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복판에 등장한 초거대 마시멜로…근데 그거 뭐지?

2024. 1. 6. 18:09■ 大韓民國/농림 수산업

논 복판에 등장한 초거대 마시멜로…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daum.net)

 

논 복판에 등장한 초거대 마시멜로…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그거사전 - 9] 논밭 한 가운데 있는 하얗고 둥근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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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복판에 등장한 초거대 마시멜로…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입력 2024. 1. 6. 16:18

 

[그거사전 - 9] 논밭 한 가운데 있는 하얗고 둥근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들판 위에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도열한 곤포 사일리지. 우리는 이제 저들의 이름을 안다. [사질 출처=픽사베이]
명사. 1. 곤포 사일리지(Baling Silage), 압축 포장 담근 먹이 2. 공룡알【예문】추수가 끝난 벌판 위, 드문드문 곤포 사일리지가 놓여 있다.

‘곤포 사일리지(Baling Silage)’라고 한다. 추수를 마친 들판에 거대한 마시멜로나 두루마리 휴지처럼 줄지어 놓여있는 그 물건의 이름이다. 지름 1~2m, 무게 500㎏ 내외의 원통형 모양을 한 곤포 사일리지는 탈곡을 끝낸 볏단을 동그랗게 말아 비닐로 감싼 것이다.
 

곤포(梱包·baling)란 단단히 다져 크게 묶은 더미나 짐짝, 혹은 그런 짐을 꾸려 포장한다는 의미고, 사일리지는 곡물이나 볏단을 밀폐 후 발효시켜 만든 숙성사료(매초埋草)를 뜻한다. 그러니까 곤포 사일리지는 두 단어 뜻을 합쳐 ‘볏단을 단단히 압축한 뒤 밀폐 포장해서 만든 숙성사료’가 되시겠다. 입에 붙는 이름은 아닌지라 정작 농가에서는 ‘공룡알’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드물지만 ‘덩어리’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곤포 사일리지, 그 중에서도 사일리지의 역사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농업경제학자 오귀스트 고파르(Auguste Goffard)가 독일의 사료 보존법인 절임 방식에 착안해 1877년 발효 사료인 사일리지에 관한 책을 출간했는데, 이후 미국·영국의 축산 농가를 통해 사일리지 널리 퍼진 게 시초다. 이후 핀란드 생화학자인 아르투리 일마리 비르타넨(Artturi Ilmari Virtanen)이 사료 내의 산을 제거하고 공기 접촉을 방지하는 사료 보존법을 개발해 현대 사일리지의 토대를 만들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45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래핑기가 볏단을 무서운 속도로 포장하고 있다. 사실 저렇게 빠르진 않다. 용량을 줄이기 위해 프레임을 건너뛰었더니 초고속 영상이 됐다. 몰라 저거 뭐야 무서워. [영상 출처=ilko v Dam 유튜브]
곤포 사일리지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추수 후 트랙터를 통해 볏짚을 모으고, 베일러라는 농기계를 통해 모은 볏짚을 원통형 혹은 직육면체 모양으로 뭉친다. 볏짚에 발효제 등을 뿌린 뒤 래핑기로 돌돌 싸매면 ‘하얗고 둥근 그거’가 된다. 압축한 볏단을 굳이 비닐로 싸는 이유는 밀폐된 상태에서 45일 이상 발효·숙성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 숙성 과정이 끝난 사료는 수분과 섬유질이 풍부하고 초산균·유산균이 풍부한 사료가 된다. 소 입장에선 ‘김장 김치’인 셈.

또 곤포 사일리지 형태로 만들면 사료의 영양소 손실이 적고, 날씨와 무관하게 보관 및 유통이 용이하다. 볏짚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공간·보관·유통 효율도 좋아지니 일석이조 삼조 사조 되시겠다. 축산 농가 입장에서는 사료 값 부담을 덜 수 있고, 쌀농사 농가는 내다 팔아 부가 수익을 챙길 수 있다보니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빠르게 확산됐다.

추수가 끝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들녘에 곤포 사일리지가 곳곳에 놓여 있다. 머릿속에 각인된 이 풍경이 자꾸 마트에 갈 때마다 마시멜로를 사게 만든다. 내 머릿속에서 당장 나가! [사진 출처=연합뉴스]
하지만 곤포 사일리지가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확을 마친 농지에 볏짚을 그대로 놔두면 퇴비 역할을 하면서(이 과정을 볏짚 환원이라고 한다) 땅심(지력地力)을 높이고 이듬해 쌀의 생산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곤포 사일리지로 만들기 위해 볏짚을 다 거둬들이면서 토양 중의 유기물과 규산 함량이 부족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충청남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2017년 도내 260개 지점의 논 토양에서 규산 함량 기준치에 미달하는 논의 비중이 65%에 달했다. 유기물 함량 기준에 미달하는 논도 31%에 이르렀다. “팔지 마세요, 논에 양보하세요”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곤포 사일리지를 만들 때 사용되는 비닐이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는 비판도 있다. 또 곤포 사일리지 도입 이후 철새의 먹이인 낙곡(수확할 때 떨어진 낟알)과 볏짚 더미에서 겨울을 나는 벌레가 확 줄어들어 철새들이 굶주리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곤포 사일리지는 맛있다. 소도 맛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곤포 사일리지는 귀하신 몸이 됐다. 개당 4만~5만원 선이었던 가격은 지난해 11만~13만원까지 치솟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사룟값과 수입 건초 가격, 곡물 재배 원자재 값까지 모두 급등하면서 곤포 사일리지의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쌀값 폭락으로 인해 벼 재배 농가가 줄어들고 곤포 사일리지 전용 비닐 가격이 오른 것도 곤포 사일리지의 몸값 상승에 일조했다.

곤포 사일리지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500㎏ 1개는 30마리의 소가 하루 먹을 양으로 본다. 30마리를 사육하는 농가에서 연간 365개의 곤포 사일리지를 사료로 쓰는 셈이다. 곤포 사일리지의 가격이 개당 3만원만 뛰어도 농가에 가해지는 비용 부담은 1095만원 커지고, 상승 폭이 5만원일 경우 1800만원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곤포 사일리지 도난 사건까지 발생하며 농촌 인심을 흉흉하게 만들기도 한다.

 

몽실몽실 솜사탕이나 마시멜로를 닮은 곤포 사일리지이지만, 그 귀여움에 반해 함부로 만지거나 손상해서는 안 된다. 농가의 사유 재산이기도 하거니와, 발효 과정에서 사일리지 가스가 생성되는데 그 성분 중 산화질소(NO)가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면 유독 물질인 이산화 질소(NO₂)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물론 대규모로 곡물, 사료 등을 저장하는 저장 시설에 비교하면 질소 산화물에 노출될 위험성은 낮다. 무엇보다 쌓아올린 곤포 사일리지가 굴러떨어지거나 붕괴될 경우 500㎏에 이르는 무게 때문에 압사 사고 등 치명적인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에 등장하는 마시멜로 맨(Stay Puft Marshmallow Man)이 실은 도시를 박살 내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모든 귀여운 것은 치명적인 무기를 숨기고 있는 법이다.

고스트 버스터즈에 등장하는 최종 보스 마시멜로 맨. 그의 역린은 “미쉐린 마스코트 아냐?”다. 매우 화낼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미쉐린 마스코트는 비벤덤이다. [사진 출처=콜롬비아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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