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고의적으로 만들었나" 의사SNS 달군 印논문 …전문가들 "가능성 희박"

2020. 3. 14. 09:25■ 건강 의학/COVID-19 Omicron외

"신종 코로나, 고의적으로 만들었나" 의사SNS 달군 印논문 …전문가들 "가능성 희박"

2020.02.03 15:32

바이오아카이브 화면 캡처
바이오아카이브 화면 캡처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일부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확산하고 있다. 중국의 한 연구소에서 생물무기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개발했으며 알 수 없는 이유로 유출되면서 규모 확산사태로 번졌다는 내용이다. 국제 보건 전문가들은 소문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했지만 최근 인도 연구팀이 연구논문 사전 공유 사이트에 이 바이러스가 인공적으로 제조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논문을 공개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논문은 국내 의사와 전문가들의 SNS 커뮤니티를 타고 확산되면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생물학과 의학 분야의 학술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따르면 인도 델리대와 인도 공대 연구진은 지난달 3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를 분석한 결과, 일부 유전자가 에이즈바이러스(HIV)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공개했다. 

 

흔히 바이러스는 인간 세포에 침입할 때 '닫혀 있는 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가듯이 세포 표면에 난 수용체에 바이러스 단백질을 결합시키면서 감염시킨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왕관(corona)의 모습을 닮아 '코로나'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왕관의 뿔'에 해당하는 스파이크단백질은 인간 세포 표면에 나 있는 수용체(ACE2)에 결합해, 바이러스가 세포를 침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까지 확인된 결과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특히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와 닮았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분석한 결과 두 바이러스간 유사성은 89.1%에 이른다. 두 바이러스는 인간 세포를 침입할 때 같은 수용체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는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셈이다.

 

인간 세포의 '문' 따는 '열쇠'의 일부가 HIV와 닮았다

 

인도 연구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3D 모델링한 그림. 빨간색과 주황색, 노란색, 연두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HIV와 유전적으로 겹치는 부분이다. 바이오아카이브 논문 캡처
인도 연구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3D 모델링한 그림. 빨간색과 주황색, 노란색, 연두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HIV와 유전적으로 겹치는 부분이다. 바이오아카이브 논문 캡처

연구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열쇠'의 일부가 HIV의 열쇠의 일부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분석한 결과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독보적인 부분들이 4곳이나 발견됐는데, 이것이 HIV가 가진 염기서열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논문 제목에서 연구팀은 '특이한(uncanny)' 유사성이라고 표현했다. 이 유사성은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를 비롯해,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에 등록된 바이러스 유전정보 데이터와 비교분석한 결과, 이들 염기서열이 HIV의 '열쇠'인 gp120 단백질과 Gag 단백질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짧은 시간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다른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획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은연 중에 인위적인 유전자 재조합을 떠올리게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과학자가 HIV 수용체 단백질의 일부를 인위적으로 잘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넣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생화학 무기 개발을 위해 인간 세포 침투력이 뛰어난 HIV와 코로나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섞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개발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단편적인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번 바이러스가 생물학 무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국제 보건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생물학 무기일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지만 급속한 확산에 따른 불안감으로 소문을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HIV와 겹치는 부분 너무 짧아... 영향 미미할 듯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구조를 실제와 비슷하게 구현한 3D 이미지. CDC 제공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구조를 실제와 비슷하게 구현한 3D 이미지. CDC 제공

하지만 해외 전문가들은 이 논문에 대해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공통적으로는 바이오아카이브 자체가 '사이언스'나 '네이처'처럼 저명한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통과된 논문만 실리는 정식 학술사이트가 아니고, 학계에서 인정받기 전의 논문도 실을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곳에 실렸다고 해서 연구결과가 모두 과학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리 알레인 포이어  미국 미시간대 의대 계산의학및생물정보학 박사과정연구원은 본인의 블로그를 통해 "인도 연구팀의 이 논문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므로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내용의 반박글을 실었다. 


포이어 연구원은 "인도 연구팀이 HIV와 일치한다고 주장하는 염기서열들은 모두 길이가 매우 짧다"며 "이 정도 길이의 염기서열은 다른 바이러스나 세균, 원생생물, 곰팡이 등과도 유사하게 겹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또 "오히려 겹치는 염기서열 부분만 따졌을 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스 코로나바이러스 등과 훨씬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칼 버그스트롬 미국 워싱턴대 생물학과 교수는 "버락 오바마의 연설문과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문에서 관사(the, a)나 접속사(and, that) 등이 겹치는 것만큼이나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포이어 연구원은 "HIV는 다른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는 특성이 있는 만큼 자연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에 HIV의 일부가 들어갈 수 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에 비해 전파력과 증상이 치명적이긴 하나, 다른 코로나바이러스들이 일으키는 증상인 기침, 가래, 폐렴 정도로 에이즈 증상과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포이어 연구원은 HIV의 수용체와 닮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HIV만큼 인간 세포에 침투하는 능력이 강화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코로나바이러스와 HIV가 결합하는 세포의 수용체도 다를 뿐만 아니라, 세포에 침입하는 과정이 전혀 다르다"고 주장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스파이크단백질이 인간 세포의 ACE2 수용체를 인식해 점막 상피를 통해 들어가지만, HIV는 gp120 등 단백질이 면역세포인 T세포의 CD4 수용체를 인식해 감염시킨다. 그는 "이 논문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T세포를 감염시킨다거나, CD4 수용체를 인식한다는 근거가 없다"고 꼬집었다. 
 
에릭 파이글딩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학과 박사후연구원도 이 연구결과에 대해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원래 숙주로 추정되는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와 상당 부분 유사하지만, 다른 부분이 있는 이유는 그간 여러 숙주를 거치면서 돌연변이를 일으켰기 때문"이라며 "그 중 하나가 이 연구결과에서 주장하는 대로 스파이크단백질의 구조가 바뀌도록 진화해 세포 침입 과정을 강화시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RNA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워낙 잦기 때문에 HIV와 일부 겹친다는 점만 들어 인위적으로 유전체를 교정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자연상에서도 이종 바이러스끼리 유전자 재조합 일어나

 

국내 전문가들 이와 관련해 이름을 언론에 노출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HIV가 일부 유전적으로 겹치는 일이 자연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만으로 두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재조합했다, 안 했다를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국내 한 바이러스 전문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HIV 간에 겹치는 염기서열이 너무 짧고 랜덤하다"며 "서열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며, 의미를 찾으려면 추가 검증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유전체 전문가는 "바이오아카이브는 정식 학술사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학계에서 과학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볼 수 없다"며 "전문적으로 인정받기 전에 너무 큰 이슈로 부각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자연상에 서로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염기서열을 공유하는 일은 너무나도 빈번하다"며 "이 연구 결과만 가지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HIV를 인위적으로 재조합했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또한 한 바이러스가 여러 수용체에 붙거나, 여러 바이러스가 하나의 수용체에 붙거나, 바이러스마다 각기 다른 수용체에 붙는 등 바이러스와 수용체의 관계는 다양하다"며 "HIV와 유전적으로 겹친 부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세포 침입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밝혀내려면 3차원 분자 수준과 임상 수준에서 정밀하게 확인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연구 결과 하나로 공포 분위기가 조장되는 이유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국민들의 걱정이 많지만 괴소문에 대해 적극적이고 명확하게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넘어가려는 국내 전문가들의 소통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3일 오후 2시 기준, 발생국인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27개국에서 지금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1만7387명이며 사망자는 362명에 이른다. 감염자 수가 하루에 1000~2000명에 이를 정도로 확산세가 빠르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모두 2003년에 유행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