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머리 감기는데 가슴을.." 요양보호사 42%가 성희롱 당했다

2020. 10. 20. 22:21■ 법률 사회/性범죄·Me Too

[단독]"머리 감기는데 가슴을.." 요양보호사 42%가 성희롱 당했다

지영호 기자 입력 2020.10.20. 14:10 수정 2020.10.20. 14:17

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머리를 감겨드리는데 젖가슴을 확 만졌어요. 한달 뒤 손발톱 정리해달라고 해서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옷을 잡아당기면서 연애하자고..." (은평구 요양보호사)

"목욕을 원해서 씻겨드리는데 어느 날은 속옷을 입고 있지 않더군요. 입으시라고 했더니 남편 것을 보지 않느냐면서 연애를 하면 20만원씩 주겠다고 했어요." (광진구 요양보호사)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성폭력·성희롱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 놓였지만 장기요양기관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건강보험공단은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서울시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장기요양기관의 요양보호사 성희롱,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중 42.4%가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폭력 당해도 '계속 일해라'...심각한 인권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요양보호사들은 요양업무 과정에서 계속된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성관계를 종용받는 등 성폭력·성희롱에 노출됐다. 은평구 요양보호사는 "연애하자는 얘기에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여 웃고 넘겼지만 이튿날에도 또 요구했다"며 "젖가슴을 만지고 막 웃는데 기분이 너무 나빠 '뭐하는 거냐'고 따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요양보호사는 이런 내용을 기관에 보고했지만 기관 센터장은 문제의 노인에게 '성희롱을 하면 안된다'고 통보했을 뿐 계속 당사자를 케어하게 하는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노인은 이 요양보호사에게 'X발'이라며 욕을 하며 보복 행위를 이어갔다. 이 요양보호사는 이런 상황에서도 케어 서비스를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요양보호사는 방문요양기관 등 장기요양기관 소속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 신체·가사·인지활동 등의 서비스를 통해 노후 생활의 안정과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활동을 한다. 특히 방문요양의 경우 요양보호사가 수급자의 가정 등을 방문해 지원한다.

지원 장소가 밀폐된 곳이 대부분이다 보니 성과 관련된 범죄에 취약한 경우가 많다. 서울시 요양보호사 231명을 대상으로 '성희롱 피해' 여부를 묻는 질문에 42.4%에 해당하는 98명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 1년 내 피해를 당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이 넘는 53명이다. 피해 지속기간이 3개월 이상인 응답자는 19명이었다.

(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민주노총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5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전국요양노동자 총궐기대회를 갖고 비정규직 철폐 및 처우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19.10.25/뉴스1

성기 노출하고 '성관계 하자'...오히려 해고

성폭력·성희롱 사실을 보호자와 기관에 보고했지만 오히려 요양보호사를 해고하는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광진구 요양보호사의 경우 노인이 성기를 노출한 채 금전적 보상을 미끼로 성관계를 제안하는가 하면, 엉덩이를 만지고 실수라고 둘러대는 등 심각한 성폭력·성희롱을 일삼았다. 보호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폭력적으로 돌변했고, 이후 다른 트집을 잡아 요양보호사를 괴롭혔다. 결국 어떤 구제도 받지 못한 채 일을 그만둔 요양보호사는 심리 상담을 요청한 상태다.

또 다른 광진구 요양보호사도 노인이 가슴을 만지는 일을 당했지만 보호자와 센터장이 대응을 하지 않아 일을 그만뒀고, 송파구 요양보호사는 노인으로부터 '몽정했다', '발기했다' 등 언어적 폭력피해를 입었지만 센터에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아 그만두게 됐다.

노인장기요양보호법에 따르면 성희롱을 당한 요양보호사가 고충 해소를 요청하는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는 유급휴가 등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관리해야 할 건강보험공단은 장기요양기관의 의무 이행 실태를 파악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의원실에 따르면 공단은 서비스 질 관리를 위해 장기요양기관 정기평가 등 관리·감독을 해야 하고 서비스 이용자의 이용 제한 등에 대한 판정 권한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사례를 제대로 적발하지 않았다. 요양보호사에게 '성적인 농담이나 과도한 신체접족을 할 경우 급여중단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 규정으로 급여가 중단된 사례는 1건도 없다.

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가슴 추행' 보호자에 알리자 "젖을 먹고 자라서"

강동구 요양보호사 역시 노인이 가슴을 만지는 등 반복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입었지만 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일을 포기했다. 특히 이 요양보호사는 보호자인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부인은 "엄마가 그리우니까"라던가 "젖을 먹고 자라서" 등의 말로 가해자를 옹호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은 이후에도 그의 아들이 보고있는 상황에서도 요양보호사의 가슴을 만지기도 했다.

이 요양보호사는 "기관에서는 이 노인이 다른 센터로 갈 수 있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자기부담금 증가나 보호자 교육, 타 센터로 옮길 때 사유 공개 등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케어 대상 뿐 아니라 보호자에 의한 성희롱 사례도 있었다. 송파구 요양보호사는 6년을 돌보는 여성 노인의 보호자인 남편이 신체적으로 억압하고 성희롱을 해 일을 그만뒀지만 이후에도 보호자가 전화를 하고 욕설을 하는 등 피해에 시달렸다.

이런 시달림은 결국 환자가 사망하고 나서야 끝나기도 했다. 강북구 요양보호사는 "내 딸같다"며 예뻐해주던 노인에게 스마트폰을 가르쳐주는 과정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노인은 요양보호사를 안고 허벅지에 손을 얹는 등 추행한 것은 물론 손에 입을 맞추려 하고 잠자리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사건은 이 노인이 사망하면서 종결됐다.

정 의원은 성희롱 근절을 위한 개선 방안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이 장기요양기관의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만큼 개별 기관과 피해 당사자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직접 관리·감독해야 한다"며 "성희롱 피해를 받은 요양보호사가 일자리 중단이라는 2차 피해를 겪지 않기 위해 현실적인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영호 기자 tell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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