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망에 우린 국물, 맛있게 먹었어도 몸은 '시름'

2019. 12. 1. 09:35■ Kitchen 식재료 음식

양파망에 우린 국물, 맛있게 먹었어도 몸은 '시름'

이재은 기자 입력 2019.12.01. 07:00

식품용 아닌 기구 조리에 사용 빈번.. 중금속·화학물질 용출 가능성
한 누리꾼이 양파망에 재료를 넣어 삼계탕을 끓였다면서, 육수가 붉게 물들었다고 글을 썼다. /사진=네이버 지식인 캡처



#주부 신모씨(55)는 자신이나 지인이 직접 만든 음식 외에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을 믿지 않는다. TV에서 '맛집'이라고 조명한 식당들에서 조리도구를 잘못 사용하는 사례를 수차례 봐서다. 신씨는 "국산 재료로만 육수를 냈다는 맛집에서 '양파망'에 재료를 담아 육수를 우린 걸 보고 식욕이 떨어져버렸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28)는 SNS(사회연결망서비스)상에서 인기 많은 맛집 탐방을 즐긴다. 최근 꽂힌 건 '냉삼'(냉동삼겹살)이다. 꽁꽁 언 삼겹살과 잘 익은 김치를 바짝 달아오른 은박지(알루미늄 호일)에 올려 볶아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얼마전 이씨는 '냉삼'을 그만 먹어야하나 고민했다. SNS에 게시한 냉삼 사진을 보고 친구가 "호일에 김치 구워먹으면 치매(알츠하이머) 온다던데?"란 댓글을 달았기 때문이다.

음식점 등에서 환경호르몬이나 중금속이 용출되는 조리기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음식점은 조리상 편리하다는 이유로 이 같은 조리 방식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음식점 등에서 식품용이 아닌 기구를 조리에 사용하거나, 식품용 기구이긴 하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붉은색 재활용 고무대야에 김치·깍두기 등을 담그거나 △빨간색 일회용 양파망에 재료를 넣어 육수를 우리거나 △펄펄 끓는 육수를 플라스틱 바가지를 사용해 옮기거나 △뚝배기를 세제를 사용해 씻거나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사용해 조리하거나 △알루미늄 냄비(양은냄비)에 라면·김치찌개를 끓이거나 △알루미늄 호일을 깔고 삼겹살, 두루치기, 볶음밥, 찌개 등을 먹거나 알루미늄 용기에 즉석라면을 끓여먹는 등의 조리활동이 이에 해당한다.

/사진=식약처

재활용 고무대야, 양파망, 플라스틱 바가지 등은 식품용이 아닌 기구로, 이를 조리에 사용할 경우 식용이 아닌 색소나 환경호르몬, 중금속 섭취 등의 문제가 생긴다.

재활용 고무대야는 한번 사용한 비닐을 재활용한 것으로 중금속이 용출되기에 음식을 담기에 적합하지 않다. 양파망은 합성수지와 색소를 배합해 만든 것으로 고온에서 국물을 우려낼 경우 붉은색이나 초록색 등 망의 색소 성분이 솟아나오거나 내분비계 장애 추정물질(BHT)이 용출된다. 플라스틱 바가지는 화학재료로 만들어져 뜨거운 국물 등을 옮길 때 사용하면 환경호르몬이 발생할 수 있다.

재활용 고무 대야에 깍두기를 담그고 있는 사진.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블로그 캡처

식품용으로 인증받은 조리기구여도 잘못 사용할 경우 유해할 수 있다. 예컨대 뚝배기를 세제를 사용해 씻으면 균열된 틈 사이로 침투해 음식을 끓이는 도중 용출될 수 있다. 이 경우 체내에 세제 화학성분이 누적될 가능성이 있다.

알루미늄 냄비나 알루미늄 호일,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 등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들은 조리를 통해 기구내에 있던 알루미늄이 음식으로 녹아나올 수 있다.

용출돼 섭취된 알루미늄은 그 양이 극히 소량이고 하루 반 정도 체내에 머물러 있다가 대부분 배출되기에 직접적으로 몸에 해를 끼치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섭취하거나 몸이 알루미늄에 취약한 경우 구토, 설사, 메스꺼움, 치매 등 신경계통 질환문제를 낳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신장 장애 환자, 노인, 저체중 영아 등은 알루미늄에 특히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진=식약처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알루미늄 기구에 △라면, 김치 등 염분이나 산도가 높은 음식을 조리하지 않고 △토마토, 양배추 등 산도가 강한 식품 조리를 최소화하고 △철수세미 등의 사용을 피해 산화피막이 벗겨지는 것을 최소화해야 하며 △색이 변하고 흠집 많은 용기 버리고 △처음 구매 시 물을 넣어서 한번 끓여 산화피막을 견고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안전하게 사용해야한다.

그럼에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다. 심지어 맛집 프로그램에서도 이 같은 조리 과정이 방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유명 해장국집은 조리용이 아닌 플라스틱 기구로 펄펄 끓는 해장국을 옮겨담아 원성을 샀고, 유명 탕 맛집에서도 양파망에 육수를 넣어 우리는 모습이 방영돼 비판받았다. 심지어 2015년 한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출연자가 양파망을 이용해 육수를 만드는 장면이 방영됐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식품 조리나 보관 등은 '식품용'으로 인증된 도구를 사용해야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중금속, 환경호르몬, 화학물질 등이 용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알루미늄 조리도구는 '식품용'으로 인정된 것이므로, 일반적으로 사용할 경우 문제가 없다"면서 "이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지만 혹시 많이 섭취할 경우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소소익선'으로 노출을 줄이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당국은 조리용 도구 관련 의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도 "지난해부터 모든 식품용 기구용기에 식품용이라는 표시를 하고 있으니 해당 표시를 확인한 후 사용해야 한다"면서 "양파망·재활용 고무대야·플라스틱 바가지 등 '식품용'이 아닌 기구를 조리에 사용하는 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식품용이 아닌 기구를 조리에 사용하다가 적발될 경우 식약처는 1차 시정명령을 내리고 2차 5일 영업정지, 3차 10일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다.

식약처는 또 알루미늄 냄비 등 기타 식품용 기구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식품안전나라를 통해 '식품용조리기구 올바른 사용법' '주방용품 똑똑하게 사용하기' 리플렛으로 홍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외식 관계자들은 자구적 노력을 다짐했다. 이철 한국외식업중앙회 기획홍보국장은 "국민들이 안심하고 외식할 수 있도록 회원 점주(전체 음식점의 약 85% 가입)와 함께 노력하고 있다"면서 "1100명에 달하는 자율직원들이 최소 한달에 한번씩 회원점에 방문, 식품안전 위생관리 취급기준에 따라 조리기구 등을 지도점검한다.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