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강경파에 밀렸나?..하루만에 뒤집힌 '관세 합의'

2019. 11. 10. 09:07■ 국제/미국

트럼프, 강경파에 밀렸나?..하루만에 뒤집힌 '관세 합의'

뉴욕=이상배 특파원 입력 2019.11.10. 04:00

[뉴욕브리핑] 트럼프 "대중국 관세, 완전한 철회는 아냐"..월가, '관세 일부 철회' 여전히 기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미국과 중국의 '관세 철회 합의'가 하루만에 뒤집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합의 사실을 부인하면서다. 백악관 내 대중 강경파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1단계 미중 무역합의 서명 계획과 일부 관세 철회 가능성까지 부정한 건 아니라는 점에서다.

◇트럼프 "대중국 관세, 완전한 철회는 아냐"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들(중국)은 (관세) 철회를 원한다"며 "나는 아무 것도 합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어느 정도의 관세 철회를 원한다. 완전한 철회는 아니다. 그들도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라며 "나는 지금 매우 기쁘다. 우리는 수십억 달러를 (관세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과 매우 잘 지내 왔다. 솔직히 그들은 나보다도 훨씬 더 합의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1단계 무역합의에 대한 서명이 이뤄진다면 장소는 미국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이오와주나 비슷한 농업지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미중이 그동안 서로에게 부과해온 관세의 단계적 철폐를 합의했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과 배치된다. 가오펑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전날 "지난 2주간 미중 무역협상 대표가 양국의 핵심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고 건설적인 논의를 진행했다"며 "합의가 진전됨에 따라 기존에 부과돼 온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익명의 미국 관리도 로이터통신 등에 "미중 양국의 1단계 무역합의 내용에 기존 추가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한다(rollback)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합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 백악관 내에서 관세 철회 합의에 대해 반발이 일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양국 간 무역협상에 정통한 여러 소식통을 인용, 백악관 내부 인사들뿐 아니라 외부 자문위원들까지도 양국의 단계적 관세 철폐에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중국과 기존 관세를 서로 철폐하는 방안이 향후 대중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고 한다.

대표적 대중 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이 이 같은 여론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나바로 국장은 전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측 발표를 부인했다. 나바로 국장은 "현재 1단계에서 기존의 관세를 철폐한다는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트럼프 대통령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의 후시진 편집장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시장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분명한 사실은 관세 철회 없이 1단계 무역합의는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웰스파고증권의 마이클 슈마허 채권전략본부장은 "미중 무역전쟁의 결말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며 "아직 1단계 무역합의가 성사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월가, 관세 일부 철회 여전히 기대

그동안 중국은 미국과의 1단계 무역합의를 계기로 미국에 오는 12월 중순 부과 예정인 관세와 지난 9월부터 부과된 관세의 철회를 요구해왔다. 이에 미국은 지난 9월1일부터 중국산 수입품 1120억달러(약 145조원) 상당에 매겨온 15% 추가관세와 오는 12월15일부터 부과할 예정이었던 1600억달러(약 185조원) 규모의 15%의 추가관세의 철회를 검토 중이다. 동시에 미국은 상응조치로 중국에도 대미 추가관세를 철폐할 것을 요구해왔다.

미중 고위급 협상단은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 협상에서 1단계 무역합의, 이른바 '스몰딜'(부분합의)에 도달했지만 아직 합의문에 서명하진 못했다. 1단계 합의에 따라 미국은 2500억달러(약 300조원) 규모의 중국산 관세율을 25%에서 30%로 인상하는 계획을 연기했다. 또 중국은 연간 400억~5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하기로 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달 16~17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 1단계 무역협정에 서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칠레가 국내 대규모 시위 사태를 이유로 회의 개최를 취소하면서 회동 장소 변경이 불가피하게 됐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합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뉴욕증시는 신고가 랠리를 이어갔다. 이날 대형주 위주의 스탠다드앤푸어스(S&P) 500 지수는 7.90포인트(0.26%) 오른 3093.08에 거래를 마쳤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도 40.80포인트(0.48%) 뛴 8475.31에 마감했다.

S&P 500 지수와 나스닥지수 모두 또 한번 사상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블루칩(우량주) 클럽인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도 6.44포인트(0.02%) 상승한 2만7681.24을 기록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대중 관세의 완전한 철회 가능성은 사실상 배제했지만 일부 철회의 여지는 남겨뒀다는 점에서 시장은 기대를 완전히 꺾지 않았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1단계 무역합의 서명을 위한 장소를 언급한 것도 협정 체결의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고 시장은 해석했다.

스위스계 은행 UBS의 캐시 엔트위슬 이사는 "미중 무역협상의 진전 소식과 부인이 반복되고 있지만, 협상 타결이 분명해질 때 시장은 더욱 흥분할 것"이라며 "주가가 추가로 오를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뉴욕=이상배 특파원 ppark14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