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인 팬'은 젊은 층 사이에서도 관심의 대상이다. 공개방송을 따라다니고, 굿즈를 만들고 스밍(음원 스트리밍)을 돌리는 일은 지금껏 10대의 팬 문화였지만 이들은 단숨에 50·60대의 여유(시간과 돈)를 앞세워 그 자리를 파고들었다.
송가인 팬이라서 자랑스러운 이들을 직접 만나 송가인 사랑에 대해 듣고 이들의 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나눠봤다.
모임에 참여한 팬은 송가인 공식 팬클럽 '어게인'의 서울 지역장과 서울·인천·경기(서인경) 대표, 그리고 온라인에서 스밍을 돌리고 굿즈를 모으는 열혈 팬 두 명으로 여성 한 명, 남성 세 명이다.
이들은 모두 5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고등학생 정도의 자녀를 뒀고 아직 일을 열심히 하는 '현역'이다.
'스밍' 돌리기는 도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송가인 팬 카페 어게인 공지사항에는 스밍을 돌리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들이 '스밍'을 돌리는 이유는 최근 나온 송가인 1집 음반을 스트리밍 음원 서비스 차트 1위로 만들기 위해서다.
스밍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대부분이라 송가인 팬 카페는 아예 스밍을 돌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오프라인 부스'까지 만들어서 운영한다.
물론 자식에게 스밍, 총공(총 공격/ 아이돌 팬덤에서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운영진의 진두지휘하에 단체 행동을 선보이는 것)을 배웠다는 이들도 많지만, 팬클럽 스텝들은 송가인 공연 때마다 부스를 만들어 직접 스밍을 돌리는 방법을 가르친다. 자식들에게 쑥스럽게 부탁하지 않고도 스밍을 돌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서인경 대표는 "스밍을 돌리려고 별도로 공기계를 산 사람도 있다"며 "핸드폰을 여러 개 사서 돌리는 분들도 있다"고 자랑했다. 옆에서 회원 A 씨도 "놀면 뭐 합니까? 시간 나는 대로 하는 거죠"라고 거들었다.
10대 아이돌 팬 문화를 이해하게 된 50·60
이들의 열정 넘치는 송가인 사랑에 대해 자식들은 대체로 인정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자식들이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본인들도 송가인을 좋아하면서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가족 친지를 넘어서 송가인이라는 주제로 접점이 없던 사람들과 온종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경험이 이들에게는 신기하고 또 놀라울 따름이라는 반응이다.
50대, 60대는 살아온 환경도, 사회적 위치도 모두 달라 쉽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친구를 만들기 어렵지만, 이들은 송가인으로 떠들라면 하루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역시 모두 오프라인 모임을 위해 처음 만난 사이지만 스스럼없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굿즈를 나눴다.
서인경 대표는 "솔직히 50대 이상은 좀 외롭다"면서 "일 말고는 할 게 없었는데 송가인 가수를 보며 오프라인 행사를 따라다니고 굿즈를 만들고 응원을 하고 단체로 팬클럽 옷을 입고하면서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이런 감정과 경험은 처음"이라며 이전에는 가수를 좋아하면서 이렇게 빠져들어 본 적이 없고, 모두 송가인 덕분이라며 "송가인은 우리에게 교주(?)"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베이비 부머'의 여유가 느껴지는 팬덤
이들에게 '시간과 돈'의 여유는 잠시만 대화해도 느껴진다. 물론 팬클럽에서도 다양한 계층이 있겠지만 공통으로 은퇴를 앞둔 세대에 딱히 취미에 큰돈을 투자해본 적이 없다는 건 같다. 스스로도 "50대가 넘어가다 보니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평가했다.
아이돌 팬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광고하는 지하철역 광고판 20여 곳을 '송가인'을 도배한 것도 단 한 사람의 팬이 추진했다. 팬클럽에서는 곧 시내 주요 옥외 광고판에 광고를 건다.
여느 아이돌 팬덤이 어디나 그렇듯 이른바 '존잘러'(능력자)가 있기 마련이다. 소속사와 분쟁 중인 오빠를 도와줄 줄 '변호사'라던가, 사진을 기가 막히게 찍는 '대포'라던가, 그림을 잘 그리는 '금손'이라던가, 남다른 추진력으로 행사를 이끄는 팬이라던가...
송가인 팬덤도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존잘러'의 존재를 엿볼 수 있다.
행사장에 무언가를 설치할 때 불법인지 아닌지 바로 판단해줄 공무원을 전화로 접촉할 수 있는 팬이나 큰돈을 쾌척할 수 있는 중소기업 사장님, 그리고 심지어 국회의원까지 송가인의 팬이라고 한다. 팬덤의 자랑은 '주류 세대'만이 갖는 네트워크와 정보력이다.
탑차에 굿즈 싣고 다니며 나눠주는 송가인 팬덤
대화가 진행되면서 이들은 팬클럽 굿즈 자랑을 시작했다. 눈으로 봐도 100여 개가 넘었다. 열혈 팬 B 씨는 아예 분홍색 팬클럽 단체 티를 입고 왔다.
"남자라 분홍색 티가 꺼려졌지만, 우리 가인 님이 분홍색을 좋아하니까…. 팬클럽 단체 티도 분홍색이 됐다"고 말했다.
서인경 대표는 "우리는 돈 받고 파는 굿즈는 안 만든다"면서 "좋아서 하는 거니까 행사장에서 나눠준다"고 말했다.
서인경 대표는 '미스트롯'으로 송가인의 행사가 많아진 후 응원용 봉이나 응원 도구가 없는 팬덤을 위해 차에 한가득 굿즈를 싣고 다녔다. 아예 차를 새로 뽑기까지 했다. 지난 6월에 뽑은 신차는 송가인의 행사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주행거리가 벌써 2만 7천 킬로를 훌쩍 넘었다.
전라도에서 강원도로 방방곡곡을 도는 행사 스케줄에 무리한 운전을 하기도 하고, 접촉사고로 차를 정비소에 맡겨야 하는 상황에서도 렌털한 차에 다시 굿즈를 싣고 행사장에 갔다. 이 열정은 오로지 송가인이 무대 위에서 팬들을 보고 에너지를 얻는다는 말에서 비롯됐다.
결국 팬클럽은 돈을 모아 '탑차'를 구매했다. 탑차는 이동식 '굿즈 창고'로 행사장에서 팬들에게 나눠줄 굿즈를 싣고 이동한다. 이들은 어떤 아이돌 팬들도 '탑차 구매'는 안 했을 거라며, 오로지 송가인 팬덤만 굿즈를 실어나르는 탑차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돌 팬들도 사비를 들여서 굿즈를 판매한다. 포토 북이나 인형, 응원용 봉 같은 굿즈들은 제법 가격대가 나가지만 굿즈를 만드는 팬도 손해를 보며 만든다. 카페나 트위터를 통해 굿즈 구매가 활성화된 아이돌 팬덤과는 달리 이들은 오프라인 행사장이나 정모에서 서로 나눠주는 문화를 갖고 있다 보니 여느 아이돌 팬덤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탑차 창고가 탄생했다.
서울 지역에서 행사가 많다 보니 탑차를 구매했고 다른 지역은 아예 창고를 빌려서 굿즈나 천막 등을 보관한다.
최근 콘서트장 앞에서 화제가 된 깃발을 흔드는 팬들의 모습도 깃발 봉 하나에 10만 원이 넘는데 사비로 팬이 들온 것이라고 말했다.
간혹 일반인들이 선거 유세단처럼 돈 받고 하는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좋아하는 가수도 보고 돈도 벌고 좋겠다"라고 말하지만, 이들에게 굳이 해명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10대 아이돌 팬들의 굿즈와 다른 점은?
아이돌 굿즈는 귀여운 인형이나 응원용 봉, 포토 북, 에어팟, 에어팟 키링 등등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들이 많다. 그러나 송가인의 굿즈는 세대의 요구에 맞게 토시, 반창고, 머그잔, 두건, 돋보기, 차량용 스티커, 뽑아 쓰는 물티슈, 주방용 수건 등등 생활용품이 많다.
어디에나 송가인의 팬클럽 '어게인'이 들어가고, 송가인의 사진과 함께 좌우명이 들어간다.
"굿즈 제작하는 방법은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회사 기념품이나 수건을 제작하는 데서 제작하고 많이 검색도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굿즈도 지역 상품이 있어 어느 행사장에서 나눠준 것인지, 어떤 피켓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기자는 황송하게도 송가인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초기 피켓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 지역장은 농담인 듯 진담으로 "싸인 갖다 팔면 우리가 끝까지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후발주자.. 다른 아이돌 하는건 다 하고 싶어"
□ 성지 순례
'미스트롯'에 나가기 전부터 전라도 지역에서는 알음알음 알려져 열혈 팬 150여 명이 있었다던 송가인 카페는 현재 4만여 명이 넘는 회원으로 북적거린다.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은 대략 8천 여명이다.
팬클럽에는 송가인의 고향 진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많다. 어느 지역 출신이든 상관없이 '가인이어라~'로 시작된 이 말투는 조금 보태서 지역통합까지 이뤄낸 듯하다.
이들은 '송가인 생가'를 찾아가기도 하는데, 많을 때는 하루에 200여 명이 진도의 송가인 집을 찾아간다. 버스를 대절해서 가는 일종의 성지순례인 셈이다.
이들은 진도 경제가 송가인으로 부흥 중이라며 진도의 가장 유명한 것은 송가인, 진돗개, 아리랑이라고 말하며 가장 많이 몰릴 때는 천여 명이 몰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 피켓팅
최근 경희대학교에 있었던 송가인 콘서트는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팬클럽 회원만 4만 6천 명이 넘는데 좌석은 4천 3백여 석으로 1~2초 만에 매진되어버려 가고 싶어도 못 간 팬도 많다.
이번 모임에도 A 씨는 결국 표를 구하지 못했고, B 씨는 팬클럽 회원이 양도해준 덕분에 다녀올 수 있었다.
스밍을 돌리고, 굿즈를 나누는 문화는 익혔어도 피케팅은 처음인지라 자녀들의 조언을 따라 PC방에 가기도 하고 용돈 5만 원을 주면서 "네가 대신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잠실 주경기장이나 고척돔에서 콘서트를 열 법도 한데, 아직 신인인 송가인의 파워를 기획사가 제대로 몰라 벌어진 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콘서트장 대관은 오래전부터 잡혀있는 스케줄이라 취소도 못 하고 결국 팬들만 피 말리는 티켓 전쟁을 해야 했다.
□ 팬픽
송가인 팬픽(팬들이 쓰는 소설)에 대해 부정적이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기자가 읽은 한 팬픽에 대해 물어보자 팬들이 좋아해서 쓴 글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가수 이미지도 있고 팬픽 내용이 사랑을 담은 내용일 수 있어서 아직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 조공 문화
방송 관계자들에게 떡도 돌리고 샌드위치도 돌린다. 모두 우리 가수님 잘 봐달라는 뜻이다. 무조건 넣고 싶다고 넣는 것이 아니라는 팁도 말해줬다. 행사 관계자들이 식사는 자신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면 간식이나 커피를 넣고, 다른 가수 팬들과 메뉴를 조율하기도 한다.
□ 송가인 사랑 확인하는 정모
이들은 '정기 모임'도 갖는다. 서·인·경 지역이나 부·울·경, 대전 등은 모임이 활발한 편이지만 인구가 적은 강원도 같은 곳은 오프 모임에 많은 인원이 모이기 힘들다. 카페 스테프들은 스케쥴이 없을 때에는 팬클럽 조직 활동을 위해 먼 곳에서 열리는 정모에도 참여한다.
카페 지역 대표가 정모에 참여해서 송가인에게 받은 사인과 굿즈도 공유하고, 함께 노래를 듣기도 한다. "아무래도 스테프가 정모에 참여하면 분위기도 더 살고, 많인 인원이 모여 재미있고, 송가인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일종의 팬클럽 홍보 및 관리 차원이다.
"송가인이 왜 좋아요?"는 부질없는 질문
굿즈를 자랑하고 핸드폰 화면을 자랑하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갔다. 송가인 팬 카페에 일주일간 상주하면서 느낀 점은 이들이 처음으로 이런 감정을 느끼고 감격한다는 것, 그리고 송가인을 자신의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 청소년시기에 가수를 좋아한 팬이라면 겪을 감정을 50·60세대가 공감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송가인 팬클럽 활동은 일종의 '건전한 취미'로 자리 잡았다. "송가인을 왜 좋아하느냐?"는 게시글에는
"사랑하고좋아하능데이유가따로있나요
내가수사랑하능이유머시필요하요~~♡
살아생전내가수로인해이래귀호강하능디
그것만으로도감사하고또감사할따름이지요~~^^
담생에서도우리또같은생에꼭다시만나서
내가수와의인연으로꼭다시만나주오~~♡♡♡"
라는 댓글이 달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에는 나이가 필요 없다는 것을 송가인 팬덤이 증명하고 있고 이들은 지금 가수에 대한 지극 정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10대 팬 문화를 통해 열심히 배워나가는 중이다.
YTN PLUS 최가영 기자 (weeping07@ytn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