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숨진 종교갈등 재연되나..김수로왕 부인 고향 초긴장

2019. 11. 7. 08:58■ 종교 철학/종교 이야기

2000명 숨진 종교갈등 재연되나..김수로왕 부인 고향 초긴장

이승호 입력 2019.11.07. 05:01 수정 2019.11.07. 08:35

문재인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맨 오른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7월 인도 노이다 공단에서 개최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이곳엔 2000년 전 가야를 찾은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의 고향 아요디아가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삼성전자 공장 준공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로서 가야로 건너와 김수로왕의 부인이 됐다는 설화 속 인물이다. 허황후라고도 불린다. 진실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허황옥 설화’는 한국과 인도가 외교무대에서 단골로 꺼내는 소재다. 양국 간 오랜 인연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11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에서 열린 허왕후 기념공원 기공식에서 표지석을 제막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유타국은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시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엔 허황옥 탄생비도 있다.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11월 헌화한 곳이다.

문 대통령 언급 아요디아, 힌두-이슬람 갈등 진원지
우정사업본부가 인도우정청과 함께 '허황후'를 디자인 소재로 한 한국-인도 공동우표 2종 총 82만 장을 7월 30일 발행했다. 허황후는 인도에 있던 고대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 서기 48년 금관가야로 건너와 김수로왕과 혼인했다고 알려졌다. [사진 우정사업본부]

한국과 이런 인연이 있는 아요디아가 최근 인도 종교 갈등의 진원지로 떠오르고 있다. 열흘 뒤에 내려질 법원 판결을 놓고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무슬림) 간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어서다. 인도 대법원은 아요디아의 바브리 이슬람 사원(모스크) 터 소유권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인도 현지 언론인 힌두스탄타임스는 “지난달 16일 모든 재판 절차를 마친 대법원이 이달 17일 이전에 판결을 내릴 것”이라며 “판결을 앞두고 아요디아에는 대태러수사대(ATS)등 인도 정보·경비 당국 인력이 몰려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 정부 초긴장…대테러수사대 등 투입
1990년 10월 인도 아요디아시에 자리한 바브리 모스크의 모습. 힌두교도와 무슬림간 갈등이 심해져 모스크는 출입 통제 상태다.[AP=연합뉴스]

인도 NDTV에 따르면 안주 쿠마르자 아요디아시 치안판사는 지난 4일 “(사원 소유권과 관련해) 서로를 자극할만한 글을 게시·공유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실제 아요디아시 당국은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갈등을 조장하는 글이 없는지 소셜미디어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하며 갈등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중이다. 대법원 판결 후 양측간 유혈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 때문이다.
인도 아요디아시의 위치.[사진 구글맵스]
아요디아는 인도 내에서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갈등이 첨예한 곳이다. 바브리 모스크는 이슬람을 내세우며 나라를 세운 무굴제국의 초대황제 바부르가 건국 직후인 1528년 건설했다. 500년이 넘는 전통으로 인도 무슬림에게 중요한 곳으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이곳은 힌두교도에게도 성지다. 힌두교도들이 추앙하는 비슈누신의 7번째 화신(Avatar) 라마신의 탄생지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곳이다보니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500년 사원 갈등…27년전 2000여명 숨져
1992년 12월 6일 과격 힌두교도들이 인도 아요디아시에 있는 바브리 모스크를 파괴하고 있다.[AFP=연합뉴스]

27년 전엔 유혈충돌도 발생했다. 과격 힌두교도들이 1992년 바브리 모스크를 파괴하면서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고, 2000여 명이 숨졌다. 인도 종교 역사상 최악의 유혈사태로 기록됐다. 바브리 모스크가 터만 남은 건 이때부터다.

양 진영 간 갈등은 법정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2010년 인도 고등법원은 바브리 모스크 인근 토지 소유권을 힌두교 단체 2곳과 이슬람 단체 1곳이 나눠 가지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두 진영의 반발로 법정 싸움은 대법원으로 넘어갔고, 최종 결론이 9년만인 올해 나게 됐다.


어떤 판결도 충돌…무슬림, 힌두민족주의 불만
지난 9월 인도 카슈미르 지역 무슬림 여성과 소녀들이 인도 정부의 카슈미르 자치구 지위 박탈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더라도 양측간 충돌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인도 무슬림들은 지난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집권한 뒤 내세운 힌두민족주의 정책으로 인해 자신들이 피해를 입어 왔다고 여긴다. 힌두민족주의는 인도를 힌두교 중심으로 통합하자는 의미다. 모디 총리가 소속된 인도국민당(BJP)이 대표적인 힌두민족주의 정당이다.

모디 총리는 지난 5월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 뒤 힌두민족주의 정책 드라이브를 더욱 강하게 걸고 있다. 지난 10월 이슬람계 주민이 다수인 인도령 카슈미르(잠무-카슈미르주)를 자치주가 아닌 연방 직할영토로 바꿨다. 여기에 지난해 인도 동북부 아삼주에 살던 이슬람계 주민 400만명의 시민권을 박탈했고, 5월 총선 이후엔 이 지역에서 불법 이민자를 찾아내 추방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아삼주 주민 다수는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이다.

이로 인해 바브리 모스크 터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힌두교도에 유리하게 날 경우 인도 무슬림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인도 무슬림 인구는 힌두교도(인도 인구의 약 80%)에 비해 소수지만 1억6000만~1억7000만명(약 13%)이나 된다. 전 세계로 따져도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에 이어 3위 규모다.


블룸버그 "종교갈등, 인도 근본문제 못 보게 해"
힌두 우익단체 비슈바 파리샤드(VHP) 지지자들이 인도 아요디아시에서 바브리 모스크에 라마신 사원을 건설해야 한다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고 힌두교도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판결이 날 경우엔 과격 힌두교도들의 돌발행동이 우려된다. 우타르프라데시주에서는 바브리 모스크 터에 라마신 사원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힌두교도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과격 힌두교도 수백 명이 이 지역에서 차량 십여 대를 불태우고 경찰관 1명과 시민 1명을 살해했다. 모디 총리 입장에서도 핵심 지지층인 힌두교도들의 원성이 부담스럽다.

블룸버그 통신은 “모디 총리의 힌두민족주의는 인도 내 소수 종교와 부족과의 갈등을 키웠고 대법원의 결정이 이런 갈등에 불을 지를 수 있다”며 "이는 교육·식량·위생시설 부족 등 인도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가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