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빨리 넣어라, 아님 짤려"..토지 6,000억치 판 기획부동산

2019. 11. 28. 19:55■ 大韓民國/부동산 재개발 신도시

[단독] "돈 빨리 넣어라, 아님 짤려"..토지 6,000억치 판 기획부동산

조권형 기자 입력 2019.11.28. 17:27 수정 2019.11.28. 18:08

['공룡 기획부동산' 영업실태 보니]
"경매 배우며 7만원+α 받는다" 온라인 카페·SNS 통해 모집
5년간 거쳐간 직원만 3,400여명..언론 보도되자 법인명 바꿔
판매액 10% 직원에..실장·회장까지 '다단계 방식' 수당 지급
지점서 회장에 매달 송금·하자보증금 적립..수상한 현금흐름도
[서울경제] “그 어떤 것도 100%라는 것은? (없어요.) 없다고 얘기했어요. 내 땅을 샀으면 이게 100% 다 개발되고 내 땅에 다 뭔가가 들어서고 이건 아니야. 그렇다고 100% 아니라고 해서 무조건 땅을 한 번도 안 사보면 뭔가가 개발될 때 아무것도 없는데.”

국내 최대 기획부동산으로 알려진 케이비 계열 기획부동산의 부천 지점에서는 이 같은 감언이설로 토지를 팔라는 판촉 교육을 매일 진행한다. 판매직원들은 ‘토지를 장기간 보유하면 언젠가 개발 수혜를 받는다’는 취지의 청사진을 전달받아 매수자들에게 제시한다.

하지만 이들이 지난 3년간 판매한 토지는 임야가 99%이며 용도지역은 개발제한·농림지역·자연녹지·보전녹지가 93%였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은 “대부분 맹지에 경사도가 높은 사면으로 사실상 개발이 불가능한 곳들”이라며 “또 수십~수천명에게 지분을 매각함으로써 토지의 개발 가능성은 더욱 떨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매수자들은 대부분 본인이 쓸모없는 땅을 떠안은 피해자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희망회로’를 돌린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기획부동산은 일단 파는 데 집중한다. 매수자의 계약서 작성과 잔금 납입을 신속히 진행시키기 위해 수당을 다단계 방식으로 지급하며 영업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28일 서울경제의 취재 결과 케이비 기획부동산은 홍대·군자·구로·대구·창원·천안·세종·홍대·화곡 등 20여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말 KBS ‘추적60분’에서 기획부동산 문제를 다루자 지점들은 법인명에서 케이비를 떼어내고 각기 다른 이름으로 바꿨다.

이 회사는 서울경제가 지난 4월 ‘2018년 6월1일~2019년 4월12일 동안 공유인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상위 50개 필지’를 분석했을 때 21개에 관여한 곳이다. 당시 최다 관여 회사는 우리 계열 기획부동산(25곳)이었는데 이곳은 케이비 황모 회장의 친동생이 회장이다. 두 회사의 창업주는 어머니 김모씨로 회사에서는 명예회장으로 불린다. ★본지 4월27일자 1·4·5면 참조 케이비 황 회장 아래에는 노모 대표와 이모 사장이 있다. 각 지점에는 전무-상무-본부장으로 이어지는 임원들이 있고 그 아래 7~12명의 실장이 있다. 실장은 판매직원인 차장 10~20명을 지휘한다.

실장들은 직원 모집을 위해 구직사이트·맘카페·페이스북 등에 ‘경매 일을 배우면서 일당 7만원에 추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는 글을 올린다. 구직자는 경력 단절 주부, 취업준비생, 은퇴한 노년층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 지점의 직원명단을 보면 지난 5년여간 거쳐 간 사람이 3,400여명에 달한다.

기획부동산 케이비 계열의 부천 소재 지점에서 올린 판매직원 모집 광고. 이 회사는 당일 수당 7만원을 지급하며 토지 판매 시 매매가의 10%에 해당하는 판매수당(인센티브)을 지급한다./출처=벼룩시장
직원들은 매수자를 찾기 위해 지인 알선, 블로그 광고, 전화 등을 이용한다. 통상 경매 물건으로 소개하며 입찰금을 넣으라고 한다. 이후 계약 전에는 조급증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을 쓴다. “곧 다 팔리고 없다. 당장 돈을 넣어야 한다”는 식이다. 전 직원 A씨는 “통상 계약 전에는 땅 번지수를 알려주지 않는다”며 “회사는 심지어 직원에게도 ‘어차피 산인데 알아서 뭐하느냐’며 알려주지 않기도 한다”고 했다.

잔금을 앞둔 계약자에게는 “당장 일시불로 넣어야 한다. 아니면 물건이 짤린다”며 밀어붙인다고 한다. 이렇게 얼떨결에 매수한 사람 중에는 회사를 고소하는 경우가 있다. 전 직원 B씨는 “회사로 들어온 고소장 내용을 보면 ‘강압적으로 샀다’는 주장이 대다수”라고 했다.

토지 잔금을 받으면 판매수당이 배분된다. 직원이 판매액의 10%를 갖고 회장은 4%, 나머지 대표-사장-전무-본부장-실장 등은 1.5~2%씩 가져간다. 이때 경영진은 수당 일부를 차명계좌로 수령해 왔다. 또 ‘별도시상’으로 직원-실장-본부장 등은 토지 3.3㎡당 1만원가량을 받아간다.

내부자료에는 수상한 현금흐름도 나온다. 김 명예회장에게 전국 20여개 지점 직원들이 무통장 송금으로 매달 150만원씩 보내는 것이다. 또 계좌자료를 보면 토지 판매액의 20%를 하자보증금으로 적립하는데 이 역시 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이 회사는 통상 토지 지분을 매입가의 5배 가격으로 되팔지만 직원의 대부분은 가격이 부풀려졌는지조차 모른다고 한다. 또 사측은 직원에게 토지를 ‘권리분석’해 가져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과정이 없다고도 한다. 심지어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도 토지 매수를 권유하며 판매실적이 부진할 시 실장·임원에게 매수를 ‘강제’한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 직원 C씨는 “일하면서 토지 지분을 여러 개 샀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토지를 찾아가보니 사실상 사기인 걸 알겠더라”며 “토지를 사간 지인들이 항의하며 날 고소하겠다고 해, 함께 회사 고소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업체가 개발이 요원한 땅을 불법적으로 팔아 부당 이익을 챙기는 사이에 매수자는 경제적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며“검찰·국세청·국토부 등이 공조해 탈세와 불완전판매 등 불법행위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