▲ 법륜 스님께서 나에게 "쥐는 쥐약인 것도 모르고 먹어서 죽는데, 사람은 쥐약인 걸 알고도 먹는다"고 했다. 그분은 "뜨거운 잔이 있으면 얼른 놓으면 되는데 왜 그걸 들고 왔다 갔다 하느냐"고 했다. 이 말을 듣고 2002년 5월 8일 독하게 끊었다. 나는 그때까지 피우던 담배와 일회용 라이터를 옷장에 놓고, 문을 열 때마다 그걸 봤다. 담배가 눈에 보여도 안 피워야 정말로 끊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개월간 금단 현상 때문에 고생했다.
2023년 9월 워싱턴 특파원단과 간담회 하는 법륜스님 [연합뉴스 사진]-- 어릴 때 독서를 많이 했나.
▲ 나는 유년 시절에 프랑스 신부님이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녔다. 신부님 방에 가면 만화책이 많았다. 나는 그때 '땡땡'이라는 만화에 푹 빠졌다. 말풍선의 글자는 프랑스어였는데, 신부님이 우리말로 바꿔 말하면 수녀님이 그걸 한글로 적어놨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만화에서 동화로 옮겨갔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전교 어린이회장 산하의 도서부장이 됐다. 담임 선생님이 그걸 맡으라고 한 것인데, 내가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이들과 노는 것보다 책을 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선생님 댁, 산파 댁 등에 가면 책이 많았는데, 이걸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한문과 영어가 많이 들어 있었지만, 모르는 글자들을 빼놓고 읽어도 재미가 있었다. 책을 많이 읽으니 나도 글을 잘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분들보다 잘 쓸 수 있다는 자만심도 생겼다.
--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 나이를 먹으니 조금씩 바뀐다. 이제 나는 옛날에 읽었던 것을 다시 읽는 경우가 많다. 주로 고전들인데, 그런 책들을 읽다가 괜찮은 대목이 있으면 노트에 옮겨적는다. 나이가 들어서 보니 고전이 와닿는 이유를 알겠다. 젊어서는 이해가 안 됐던 부문도 지금은 이해가 된다. 나는 후배들에게 고전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한다. 고전 외에도 현재의 베스트셀러도 읽어보라고 한다. 그 시대를 대변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 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다. 한국의 문화, 예술, 음식, 의상, 의술 등이 세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의 과학기술도 모방에서 창조로 가고 있다. 자존심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취재지원 이은도 김연수 장종우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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