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골 '단풍의 화염'

2019. 11. 8. 12:37■ 사진/촬영지 소개

피아골 '단풍의 화염'

박경일 기자 입력 2019.11.08. 10:20

다양한 색상으로 물들어 절정에 이른 지리산 계곡의 단풍. 지리산 단풍이 황홀한 것은, 한때 비슷한 초록색을 가졌던 나뭇잎들이 가을이 깊어지면서 저마다 채도와 명도로 물들어서다. ‘모두 다 다른 색’이라는 것이 지리산 단풍이 보여주는 미감의 토대다.
사진 위는 지리산의 발치 아래로 아득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의 물길. 해 질 무렵이어서 강물 위에는 붉은 기운이 스몄다. 사진 아래는 지리산 피아골 코스를 걷는 등산객들.
피아골 계곡 아래 절집 연곡사의 동승탑.

■ 붉게 물든 지리산

지리산 10景중 천왕봉 일출 다음이 피아골 단풍

남명 조식 ‘산도 물도 사람도 붉어라’ 三紅 詩로 남겨

연곡사 동승탑 조각, 1000년이 지났지만 엊그제 새긴 듯

능선따라 뱀사골로 하산하면 신선의 경치 ‘半仙마을’ 만나

올가을 단풍의 화염이 이제 막 지리산으로 옮겨붙었습니다. 지리산의 단풍명소 피아골과 뱀사골을 다녀왔습니다. 거대한 산군(山群)으로 이뤄진 지리산은, 처음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느 산과는 풍모와 느낌이 달라서 어쩐지 두렵기조차 합니다. 하지만 지리산을 잘 몰라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도 쉽게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볍게, 아주 가볍게 지리산 단풍을 보러 가는 길을 알려드립니다. 살짝 귀띔하자면, 올해 지리산 단풍의 색이 유독 곱습니다.

# 지리산을 잘 안다는 것

지리산은 어렵다. 오르기도 쉽지 않지만, 아는 것도 어렵다. 지리산 서쪽의 최고봉 노고단에서 지리산 정상 천왕봉까지 주 능선의 길이가 장장 110여 리가 넘는다.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산 중에서 가장 길다. 지리 종주는 해발 1300∼1900m의 고산 준봉을 오르내리며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45㎞를 걷는다. 하산 거리까지 합친다면 50∼60㎞가 넘는다. 노고단, 임걸령, 노루목, 토끼봉, 연하천, 벽소령, 세석, 장터목…. 주 능선의 지명 주변으로는 숱한 계곡과 여러 갈래의 가지 능선이 있다. 수많은 지명이 혼돈스럽기도 하고, 거대한 산의 크기에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누군가 이끄는 이 없이 지리산을 찾아간다는 게 좀처럼 쉽지 않은 이유다. 지리산을 잘 아는 누군가 데려가지 않는다면, 지리산은 언감생심이다.

여기까지는 ‘지리산게스트하우스’를 알기 이전의 얘기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 아래에 있는 지리산게스트하우스는 ‘지리산의 베이스캠프’를 표방하는 숙소다. 산동면의 지리산 온천 근처에 있다. 산과 걷기에 ‘미친’ 성공한 은행가 출신의 은퇴자가 멀쩡한 모텔을 사서 일부 시설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한 숙박업소다. 여기가 단순히 ‘자고 가는’ 숙소의 의미 이상인 것은, 순전히 게스트하우스 대표 정영혁(57) 씨 때문이다.

지리산의 품이 넓어서인지, 산 아래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든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거나 혹은 세상과 불화해 이곳을 찾은 이들도 적잖다. 이런 이들은 대개 한 눈에도 별나 보이게 마련. 그런데 정 씨는 별로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등산복을 평상복으로 입는 수더분하고 평범한 ‘아저씨’다. 하지만 산에 관한 한, 걷기에 관한 한 그는 젊은이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품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의 꿈은 게스트하우스의 모든 공간을 지리산을 오르거나 둘레길을 걸은 이들의 메모지와 사진들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달성해봐야 뭐 그리 대단하달 것 없지만, 자신만의 소중한 꿈이다. 그러니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메모지나 사진을 붙이고, 방명록을 쓰면 환영받는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메모지와 사진을 붙이고 방명록을 남길 수 있는 ‘자격’은 따로 있다. 그 자격은 두 가지다. 지리산을 올랐거나, 둘레길을 걸었거나….

# ‘남의 지리산’을 생각하다

정 씨는 지리산을 제 손금보듯이 안다. 그렇다 해도 전문 산악인 중에서 그보다 더 지리산을 잘 아는 사람이 왜 없을까. 하지만 그를 최고로 꼽는 이유는 그가 ‘자신만의 지리산’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지리산’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산악인들은 대개 자신의 취향이나 체력에 걸맞은 지리산을 안다. 하지만 그는 거침없이 산을 내달리는 20대 청춘 건각(健脚)에게 어울리는 지리산과 열 살 초등생이나 팔순 노인에게 적당한 지리산을 모두 알고 있다. 지리산 종주를 열 번 넘게 해본 이와 지리산이 처음인 이에게 각각 추천해줄 코스를 모두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가 ‘남들의 지리산’까지 알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이 산을 오르는 것도 좋지만, 남이 산을 오르는 것에서 더 큰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자기가 추천해 준 지리산 코스를 오른 이가 그 산에 감동하는 데서 그는 보람을 느낀다. 지리산을 처음 오른 이가 얼마나 감동하고 돌아갔는지에 대해서 말할 때, 그렇게 지리산을 경험한 이가 이내 다시 지리산을 찾아와 사연을 말할 때 그의 눈빛은 반짝였다.

그래서 추천한다. 지리산을 잘 모르겠거든 지리산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면 된다. 늘 게스트하우스를 지키고 있는 정 씨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상담은 끝난다. 체력은 어느 정도고, 등산 경력은 얼마나 되는지를 넘어서, 대화 속에서 여행의 이유와 지리산을 가겠다는 열망의 무게까지 잰 후에 그의 ‘지리산 처방전’이 나온다. 산행 코스는 물론이고 이용하는 대중교통 이동 방법이나 시간, 요금까지 정리한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처방전이다. 체력과 열망이 저마다 다른 만큼 사람마다 처방전은 다르다. 하지만, 지리산이 가을로 물드는 때만큼은 처방전이 누구에게나 같다. 지리산 피아골과 뱀사골. 단풍으로 흠뻑 젖어있는 두 개의 계곡이다.

# 산도, 물도, 사람도 붉게 물든 피아골

그럼 이제 단풍이 절정에 막 들어선 피아골 얘기부터. 지리산 피아골. 이름부터가 섬뜩하다. 6·25전쟁을 앞뒤로 지리산에 새겨진 전쟁의 상흔을 알고 있다면, 피아골에서 피(血)를 떠올리게 되리라. 그렇다. 피아골이란 지명 유래의 첫 번째는 ‘피의 골짜기’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피하는 골짜기’라는 의미다. 이 역시 전쟁과 얽혀있다. 그리고 마지막. 이게 가장 정확하다고 전해지는 얘기다. 피아골 아래 절집 연곡사에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행하던 시절, 식량이 부족해지자 척박한 토질에도 잘 자라는 ‘피(기장)’를 많이 심어 거두면서 ‘피밭골’이라고 불리다가 ‘피아골’이 됐단다. 자칫하면 ‘직전(直前)’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피아골 아래 첫 마을이 ‘직전(稷田)’인 것도 ‘기장직(稷)’자에 ‘밭전(田)’자를 쓴 것이다. 고백하자면 피아골 아래 직전마을의 지명을 한동안 ‘지리산 직전에 있는 마을’쯤으로 오해했었다.

각설하고, 피아골 단풍 얘기로 돌아가자. 피아골 단풍은 ‘지리산 10경(景)’ 중의 제2경이다. 지리산 1경이 도리 없이 ‘천왕봉 일출’인데, 이곳을 빼고는 지리산 최고의 경관으로 꼽은 게 피아골의 단풍인 셈이다. 이어 10경으로 꼽은 것이 노고단 운해, 반야봉 낙조, 벽소령 만월, 불일폭포, 세석평전 철쭉, 연하봉 선경, 칠선계곡, 섬진강 청류 등이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지리산 10경은 과연 누가 정한 것일까. 기록이 있다. 1957년 최초의 산악회로 지리산 지도를 처음 제작했던 ‘연하반(烟霞伴·훗날 지리산 산악회로 개칭)’이 1972년에 지리산의 대표적인 자연경관 10곳을 정해 ‘지리산 10경’을 발표했다. 연하반은 지난 2013년 세상을 뜬 구례 출신의 ‘지리산 호랑이’ 함태식이 결성한 산악회. 마흔넷에 노고단으로 들어가 ‘자발적 산장지기’로 16년을 일했던 그는, 예순의 나이에 피아골산장으로 내려와 24년을 더 지리산에서 살다가 2009년에야 하산했다. 그는 반평생이 넘게 지리산에서 살았다. 지리산의 어떤 매력에, 그는 평생 사로잡혀 있었던 것일까.

# 산도, 물도, 사람도 붉다

피아골은 지리산 최대의 활엽수 군락지다. 그러니 단풍이 화려할 수밖에….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지리산을 열두 번씩이나 올랐다는 조선 성리학의 거장 남명 조식. 요즘처럼 등산로가 정비되지 않았던 시절의 지리산은 얼마나 거칠고 험했을까. 남명은 마침 단풍 절정의 가을에 피아골을 찾았던 모양이었다. 피아골 단풍에 취한 그가 시 한 수를 남겼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가을의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천공(天公)이 나를 향해 뫼(山)빛을 꾸미시니/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남명이 남긴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피아골의 최고 단풍명소 ‘삼홍소(三紅沼)’의 이름이 유래했다. 온 산이 붉게 물들어 산홍(山紅)이고,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쳐 수홍(水紅)이며, 그 계곡에 든 사람까지 붉게 물들어 보인다 해서 인홍(人紅)이라고 했다. 산과 물과 사람, 이 셋이 삼홍(三紅)을 이뤘다는 뜻이다.

지난 주말 피아골 아래 지락은 여태 초록이었다. 지리산 단풍이 물드는 속도가 지난해보다 일주일쯤 늦은 탓이다. 직전마을 계곡의 단풍나무도 그제야 가지 끝의 이파리만 살짝 물들기 시작했다. 피아골 단풍의 절정이라는 삼홍소 주변은 제법 단풍으로 화려했지만, 직전마을에서 삼홍소까지 이어지는 1시간 남짓 소요되는 숲길의 절반까지는, 어쩌다 드문드문 한 그루씩 단풍나무가 물들어 있는 정도였다. 그러니 단언할 수 있다. 피아골 단풍의 절정은 이번 주말이다.

# 연곡사 승탑의 놀라운 미감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드리운 그늘이 커서 그렇지, 피아골 단풍은 사실 여느 산의 단풍보다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구례읍에서 하루 열네 번 있는 군내버스를 타고 종점인 피아골 직전마을에서 내리면 지도를 꺼내볼 것도, 길을 물을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서부터 눈앞의 길만 따라 걸으면 피아골 계곡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오솔길 1㎞ 남짓, 그리고 여느 등산 코스와 비슷한 숲길 1.2㎞. 도합 한 시간 남짓, 왕복 두 시간의 가벼운 걸음으로 피아골 단풍의 절정, 삼홍소를 만나고 돌아올 수 있다.

이 코스에는 피아골 계곡을 끼고 있는 절집 연곡사가 부록처럼 덧붙어 있다. 자그마한 절집에 자그마치 국보가 두 개, 보물이 네 개다. 그중 압권이 바로 국보 제53호 ‘동승탑’이다. 국보의 가치가 ‘의미’와 ‘미감’이 둘로 가려진다면 동승탑의 가치는 단연코 미감이다. 비례와 균형, 그리고 섬세한 조각이 드러내는 미감 앞에서 탄성을 토할 수밖에 없다. 승탑에는 구름 속의 용과 포효하는 사자, 가릉빈가와 사천왕상, 불법을 지키는 팔부신중이 조각돼있다. 단단한 돌을 마치 비누 조각처럼 다뤄낸 솜씨에도 찬탄이 나오지만, 1000년이란 시간에도 엊그제 새겨놓았다 해도 믿어질 만큼 조각이 선명하다는 사실도 놀라울 따름이다.

연곡사 대적광전 뒤쪽에는 국보와 보물을 둘러보는 ‘연국사 국보순례길’이 있다. 순례라고 하지만 600m 남짓의 짧은 산책로다. 순례길은 동승탑에서부터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데, 그것보다는 거꾸로 시계방향으로 도는 게 더 낫다. 동승탑은 맨 나중에 봐야 하기 때문이다. 절집에서 세워놓은 안내판대로 동승탑을 먼저 본다면 다른 것들은 다 시시해 보일 것이니 말이다.

# 더 걷는 법과 덜 걷는 법

왕복 두 시간 남짓의 피아골 단풍 감상 정도로 성이 차지 않는다면 삼홍소에서 등산로를 조금 더 올라 남매 폭포, 와폭, 구계폭을 지나 피아골대피소까지 올라가 보는 것도 좋겠다. 아예 지리산 주 능선까지 올라 임걸령, 노루봉, 삼도봉, 화개재를 지나 뱀사골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한다면 ‘올가을 지리산 단풍을 다 보았다’고 말해도 좋다. 간장소, 병풍소, 병소, 탁룡소…. 계곡을 따라 수정 같은 물을 담은 소들이 이어지는 뱀사골 계곡의 단풍은 피아골보다 ‘한 수 위’다. 지리산게스트하우스 대표인 정 씨도 흔쾌히 동의한 얘기다.

그럼에도 뱀사골 단풍 얘기를 앞세우지 않은 것은, 피아골보다 손톱만큼 이르게 당도하는 뱀사골 단풍이 이제 막 절정을 넘긴 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뱀사골 단풍은 아직 볼만하다. 뱀사골 아래쪽 마을이 반선마을이다. 지명으로 ‘절반반(半)’자에 ‘신선선(仙)’자를 쓴다. 단풍으로 물든 뱀사골 계곡이 신선의 경치, 즉 ‘선경(仙景)’을 이루고 있으니, 이 계곡을 걸은 이들을 ‘반신선(半神仙)’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피아골의 삼홍소를 찾아가는 것조차 힘이 부치는 이들도 지리산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전북 남원 산내면에서 달궁과 심원계곡을 지나 성삼재 넘어 다시 천은사로 내려가는 ‘지리산 종단도로(861번 지방도로)’를 차로 달리며 차창 밖으로 단풍을 감상하는 것이다. 도로 옆으로 군데군데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 있어 빼어난 풍경이 나올 때마다 차를 멈추고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지리산 종단도로는 자연환경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한때 폐쇄 얘기까지 나왔던 길이다. 그러니 걸어 오를 수 있다면 두 발로 걸어서 지리산 단풍을 만나도록 하자. 이 도로는 걸어 오르지 못하는, 그럼에도 최고의 가을 단풍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내어주고 말이다.

■ ‘최고의 단풍’ 1시간 도보 길

지리산 단풍의 최고 명소로 꼽히는 곳이 피아골 계곡의 삼홍소(三紅沼). 구례읍을 오가는 군내버스 종점인 직전마을에서 피아골의 삼홍소까지는 걸어서 불과 1시간 남짓의 거리다.

■ 노고단게스트하우스 정영혁

“산행 열망만 들으면 ‘지리산 맞춤코스 처방전’ 나옵니다”

“지리산이 빨아들이는 힘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설악산이 첩이라면, 지리산은 ‘조강지처’라고….”

전남 구례 산동면 지리산온천지구에서 노고단게스트하우스&호텔을 운영하는 정영혁(57·사진) 씨, 그는 열다섯 살에 첫 산행을 했다.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충무로에서 작은 건물 청소와 궂은일을 하던 그는, 쉬는 날 춘천행 열차를 탔다가 우연히 만난 등산객을 따라나서 엉겁결에 오봉산 산행을 했다. 그날 딱 한 번의 산행으로 그는 등산에 흠뻑 빠졌다. 이튿날 등산 장비를 사서 시작한 산행은 전국의 주요 산은 물론이고, 백두산과 일본 후지(富士)산,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트레킹으로 이어졌다. 그는 전문산악인이 아니라 24년간의 은행 근무로 신한은행 광주기업센터장 자리까지 오른 ‘금융 맨’ 출신이다. 6년 전 그는 은행에 사표를 내고 지리산온천랜드 부사장을 맡아 구례에 내려왔다. 오로지 ‘지리산이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의 꿈은 ‘여행자들의 아지트’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해외 등정 때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산장이 부러웠던 그는 지리산에 그런 곳을 손수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급기야 3년 전에 부사장 자리마저 내놓고 40실 규모의 모텔을 사서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했다.

그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6실인 게스트하우스를 20실까지 늘려 ‘개미소굴’로 만드는 것. 두 번째는 게스트하우스 공용 공간을 여행자들이 붙인 메모와 사진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실속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원이다. 노고단게스트하우스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런 ‘실속 없음’이다. 그가 투숙객에게 열정적으로 산행 코스를 안내해주는 것도, 실속 없는 일이고, 게스트하우스 계단 벽의 트레킹 지도 그림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근사한 옥상 공원도 그가 ‘실속 없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구례·남원=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