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9. 08:28ㆍ■ 건강 의학/의료 시스템
검진 앞두고 1주일 금주·금연?.. 당신의 건강검진을 망칩니다
박돈규 기자 입력 2019.11.09. 03:02
건강검진은 괴로워.. 5054명의 고백
건강검진센터에 전화하면 다짜고짜 사과부터 한다. "죄송합니다.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입니다…." 이 기계음은 '어디서 뭐하다 낙엽 질 때 와서 난리냐'는 꾸지람으로 들린다. 10~12월은 건강검진 성수기. 인류의 가장 오래된 행동이라는 기다림을 한국 사람들이 체감하는 중이다. 전화기 붙들고 3분, 마침내 그분이 납신다.
"가장 빠른 날요? 이달은 예약이 꽉 찼고 12월 마지막 주에 진행하시면 됩니다."(상담원)
50일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고구마 같은 상황에 '진행'은 또 웬 말인가? 인내심도 검진 예약의 한 부분이다. 짜증을 누르고 '날짜를 받고' 전화를 끊는다.
그런데 궁금하다. 우리가 떠밀리듯 받는 건강검진엔 문제가 없을까. 수검자의 불만과 오해, 괴로움은 무엇일까. '아무튼, 주말'은 건강검진을 검진해보기로 했다. 지난달 말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설문조사를 의뢰했고 20~60대 남녀 5054명이 응답했다.
무료 검진, 믿어도 될까?
응답자 중 42%는 '2년마다 건강검진을 받는다'고 했다. '해마다 한다'(22%) '받아본 적 없다'(19%) '3~4년마다 한다'(9%) 순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년 주기로 하는 국가 건강검진(무료)은 올해부터 대상자가 '만 20세 이상'으로 확대됐다. 짝수 해 출생자는 짝수 해에, 홀수 해에 태어났다면 홀수 해에 받을 수 있다.
수검자들은 무료 검진을 얼마나 신뢰할까. '매우 신뢰한다'(9%)와 '신뢰하는 편이다'(65%)를 합하면 74%였다. 국민 4명 중 3명은 국가 건강검진을 믿는 셈이다. 하지만 '꼬박꼬박 받는다'는 응답은 50%에 그쳤다. '받지 않는다'가 20%, '그때그때 다르다'가 30%를 차지했다. 실제로 직장에서 종합 건강검진(유료)을 지원받는 이들은 무료 검진을 무시하곤 한다.
지난 9월 국가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이형원(60·경기 고양시)씨는 "고지혈증 검사를 4년에 한 번으로 줄이는 바람에 따로 1만여원 추가 비용이 들고 재검받느라 다시 금식하고 피를 뽑는 등 불편이 커졌다"며 "50~60대 이상 남성은 전립선 비대증이나 전립선암 발병률이 높다는데 무료 검진엔 전립선 초음파도 포함돼 있지 않다"고 했다. 고지혈증 검사에 대해 의사들은 "공단 재정을 이유로 슬그머니 줄여 현장에서 항의가 많다"고 전했다.
설문 응답자들은 국가 건강검진의 가장 큰 문제로 '대변 검사'(33%)를 지목했다. 특히 50~60대에서 불만이 높았다. 메트로병원 작업환경의학과 류상철 전문의는 "국가 건강검진에서 대장암(대장 내시경), 간암(간 초음파), 폐암(저선량 폐 CT)은 위험군에 속하는 소수만 받을 수 있는데 홍보가 잘 안 돼 있다"며 "대장 내시경도 안 해주면서 왜 대장암 검진으로 포장하느냐는 항의를 종종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5년 국가 암 검진 사업 분변 잠혈 검사 결과를 보면 수검자의 약 7%만 양성이라 대장 내시경 지원 대상이었다. 채변을 해 병원에 내느라 번거로운데 대부분(93%)은 개인 비용으로 대장 내시경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
국가 건강검진은 '결과지 해독'(26%) '고지혈증 검사'(20%) '폐암 CT 검사'(19%)가 또 다른 문제로 꼽혔다. '결과지 해독'은 20~30대가 더 어려워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추가된 폐암 CT는 만 55~75세 수검자가 설문지에 흡연력을 30갑년(30년 동안 하루 1갑) 이상으로 적은 경우에만 저선량 폐 CT를 찍게 해준다. 축소하거나 부풀리는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또 폐암은 부엌일이 많은 주부에게도 발생하기 때문에 "비흡연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검자를 괴롭히는 것들
한국인 사망 원인 1~3위는 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그것을 조기 발견하는 게 건강검진의 목표다. 세브란스병원 건강의학과 정태하 교수는 "종합 검진 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난 건강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대표적인 오해"라며 "국가 건강검진 시스템은 믿을 만하지만, 1차 검진만 가능할 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성모병원 건강증진의학과 임송원 교수는 "국가 건강검진을 반드시 받고, 이상이 있을 경우 상급 병원에서 자세히 파악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가족력이나 생활 습관으로 발생하는 질환은 추가로 특화된 검사가 더 자주 필요하다"고 했다.
검진 상품은 다양하고 항목도 복잡하다. 검진 상품을 고르는 기준을 묻자 '암 조기 발견'(55%)이 으뜸으로 꼽혔다. '동맥경화 예방'이 17%, '가족력과 생활 습관'이 14%였다. 유료 검진에 들이는 비용은 '30만원 이하' 35%, '유료 검진은 받지 않는다' 34%, '40만원' 14%, '50만원' 11%로 나타났다. 비싸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300만원이 넘는 고가 검진 상품에 포함된 PET-CT는 폐뿐만 아니라 전신 암을 찾아내는 검사인데 "멀쩡한 사람이 검진 목적으로 사용하기엔 방사선량이 많으니 피하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목돈 주고 방사선 쐬고 오는 꼴이다.
건강검진을 받는 날이면 원근감이 달라진다. 일상의 다른 스트레스는 멀찍이 물러난다. 오직 건강에 대한 근심과 공포가 고개를 쳐든다. 날마다 불을 뿜는 상사나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말단 직원이나 검진복을 입혀 놓으면 온순한 양(羊) 같다. 대장 내시경을 받아본 적 없는 수검자는 40년 또는 50년 만에 처음 들여다볼 창자 속을 상상할 것이다. 검진센터 복도에 클래식 음악이 흘러도 불안은 진정되지 않는다.
수검자를 괴롭히는 것은 뭘까. 역시 '건강에 대한 막연한 불안'(31%)이 컸다. '비용 부담'(25%) '관장약 복용'(21%) '시간 내기'(17%) '결과지 해독'(6%) 등으로 조사됐다. 이 문항에서는 관장약 복용에 더 눈길이 갔다. 대장 내시경을 앞두고 몸으로 직접 겪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장 세척이 사람 잡는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송내과 송태호 원장은 "검진 결과표는 자주 가는 동네 병원 의사에게 보여주면 2~3분에 충분히 설명해줄 것"이라며 "전문의와 상담해 확실히 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가장 피해야 할 행동
건강검진은 대체로 키와 몸무게, 혈압부터 잰다. 팔뚝을 휘감아 오는 압력을 피해 고개를 돌리면 복도에 늘어선 작은 진료실들이 보인다. 서너 시간 동안 이 방, 저 방 떠밀려 가야 할 운명이다. '출발선 증후군'이라 불러야 하나. 시작부터 피로감이 몰려온다. 검진센터에서 우리는 평소보다 활기를 잃는다. 건강이란 으레 그런 것이다.
어떤 수검자는 1~2주 전부터 건강검진을 준비한다. 애주가는 술을 멀리하고 끽연가는 담배를 자제하는 식이다. 체중이나 체지방을 줄이겠다며 운동에 몰입하기도 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검진받기 전 1주일은 생활이 달라지는지 물었다. '매우 그렇다'가 14%, '그런 편이다'가 49%로 나타났다. 합치면 63%. 수검자 100명 중 63명이 검진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정태하 교수는 "한 달 전부터 몸 관리하고 왔다는 분도 만났는데 일종의 벼락치기"라며 "평소 상태를 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검진 전 가장 피해야 할 행동"이라고 말했다.
시력이 좋으니 안과 검사는 건너뛰어도 될까. 시력이 1.0이라도 실제로는 실명 직전인 녹내장 말기가 있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공안과 공영태 원장은 "지난달 국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안과는 시력만 달랑 측정하고 끝나 아쉬웠다"며 "안저를 촬영하면 고혈압·당뇨를 발견할 수 있고 황반변성 등 망막 상태도 살필 수 있다. 녹내장 진단에서 기본이 되는 안압 검사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장 조영 검사는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 몸을 계속 돌리는데 검사는 상대적으로 부정확하고 방사선을 쬐게 된다. 용종을 자를 수도 없고 조직 검사도 불가능하니 가능하면 피하는 게 현명하다.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는 "6대 암 중 하나를 확진받은 사람은 1인당 연간 200만원까지 정부가 의료비를 지원해준다"며 "건강보험 가입자가 국가 건강검진을 제대로 안 받으면 암에 걸렸을 때 이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국가 암 검진 1차에서 암이 판명되지 않았더라도 검진일부터 2년 이내에 암 진단을 받은 사람까지는 지원한다.
송태호 원장은 건강검진을 '코끼리 다리 만지기'에 빗댔다. 다리만 만지고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판단할 수는 없다. 검사받은 항목에 대해서만 이상 유무를 가늠한다. 과신은 금물이고 얕봐도 안 된다.
내시경 위한 대장 세척액, 굵은 빨대로 마시면 편할까?
"찬물에 타 벌컥벌컥이 나을 것"
5년에 한 번은 대장 내시경을 받으라고 의사들은 권고한다. 수검자는 괴롭다. 검진 전날 저녁부터 당일 새벽까지 악명 높은 관장약과 물을 2~3L 마시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파김치가 된다. 매스껍지만 억지로 들이붓는 식이다.
장 세척 기본 원리는 세차와 비슷하다. 차에 비누칠을 해도 결국 물로 씻어내야 하는 것처럼, 길이 1.5m 대장 속을 내시경으로 관찰하려면 '물청소'가 필요하다. 고통을 줄일 팁은 없을까.
서울성모병원 임송원 교수는 "세계 모든 병원이 안고 있는 숙제"라면서 "대장을 비우려고 마시는 약의 용량을 줄이면서 효과가 높은 약제가 개발 중이니 조만간 희소식이 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중간에 물 대신 무색 이온음료를 마시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 유튜버가 관장약 복용 꿀팁이라며 빨대를 추천했다. '구멍이 큰 빨대를 이용해 혀에 닿지 않게 식도로 바로 패스하는 기술'이란다. 쓴 가루약을 쉽게 먹는 법과 닮아 있다. 인터넷에 "빨대로 민감한 미각 세포들을 건너뛰고 목구멍으로 넘겼다"는 체험담도 보인다.
세브란스병원 정태하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한데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차가운 물이나 얼음물에 타 마시면 덜 매스꺼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몇 년에 한 번 하는 검사이니 고생스럽더라도 싹 비워야 한다고 했다.
송내과 송태호 원장은 "전에는 4L를 마셔야 했다. 요즘에는 절반으로 줄었고 맛도 나아졌다"며 "더 적게 먹는 약도 나왔다는데 검진 시장 경쟁이 치열해 앞다퉈 쓸 것"이라고 말했다. 빨대 꿀팁에 대해서는 "맥주 500mL 원샷 하듯 '벌컥벌컥'이 더 나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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