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은 가장 먼저 빈소 왔고, 이재용은 직접 팰리세이드 몰았다

2020. 10. 27. 09:20■ 인생/사람들

정의선은 가장 먼저 빈소 왔고, 이재용은 직접 팰리세이드 몰았다

김영민 입력 2020.10.27. 06:00 수정 2020.10.27. 06:55

 

#26일 오전 11시쯤, 정의선(50) 현대차그룹 회장이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삼성을 제외한 5대 기업 가운데 정 회장은 가장 먼저 이건희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약 8분간 조문을 마친 뒤 정 회장은 “한국 경제계에서 1등 정신을 아주 강하게 심어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 두번째), 공영운 현대자동차 전력기획담당 사장(오른쪽)이 26일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빈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의선, 5대 기업 총수 가운데 가장 먼저 도착
생전 이 회장은 1990년대 들어 반도체만큼 완성차 사업에 집념을 가졌다. 자동차 사업 진출을 목표로 한 태스크포스(TF) 조직의 이름을 '21세기 기획단'으로 지을 정도였다. 92년 노태우 정부 때만 하더라도 사업 진출이 어려웠지만, 문민정부 시기인 94년 12월 상공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승용차 사업 진출을 허가받았다. 당시 집권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부산에 자동차 조립라인을 세우겠다는 삼성의 계획이 묘수였다.

1997년 5월 12일 삼성차 부산공장에 방문해 SM5에 시승한 이건희 회장. [사진 삼성전자]

삼성과 달리 현대는 문민정부 시절 일관제철소 사업 승인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동차와 철강을 같이 생산하는 수직계열화가 목표였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당시 1위 사업자 현대를 위협할 정도로 고인과 삼성은 완성차 사업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현대자동차의 마북리 연구소장, 울산 공장장 출신 임원이 삼성차에 스카우트됐다. 삼성 21세기 기획단의 임원 44명 가운데 현대차 출신이 7명. 삼성차의 첫 세단 'SM520'는 현대 쏘나타, 기아 크레도스와 함께 중형차 시장을 3분할했다.


생전 이 회장, 삼성차 위해 '현대 인력' 다수 스카우트
97년 8월에는 ‘기아 인수 추진 보고서’라는 삼성 내부 문건이 외부로 유출돼 논란이 일어났다. 보고서에는 기아를 인수해 현대에 버금가는 내수 점유율(30%대)을 차지하겠다는 전략도 포함됐다. 삼성차 인수설에 시달리는 등 부침을 겪은 기아는 경영난에 빠졌다. 이른바 기아 사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약 4조5000억원의 분식회계가 드러났다. 기아는 97년 10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M&A 매물로 나왔다.

당시 재계에선 삼성차가 기아를 인수할 것으로 판단했다. 삼성이 인수 1순위로 거론된 이유는 93년 삼성생명이 기아차의 지분을 8%까지 보유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기아의 최대 주주인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율(7.8%)을 넘는 수치였다.

현대그룹의 기아차 인수를 다룬 1998년 10월 20일자 중앙일보.

세간의 예상과 달리 기아 인수전의 최종 승자는 현대였다. 삼성·대우에 비해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현대는 1조2000억원을 써내 기아를 인수한다. 기아 M&A에 승부수를 던졌던 삼성차는 스스로 부채 약 4조원을 이겨내지 못했다. 99년 6월 고인은 삼성차의 부채 탕감을 위해 "삼성생명 주식 약 400만 주를 사재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사업 진출 약 5년 만에 삼성이 완전히 철수하는 순간이었다. 포르쉐 운전을 즐기고, '용인 스피드웨이'까지 세웠던 고인의 꿈은 무산됐다.


이재용, 빈소에 직접 현대차 몰고 등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연합뉴스

부친과 달리 이 부회장은 완성차 사업 진출에는 확고히 선을 긋고 있다. 그 대신 전기자동차(EV)용 배터리, 자동차용 반도체에서 정의선 회장의 현대차와 협력을 꾀하고 있다.

현대차 역시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 5월에는 정 회장이 현대차 총수 일가로는 처음으로 삼성SDI의 배터리 공장을 방문했고, 두 달 뒤에는 이 부회장이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찾았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배터리는 삼성 제품을 현대차가 구매하고, 자율주행 부문에선 현대차가 삼성전자와 전략적 기술 제휴를 맺는다면 서로 윈-윈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각 68년생, 70년생인 이 부회장과 정 회장은 개인적으로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전용 차량 역시 제네시스 G90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25일 현대 '팰리세이드'를 운전해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하는 모습. [뉴스1]

이 부회장은 지난 25일에는 현대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를 직접 운전해 빈소에 나타났다. 아들 지호씨, 딸 원주 양을 태운 그는 직접 '오너 운전자'로 취재진 앞에 등장했다. 삼성 총수일가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 공식 석상에 나타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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