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18. 08:24ㆍ■ 국제/미국
'트럼프 우쭈쭈' 그장면 그대로..美정계 승자된 '탄핵의 여왕'
전수진 입력 2020.01.18. 05:00 수정 2020.01.18. 08:21
■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지난 15일, 손꼽아왔던 순간을 맞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 결의안을 상원에 보내면서다. 이 순간을 위해 그는 강렬한 붉은 계열 원피스를 챙겨 입고 기자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는 역사를 썼습니다.”
평소보다 낮지만 강한 목소리였다. 그는 또 “미국의 대통령을 결정하는 건 미국의 유권자이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아니다”거나 “트럼프는 아주 오랜 기간 사실상 탄핵된 것과 무방한 상태다”라고 날선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의 주도 하에 지난달 18일 하원이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지 약 4주 만에 탄핵 절차가 상원으로 넘어갔다. 미국 역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 심판이다. 상원 표결은 다음 달 중순으로 예상된다. 펠로시의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과 달리 상원은 공화당이 53석으로 민주당(47석)에 비해 우위다. 탄핵이 가결되려면 3분의 2 이상의 재적 의원인 67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민주당은 상원 탄핵 심판 과정에서 결정적 증인의 출현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사실상 상원 통과는 어렵다는 게 워싱턴의 기류다.
올해 만 80세로 1987년에 정계에 입문한 백전노장 펠로시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오히려 잘 알기에 하원에서 결의안이 통과된 뒤 4주간 트럼프와 공화당의 애간장을 일부러 태웠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차례 “이 탄핵 거짓말을 언제 끝낼 거냐”는 트윗을 올리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펠로시 의장은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에 “우리가 판돈을 좀 올리긴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증인 채택 시간도 벌고, 의도적으로 약도 올리는 일석이조였던 셈이다.
탄핵이 부결되더라도 펠로시는 승자다. 자신의 리더십을 국내외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타임은 20일자로 발행된 최신호에서 펠로시의 리더십을 12개 면에 걸쳐 집중 조명하며 “펠로시는 수십 년 동안의 정계 활동을 해왔지만 최근 12개월 동안 가장 빛났다”고 평가했다.
━
‘미친 낸시’ 트럼프 비난에도 여유
펠로시는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직 후계 순위 1위를 부통령, 2위를 하원의장으로 적시했다. 펠로시가 트럼프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 이어 권력 3위에 해당하는 셈. 미국의 여성 정치인 중에서 최고위직으로 기록된 전설이다.
펠로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과 함께 여당 하원의장으로 4년간 의사봉을 잡았고, 이어 지난해 1월 다시 여소야대 하원에서 야당 하원의장에 올랐다. 트럼프와는 계속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시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이 대표적인데, 당시 펠로시 의장은 관례상 트럼프의 뒤에 앉아 연설을 들으면서 냉소적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연설 중간엔 역시 관례에 따라 박수를 쳐주면서 어린아이에게 ‘우쭈쭈’ 해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을 ‘미친 낸시(Crazy Nancy)’라고 부르며 탄핵 국면에서 비난 수위를 높여왔지만, 펠로시 본인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펠로시는 타임지에 “트럼프는 겁을 먹었기 때문에 협박을 하는 것뿐”이라며 “그에게 협박을 당하니 난 더 대담해지는 것 같아 좋다”고 여유를 부렸다.
그런 그에게도 탄핵은 뜨거운 감자였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우크라이나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 그는 탄핵에 부정적이었다. 지난해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한 그의 후원행사에서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탄핵해달라’며 구호까지 외쳤지만 정작 펠로시는 ‘탄핵’ 두 글자를 꺼내지 않았다고 타임지는 보도했다. 트럼프 탄핵에 찬성하는 뉴욕타임스(NYT)의 정치 전문 칼럼니스트인 게일 콜린스도 “트럼프 탄핵은 펠로시에게 기회일 수도, 덫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커지면서 펠로시는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그의 보좌진은 타임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펠로시 의장에게 탄핵 유레카의 순간과 같았다”고 전했다.
일단 결심을 한 뒤엔 신속히,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탄핵 관련해서 당에서 나가는 모든 종류의 서류 토씨 하나하나까지 직접 다듬었다고 한다. 그만큼 신중을 기했다는 의미다.
지난 15일 탄핵 결의를 상원에 보내는 과정에선 약간의 해프닝도 있었다. 펠로시가 서명을 한 펜을 동료 의원들에게 나눠준 것을 두고 공화당과 백악관 측이 “무슨 축제라도 벌이냐”고 비판한 것. 그러나 서명 후 펜을 나눠주는 건 미국의 오랜 전통이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자주 즐기는 전통이다. 당내에 탄핵과 관련해 자제력을 강조해오던 펠로시가 그간 참아왔던 감정을 후련히 내보이기 위해 서명식을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
남편은 누구?…평범한 사업가, 자녀만 5명
미국 정치의 ‘왕 언니’ 격인 펠로시는 정치력과 달변, 뚝심으로 무장했지만 화장도 짙게 하고, 패션도 적극 활용한다. 스카프를 애용하고 원색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의 다양한 의상 사진들 잠시 보고 가자.
패션은 그에게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탄핵 결의안을 통과시킬 당시 검은색 정장을 입고 하원의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망치(mace) 모양의 브로치를 단 것은 국내에서도 많이 회자됐다.
그는 설전(舌戰)에선 베테랑 싸움꾼이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이를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다. 지난해 2월 문 의장이 펠로시를 예방한 자리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맥락으로 이야기를 꺼내자, 펠로시는 한 마디로 잘랐다. 펠로시 의장은 “나는 북한을 안 믿는다”며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한국의 무장해제일뿐”이라고 일갈했다.
이런 펠로시 의장은 집에선 자녀 5명의 어머니이자 9명의 손주를 둔 존재다. 남편인 폴 펠로시는 사업가다. 정치와 무관한 사업을 하며 부인의 정계 활동을 돕는 조용한 지원을 해 왔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 국제 > 미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트럼프 다루는법 아는 사위 쿠슈너 (0) | 2020.03.18 |
---|---|
외신 "논란 된 해리스 콧수염..방위비 협상 속 일제 총독 연상"(종합) (0) | 2020.01.18 |
'트럼프 탄핵', 미 하원 가결.. 헌정 사상 3번째 (0) | 2019.12.19 |
미국판 킬링필드 '털사 학살', 100년만에 실체 드러나 (0) | 2019.12.18 |
美 뉴욕 한복판서 차량 납치된 16세 소녀..자작극 탄로 (0) | 2019.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