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류굴 호수 속 석순은 기후변화의 증거

2022. 7. 16. 10:25■ 大韓民國/지리 지질 역사

[지구는 살아있다] 성류굴 호수 속 석순은 기후변화의 증거

우경식 강원대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입력 2022. 07. 16. 06:00 

 
경북 울진군의 성류굴 모습.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일반인에게 개방된 석회동굴이다. 우경식 제공

경상북도 울진군에는 '성류굴'이라는 석회동굴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일반인에게 개방된 동굴로, 여러분도 언제든 성류굴을 둘러볼 수 있지요. 그런데 성류굴에서 지질학자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성류굴 호수 속에 잠긴 커다란 종유석과 석순입니다. 동굴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형성된 종유석과 석순이 어떻게 물속에 있는 걸까요? 

 

성류굴 동굴벽에는 신라 사람의 낙서가 있다

성류굴은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명한 동굴이었습니다. 2019년에는 동굴 벽에서 약 1200년 전인 삼국시대 신라인들이 새긴 글씨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중 신라의 범렴이라는 승려는 친절하게 “정원 14년 8월 25일에 승려 범렴 다녀가다”라고 써놓아 글씨가 새겨진 연대와 주인공까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울진을 다스렸던 이복연의 이름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새겨진 글씨가 30여 개에 이르렀고, 이를 통해 고고학자들은 성류굴이 신라 시대 이후로 사람들이 꾸준히 구경하러 오는 명승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누구도 동굴 벽에 글씨를 새기면 안 됩니다.

 

성류굴 벽에 적힌 ‘정원십사년 무인팔월이십오일 범렴행’ 글씨. 신라시대 승려 범렴이 기록한 글씨다. 우경식 제공

성류굴 중간에는 깊이 5m가 넘는 깊은 호수가 있습니다. 이 호수를 들여다보면 푸른 물속에서 빛나는 석순을 볼 수 있습니다. 수면 바로 아래까지 올라와 있는 모습이 상당히 커다란 석순임을 알 수 있지요. 바로 위에는 수면에 닿을 듯 말 듯 자란 종유석이 있습니다. 

문제는 석순이 물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약산성의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며 석회암에 있는 탄산칼슘을 녹입니다. 이 빗물이 동굴 천장에 맺혀 떨어져 빗물 속에 녹아 있던 탄산칼슘 성분이 다시 광물로 쌓이면서 종유석과 석순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구조를 ‘동굴생성물’이라 부릅니다. 그러니 종유석과 석순이 물속에서 자랄 수는 없습니다. 

 

석순은 어떻게 물에 잠겼나

 

성류굴 동굴 호수. 수면 밑에 가라앉은 커다란 석순이 보인다. 우경식 제공

2007년 필자는 한국동굴연구소와 함께 직접 호수 속을 조사했습니다. 물속에서는 좁은 통로가 발견되었고, 스쿠버다이빙팀이 이 통로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물속 통로는 다른 곳으로 연결된 것 같았지만, 너무 좁아져 더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호수 바닥에서는 종유석과 석주는 물론, 밑동이 깎인 석순도 발견되었습니다. 이 석순은 아래쪽보다 위가 더 큰 모습으로 생겼습니다. 이런 형태가 만들어지려면 석순 밑동으로 물이 졸졸 흐르며 석순을 침식해야 합니다. 과거 성류굴에 호수가 없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 바닥을 흐르던 물이 석순을 깎았다는 의미입니다.

즉, 성류굴 호수 속 석순은 물속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호수가 형성되기 전에 자란 것입니다. 물이 동굴로 차오르면서 만들어진 호수 바닥으로 석순이 가라앉은 것입니다.

 

동굴 호수 바닥에서 발견된 석순의 모습. 곁을 흐른 물의 흐름에 의해 밑동이 침식되어 특이한 모습이 되었다. 우경식 제공

성류굴의 호수는 형성시기와 형성 원인은 빙하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구의 물 중 97.5%는 바다에 있습니다. 이를 제외한 물 가운데 약 70%는 빙하에 저장되어 있고, 그중에서도 나머지가 강과 호수, 지하수를 이룹니다. 그런데 이 비율은 기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예가 빙하기입니다. 빙하기가 되면 남북극 빙하의 크기가 커집니다. 빙하로 물이 언 만큼 바닷물의 부피는 줄어듭니다. 그 결과, 빙하기의 해수면은 지금보다 낮아지게 됩니다. 빙하가 가장 많이 커진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약 130m나 낮아졌다고 알려졌습니다.

성류굴 호수 속 석순은 동굴 속에 호수가 없었던 빙하기 동안에 자랐을 겁니다. 그 후 기후가 따뜻해지는 간빙기가 되자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성류굴 내부의 수면도 올라갔고, 그 결과 동굴 호수가 생긴 것입니다. 물론 지난 200만 년 동안 20차례 이상의 빙하기가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 빙하기에 자란 석순인지는 더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동굴 호수 속 석순은 과거 계속되어온 기후변화의 증거인 셈입니다. 

 

잠수하여 동굴 호수를 조사하는 모습. 우경식 제공

※필자소개

우경식 강원대학교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해양지질학을 공부하고 1986년부터 강원대학교 지질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동굴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IUCN 세계자연유산 심사위원으로 세계의 지질유산을 심사하고 있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7월 15일자, [파고캐고 지질학자] 19화. 호수 속에 석순 있다?! 성류굴

[우경식 강원대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