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드디어 미쳤다" 한국영화 좀먹는 행태에 분노

2019. 11. 25. 22:55■ 문화 예술/영화 이야기

"극장이 드디어 미쳤다" 한국영화 좀먹는 행태에 분노

성하훈 입력 2019.11.25.

다양성 말살하는 스크린독과점.. 규제 요구 이어지지만, 정치권 역할 못 해

[오마이뉴스 성하훈 기자]

 
▲  스크린독과점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겨울왕국2>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극장들이 드디어 미쳤다. 불가능해야 할 수치가 나오고 말았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는 구제불능, 치료 불가, 회복 불가능이다."
 
<겨울왕국2>가 개봉 첫 주말 1만 6220회의 상영횟수를 기록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1만 3397회를 가법게 뛰어 넘는 역대 최고 수치다. 매출액 점유율 역시 88%를 차지했다.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랜 시간 영화 배급업에 종사했고, 최근 <영화 흥행과 배급>이라는 책을 내며 흥행분석 이론을 제시한 이하영 전 시네마서비스 이사는 편식을 강요하는 극장들 태도를 위와 같은 글로 강하게 비판했다.
 
이하영 이사는 "극장들이 관객에게 경의를 표하며 다양성을 찾는 척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다양성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졌다"며 "극장은 편식을 강요하고 있는데 관객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앞으로도 별문제 없이 편식은 계속될 것이고 관객들은 자신이 돼지로 길들여지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라며 "나중에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은 후고, 국내 영화산업이 다 망한 상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양성은 필요없는 극장
심각한 스크린독과점이 진행되고 있지만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국내 상영관들은 별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분위기다. 3개 극장 체인이 전체 상영관의 97%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매년 되풀이되는 비판이 만성이 된 것처럼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극장의 수익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보더라도 국내 극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올해는 이런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현재 극장을 찾은 전체 관객 수가 빠른 속도로 2억 명을 넘어서며 1년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극장의 경영상태가 그만큼 좋아졌다는 의미다.
 
 
▲  전체 스크린의 97%를 차지하고 있는 3대 극장 체인
ⓒ CJ,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대기업이 투자-제작-배급-상영까지 장악한 한국 영화시장에서 스크린독과점의 혜택을 가장 먼저 보는 곳은 극장이다. 스크린 물량을 기반으로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저예산 영화들을 밀어내고 돈이 되는 영화만 쫓는 추세에서 결국 다양성은 극장 입장에선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영화계 안팎에서 이를 비판하면 생색내기처럼 스크린을 주는 수준이고, 그 스크린마저 아쉬운 저예산 영화들은 점점 목소리 내기를 조심스러워 한다.

<겨울왕국2> 개봉 후 첫 주말인 23일과 24일 박스오피스에 오른 영화는 130편 정도. <겨울왕국2>가 전체 2만 2000회 정도의 상영횟수 중 4분의 3을 수준인 74%를 차지했다. 11월 13일 개봉한 <블랙머니>가 10.5%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128편의 영화들이 나머지 15%의 상영횟수를 나눠 가진 셈이다. 그러다보니 주말임에도 하루 1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4편 뿐이었다.
 
2014년 1월 개봉했던 <겨울왕국>이 최대 상영점유율 28.1%, 스크린 1010개, 최고 좌석점유율은 32%를 차지해 개봉 46일 만에 천만 관객을 넘긴 것과 비교된다. <겨울왕국2>의 좌석 점유율은 79%로 전편에 비해 2.5배 정도 증가했다.
 
<겨울왕국2>에 직격탄을 맞은 <블랙머니> 제작사 관계자는 "마치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과 국내 대기업 자본이 결탁해, 론스타 투기자본을 비판하고 반독과점 운동을 펼쳐왔던 정지영 감독에게 보복하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씁쓸해했다. <블랙머니>는 개봉 직후부터 상영점유율 30%를 넘지 않기 위해 애써왔다. 30%는 반독과점 진영이 주창하는 한 영화의 최대 점유율 제한 수치다.
 
일부에서는 수요에 따른 공급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문화적 다양성에 해당하는 사안을 경제 논리로 해석하는 만큼 한심한 것도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화를 경제적 잣대로만 생각할 경우 흥행성 약한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치 상업성은 부족하지만 또다른 미학을 추구하는 저예산 독립예술영화들은 극장에서 사라져도 괜찮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극장 이익 극대화 위해 투자배급사 손해 감수
 
스크린독과점 현상은 구조적인 문제다. 대기업이 영화산업을 수직계열화한 상태에서 수익을 최대화를 위한 도구로 극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10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영화 100년 세미나 :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진단과 대안' 토론회에서는 수직계열화의 밀어주기에 대한 구체적 지적이 나와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국영화시나리오작가조합 김병인 대표는 "상영 산업 절대강자 CGV와 계열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한국영화 투자배급사로서, CGV와 CJ엔터테인먼트 사이에 강력한 '정(Positive)의 외부효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정(Positive)의 외부효과'란 예를 들면 과수원 옆에 양봉업자가 들어선 경우. 과수원은 벌들로 인해 동일한 비용으로 더 많은 수확을 거둔다. 즉, 단위당 생산 단가가 낮아짐으로써 사과 가격을 낮춰 양봉업자와 나란히 하지 않은 과수원들을 도태시킨다는 논리다.
 
▲  2018년 한국영화 배급사 순위
ⓒ 영진위
 
영화진흥위원회가 추산해서 발표한 2011년부터 2017년까지의 CJ엔터테인먼트의 영업이익률과 한국상업영화의 평균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2011년을 제외하고 CJ엔터테인먼트는 언제나 산업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실적을 보여왔다. 이 기간 동안 CJ엔터테인먼트의 누적 영업손실은 ?113억 원이었다.
 
김병인 대표는 "CJ엔터테인먼트는 지속적으로 산업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실적을 기록하면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배급사 점유율 1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 현상 자체가 시장실패를 대변하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가장 탁월한 투자배급사가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막강한 계열사 극장 체인의 후광, 즉 '외부효과'를 등에 업고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구체적 시장 외부효과로 극장 부금 문제를 예로 들었다. CJ엔터테인먼트가 정상적인 시장 주체였다면, 누적되는 영업적자를 줄이기 위해 극장상영 업자에 대해 부금(극장에 대한 한국영화의 가격)의 인상을 요구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CJ 엔터테인먼트가 부금 인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거나 관철시키려 했다는 기록이 전무하다"고 밝혔다.
 
이는 "이윤을 추구하는 정상적인 회사의 행태로 볼 수 없는 것으로 더 나아가 오히려 계열사인 CGV의 수익극대화를 위해 별도의 법인인 CJ엔터테인먼트가 비상식적인 희생을 감내해왔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1위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의 일방적이고 비상식적 희생이 산업의 기준으로 자리잡으면서, CGV는 지속적으로 영업흑자를 기록하면서 CJ엔터테인먼트의 영업적자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  2013년~2018년 CGV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 반독과점 영대위
 
CJ엔터테인먼트가 '자해적 거래'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산업의 구조에서 기인. CGV 와 롯데시네마의 상영시장점유율은 전체의 80% 수준이다. 그러나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배급시장점유율은 30% 내외다.
 
즉, 부금이 배급사에 유리하게 형성되는 것보다 극장에 유리하게 형성되는 것이 전체 그룹 입장에서는 이익이고, 이러한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 한 배급사들이 정상적인 시장의 주체로서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직계열화가 영화산업에 미치는 폐해 중 대표적인 사례다. 영화계가 상영과 배급을 분리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영화산업 폐해에도 제 역할 못하는 국회
 
문제는 이같은 사안을 법적으로 규제하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치권은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안은 제출됐어도 국회의 문턱을 못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의원들의 의지 부족과 대기업의 로비도 한몫을 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스크린독과점 규제 법안, 일명 우상호 법안은 프라임 시간(오후1시~ 오후11시)대 한 영화가 전체 상영의 50%를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영화계가 요구하는 한 영화의 상영을 30%로 제한하자는 요구와도 차이가 크다, 그래서 상당히 느슨한 규제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상영점유율 74%를 차지하고 있는 <겨울왕국2>의 경우 이 법안이 적용될 경우 다른 영화들에 상영횟수가 나눠질 수 있으나, 스크린독과점이 조금 완화되는 수준에 불과하다.
 
▲  지난 11월 22일(금)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반독과점 영대위 기자회견, 이들은 “스크린 독과점은 특정 영화의 제작?배급사와 극장이 아니라 그것이 무제한으로 가능한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국회와 정부를 향해 “영화법을 개정하고 바람직한 정책을 수립?시행하라”고 재천명했다.
ⓒ 반독과점 영대위
 
하지만 이마저도 통과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 법안들은 국회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며 "영화관 측이 스크린 상한제를 반대하고 있고, 일부 국회의원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법안 논의를 중단시켜놓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회에서 제 역할을 못하면서 대기업 수직계열화의 폐해는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겨울왕국> <알라딘> <보헤미안 랩소디> 같이 오랜 시간 극장에 걸면서 흥행을 이어가는 사례를 극장이나 배급사에 기대하는 게 허망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스크린독과점이 그만큼 한국영화산업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김혜준 영진위 공정환경조성센터장은 "헌법 119조 2항에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며 "헌법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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