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토픽에 날만한 망신”…KPGA 뒤집은 ‘6㎜ 스캔들’

2023. 3. 28. 04:09■ 스포츠/골프

 

“해외토픽에 날만한 망신”…KPGA 뒤집은 ‘6㎜ 스캔들’ | 중앙일보 (joongang.co.kr)

 

"해외토픽에 날만한 망신"…KPGA 뒤집은 '6㎜ 스캔들' | 중앙일보

늘어난 6㎜는 어느 정도의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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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토픽에 날만한 망신”…KPGA 뒤집은 ‘6㎜ 스캔들’

  • 카드 발행 일시2023.03.24
  • 관심사쉴 땐 뭐하지
에디터성호준

지난 20일 충북 청주 떼제베 골프장에서 벌어진 KPGA 스릭슨 투어(2부 투어) 1회 대회 예선에서다. 경기 중 몇몇 선수가 그린에서 퍼트를 하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A선수는 경기위원회에 “홀이 너무 큰 것 같다”고 신고했다. 자로 재보니 홀의 직경이 규정과 달랐다. 골프 규칙에 컵 직경은 108㎜, 깊이는 최소 101.6㎜ 이상, 원통은 지면으로부터 최소한 25㎜ 아래로 묻혀야 한다. 떼제베 골프장 홀의 컵은 직경이 6㎜ 큰 114㎜였고 깊이도 규정보다 얕았다. 경기위원회는 대회를 취소했다. 홀컵 사이즈가 잘 못 돼 대회가 중단된 예는 찾기 어렵다. 골프계에서는 “해외토픽에 날 만한 망신”이라는 반응이다.

KPGA에 따르면 떼제베 골프장은 모든 홀에서 규정과 다른 컵을 몇 년 동안 쓰고 있었는데 경기위원회가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골프계에서는 “상식적으로 경기위원이라면 규정보다 5% 정도 큰 6㎜ 차이를 알 수 있다. 홀의 깊이도 달라 확실히 구분이 됐다. 홀 직경과 깊이는 경기위원회의 대회 전 필수 체크사항이며, 답사도 했는데 이를 모른 것은 직무유기 혹은 근무태만이나 무능”이라고 개탄했다. 반면 “규정과 다른 컵을 버젓이 사용한 골프장 측이 더 큰 문제다. 경기위원회가 억울한 부분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홀컵이 크면 퍼트가 쉬워진다. 골퍼는 점수가 좋아져 기분이 좋고, 골프장은 라운드 시간이 줄어 손님을 더 많이 받고 그만큼 수익이 늘어난다. 모두가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최진하 전 KLPGA 투어 경기위원장은 “홀 사이즈가 다르다면 완전히 다른 경기가 된다. 기록이란 건 같은 조건에서 해야 비교할 수 있고 의미가 있다”고 했다.

프로야 그렇다 치고 아마추어는 별 상관없는 것 아닌가.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홀인원 보험은 어쩔 건가. 보험사들은 골프장의 이벤트로 큰 컵을 쓰는 홀에서의 홀인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떼제베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하고 보험금을 받아간 사람은 어떻게 될까.

아일랜드해에 있는 세일 섬 골프장. 성호준 기자

늘어난 6㎜는 어느 정도의 차이일까. 골프공 크기는 42.67㎜다. 볼은 무게중심이 홀에 있느냐 땅에 있느냐에 따라 홀인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작지 않은 차이다. 15% 이상 성공률이 올라갈 것 같다. 그 6㎜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떼제베 골프장은 비공인 컵을 쓰지도 않았다. 만약 당신이 114㎜ 홀컵에 퍼트했다면 이전까지 평생 라운드하면서 홀을 돌아 나왔던 공들은 다 들어갔고, 컵을 스치고 지나간 것 중 상당수가 홀인이 됐을 것이다.

기자도 몇 년 전 라운드 중 홀이 커보여 “기자 아니랄까 봐”라는 핀잔을 들으면서 크기를 재봤다. 규정보다 지름이 15㎜ 정도 컸다. 캐디는 “진행을 빨리하기 위해 규정보다 좀 큰 홀을 뚫는다”고 귀띔했다. 일부 골프장이 이벤트 홀을 정해 큰 컵을 쓰는 일이 왕왕 있는데 이를 알리는 것과 알리지 않고 규정 컵을 쓰는 것처럼 속이는 건 차이가 있다.

토끼가 골프장 그린에 파 놓은 굴. 성호준 기자

골프 홀은 토끼굴에서 유례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끼는 맹금류의 위험 때문에 굴에서 가까운 곳의 풀을 깨끗이 뜯어 먹는다. 토끼 굴이 홀이 되고 주위 땅이 그린이 됐다는 거다. 믿기 어려웠다. 토끼굴이 골프 홀로는 너무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스코틀랜드 서부의 오지 세일 섬의 작은 골프코스에서 라운드하다 토끼 굴이 홀이 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골프장에 있는 토끼굴은 골프 홀과 크기가 비슷했다.

토끼들이 협회를 만들어 홀 사이즈를 규격화시키지는 않았다. 골프 홀 사이즈는 들쭉날쭉했다. 19세기 영국 골프 잡지에는 “러프네스 골프장은 홀이 너무 커 3야드 미만에서는 홀아웃이 가능한데 샌드위치 골프장은 홀이 너무 작아 최소 5타가 더 나온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홀 규격은 1891년 표준화됐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인근 머셀버러 골프장에서 홀컵으로 쓰던 파이프의 직경을 기준으로 4.25인치(108㎜)로 정했다. 이 사이즈로 정할 때 무슨 철학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홀 사이즈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20세기 초반의 프로골퍼 진 사라센은 “홀의 직경을 8인치(20.3㎝)로 늘리자”고 했다. 사라센은 샷이 아니라 퍼트로 먹고사는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벤 호건은 아예 홀컵을 없애자는 제안도 했다. 그는 “그린을 양궁 과녁처럼 만들고 얼마나 가까이 붙였느냐에 따라 점수를 매기자”고 했다. 호건은 전설적인 볼 스트라이커였지만 퍼트는 잘 못해 손해가 컸다. 퍼트를 아예 없애고 싶었던 것이다.

진 사라센. 중앙포토

잭 니클라우스는 8인치 홀을 뚫어놓고 몇 차례 이벤트 대회를 열기도 했다. 사라센이나 호건처럼 이기적인 이유가 아니라 일반인에게 골프가 너무 어려우니 퍼트라도 재미있게 해줘야 한다고 여겼다. 10년 전 쯤 미국 프로골프협회와 용품사인 테일러메이드는 큰 홀 쓰기 캠페인도 했다. “초보자가 골프를 좀 더 쉽게 즐기고, 라운드 시간을 줄이기 위해 홀의 크기를 늘려야 한다”면서다. 그들은 농구 골대 크기(지름 45㎝)에 가까운 지름 15인치(약 38㎝)의 홀을 뚫어놓고 WIDE(넓은) 오픈 챔피언십을 열었다. 당시 참가자 60명 중 3퍼트를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며 평소보다 8~10타 적은 스코어를 냈다. 라운드 시간이 3시간15분 정도에 불과했다.

홀 사이즈를 늘리는 기계도 발명됐다. 발명자는 “어린이들이 실력에 맞는 작은 축구공을 쓰듯 주말 골퍼들은 큰 홀을 사용하는 게 맞고 자신에 맞게 홀 크기를 늘려주는 기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홀의 크기를 늘리자는 주장은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름이 38㎝의 큰 홀로 경기한 와이드 오픈. 중앙포토

스포츠에도 신성시되는 숫자들이 있다. 농구의 골대 높이 10피트(3.05m), 야구의 누간 거리 90피트(27.4m) 같은 것이다.

야구 홈플레이트에서 1루까지의 거리 90피트는 처음에 우연히 정해졌을 텐데 마치 신이 만든 것처럼 완벽하다. 프로야구 NC다이노스 사장을 역임한 이태일 스포티즌 부사장은 “공격하는 측과 수비하는 측 어느 쪽에도 유리하지 않은 거리다. 타자는 공을 친 후 전력질주하고 야수는 최선을 다해 수비했을 때 아슬아슬한 타이밍을 만들어내는 거리”라고 말했다.

야구에서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홈플레이트에서 1루까지의 거리는 변하지 않고 남았다. 이 90피트가 야구라는 스포츠의 펀더멘탈이 되지 않았나 싶다.

골프에선 홀컵 크기가 그 역할을 한다고 본다. 너무 작지도 않고 너무 크지도 않다. 너무 쉽지도 않고 너무 어렵지도 않다. 컨디션과 마음 상태에 따라 농구 골대처럼 보이기도 하고 골프공보다 작아 보이기도 한다. 골프도 변화가 많았다. 클럽은 나무에서 금속이 됐다가 요즘에는 “탄소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골프 코스 전장은 늘어나고, 그린은 빨라지고, 코스 유행도 변한다. 그러나 골프 홀 크기는 그대로 남았다. 야구 누간 거리처럼 스포츠를 일방적이지 않게 하는, 시간을 초월한 숫자다. 홀 크기는 골프라는 스포츠의 중심을 잡는 펀더멘탈이 아닐까 한다. 108번뇌를 연상시키는 108㎜라서 동양인에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홀컵을 그냥 두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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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성호준

    중앙일보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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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골프 전문기자입니다. 골프를 좋아하면 모두 친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