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대학살, 눈감은 프랑스

2021. 4. 21. 00:46■ 국제/세계는 지금

예견된 대학살, 눈감은 프랑스

윤기은 기자 입력 2021. 04. 20. 21:35 댓글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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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1994년 학살, 프랑스에 중대 책임" 보고서

[경향신문]

이 죽음의 공모자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의 수많은 유골이 르완다 엔타라마의 한 성당에 놓여 있다. 엔타라마 | AP연합뉴스

“몰랐다”는 프랑스와 배치
후투족 공격에 투치족 죽음
인권연맹, 사건 1년 전 경고
“그들 다툼 개입 못해” 외면
되레 후투족에 병력 지원
자국 영향력 키우기 속셈
직접 개입 증거는 못 찾아

프랑스 정부가 1994년 80만명 이상이 희생된 르완다 대학살이 일어날 것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르완다 정부의 공식 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르완다 정부는 프랑스가 르완다 내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학살 주도 세력을 도왔다고 밝혔다. 앞서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자신들은 학살 조짐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19일(현지시간) 르완다 정부는 250명 이상의 증인과 각종 문서, 영상 자료 등을 분석해 완성한 628쪽 분량의 보고서 ‘예견된 대학살’을 통해 “프랑스는 르완다 대학살에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르완다 대학살은 정권을 잡은 후투족이 1994년 4월에서 7월까지 투치족 80만여명을 집단 학살한 것을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르완다에서 활동하던 국제인권연맹(FIDH)은 1993년 르완다 주재 프랑스 외교관에게 “투치족 2000명이 후투족에 의해 집단학살당했다”고 알렸다. 대학살이 일어나기 1년 전 이 같은 조짐이 일어나고 있음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외무부로부터 돌아온 답은 “투치족의 르완다애국전선(RPF)이 후투족을 자극해 일어난 사건임을 알고 있다. 프랑스가 그들 다툼에 개입할 순 없다”였다.

프랑스 정부가 인권연맹의 보고를 받은 후 오히려 후투족이 장악한 르완다 정부에 더 많은 병력을 지원한 사실도 밝혀졌다. 보고서는 프랑스가 수백명의 군인을 파병하고, 탄약·로켓 등 당시 물가로 150만달러 상당의 군수물자를 후투족에게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는 르완다 내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프랑스 정부의 속셈에서 비롯됐다.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종족 갈등이 심해 정국이 불안정한 르완다를 아프리카 내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시작점으로 골랐다. 미테랑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가 없었다면 21세기의 프랑스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는 등 아프리카를 프랑스 발전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며 식민주의를 옹호한 인물이기도 하다.

르완다 대학살은 식민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1916년 벨기에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살던 영토를 임의로 합쳐 ‘르완다’라는 국가를 만들었다. 벨기에는 식민지배 시절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투치족을 우대하고 후투족을 홀대하는 종족 차별 정책을 펼쳤고, 이 때문에 1964년 독립을 이룬 이후에도 후투족과 투치족의 물리적 충돌은 지속됐다. 1994년 4월 후투족 진영이었던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전용기 격추로 숨지자, 후투족은 이를 빌미 삼아 약 100일 동안 투치족을 눈에 보이는 대로 살해했다. 이후 투치족이 수도 키갈리를 점령하는 데 성공하며 대학살은 끝났다.

르완다 정부는 프랑스의 르완다 대학살 개입을 놓고 진실공방을 벌이기 시작했고, 갈등이 극에 달한 2006년에는 프랑스와 단교를 선언했다. 2009년 프랑스가 뒤늦게 대학살과 자국의 연관성을 공식 인정한 후에야 프랑스로 도망간 르완다 학살범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자체적으로 대학살 진상규명도 진행했다. 지난달 26일 나온 프랑스 정부의 보고서는 “프랑스가 르완다 대학살에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대학살 조짐에 대해 눈이 멀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들은 대학살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다. 프랑스군이 학살에 공모했다는 증거 역시 찾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르완다 정부 역시 이번 조사에서 프랑스군이 르완다 대학살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르완다 정부는 “이번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정부가 르완다 대학살에 자국이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와 증언을 은폐해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르완다는 프랑스가 여전히 자신들의 책임을 축소하려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강대국 프랑스를 드러내놓고 비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르완다 출신 인사가 프랑스어 사용 국가 연합 ‘프랑코포니’ 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데 프랑스가 힘을 써주는 등 르완다에 미치는 프랑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빈센트 비루타 르완다 외무장관은 자국의 보고서 발표 뒤 “중요한 것은 양측이 공통된 이해 지점을 갖게 된 것”이라며 “르완다는 프랑스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준비가 돼 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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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강1시간전유럽만큼 양민 학살에 관계된 국가들도 없을 것.
  • 답글 작성댓글 찬성하기13댓글 비추천하기0
  • 안토니오1시간전면책 특권이 있어도 현행범이니 추방하는것이 주권국가의 모습이다. 외교부 뭐하나 보자. 벨기에 대사 쓰레기 부인.
  • 답글 작성댓글 찬성하기9댓글 비추천하기0
  • .2시간전열강이라 불리던 나라들인데 나치 덕에 세탁 오지게 잘 하긴 했어
  • 답글1댓글 찬성하기60댓글 비추천하기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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