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추진비 5만800원.. 정은경은 사람 만날 시간도 없었다

2020. 4. 25. 10:48■ 大韓民國/대한민국인

조선일보

[단독] 업무추진비 5만800원.. 정은경은 사람 만날 시간도 없었다

정석우 기자 입력 2020.04.25. 03:05 수정 2020.04.25. 10:06

[오늘의 세상] 상황실·관사 오가며 24시간 '코로나 사투'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자정 퇴근땐 소리없이 사라지고 집엔 2~3주에 한번 옷 챙기러 가
막연한 추측·요행 가장 싫어해.. 엄청 화날땐 "좀 더 알아보세요"
정부의 코로나 고통 분담 권고로 임금 1200만원 반납하게 돼
직원들은 연가보상비 7억 못받아 "영웅들 돈을.." 비난 쏟아져

코로나 방역 사령탑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지난 3월 업무추진비 사용액은 5만800원이 전부다. 토요일인 지난 3월 7일 민간 전문가들과 코로나 방역 방안을 논의하면서 스타벅스에서 커피값으로 쓴 돈이다. 지난 2월 23일 정부가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경계'에서 '심각'으로 올린 뒤 정 본부장이 쓴 유일한 업무추진비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심각 단계에 들어선 뒤 충북 오송의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를 벗어날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정 본부장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살고 있다고 했다. 긴급상황센터와 1㎞ 정도 떨어진 관사를 오가는 생활을 두 달 넘게 이어가고 있다. 질본의 한 간부급 직원은 "긴급상황센터에서 관사로 이동할 때 관용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게 정 본부장의 거의 유일한 운동이자 휴식인 것 같다"고 했다. 업무추진비는 기관장 등 간부급 공무원이 업무상 회의 같은 공무를 위해 지출하는 돈이다.

◇오전 8시 출근, 자정쯤 퇴근

질본 관계자는 "정 본부장은 오전 8시쯤 출근해 저녁 8시까지 긴급상황센터에서 직원들과 함께 근무하다 밤에는 개인 사무실로 옮겨서 일한다. 야간 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편하게 근무하고, 눈치보지 않고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틀째 한 자릿수의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지만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고민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2차 대유행이다. 정 본부장이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실로 들어서는 모습. /연합뉴스

정 본부장은 24시간 긴장 상태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본부장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질본 직원들은 요행을 바라거나 추측성 보고를 하는 것이 금기시돼 있다"고 한 직원은 말했다. 20년간 질본에서 근무했다는 직원은 "본부장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강하다. 만약 본부장 입에서 '좀 더 알아보세요'라는 말이 나오면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뜻"이라고 했다.

정 본부장은 자정쯤 관사로 걸어서 돌아가는데 언제 퇴근했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스텔스 퇴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 직원은 "관사에 돌아가서도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아 실제 퇴근은 언제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자택은 2~3주에 한 번 정도 옷을 챙기러 다녀오면서 의사인 남편, 두 아들과 안부를 나눈다고 한다.

◇거리 두기 완화한다지만, '2차 대유행' 대비 중

정 본부장은 신천지 첫 확진자(31번 확진자)가 발생하기 사흘 전인 지난 2월 15일 "장기적 유행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긴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정부는 확진자가 줄어들고 국민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어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를 발표했지만, 정 본부장의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흐른다. 최근 2주일간 코로나 장기화와 2차 대유행 가능성을 공식 경고한 것만 일곱 차례다. 지난 22일에는 "2차 대유행 가능성이 크다. 최악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 본부장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은 "과학적 근거와 합리성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라는 것이다. 질본 관계자는 "막연한 추측이나 적당주의는 그분 앞에서 안 통한다"고 했다.

◇공무원이니 급여 30% 반납하라는 정부

방역에 헌신하는 정 본부장이 이달부터 7월까지 4개월간 급여의 30%를 반납하게 됐다. 연봉(1억2784만원)의 10%인 1200만원쯤 된다. 정부가 '코로나 고통 분담'을 이유로 정부 부처 장관·차관이 이 기간 급여 30%를 반납하도록 권고했고 정 본부장도 동참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그것도 차관급 고위직이 정부의 방침과 권고를 거부하기 어렵다. 사실상 강제적인 조치라는 뜻이다. 907명의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은 올해 7억600만원(1인당 평균 77만8000원)의 연가보상비도 못 받게 됐다. 국민재난지원금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모든 정부 부처의 연가보상비를 삭감했기 때문이다. 연가보상비는 21일의 연가를 쓰지 못한 만큼 받는 돈이라, 연가를 가기 어려운 질본 직원들의 경우 타격이 큰 편이다.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4개월 이상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며 방역에 힘쓴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의 연가보상비를 삭감한다면 누가 위기 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느냐"는 글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