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20만원 뷔페에서 본전 뽑기-특급호텔 완전정복

2024. 5. 20. 07:51■ 여행/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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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호텔 완전정복① 놀고 먹고 자기

호텔은 봉건주의 시대의 유물이다. 호텔의 역사가 시작됐던 유럽에 옛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중세풍으로 꾸민 건물에서 집사처럼 차려입은 직원이 옛날 귀족이 누렸던 호사를 정성껏 재현한다. 지금도 호텔 정문 앞에는 손님 차문을 열어주는 도어맨이 있고, 도어맨은 도어맨 코트라 불리는 유니폼을 갖춰 입는다. 특급호텔의 컨시어지 서비스는, 당신도 호텔에서는 귀족이 될 수 있다고 꾀는 일종의 방향제다.

자본주의 시대에도 호텔은 차별화한 무언가를 추구한다. 손님이 귀족에서 부자로 교체됐을 뿐, 호텔 문턱은 여전히 높다. 관광산업 측면에서 보면,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이었던 호텔이 여행 목적지로 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세기 영국 귀족의 휴양지였던 스위스 생모리츠의 프리미엄 호텔에서 지금은 전 세계의 돈 많은 여행자가 귀족이 된 양 우아한 휴가를 즐긴다. 혈통은 필요 없다. 돈만 있으면 된다. 특급호텔은 자본주의에 가장 충실한 공간이다.

우리나라 특급호텔도 최고급을 지향한다. 실제로 레저·휴양 시설 중 가장 화려하고 비싸다. 다만 우리네 호텔 문화에는 별난 구석이 있다. 비유하자면, 오늘 우리의 특급호텔은 테마파크에 가깝다. 먹으러 가고 놀러도 가는데, 잠도 잘 수 있는 곳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호텔’을 검색하면 ‘빙수 먹방’과 수영장 인증사진이 제일 먼저 올라온다. 한국에서 호텔의 연관 검색어는 ‘호캉스(호텔 바캉스)’ ‘애망빙(애플망고빙수)’ 같은 신조어다. ‘플렉스’와 ‘스몰 럭셔리’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벌어지는 사회 현상일 테다. 한국에서 특급호텔은 더 이상 그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2024년 4월 현재 국내 4성 이상 특급호텔은 227곳이다(2024년 한국관광협회·제주관광협회 호텔업 등급 현황). 일타강사는 이들 4성 이상 호텔 중 26개 호텔의 영업 기밀을 수집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쌓았던 취재 경험을 토대로 현재 국내 특급호텔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콘텐트, 나아가 최신 트렌드를 정리하고 분석했다. 한 달 넘게 걸린 집중 취재를 토대로 ‘특급호텔 완전정복’ 1부와 2부를 제작했다. 1부에서는 특급호텔 이용법과 최신 트렌드를, 2부에서는 호텔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다. 일타강사 취재에 응한 4성 이상 호텔 26곳은 다음과 같다.

📂그랜드 워커힐 서울 📂그랜드 하얏트 서울 📂더 플라자 서울 📂레스케이프 호텔 📂롯데호텔 서울 📂롯데호텔 월드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 📂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먼트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서울신라호텔 📂시그니엘 서울 📂아난티 앳 부산 코브 📂안다즈 서울 강남 📂웨스틴 조선 서울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제주신라호텔 📂조선 팰리스 📂파라다이스시티 📂포시즌스 호텔 서울 📂파크하얏트서울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켄싱턴 호텔 여의도 📂휘닉스 평창 호텔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가나다순)

💬 특급호텔 완전정복① 놀고 먹고 자기

특급호텔은 침대에서 완성된다
그래픽 : 호텔 침대의 재구성
반짝 TIP : 공짜 어메니티가 사라졌다고?
한 끼 20만원 뷔페에서 본전 뽑기
반짝 인터뷰 : 뷔페 고수는 이렇게 먹는다
헬캉스·펫캉스… 진화하는 호캉스
특급호텔 빙수 대전
그래픽 : 애망밍 가격 변화 

특급호텔은 침대에서 완성된다

호텔의 만족도는 잠자리가 좌우한다. 조선 팰리스의 경우 객실 내 자체 공기 청정 시스템이 빌트인으로 설계돼 있다. 사진 조선호텔앤리조트

호텔은 잠자러 가는 곳이다. 레스토랑·수영장·스파 등 호텔의 그 어느 공간도 객실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따라올 수 없다. 이 단순한 이치가 호텔의 가치를 판가름한다. 초보 여행자는 잘 모를지 몰라도 여행 고수는 안다. 특급호텔이 제일 공들이는 공간이 객실, 객실에서도 침대라는 사실을.

호텔 침대가 늘 뽀송뽀송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셨는지. 특급호텔은 침구를 세탁할 때 전용 세탁기를 사용한다. 풀 먹인 것처럼 빳빳한 시트는 높이 2m가 넘는 침대 시트 프레싱 기계의 힘을 빌린 결과다. 이 거대한 다리미는 1대에 2억원이 넘는다. 좋은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가뿐해진 느낌이 든다. 기분 탓만은 아니다. 호텔은 쾌적한 잠자리를 위해 객실 온도와 습도까지 조절한다. 객실 온도는 보통 23도로 맞춘다. 팬데믹 이후에는 살균 처리가 특히 강화됐다. 조선 팰리스처럼 전 객실에 공기청정기와 자외선 살균 시스템을 갖춘 호텔도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호텔 침대를 더 공부해 보자. 특급호텔에 들어가는 침대의 구조도를 그렸다. 위 그래픽처럼 침대는 크게 10개 부분으로 구성된다. 제일 중요한 건 역시 1번 매트리스다. 특급호텔은 보통 1피트(30.48㎝) 두께의 매트리스를 사용한다. 객실 등급이 높을수록 매트리스 두께도 높아진다. 선호 브랜드는 ‘시몬스’다. 시몬스에 따르면 국내 특급호텔의 90%가 시몬스 매트리스를 사용한다. 시몬스 매트리스 중에서도 상위 라인인 ‘뷰티레스트’가 들어간다. 2번 토퍼도 중요하다. 침대가 딱딱하다고 느껴지는 건 대부분 토퍼가 몸에 안 맞아서다. 토퍼를 선택할 수 있는 호텔도 있다. 포시즌스 호텔이 강도가 다른 토퍼 세 종류를 갖추고 투숙객의 취향을 묻는다. 우리가 덮고 자는 이불이 6번 듀베이다. 특급호텔 대부분이 거위털 이불을 쓴다. 가볍고 포근하다.

4번 보텀 시트와 5번 톱 시트도 중요하다. 잠잘 때 신체가 직접 닿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우스키핑이 시트를 교체한다는 것도 4번과 5번을 간다는 뜻이다. 5번 톱 시트가 요물이다. 이걸 덮고 자야 하는지 깔고 자야 하는지 헷갈린다. 발 부분이 매트리스에 고정돼 잘 빠지지 않아서다. 침대의 올바른 사용법은 4번 보텀 시트와 5번 톱 시트 사이에 들어가서 눕는 것이다. 톱 시트를 단단하게 고정한 건 듀베이와 엉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불편하면 빼도 되지만, 익숙해지면 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 되레 숙면에 도움을 준다.

베개(7번, 8번)는 왜 이리 많은 걸까.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침구 중 취향이 가장 많이 갈리는 게 베개여서다. 저마다 신체 구조가 다르고 자는 습관도 제각각이다. 특급호텔은 보통 4~6개의 베개를 배치한다. 가장 뒤쪽에 배치된 큰 베개는 등받이용, 앞쪽의 작은 쿠션은 발을 대거나 안고 자는 용도다. 수면용 베개는 등받이 앞쪽에 놓인다. 깃털 베개가 기본인데, 프런트에 요청하면 교체도 가능하다. 시그니엘 서울 같은 5성 호텔에는 메모리폼 베개, 메밀 베개, 양모 베개 등 5개 옵션이 있다.

제주신라호텔 ‘프리미어 스위트룸(6실)’에는 스웨덴 왕실에서 사용하는 해스텐스 침대가 들어가 있다. 그중에는 4억원대의 침대도 있다. 사진 신라호텔

제일 비싼 침대는 어디에 있을까. 제주신라호텔이 ‘프리미어 스위트룸(1박 100만원대)’ 6실에 한해 스웨덴 왕실에서 쓴다는 ‘해스텐스’ 침대를 설치했다. 침대 하나에 1억원인데, 4억원짜리 ‘비비더스’ 라인 제품이 들어간 객실도 있다. 침대에 무엇이 들었길래 그렇게 비쌀까. 말총과 양모 같은 고급 천연 내장재를 사용하고, 100% 수작업으로 제작한단다. 해외에서도 재벌과 톱스타의 침대로 통하는데, 국내에서는 ‘아이유 침대’ ‘제니 침대’로 유명하다.

💬 공짜 어메니티가 없어졌다?

플라스틱 재질의 일회용품이 호텔에서 퇴출됐다. 아난티 계열 호텔과 리조트는 2019년부터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 없는 고체 타입의 친환경 어메니티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 아난티

호텔에서 어메니티(편의용품)가 사라졌다. 3월 29일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부터다. 50개 이상의 객실을 보유한 숙박업소에서 일회용품 무상 제공을 금지한다는 규정이다. 특급호텔은 물론이고 리조트 대부분이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호텔에서 소모품이나 편의용품을 기념품처럼 챙겨오던 시절도 이제 끝났다.

주요 특급호텔은 이미 샴푸·컨디셔너·보디로션 같은 편의용품을 다회용 제품으로 교체했다. 무료가 유료가 됐을 뿐, 일회용품이 사라진 건 아니다. 욕실에 비치됐던 칫솔·면도기는 가격표를 달고 미니바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격은 1000~4000원 선이다. 금지 대상에서 생수는 제외지만, 일부 호텔은 페트에 든 생수도 뺐다.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 등이 ‘플라스틱 제로’ 움직임에 동참하는 뜻에서 전 객실에 정수기를 설치했다. 몬드리안 서울은 종이 재질의 생수 팩을 도입했다. 아난티 계열 호텔과 리조트는 2019년부터 고체형 어메니티를 제공하고 있다. 종이로 만든 용기에 고체 타입의 샴푸·컨디셔너·보디워시 등이 담겼다.

한 끼 20만원 뷔페에서 본전 뽑기

호텔 뷔페에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양갈비·소갈비처럼 단가가 높은 메뉴는 주로 '핫 디시 스테이션' 혹은 '라이브 스테이션'에 깔린다. 사진 조선호텔앤리조트

특급호텔에서 뷔페 레스토랑은 문턱으로 통한다. 특급호텔 파인 다이닝을 경험하기 전의 입문 코스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호텔 조식이 뷔페로 나오는 것도 뷔페가 가벼운 식사를 의미해서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한국 특급호텔은 뷔페 레스토랑이 식음 매장을 주도한다. 서울 특급호텔 외국인 투숙객이 전체의 60~80%에 이르는데, 뷔페 레스토랑의 중식과 석식은 내국인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의 뷔페 레스토랑은 특급호텔간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현장이다.

호텔 뷔페도 많이 바뀌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가격에서 일어났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1인 5만원대였는데, 해마다 가격이 오르더니 올해 1인 20만원이 넘는 뷔페 레스토랑이 출현했다. 주말 저녁식사를 기준으로 서울신라호텔 ‘더 파크뷰’ 1인 식사비가 21만5000원이다. 롯데호텔 서울의 ‘라세느’와 웨스틴 조선 서울의 ‘아리아’도 19만원을 받는다.

왜 이렇게 비싸졌을까. 원래 뷔페 레스토랑은 호텔에서 가장 많은 인건비와 재료비가 투입되는 업장이다. 특급호텔은 한 끼에 보통 100~140개 음식을 낸다. 주방 인력은 70~100명이 투입된다. 손님이 많든 적든 요리를 최대한 준비하고, 남은 음식은 모조리 버리는 구조다. 호텔가의 공통된 변명은 다음과 같다. “본래 뷔페는 마진이 별로 남지 않는 장사다. 손님이 몰린다지만, 특정 메뉴만 빨리 소진된다. 그렇다고 다른 메뉴를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왼쪽 위부터) 1 파크하얏트서울의 뷔페에서는 고급 샴페인을 웰컴 드링크로 낸다. 2 롯데호텔 서울의 양갈비. 3 파라다이스시티에서는 즉석 조리한 딤섬을 내놓는다. 4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뷔페에는 20종의 태국 요리가 깔린다. 5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웨스틴 조선 서울의 어니언 수프. 6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의 뷔페는 북경 오리로 유명하다. 사진 각 호텔

아무튼 호텔 뷔페는 비싸다. 본전 생각이 안 나려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호텔들로부터 뷔페에서 야무지게 먹는 노하우를 얻어냈다. 우선 비싼 메뉴. ‘핫 디시 스테이션’이나 ‘라이브 스테이션’에 재료비가 높은 메뉴가 모여 있다. 양갈비·소갈비·북경오리 같은 바비큐 요리가 호텔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내는 메뉴다. 해산물 중에는 참돔과 도로(참치 뱃살), 대게와 랍스터의 단가가 높다. 망고·샤인머스켓 같은 제철 과일도 집중 공략해야 하는 비싼 재료다.

호텔마다 자랑하는 뷔페 메뉴가 있다. 이를테면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는 테이블마다 깔리는 ‘어니언 수프’를 꼭 맛봐야 한다. 수프처럼 포만감을 유발하는 메뉴는 피해야 한다지만,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는 다르다. 호텔 레스토랑이 문을 연 1924년부터 100년을 이어온 시그니처 메뉴이어서다. 뷔페 가격이 제일 비싼 서울신라호텔은 밥도 남다르다. 경기도 김포에서 재배한 ‘자광도’ 품종의 쌀로 밥을 짓는다. 2017년 한·미 정상회담의 만찬상에 독도새우와 함께 올라갔던 바로 그 쌀밥이다.

롯데호텔 서울은 어린 양의 갈빗살 중 최고급 부위인 ‘프렌치 랙’으로만 양갈비를 낸다. 더 플라자 서울과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은 북경오리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는 즉석에서 만두를 빚어 딤섬을 낸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뷔페에는 태국 음식만 20종이 깔리고, 파크하얏트서울은 호텔에서 1잔 5만8000원에 파는 고급 샴페인을 웰컴 드링크로 서비스한다. 그랜드 워커힐 서울은 김치 맛집으로 정평이 났다. 1989년부터 별도 김치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 뷔페 고수는 이렇게 먹는다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의 뷔페 레스토랑 '플레이버즈'는 일명 '뷔설남(뷔페 설명해주는 남자)'이 손님을 맞는다. 24년 경력의 임형철 지배인이 호텔 뷔페 이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차가운 대게는 그냥 드시지 말고, 게살수프에 15초 정도 담갔다가 먹으면 훨씬 풍미가 살아납니다”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에는 일명 ‘뷔설남(뷔페 설명해주는 남자)’이 있다. 호텔리어 경력 24년의 임형철(53) 지배인이 예약자에 한해 ‘뷔페 공략법’부터 ‘대게 손질 노하우’까지 뷔페 활용법을 들려준다. 뷔설남으로부터 호텔 뷔페 알짜 이용법을 들었다.

어떤 음식부터 공략해야 할까.  
랍스터‧대게‧양갈비‧LA갈비 같은 메뉴가 단가가 높은 뷔페 메뉴다. ‘오늘의 스페셜’ 같은 그날의 특선 메뉴나 계절 메뉴도 놓치면 섭섭하다. 그날그날 수산시장에서 해산물을 공수해 내놓는 일식 코너도 지나치지 마시라.  
비싸다고 고기만 공략하면 속이 부대끼지 않나.  
그래서 자주 추천하는 메뉴가 쌀국수다. 식사 초반이 아니라 끝자락에 맛보시라 권한다. 식사에서 후식으로 넘어가기 전에 쌀국수 국물을 마시면 느끼함 없이 입맛이 개운하게 정리된다.  
뷔페 초보가 주의할 점이 있다면.
수프나 국수요리부터 담는 사람은 하수다. 쉽게 포만감을 느끼는 음식은 뒤로 미루자. 한 접시에 너무 다양한 음식을 담는 것도 좋지 않다. 음식도 조화롭게 먹어야 더 맛있다. 중식‧양식 따위로 구분해 한 번씩 테마를 바꿔가면서 가져다 먹는 것도 방법이다.  
뷔페 문화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20년 전만 해도 전투적으로 많이 먹는 데만 몰두하는 분위기였다. 많이 먹는 사람이 승자였다. 요즘은 많이 먹는 것보다 뷔페를 즐기는 손님이 더 많다. 좋은 음식을 찾고, 사진을 찍고, 분위기를 누리면서 뷔페 자체를 즐긴다. 그만큼 뷔페 문화가 대중화됐다.

헬캉스‧펫캉스… 진화하는 호캉스 

MZ세대는 뷔페, 객실 못지않게 수영장의 면면을 꼼꼼히 따진다. 호캉스 인증사진이 완성되는 장소가 수영장이어서다. 사진은 아난티 앳 부산 빌라쥬의 야외 수영장. 백종현 기자

대도시의 특급호텔은 본래 비즈니스호텔이다. 출장 나온 직장인이 숙박하는 시설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특급호텔은 전통적으로 여름 휴가철이 비수기였다. 직장인 손님이 출장이 아니라 휴가를 가는 시즌이어서다. 여름 비수기를 타개하기 위해 호텔이 고안한 상품이 ‘서머 패키지’다. 투숙객에게 각종 할인 혜택을 얹어 비수기 빈방을 채우려는 전략에서 특급호텔 패키지상품이 비롯됐다.

20여 년 전 국내 특급호텔이 서머 패키지를 개시했을 때, 주요 타깃층이 따로 있었다. ‘골드 미스’라 불리는 30대 미혼 여성이다. 그 시절의 서머 패키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유행에 민감한 여성 직장인의 세련되고 고상한 여름휴가 아이템이었다. 젊은 여성 고객을 위해 수영장 무료 이용과 어메니티 세트, 파자마 파티 소품 등이 제공됐었다. 서머 패키지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국내 호텔가는 가족용 패키지를 개발해 시장을 넓혔고, 끝내 ‘호캉스’라는 신종 문화를 생산·보급했다. 요즘은 1년 내내 호텔 패키지가 돌아간다. 딸기·봄꽃·가정의달·바캉스·크리스마스 등 주제만 바꾼 패키지상품이 연중 판매된다. 가령 밸런타인데이 시즌에는 와인·케이크·꽃다발 등을 포함한 호텔 패키지가 ‘로맨틱’ ‘프러포즈’ 같은 이름을 달고 나온다.

호텔마다 특색을 내세우기도 한다. 도심 호텔은 문화 클래스나 미식 프로그램으로 손님을 유혹하고, 야외 수영장이 딸린 호텔은 수영장 이벤트를 내세운다. 제주도 중문의 파르나스 호텔 제주는 요트 투어와 애플망고 수확 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스키장을 거느린 휘닉스 평창 호텔은 봄에서 가을까지 BBQ 캠핑장과 곤돌라를 엮은 캠핑 패키지를 판다. 롯데월드와 연결된 롯데호텔 월드는 롯데월드 재입장 혜택을 담은 패키지를 내놓고 있다. 호텔 1층에 롯데월드로 통하는 전용문이 숨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특급호텔도 달라진다.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은 자기 관리에 철저한 MZ세대 사이에서 '헬캉스' 명소로 통한다. 사진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

호텔 문턱이 낮아지다 보니 호텔 이용법도 다양해졌다. ‘헬캉스’를 아시는지. 요즘 젊은 세대는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러 호텔 객실을 잡는다. 특히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이 젊은 호캉스족 사이에서 ‘헬스맛집’으로 통하는 호텔이다. 프리미엄 피트니스 브랜드 ‘테크노짐’의 기구가 깔린 체련장을 비롯해 실내 수영장과 GX룸, 필라테스룸, 실내 골프장, 사우나 등을 갖춰 투숙 중에 운동을 안 하면 손해라고 한다.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의 장다솜 마케팅 매니저는 “수많은 스타 연예인이 매일 이용하는 피트니스 공간”이라고 귀띔했다. 롯데월드타워 85층에 위치한 시그니엘 서울 피트니스센터에서는 러닝머신 위에서 서울 도심과 한강을 굽어볼 수 있고, 여의도의 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먼트는 길이 25m, 폭 20m의 길고 넓은 수영장을 자랑한다.

반려견과 여행을 즐기는 '펫팸족' 사이에서는 레스케이프 호텔이 꿈의 장소로 통한다. 사진 조선호텔앤리조트

최근에는 ‘펫캉스’가 대세다. 서너 해 전만 해도 특급호텔 대부분이 ‘애견 동반 금지’를 내걸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반려견 동반 환영’을 앞다퉈 홍보한다. 레스케이프 호텔처럼 ‘펫캉스’의 성지로 불리는 호텔도 있다. 반려견 전용 식기와 침구, 간식만이 아니라 다이슨 청소기와 100만원대 하이엔드 유모차도 무상으로 빌려줘 펫팸족 사이에서 꿈의 장소로 통한다. 레스케이프 호텔 관계자는 “반려견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방문하는 투숙객이 많고, 죽은 강아지를 추모하려고 재방문하는 고객도 있다”고 말했다.

특급호텔 빙수 대전

(왼쪽 위부터) 1 웨스틴 조선 서울의 수박빙수. 2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제주 애플망고 파블로바 빙수. 3 파크하얏트서울의 애플망고빙수. 4 롯데호텔 서울의 애플망고빙수. 5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의 깔루아 밀크 빙수. 6 더 플라자 서울의 우도땅콩 팥빙수. 사진 각 호텔

국내 호텔의 진화 또는 변신의 사례 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사례가 특급호텔의 빙수 전쟁이다. 어쩌다 저 우아한 특급호텔이 빙수 맛집 타이틀을 놓고 싸우게 됐을까. 10년쯤 전부터 국내 호텔가는 여름 내내 ‘빙수 대전’을 치른다. 비싸다는 논란이 일어도 해마다 경쟁은 치열해진다. 호텔 빙수 대전의 주 고객은 스몰 럭셔리 트렌드를 주도하는 20~30대 젊은 여성이다.

호텔 빙수의 진화는 소셜미디어 트렌드와도 관계가 밀접하다. 주 타깃이 소셜미디어에 친숙한 MZ세대여서다. 숏폼 영상이 트렌드로 자리 잡자 ‘퍼포먼스형 디저트’를 내놓는 호텔도 등장했다. 이를테면 파크하얏트서울에서 애플망고빙수를 주문하면 셰프가 직접 테이블에서 과일을 손질해 빙수를 만들어준다. 롯데호텔 서울은 빙수와 함께 드라이아이스를 별도로 담아서 낸다. 빙수가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시각 효과 덕분에 인스타그램 ‘좋아요’가 팍팍 올라간다.

'애망빙' 열풍을 이끈 서울신라호텔의 애플망고빙수. 올해는 10만2000원에 판매한다. 사진 신라호텔

‘호텔 빙수’ 유행을 이끈 건 이른바 ‘애망빙’이다. 원조집이 있다. 제주신라호텔이 2008년 로컬 식재료 개발 사업의 하나로 메뉴를 개발한 뒤 전국 호텔가로 확산했다. 2008년 2만7000원으로 시작한 애플망고빙수가 2024년에는 10만2000원이 됐다. 14년간 매년 6000원꼴로 가격이 뛴 셈인데, 마침내 올해 앞자리가 바뀌었다. 더 비싼 빙수집도 있다. 최고가는 시그니엘 서울의 애플망고빙수로 13만원이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도 12만6000원을 받는다. 인기는 뜨겁다. 서울신라호텔의 경우 코로나 기간에도 주말 1시간 이상 대기가 이어졌다.

정근영 디자이너

사실 특급호텔에서 빙수는 마진이 별로 안 남는 상품이다. 원재료비와 유통비 비중이 워낙 커서다. 서울신라호텔 관계자는 “물가를 반영해 빙수 가격을 인상했다”며 “국내산 최고급 애플망고만 취급하는데, 빙수 가격의 절반 이상이 재료비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회전율도 낮다. 빙수값이 오르면서 보통 2~3명이 빙수 하나 시켜 놓고 두세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다. 그래도 특급호텔은 빙수 마케팅에 사활을 건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문인영 홍보팀장은 “빙수로 얻는 수익보다 호텔을 경험하게 해 얻는 홍보 효과, 잠재 고객 확보의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호텔빙수' '애망빙' 등을 검색하면 1만 개 이상의 인증사진이 쏟아진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몇 년 전만 해도 ‘애망빙’이 필수로 통했지만, 요즘은 호텔마다 다양한 빙수를 내놓는다. 이를테면 웨스틴 조선 호텔은 수박빙수(4만8000원)가 대표 메뉴로 통한다. 웨스틴 조선 서울의 홍진경 식음 파트장은 “갈증 해소에 탁월하고 과즙이 많아 직장인 사이에서 해장템으로 통한다”며 “최근 뷔페에서 빙수를 내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더 플라자 서울에서는 ‘우도 땅콩 팥빙수(5만5000원)’가 전체 빙수 판매 비중의 77%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초당 옥수수와 치즈 케이크를 곁들인 ‘초당옥수수 빙수(6만30000원)’를 출시했다.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은 올해 처음으로 ‘깔루아 밀크 빙수(3만원)’를 냈다. 16도짜리 알코올음료 ‘깔루아’가 아낌없이 들어간 ‘19금 성인 전용’ 빙수로, 클럽과 파티 문화가 발달한 이태원의 특징을 반영한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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