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2. 12:04ㆍ■ 大韓民國/대통령과 사람들
[위크엔드 스페셜] 육영수·이희호·김정숙·김건희… 대한민국 영부인들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 법적 권한 없지만 청와대 제2부속실에서 보좌
■ 미국은 법으로 영부인에게 사업 예산·직원 배정
하여금 영(令)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남을 높이는 말’로도 풀이돼 있다. 남의 아들을 높여 부를 때는 영식(令息), 딸을 높여 부를 때는 영애(令愛)라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영부인(令夫人) 역시 남의 부인에 대한 존칭으로, 누구에게나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영부인은 사실상 대통령의 부인을 지칭할 때만 사용되는 단어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김건희(50)씨 역시 5월 10일 취임식 이후로는 ‘영부인’으로 불린다.
대통령의 부인, 영부인의 역할은 규정돼 있지 않다. 역대 영부인들을 봐도 제각각이었다. 공식 행사에만 모습을 드러내고 ‘그림자 내조’를 했던 영부인이 있었나 하면, 왕성한 대외 활동을 한 영부인도 있었다.
대통령학 박사인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의 저서 [영부인론]에 따르면 영부인은 ▷전통적 내조형 ▷베갯속 내조형 ▷활동적 내조형 ▷연결망으로서 참여형 ▷완전한 동반자 등으로 분류된다.
‘그림자 내조’ 손명순, ‘베갯속 내조’ 김옥숙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재임 기간 대외 활동이 거의 없었다. 여성계 등의 면담 요청도 거절했을 정도다. 그야말로 ‘그림자 내조’였다. 손 여사는 구설에 오르는 걸 미연에 방지했다. 대신 손 여사는 매일 아침 신문을 읽으며 언론에 비친 남편의 활동을 꼼꼼히 살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함 원장에 따르면 ‘베갯속 내조형’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꼽힌다. 공식적으로는 활동을 삼갔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역대 어느 영부인보다 대통령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김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활동적 내조’ 육영수와 이순자
‘활동적 내조형’은 공식적 사회활동을 통해 정책적 역할까지 수행하는 경우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육 여사는 ‘양지회’를, 이 여사는 ‘새세대 육영회’와 ‘새세대 심장재단’을 주도했다.
육 여사는 ‘양지회’를 통해 봉사활동, 지적장애 아동을 위한 사업을 벌였다. 영부인을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이 탄생한 것도 이때다. 이 여사는 ‘새세대 육영회’와 ‘새세대 심장재단’ 회장을 맡으며 존재감을 뽐냈다.
‘연결망으로서 참여형’ 이희호·권양숙·김윤옥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화 동지’인 이희호 여사는 재임 기간 영부인 최초로 단독 해외 순방을 한 데 이어 2002년 유엔 아동 특별총회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대신해 임시회의 주재, 기조연설 등을 했다. 이 여사는 2011년과 2015년에는 북한을 방문하는 등 김 전 대통령 퇴임 이후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명예회장,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 명예회장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는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와 ‘한국박물관 100주년 기념사업회’의 명예회장을 맡았다.
권·김 여사는 대통령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곳을 맡는 영부인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 재임 중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김 여사는 한식 세계화 운동에 정부 부처를 동원한 일 등으로 논란을 초래했다.
문재인 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활동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알려졌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김정숙 여사 소식’이라는 별도 코너가 있을 정도다.
대다수 나라 법적 권한 없으나 미국은 예외
대다수의 나라가 영부인에게 법적 권한이나 지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헌법상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공식 지위를 부여하고 별도 예산을 책정하려다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영부인에게 사업 예산과 직원을 배정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남편의 지지율 제고를 위해 현장을 누볐다. 바이든 여사는 영부인이 된 뒤에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새로운 영부인상(像)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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