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2. 11:19ㆍ■ 국제/세계는 지금
13세 소녀의 오보가 부른 비극, 프랑스 교사 테러의 이면
목수정 입력 2020.10.22. 07:51 수정 2020.10.22. 10:09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13세 소녀와 아빠, 그리고 18세 소년
[목수정 기자]
▲ 참수된 교사를 추모하는 꽃다발 속 '나는 사뮈엘이다' 글귀 |
ⓒ 연합뉴스 |
10월 16일, 파리 근교의 한 작은 도시 콩플랑(Conflans)의 중학교 역사교사가 퇴근길에 칼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살해범으로 지목된 이는 80km 떨어진 도시에 사는 18세 난민 소년 압둘라흐 안조로프. 12년 전,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 체첸계 러시아인인 그는 난민 자격을 얻어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경찰은 오후 5시11분, 학교에서 가까운 길에서 교사 사무엘 파티의 시신을 발견했고, 시신으로부터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체첸 소년을 발견한 후 9발의 총격으로 그를 사살했다. 그 사이, 트위터에는 살해된 교사의 사진(4시57분 경 촬영)과 함께 '알라의 이름으로, 이 불신자들의 지도자인 마크롱에게 고하니, 나는 감히 모하메드를 능멸하려 한 너의 지옥의 개들 중 하나를 처형했노라...'라는 내용의 트윗이 올라왔고, 트위터 계정의 주인은 경찰이 사살한 소년인 것으로 확인됐다.
누가 최초의 신고자이며, 학교 근처에서 벌어진 잔혹한 살인 장면을 목격한 주민은 없는지, 왜 살인자는 도망가는 대신 시신 근처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밝혀진 바 없다.
비극의 서막
비극의 서막은 10월 초, 교사가 진행한 '표현의 자유'에 관한 수업에서 시작된다. 중학교 역사교사는 '시민윤리'를 겸해 가르치는데, '표현의 자유'는 이 과목 공식 프로그램에 속하는 주제다. 교사는, 작가로서 숱한 검열을 겪어야 했던 볼테르가 주창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최초의 생각들을 소개하고, 현대사에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사건의 예로 5년 전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을 들어 토론을 진행시켰다.
프랑스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통해 종교를 조롱할 자유까지 부여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떤 이들을 자극할 수 있고, 테러까지 부를 수 있다는 현실 속 딜레마의 좋은 사례로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이야기한 것이다. 토론은 그 딜레마 사이에서 균형 잡는 법을 아이들이 함께 찾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교사는 샤를리 에브도가 당시 실었던 무함마드의 캐리커처를 보여주었고, 이러한 그림이 불편한 친구들은 원한다면 잠시 나가 있거나 눈을 감아도 좋다고 사전 고지했다.
며칠 뒤, 이 수업은 이 학교에 다니는 13살 소녀에 의해 잘못된 내용을 포함한 다소 거친 버전으로 아버지에게 전달된다. 극단적 이슬람주의자인 아버지는 딸이 전한 내용을 반이슬람주의자의 인종적 태도로 간주하고, 세 차례에 걸쳐 SNS를 통해 해당 교사의 신원을 공개하며 그를 양아치로 묘사하고, 학교에서 내쫓기 위한 집단행동에 나서줄 것을 학부모들과 이슬람 공동체를 향해 선동했다.
학교와 교육청이 중재에 나섰고 경찰까지 출두명령을 내렸으나, 소녀의 아버지는 중재에도 조사에도 응하지 않았고, SNS를 보고 연락해온 체첸 소년과 긴밀히 소통했다. 조사에 따르면, 소녀는 수업이 있던 날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고 따라서 수업을 듣지 않았다.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교사의 태도나 발언 어디에도 특정 종교를 가진 학생들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바 없었다고 증언한다. 열정적이며 친절한 교사였고, 학생들의 비판정신을 일깨우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교사에 대한 주변인들의 주된 평이다. 교육부가 시민윤리 과목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윤리에 대한 감각과 비판정신을 가진 자유롭고 책임 있는 시민"이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샤를리 에브도>는 정치인, 종교인 등 권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들의 캐리커처를 그리며 시사만평을 해온 잡지다. 역대 대통령들은 물론 예수, 교황, 극우 정치인들 등이 캐리커처의 단골 대상이 되어 왔다.
▲ 종교적 권위에 늘 도전해 왔던 샤를리 에브도의 표지들 좌 : 모든 종교는 화장실로 / 중 : 예수, 무함마드, 유대교의 랍비가 나란히 앉아 "신들은 학교 밖으로 " "어차피 학부모 회의 참석하는 건 지겨웠어" / 우: 랍비, 교황, 무함마드가 함께 "샤를리 에브도에 베일을 쓰게 해야 한다" |
ⓒ charlie hebdo |
희화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누구도 유쾌할 수 없겠으나, 이는 1789년 프랑스혁명이 채택한 시민인권선언에 근본적 권리로 등재된 후 프랑스 헌법의 근본적 가치가 된 '표현의 자유'의 이름으로 널리 관용되어 왔다. 권력, 권력자, 사상, 종교에 대해 비판하거나 옹호할 수 있는 이 자유는 권력자의 권위를 견제하는 수단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고, 사상과 언론의 자유로도 해석되어 왔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생겨난 국가보안법으로 우리로서는 한 번도 온전히 가져보지 못한 권리이다.
그러나 2015년 1월, 이슬람계 테러리스트들이 무함마드를 풍자한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가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이 자유는 심각한 위협에 처한다. 이슬람국가에서 무함마드에 대한 모독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지만, 프랑스에서 "신성모독(Blasphème)"은 공화국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자유에 속한다.
총칼로 위협하는 공포 앞에서 그 권리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2015년 1월에도, 2020년 10월에도 프랑스 시민들은 "자유를 포기하지 않겠다" "교사의 임무를 저버리지 않겠다"며 거리에 나섰다.
시사주간지 <마리안느>는 10월 20일자 보도에서 "샤를리 에브도는 모든 종교, 모든 광적인 믿음, 모든 도그마를 예외 없이 공격해왔다. 그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이며, 사무엘 파티가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라며, 많은 이들이 자기검열 속에서 점점 포기하면서 잊혀가던 원칙을 환기시켰다.
마크롱의 사후약방문
당일 저녁 콩플랑시를 방문한 대통령 마크롱은 이 사건을 "이슬람계 테러리스트가 벌인 테러"로 규정하며, "교사를 해한 자는 공화국이 지닌 가치를 함께 해하려 한 것이며, 폭력을 동반한 반계몽주의와의 싸움은 우리의 실존적 투쟁이 될 것"이라 말했다.
▲ 프랑스 교사 참수 사건 현장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 연합뉴스 |
내무부 장관은 불길이 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녀의 아버지가 올린 거짓된 선동 비디오를 공유하여 이슬람 공동체에 증오를 확대시킨 책임이 있는 팡탕의 이슬람사원을 6개월간 폐쇄시키도록 했고, 소녀의 아버지와 함께 교사를 향한 중상모략에 가담했던 2개의 이슬람주의 단체 해산, 극단적 원리주의 성향을 띠는 것으로 파악되는 231명의 불법체류 외국인들 추방 등을 신속히 결정했다. 또 교육부는 사망한 교사에게 레지옹도뇌르 훈장, 교육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교사들은 사건 직후 테러범을 신속히 사살한 정부가 수차례 파티 교사가 살해협박을 받는 중에는 왜 그를 보호하지 못했는지 지적한다. 사후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무의미한 사후약방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15년째 공공부문 예산 축소에 집중해오면서 교육분야는 의료분야와 함께 가장 큰 희생을 치러온 영역이다. 살인적 여건에서 코로나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몸 바쳐 일한 의료인들에게 그들이 요구하는 의료재정 확대 대신, 메달을 전달하겠다는 얄팍한 태도와 다른 것이 뭐냐고 일부 교사들이 원성을 높이는 이유다. 이들은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완벽한 교권의 보장과 자부심을 잃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정부를 향한 교사들의 오랜 요구를 재차 확인시켰다.
충격에 빠진 이슬람 공동체
5년 전과 마찬가지로 가장 난처해진 것은 프랑스 내 이슬람 공동체다. 그들 중 일부는 교사의 태도를 인종주의로 몰아세우며 체첸계 소년이 테러를 감행하도록 부추기는 데 나서기도 했지만, 대다수 이슬람계 시민들은 공화국의 이념을 존중하고 공유하며 이곳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테러가 극우세력의 준동에 빌미를 제공하고, 이민자와 이슬람을 향한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합법적 계기를 마련해준다.
프랑스2 방송에 초대된 이슬람 공동체 지도자들은 "프랑스 이슬람 공동체 모두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며 테러리스트들의 행위를 엄중하게 단죄했다. 이들은 "(프랑스의 이슬람신도들은) 공화국과 그 가치를 지지한다"고 선언하며, 이슬람 공동체를 향해 "테러리즘에 맞서 싸울 것"을 호소했다.
▲ 교사 참수 테러 규탄하는 프랑스 시민들 |
ⓒ 연합뉴스 |
테러의 정치적 이용
일요일 파리의 공화국 광장에서는 교원노조들이 주도한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정부요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불과 사흘 전 발표한 "6명을 초과하는 인원은 탁자에 둘러앉지도 말라"는 정부의 방역지침이 무색하도록 광장은 넘쳐나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염려해 야간 통행금지까지 실시하고 있는 수도 파리의 모습 속에 코로나에 대한 지침은 사라진 듯했다. 현장 의사들의 판단을 근거로 근본적 시민권에 대한 축소 없는 민주적 방역 조치를 요구하던 목소리를 무시하고 정부가 시행한 통행금지에 우파, 중도, 좌파 전체의 반대 목소리가 우렁찬 파고를 타고 솟아오르던 찰나에 발생한 테러에 정부는 진지하게 몰입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교사에 대한 악의와 증오에 찬 메시지를 퍼나르는 데 일조한 이슬람 단체들 외에도 이와 무관한 50개의 이슬람계열 협회들에 대한 해산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근본적 권리이듯 '단체 구성의 자유' 또한 탄탄한 보호를 받고 있는 기본권인지라 정부가 뜻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녹색당의 약진 이후 존재감이 축소됐던 극우정당 RN의 르펜도 기회를 놓칠세라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테러 관련 국회 조사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이슬람 재정복을 위한 전략을 국회 연설을 통해 내놓는가 하면 정부를 향해 대 이슬람 전쟁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프랑스가 푸틴의 러시아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탓에 그들과 갈등관계에 있는 체첸 이주민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난민 인정을 해왔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들 상당수는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이기에 대거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범인의 가족들과 문제의 학부모, 그와 함께 교사를 압박해온 사람들 등 16명이 구속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 이미 마크롱 정부는 과도한 반 이슬람 공세에 들어간 듯하나 이를 막아설 명분은 아직 대오를 정비하지 못했다. 테러는 언제나 값비싼 대가를 남은 사람들에게 치르게 하지만, 코로나로 이미 너무 많은 자유를 제약받고 있는 시점에서 자행된 테러는 권력자에게 한 가지 더 유리한 무기를 쥐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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