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6. 08:36ㆍ■ 법률 사회/性범죄·Me Too
[폰터뷰] "n번방 구걸한 남성 수천명" 최초보도 그 뒷얘기
최윤아 입력 2020.03.26. 05:06 수정 2020.03.26. 08:26
한겨레 24시팀 오연서 기자 인터뷰
'갓갓'이 만들고 '박사'가 비즈니스 구축
① 신상 털기 ② 가학성 ③ 지배-추종 구조
"26만명 진위보다 중요한 건 단 한 사람도
가학적 성착취에 제동 걸지 않았다는 점"
'돈 벌려다 약점 잡힌 여자는 당해도 된다'는
비정상 개조하지 않으면 제2의 n번방 재발
텔레그램 n번방 성 착취 사건에 온 국민이 경악하고 있습니다. n번방 성 착취 가담자의 신원을 전부 공개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189만명(25일 오후 5시 기준)이 동의했는데요. 지난해 11월 한겨레의 보도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사건, 취재팀의 중심에는 24시팀 오연서 기자가 있었습니다. 이번 주 <폰터뷰>에서는 오연서 기자와 텔레그램 n번방 성 착취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고 차마 지면에 담지 못했던 취재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습니다.
Q. 텔레그램 n번방 성 착취, 어떤 사건이었나요?
A. 피해 여성 한 명을 두고 텔레그램 방에서 집단으로 자행된 인격 살인이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갓갓, 박사는 그 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을 찍게 했고, 그 방 안에 있던 수천명의 남성들은 이 범죄에 환호하고 더 수위 높은 영상을 달라고 구걸했습니다. 여성 한명의 인격을 훼손시킨, 마치 살인현장 같았던 사건이었습니다.
Q. 텔레그램 n번방 사건 핵심 가해자로 지목된 ‘갓갓’과 ‘박사’는 각각 어떤 인물이고, 어떤 수법을 사용했나요?
A. 갓갓은 텔레그램 n번방의 시초격 인물이고, 박사는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에서 비즈니스 시스템을 구축한 인물입니다. 성 착취물 유통 사이트인 소라넷이 폐지되고 에이브이 스누프이라는 개인 블로그가 생겼는데, 이곳에 ‘굉장한 게 있다’며 텔레그램 방 링크가 올라와 남성들을 유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모인 방이 고담방 입니다. 고담방에는 성 착취 영상물 자체가 아니라 이 영상물을 볼 수 있는 링크만 올라옵니다. 때문에 링공방(링크 공유방)이라고 불립니다. 이 링크를 타고 타고 가다 보면 성 착취 영상물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링크가 꼬리를 물면서 n번방 범죄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던 중 이 방식이 지난해 9월 사그라들면서 박사가 나타납니다. 박사는 텔레그램에 특정 방을 만들고 ‘영상을 올릴 테니 보고 싶으면 돈을 지불하라’며 모네로라는 가상화폐로 돈을 받습니다.
Q. 텔레그램에 이런 유형의 성범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에 어떻게 인지했나요?
A. 지난해 11월 초 인천에 사는 한 고등학생이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물을 유포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취재해 보도(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6496.html)했는데 이후 ‘텔레그램 n번방’에 대해 아느냐, 새로운 성 착취 세계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의 출발이 됐던 인천 고등학생은 검거돼 지난달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Q. 텔레그램 n번방 성 착취, 기존 성 착취 범죄와 어떤 점이 달랐나요?
A. 일단 신상털이와 성 착취가 함께 이뤄진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텔레그램에서 유포된 성 착취 영상에는 피해 여성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직장 이름 같은 설명이 따라붙습니다. 또 기존 성착취물 유통 사이트와 달리 매우 가학적인 영상이 기반이 됐습니다. 박사는 ‘작품성’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며 피해자에게 ‘나는 박사의 노예다’라고 몸에 새기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얘(피해자)는 내 노예고, 나에게 약점 잡혔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을 것이니 가지고 놀아도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텔레그램 방 안에서 이를 접한 남성들은 ‘얘(피해자)들은 돈 받고 이런 거를 하는구나’라고 인식해 잔혹한 범죄에 제동을 걸지 않았습니다. 박사가 지배자 역할을 하고 특정 회원을 ‘직원’으로 지명해 지시했다는 점도 다릅니다. 박사는 (텔레그램 방 내에서) 활동을 활발히 하고, 너무 튀지 않는 회원을 지명해 ‘직원’이라는 역할을 주고 ‘개인정보를 알아와라’‘성폭행하고 와라’ 등의 지시를 내렸습니다. 실제 박사 지시로 청소년을 성폭행한 남성이 경찰에 잡혀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회사도 아닌데 박사 아래에서 놀아나는 가해 남성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Q. 텔레그램 n번방에 들어온 자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요?
A. n번방 회원의 신상은 알려진 게 없지만, 경찰은 대부분 20대라고 전했고, 실제로 대학교 학생증을 보여주면서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 제보자는 5000원, 1만원 등 소액이 오가는 ‘지인능욕방’에는 특히 10대가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지인능욕방은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올리는 방입니다. 단순히 합성만 하는 건 아니고 그 밑에 소설에 가까운, 예컨대 ‘굉장히 헤프고, 나랑 술도 많이 마신 여자’ 라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지인능욕이라는 범주 안에 여교사, 여군 등 특정직업군 여성을 합성하는 방도 있는데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특정직업군의 여성 사진을 확보해 합성 후 유포합니다. 사진 합성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포토샵 기술이 필요하니까 문화상품권이나 기프티콘을 주고 합성을 부탁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Q. 텔레그램 성 착취 대응 공동대책위원회는 n번방 총 가입자가 중복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26만명에 달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서울 금천구 인구가 21만명임을 감안하면 한 자치구 인구를 넘어서는 규모인데요. 실제 n번방에서 활동한 사람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A. 이 안에는 모니터링을 위해 가입한 여성단체, 수사를 위해 가입한 경찰도 포함돼 있어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목격한 최대 규모는 한 방에 70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만명이 있었든 26만명이 있었든 그 방에서 어떤 제지도 없이 (이런 범죄가) 이뤄졌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실제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이 수백명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던 남성들이 (다시) 들어간다면 똑같이 문제의식 없이 침묵하고 동조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Q.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들은 왜 잔혹한 범죄를 직접 보고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A. 저도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저는 비정상적 성 관념 때문이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박사가 피해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노예’였습니다. ‘얘는 돈을 벌려고 왔다 노예가 됐다, 그러니까 이런 행동을 시켜도 된다’고 반복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범죄의 대상이 되어도) 되는 여성은 없습니다. ‘돈을 줬으니 이런 걸 시켜도 괜찮다’는 식의 비정상적 성 관념을 근본적으로 개조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더해 ‘경찰이 절대 수사 못 한다’는 맹신도 범죄의식을 무디게 만들었던 한 요인으로 보입니다.
Q. 여러 피해자를 인터뷰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피해자분들이 워낙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서 취재진을 만나는 걸 꺼렸습니다. 때문에 모든 인터뷰는 전화로만 진행됐습니다. 한 피해자분은 집 주소가 노출돼 친구 집으로 피신했는데 친구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해 통화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제한적이었습니다. 밖에서도 통화하기 어렵고, 집에서도 친구가 들어오면 끊어야 했으니까요. 이렇게 전화가 갑작스레 뚝뚝 끊기는 경험을 하면서 이 여성이 두려움이 제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피해자들은 ‘꼭 잡아서 처벌해 달라’는 얘기를 공통적으로 했습니다.
Q. 취재하면서 가해자 일당으로부터 협박도 당했다고요?
A. 지난해 11월 보도가 나간 이후 박사가 피해 여성 사진을 유출하면서 ‘한겨레 피해1’ ‘한겨레 피해2’라고 일종의 워터마크를 박았습니다. 피해자를 협박하는 동시에 ‘취재 계속하면 피해자 더 생긴다’고 취재진을 압박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취재진의 신상을 털어오면 공짜로 (박사방에) 입장시켜 주겠다며 신상털이를 유도하고 공격 모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Q. 경찰 수사는 적절하게 이뤄졌나요?
A. 피해자 인터뷰를 하면서 세 가지 사례를 봤습니다. 첫째, 범죄가 너무 잔혹하니 여성 수사관을 배정해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수사관이 없다며 배정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둘째 ‘텔레그램 범죄는 잡기 힘들다, 전화번호나 적고 가라’며 피해자의 신고 접수를 주저하게 만들어 결국 수사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게 한 경우, 셋째 피해자가 직접 와서 신고해야 한다거나 해외 서버가 있다며 신고 접수를 자체를 받아주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런 관행은 바뀌어야 할 것 같고요. 무엇보다 ‘텔레그램을 이용한 범죄 못 잡는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고 바로 잡고 싶습니다.
Q. 박사가 죗값에 합당한 처벌을 받으려면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까요?
A. 경찰이 박사와 공범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위반, 강제추행, 협박, 강요, 사기 등 7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형량이 가장 높은 혐의가 아청법 제11조 아동 음란물 제작인데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능합니다. 박사가 피해 여성을 직접 만나 촬영한 게 아니라 협박해서 스스로 찍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 행위를 ‘제작’으로 볼 수 있을지 의견이 분분한데 (제작물이) 맞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이 혐의가 재판에서 인정되면 무기징역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처벌법 자체가 약해서가 아니라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다’는 게 참작되어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입법도 중요하지만, 규정대로 처벌이 이뤄지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Q. 피해 여성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사실 저희 보도가 나가면 신고하는 피해자가 더 늘어날 거라고 기대했는데,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피해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거죠. 피해자는 가만히 있어도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내가 범죄 빌미를 제공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피해구제를 받는데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 떠나서 죄책감만은 갖지 마시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취재: 최윤아 기자 ah@hani.co.kr
연출: 김현정 피디 hope021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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