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7. 06:43ㆍ■ 종교 철학/천주교
[특파원리포트] 교황과 소년의 포옹, 日 아베 총리는 뜨끔했을까?
황현택 입력 2019.11.26. 20:51 수정 2019.11.26. 20:55
"방사능에 오염된 땅이 원래대로 회복되려면 긴 세월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은 오염도, 피폭도, 앞으로 가능성이 있는 피해까지도, 숨김없이 전해줄 책임이 있습니다." (가모시타)
"안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후쿠시마 사고는 비로소 해결됩니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 대한 큰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지난 25일 일본 도쿄에서 특별한 만남이 성사됐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가모시타 마쓰키(鴨下全生·16) 군과 12억 가톨릭 신자의 구심점인 프란치스코 교황. 두 사람의 재회는 8개월 만이었습니다. 소년은 "교황님이 저를 기억해주셨다는 것에 감동했다"고 말했고, 교황은 소년을 따뜻하게 품었습니다.
이지메 당했던 '세균' 소년
가모시타 군은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 피폭 등 이른바 '3재(災)' 피해자입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있던 2011년 3월, 7살이었습니다. 수소 폭발을 일으킨 후쿠시마((福島) 원전에서 남쪽으로 40km 떨어진 이와키시에 살았었죠. 사고 직후 가모시타 군은 도쿄로 이사했습니다. 하지만 전학한 초등학교에서 그는 '세균'이라 불렸습니다. 이지메(イジメ·집단 괴롭힘)도 심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한 소년은 자신이 '원전 사고 피난자'임을 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년이 교황을 처음 알현한 건 지난 3월 20일,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였습니다. 4개월 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더 이상 거짓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썼고, 이후 뜻밖에도 "'신도와의 면담'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는 교황청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가모시타 군은 교황을 만나 "제 고향(후쿠시마)을 찾아 원전 사고 피해자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습니다. 교황은 소년의 손을 잡고 "가겠다" 답했습니다.
'소각장 소년'과 나란히 선 교황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23일~26일)에 왔습니다. 교황 방일은 1981년 바오로 2세에 이어 38년 만이었지만, 일본 내 분위기는 차분했습니다. 일본의 가톨릭 신자는 1억 2천 700만 명 중 0.35%(약 44만 명)에 불과합니다. 자세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교황은 소년과의 약속대로 후쿠시마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교황이 방일 기간 중 전한 메시지는 그 이상으로 또렷했습니다. 먼저 24일, 2차 세계대전 중 나가사키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지점(폭심지)에 세워진 공원에서의 연설 일부입니다.
"이 장소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심한 고통과 슬픔을 가져오는 지를 깊이 인식시킬 것입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의 실현을 위해 일치단결하여 임할 것을 호소합니다."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비난하던 교황 옆에는 이번에도 한 소년이 함께 했습니다. 미국 종군기자 조지프 오도널이 찍은 '소각장의 소년'이란 흑백 사진입니다. 원자폭탄 투하 직후 죽은 동생을 등에 업은 한 소년이 소각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전쟁이 가져온 것"이란 메시지를 더해 이 사진을 교회에 배포하도록 했다고 전해집니다.
같은 날 저녁, 교황은 또 다른 피폭지인 히로시마(廣島)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원폭 위령비 앞 방명록에 '평화의 순례자'라고 적었습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 연설에선 "전쟁을 위해 원자력을 사용하는 것은 범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핵무기 사용은 윤리에 어긋난다"고 강변했습니다. 인류 사상 최악의 병기로 불리는 핵무기가 실전으로 처음 투하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교황의 반전, 반핵 메시지는 그만큼 상징성이 컸습니다.
일본 지도자들에게 전한 교황의 메시지도 한결 같았습니다. 25일 나루히토(德仁) 일왕을 만난 자리에선 "제가 9살 때 나가사키, 히로시마 원폭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던 부모님 모습이 강하게 마음에 새겨졌다. 두 곳을 찾아 제 마음을 담아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습니다. 교황의 이런 행보에 대해 일본 나고야시립대학 마츠모토 사호(松本佐保) 교수는 일본 공영방송 NHK에 이렇게 인터뷰했습니다.
"교황이 피폭지를 찾은 건 원폭 피해자가 고령화하는 가운데 '이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판단 때문일 겁니다. '군비 확장은 테러 행위'라는 강한 표현을 쓴 것도 원폭 투하 74년이 지나면서 세계가 다시 군비 확장 경쟁에 나선 데 대한 제동을 걸고 싶은 뜻이었겠죠."
'원전 우려'에 '핵 없는 세상' 딴소리
교황은 바티칸 귀국길에 오르기 전 날인 25일 저녁,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났습니다. 교황은 아베 총리에게 "핵으로 인한 재앙이 인류 역사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교황이 언급한 '재앙'이란 단어에는 '핵무기'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우려도 포함된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풀이했습니다.
일본은 현재 핵무기 관련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한 '유엔 핵무기금지조약'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1994년 이후 매년 유엔 총회에 '핵무기 철폐 결의안'을 제출하면서도 미국의 눈치를 보는 이중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친(親) 원전 정책'을 추진하며 방사능 폐해와 안전성 문제 등을 축소한다는 환경론자들의 비판도 사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면서 최근엔 오염수 해양 방류까지 꾀하고 있습니다. 교황의 메시지에 아베 총리는 "핵 없는 세상을 실현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딴소리를 했습니다.
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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