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일조권 침해.."48층 아파트 공사 멈추라"

2020. 5. 5. 05:44■ 건축 인테리어

'참을 수 없는' 일조권 침해.."48층 아파트 공사 멈추라"

임지수 기자 입력 2020.05.04. 21:44 수정 2020.05.04. 21:54


[앵커]

최근 인천에 지어지고 있는, 48층짜리 아파트에 대해서 이웃 주민들이 공사를 멈춰 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아파트가 다 지어지고 나면 '일조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건데요. JTBC 취재 결과, 법원이 해당 아파트 공사를 "멈추라"고 결정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일조권 침해가 어느 정도 길래 법원이 이런 판단을 했을까요?

임지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입니다.

30m 간격을 두고 맞은편에 이 아파트 4배 높이의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데요.

이 아파트가 완공이 되면 맞은편 아파트에는 햇볕 드는 시간이 동짓날 기준 하루 평균 15분대로 줄어들게 된다고 합니다.

남향 아파트에서 겨울 난방비 걱정 없이 십여 년을 살아온 이웃 주민들의 반발은 거셉니다.

[박모 씨/이웃 아파트 주민 : 이건 완전히 죽으라는 거잖아요. 이렇게 높이 지을 줄은 몰랐죠. (이제는) 매매도 안 돼요, 매매도 안 돼. (창문 밖이) 딱 막히니까 누가 오겠어.]

결국 인근 주민들은 맞은편 아파트 공사를 멈춰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2일 인천지방법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계획대로 아파트를 지을 경우 일조권 침해가 '참을 수 있는 정도'를 넘겨, 위법한 가해 행위가 된다고 본 것입니다.

법원이 직접 건축환경컨설팅 업체를 지정해 일조권 침해 시뮬레이션을 구현해 본 결과였습니다.

취재진이 해당 업체의 시뮬레이션 영상을 확인해봤습니다.

[정대진/디디알플러스 대표 : 신축 전 11시 30분 상황입니다. 그리고 똑같이 신축 후 11시 30분 그림자 상황을 보여주는 화면입니다.]

해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짓날 기준, 이 아파트 신축 전후 일조시간은 하루 평균 348분에서 15분으로 줄어듭니다.

신축 아파트와 가장 가까운 일부 동들은, 햇볕 드는 시간이 하루 1분도 되지 않는 집이 17세대, 30분이 안 되는 집이 59세대였습니다.

법원은 이 결과에 따라 햇볕을 가장 많이 가로막는 일부 동은 9층까지 층수를 낮추라고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시행사인 인천도시공사가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는데도, 피해 주민들과 논의나 보상 협의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 '일조권 침해' 고려 없이…건축법 들이미는 공공기관

[앵커]

방금 보신 아파트의 시행사는 인천시 산하 인천도시개발공사입니다. 시민들의 주거 환경을 더 좋아지게 하겠다면서 이런 고층 아파트를 지어 올린 건데, 정작 원래 있던 주민들의 '일조권'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공공기관마저 외면하고 있는 일조권 규제 뭐가 문제인지 계속해서, 임지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48층 높이로 설계된 이 아파트는 인천도시개발공사가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쌓아올리기 시작한 곳입니다.

[이승태/변호사 (법무법인 도시와사람) : 이 넓은 지역에서 139m로 짓는다는 거죠. 울산바위 같은 게 앞에 있는 거예요. 주변에 있는 땅은 겨울에 눈이 와도 절대 녹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공사 측이 사전에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임영호/이웃 아파트 주민 : 서민을 위한 공공임대사업이다 얘기하는데 이분들은 혜택을 받고, 여기 사시는 분들은 사는 동안 계속 피해를 보고]

현행 건축법은 고층 아파트를 지을 때 이웃의 일조권 침해를 막기 위해 높이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상업 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준주거지역에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구청의 사업 승인 과정에서 이웃의 일조권은 고려 대상도 되지 않았습니다.

[송종섭/인도도시개발공사 공공주택사업처장 : 상업지역이라든지 주거지역이라든지 공업지역에 일률적으로 일조(규제)를 적용한다면 도시의 땅의 효율성이 떨어지죠.]

최근 준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을 중심으로 일조권 분쟁이 되풀이되고 있는 상황.

이들 지역의 경우 건물 사이의 거리가 50cm만 떨어져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승태/변호사 (법무법인 도시와사람) : 일단 짓는 거예요. 일단 침해를 주더라도 짓고 나중에 혹시 정말 운이 나쁘게 법원을 통해서 공사 금지 가처분이 인용이 되면 그때 협의를 하는 거죠.]

전문가들은 법적 규제와 별도로 사업 승인 과정에서 주민과 협의를 거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영상취재 : 박상현·유재근 / 영상디자인 : 조승우·조성혜 / 영상그래픽 : 김지혜 / 인턴기자 : 정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