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훈기의 스페셜야구]대통령의 편지와 야구 개막

2020. 4. 18. 10:35■ 스포츠/야구

[민훈기의 스페셜야구]대통령의 편지와 야구 개막

민훈기 입력 2020.04.18. 08:31

2차 대전 당시 MLB, 그리고 KBO 리그의 개막 준비

‘야구를 계속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 대통령의 편지 중


1942년 시즌을 앞두고 미국의 MLB 야구 관계자들은 큰 우려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일본의 기습적인 진주만 폭격으로 전 미국이 분노하고 곧이어 2차 대전 참전으로 이어진 가운데 MLB의 운명도 정부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기억은 아팠습니다. 20여 년 전 1차 대전이 발발하고 미국이 참전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징집됐고, 미국 정부는 야구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를 ‘꼭 필요치 않은 활동’으로 규정하고 중지시켰습니다. 이노크 클로더 장군은 1918년 7월21일 소위 ‘일하거나 참전하거나’ 규정을 발표하고 운동선수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청년은 전쟁 관련 일을 하거나 참전해야 한다고 공표했습니다. 야구계에서는 시즌 종료라도 하게 해달라고 청원했지만 ‘전시의 책임’에 밀려 결국 9월2일 시즌은 중단됐습니다.


1942년 미국의 2차 대전 참전으로 MLB 개막이 불투명하자 루즈벨트 대통령이 야구계에 보낸 친서.


진주만 폭격 후 한 달여 1942년이 되자 구단주들은 새 시즌을 앞두고 모임을 갖고 계획을 논의했지만 결론 없이 설전만 이어졌습니다.

계속된 논의에서도 전시 상황에서 MLB 시즌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론을 내지 못하자 구단주들은 케네소 랜디스 커미셔너에게 직접 대통령의 의견을 구해달라고 전권을 일임했습니다. 우려는 있었습니다. 랜디스 커미셔너는 골수 공화당원이었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의 정책에 질색을 해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1942년 1월 14일 그는 친필로 대통령의 자문을 구하는 편지를 백악관에 보냈습니다. ‘평상시라면 우리 팀들이 스프링 캠프로 떠날 준비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힘든 이 시기에 과연 야구를 계속해야 하는지 대통령과 정부의 의중이 어떤지 감히 문의를 합니다. 전시 상황에서 야구를 중단해야 한다면 즉시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러나 시즌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우리는 즐겁게 시즌을 이어갈 것입니다. 명령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야구가 ‘미국의 국민적 오락’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 역사적인 사건이 이어집니다.

많은 스타급 선수들이 징집되고 있었고, 미국 역사상 가장 힘겨운 시절이었기에 사실 야구계에서는 시즌을 포기할 각오였습니다. 그러나 ‘Green Light Letter’ 즉 직역하면 ‘허가 편지’ 정도로 볼 수 있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야구 시즌을 독려하는 답신이 곧 도착한 것입니다.


편지의 첫 머리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잘 아시겠지만 야구 시즌 개막 여부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커미셔너와 구단주들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정부의 입장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야구를 계속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믿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전시에)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훨씬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전보다 일에서 벗어나 레크리에이션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더욱 절실할 것입니다. 바로 야구가 2시간여 동안 저렴한 가격으로 국민들에게 그 여가를 즐길 기회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간 경기를 하면 낮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간간히 야구장에서 여가를 보낼 기회를 줄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선수들의 징집 등으로 수준이 떨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나라를 위한 결정에 야구계가 모두 정의롭게 협조하리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300개 팀에서 5~6천 명의 선수들이 뛰게 된다면 적어도 우리 국민 2000만 명 이상에게 국민적 오락을 즐기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이 전시의 야구를 보는 나의 시각입니다.’라고 편지를 마무리했습니다.


물론 야구도 힘겨웠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징집돼 글러브와 배트 대신에 총과 철모를 배급받았습니다. 시즌 평균 타율은 2할6푼대 아래로 떨어졌고, 관중도 전년도에 비해 200만 명 이상 줄어든 740만 명 정도였습니다. 여행 자유화 일시 금지로 스프링 캠프부터 생소한 지역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해에 경기 전에 미국 국가를 연주하는 새로운 전통이 생겼고, 군인과 헌혈자에게 무료입장이 허락되는 등 야구가 미국의 스포츠, 전 국민의 오락이 되는 기반이 됐습니다.


가장 대중적이고 시즌 내내 거의 매일 열리는 그 연속성으로도 팬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가는 것이 프로야구입니다.

프로야구가 시작하고 이어진다는 것은, 특히 2차 대전과 같은 전시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힘들지만 우리의 일상은 계속 이어지고, 또 어려워도 그래도 원칙대로 잘 돌아가고 있다는 중요한 암시가 있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전시의 어려운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이 쉴 여지를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로 개막이 연기된 KBO리그의 올 개막전은 작년의 이 모습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개막을 향한 준비는 철저한 계획하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포츠조선


요즘 전 세계는 2차 대전 같은 전시는 아닐지라도, 어찌 보면 그 이상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전 세계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칭송받을 정도로 잘 대처하고 있지만, 길고 긴 코로나19와의 전쟁에 지치고 힘든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도 의료관계자들과 정부와 국민의 부단한 노력으로 최근 확진자 수가 꾸준히 20명대로 유지되고 있고, 무섭던 전염병의 기세가 한풀 꺾인 분위기입니다. 물론, 안심하기에는 턱없이 이르고 방심이 다시 대전염을 부를 수 있다는 경고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비가 철저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 와중에 스포츠, 특히 프로야구가 개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KBO는 17일 개막과 연습경기에 대비한 안전한 리그 운영을 위해 ‘코로나19 대응 통합 매뉴얼 부문별 내용 강화 업데이트한 2판’을 구단에 배포했습니다.


- 선수단 그라운드 및 더그아웃 제외 모든 구역에서 마스크 착용, 맨손 하이파이브 및 악수 자제, 경기 중 침 뱉는 행위 금지 등 예방 수칙 강력 권고

- 경기 중 심판위원 전원 비롯하여 선수단 동행 프런트, 볼/배트보이(걸), 비디오판독요원 등 마스크 및 위생 장갑 착용 의무화

- 전 선수단과 관계자 KBO 자체 애플리케이션 통해 일별 자가 점검표 작성

- 개막 후 유증상자 및 확진자 발생 시 신속하고 안전한 대응에 초점


등 연습경기부터 개막 후까지 적용할 주요 항목을 세분화하고 한층 강화한 총 44페이지에 달하는 통합 매뉴얼 2판을 발표했습니다. ‘KBO 코로나19 대응 통합 매뉴얼 2판’은 지난달 20일 처음 발표한 매뉴얼에 포함되지 않았던 시즌 개막시 안전한 리그 운영 방안 및 대응 지침을 비롯해 야구팬과 선수단, 리그 관계자의 건강을 더욱 철저히 지키기 위한 내용으로 업데이트 됐습니다.

예방의학 전문가인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이 참여해 구성된 ‘KBO 코로나 19 태스크포스(TF)’는 1차 매뉴얼 발표 후 지속적인 회의를 통해 시즌 개막 후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준비해 왔습니다. 연습 경기부터 개막 후까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하며 세세한 디테일까지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KBO는 시즌 개막 후 안전하고 정상적인 리그 운영을 위해 상황 변화에 맞춘 새로운 매뉴얼을 계속 보완해 나갈 방침입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나 코로나19의 추세나 여러 면에서 개막 분위기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프로야구에서 코로나19 확진에 대한 우려, 또 개막을 할 경우 사회 전반적인 경계심 약화에 대한 우려까지 감안하면서도 개막을 준비하는 이유는 단지 야구와 일정과 손익계산서 때문만은 아닙니다. 전 세계에 우리 대한민국은 야구를 시작할 정도로 잘 대처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지치고 힘들고 뒤틀렸던 우리의 일상이 이제 서서히 제자리를 찾고 있다는 상징으로서, 야구팬들의 갈증을 씻어줄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잘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상징으로서도 그 의미가 큽니다.


물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개막은 무관중으로 시작될 예정입니다.

5월1일이 될지, 5월5일이 될지, 혹은 그 이후가 될지 개막일은 아직은 미정입니다. 수그러들었다고 하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코로가19 안개 시국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이제 2020시즌을 향한 프로야구의 행진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습니다. 팀 간 연습경기는 21일에 시작됩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Wikipedia, Associated Press 기록 등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