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9. 07:38ㆍ■ 인생/초고령화 사회
그 방, 배우 사진만 도배됐다…70대 영화광의 쓸쓸한 엔딩 | 중앙일보 (joongang.co.kr)
그 방, 배우 사진만 도배됐다…70대 영화광의 쓸쓸한 엔딩
에디터김새별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서울 외곽의 그 아파트는 이번까지 총 네 번이나 방문했다.
내가 가기 전에도 그 단지에선 고독사가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나이 지긋한 아파트 관리소장이 따로 챙길 정도였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나 몸이 불편해 보이는 주민들을 꼼꼼하게 신경썼다고 한다. 마주칠 때마다 ‘술 좀 적당히 드세요’ ‘식사 거르지 마세요’ ‘약은 계속 드시고 계시냐’ ‘집 청소도 하고 좀 씻고 다니시라’.
가족보다 더 가까이에서 가족처럼 잔소리를 했다니, 오죽하면 해당 주민들은 소장을 피해다녔을 정도라고 했다. 아파트 주민들과 소장은 가족 그 이상의 관계였다.
처음 다녀온 뒤로 관리소장은 고독사가 발생되면 꼭 내게만 연락해 왔다.
주로 영세민 세대에서 고독사가 발견되는데, 사후 현장 복구에 대한 임대아파트 측의 규정이 까다로웠다. 고독사 현장의 지독한 시취는 제거한다고 해도 문제가 남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다녀간 뒤론 민원이 없었다고 했다. 관리소장에게 나름 인정을 받은 셈인데, 그래서인지 그 뒤로 마치 전담반처럼 그 아파트를 맡게 됐다.
그렇게 네 번째 방문한 현장이었다. 나와 친분이 생긴 관리소장이 직접 유품 정리를 의뢰했다.
고인은 7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영화를 병적으로 좋아했다.
밥은 굶어도 영화와 관련된 자료는 매주 청계천 거리를 다니며 사왔다고 한다.
집 안은 영화 포스터와 비디오 테이프, CD 등 수많은 자료로 가득 차 있었다.
잠자는 공간을 빼곤 전부 영화와 관련된 물건들이었다.
특히 연기파 배우 제러미 아이언스를 무척 좋아한 모양이었다. 그 배우의 포스터가 엄청 많았다.
지독한 영화광이었던 배관공 출신 노인이 쓸쓸하게 삶을 마친 한 칸짜리 아파트다. 고인은 방 안에 온통 배우들의 사진을 남겼지만, 자신의 가족에 대해선 아무런 흔적도 없이 세상을 떴다. 사진 김새별 작가
꼼꼼하게 액자에 넣고, 사진을 이어붙여 커튼처럼 늘어뜨린 그 수많은 배우의 사진. 아무런 교류 없던 고인의 삶에서 유일하게 뭔가의 소통을 위해 만든, 흡사 제단 같아 보였다.
비좁은 집 안 가득 영화 자료로 채워놓고 외부인이 방문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같은 이유로 복지사 방문조차 거절하다 보니 복지 혜택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한다.
고인은 젊은 시절 배관공을 했다. 나이 들면서 건강이 악화돼 대장수술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수술 뒤 소위 안 좋은 소리로 ‘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형편이었다. 관리소장이 청계천은 그만 다니고 병원에나 다니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한사코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이래저래 안쓰러운 구석이 많은 주민인지라 관리소장은 좀 더 신경을 썼다고 했다.
지난 4월 말 그 사건. 그때도 영화광 노인을 주중에 만났다고 한다. 눈에 안 띈다 싶어 걱정될 쯤 또 한 번씩 찾아가 잔소리 겸 안부도 묻고 그러던 사이였다. 그렇게 한 주가 가고 주말을 지낸 뒤 뭔가 안 좋은 예감에 노인의 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얼굴 본 지 나흘 만이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안 좋은 예감, 그거. 소장은 순간 뒷목이 찌르르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몸이 안 좋아 쓰러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통로 쪽 작은 창문을 깨고 집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고 한다. 관리소장도 환갑이 넘은 몸인데, 무슨 정신에서인지 젊은 청년처럼 창을 넘어 들어갔다고 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주변에 알리고 할 시간이나 정신이 없었단다. 혹시 위급 상황이면 이거 지키고 저거 기다릴 시간이 어디있겠나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일말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지난주에 봤던 노인은 이미 고인이 돼 있었다.
이미 부패가 시작된 주검으로 발견됐다.
매트 하나 놓을 공간만 빼고 온통 영화배우 사진과 포스터로 '제단'처럼 꾸며놓은 영화광 노인의 좁은 방. 불을 끄고 영화를 보듯 어두운 곳에서만 세상을 봤던 노인은 '무연고 시신'으로 생을 마쳤다. 사진 김새별 작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경찰에 신고하고 바닥에 주저앉으니 그제야 눈물이 앞을 가렸다고 한다.
소장이 그때 당시를 떠올리며 내게 한 말이다. “같이 살지 않아도, 같은 핏줄은 아니어도 매일 만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러면 가족이지, 가족이 별거 있겠냐”고 말이다.
정 많은 관리소장이 ‘가족’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었다. 그를 통해 들은 고인의 내력이 짠했다.
“고인의 어머니가 이혼 뒤 재혼해서 낳은 자식이 이 사람인데, 그때 호적 등록을 하지 않았다더라고. 어머니의 신분으로 조회해도 전 남편 쪽만 나온다던가….”
참 복잡한 이야기였다.
옛날에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거나, 늦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전산 등록이 시작된 뒤엔 누락되거나 잘못 기재된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고인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보다. 호적으론 못 찾아도 원래 왕래하는 가족이라도 있었으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전무했다.
듣는 나도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장례는 어떻게 했나요?”
“무연고 처리 했어요.”
무연고.
연고가 없거나 찾을 수 없는 경우 지자체의 도움으로 시신을 화장하고 짧은 기간 동안 유골을 보관해 주는 방식이다. 정해진 기간 내에 연고가 나타나지 않으면 유골은 지자체에서 처리한다.
연고가 없이 태어날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다.
분명 모든 사람에겐 연고가 있다.
그럼에도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하고 처리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번에는 불행 중 다행으로 좋은 아파트 관리소장을 만나 고인의 마무리를 대신 해주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면 꽤 오랜 기간 사고현장은 방치됐을 것이다. 전담 부서 없는 정부·지자체 어디보다 관리소장이 빠르게 발견했다.
고독사는 고인에겐 죽음으로 끝나는 일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겐 피해로 시작된다.
끔찍하리만치 개체수를 늘려 가는 수천 마리의 파리떼와 지독한 시취는 아파트 주민들 전체를 고통스럽게 한다.
고독사는 일반주택보단 다가구 주택에서 훨씬 더 많은 비율로 발생한다. 이는 고독사가 발생하면 피해를 볼 이웃 주민이 많다는 이야기도 된다.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아파트 관리소장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고 유품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다.
내가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마무리조차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죽음은 고독사 그 이상의 ‘절망사’로 느껴졌다.
내게 고독사를 막을 수 있는 힘은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죽음이 절망스럽지 않게 할 수 있는 힘은 내게 있다.
떠난 사람에게도,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절망이 찾아오지 않길 희망한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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