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소방대원 어머니 "딸 구하다 사고나면 안 돼, 날씨 좋을 때 수색"

2019. 11. 4. 09:34■ 우주 과학 건설/空中 航空機

실종 소방대원 어머니 "딸 구하다 사고나면 안 돼, 날씨 좋을 때 수색"

백경서 입력 2019.11.04. 00:07 수정 2019.11.04. 06:53

슬픔 휩싸인 탑승자 가족들
헬기 기장 아이 셋 둔 기러기 아빠
30대 구급대원은 신혼 2개월째

독도 인근 해역에서 추락한 헬기 피해자 가족들이 3일 사고 해역에서 수색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해경은 이날 오후 3시 동해 중부 전 해상에 내려진 풍랑주의보로 수중 수색을 중단했다. 함정 15척과 항공기 5대를 동원한 해상 수색은 독도 남쪽 지역을 8개 구역으로 나눠 진행 중이다. [연합뉴스]
3일 낮 12시쯤 대구시 달서구 동산병원 장례식장. 독도 해역에서 인양된 시신 2구가 이곳에서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검사를 받는다는 소식에 가족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들은 충혈된 눈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실종된 가족의 이름만 불렀다.

정비사(검사관)로 헬기에 탑승했다가 사고를 당한 서모(45)씨의 장모는 장례식장 입구에서 “내 사위 어딨어요? 내 사위 어딨어요?”라며 한참을 울부짖었다. 그는 “우리 사위는 말할 것도 없이 착한 사람”이라며 “열 살짜리 애도 있는데 앞으로 어떡하느냐”며 허공만 응시했다.

앞서 울릉119구급대는 울릉도 의사 2명의 협조를 얻어 울릉도에서 먼저 수습된 시신을 검안했는데 신원 확인에는 실패했다. 동산병원 관계자는 “신원이 확인되면 장례식장에 합동분향소를 차리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도 해상에서 추락한 소방헬기에는 소방구조대원과 환자 등 7명이 탑승해 있었다. 서씨 외에 기장 김모(46)씨, 부기장 이모(39)씨, 구급대원 배모(31)씨, 구조대원 박모(29·여)씨 등 소방대원, 그리고 손가락이 절단된 환자 윤모(50)씨, 보호자로 나선 동료 선원 박모(46)씨다.

이들 가족은 아직도 절박한 심정으로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있다. 지난 2일 강원도 동해해경에서 만난 구조대원 박씨 어머니는 “헬기를 탄다길래 위험할까 봐 걱정했지만 내심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는지 모른다”며 “제발 이쁜 딸이 저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충남 홍성이 고향인 박씨는 지난해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1년차 대원이다. 그는 “우리 딸이 남을 구하러 갔다가 실종됐는데 다른 사람들도 우리 딸을 구조하다가 사고를 당하면 안 되니 날씨 좋을 때 빨리 수색해 줬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씨는 중앙119구조본부로 배치되면서 지난해부터 대구에서 혼자 생활해 왔다.

독도 해역 소방헬기 추락 실종자 수색
사고 헬기 부기장으로 탑승했던 이씨는 공군 전역 뒤 닥터헬기를 조종하다 중앙119구조대원이 된 지 3년이 됐다. 헬기 조종 경력만 10년 넘는 베테랑이다. 이씨의 부모는 3년 전 간암으로 둘째 아들을 잃고 첫째 아들까지 실종됐다며 오열했다. 이씨의 외삼촌은 “누나가 아들 둘을 모두 잃게 돼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고 했다. 이씨의 이모는 “(이씨가) 일이 고될 텐데 힘들다는 말 없이 늘 즐겁다고 했다”고 말했다.

기장 김씨의 부인은 아이 셋과 함께 말레이시아에서 급히 귀국했다. 김씨의 처남은 “교육 문제로 떨어져 살았지만, 매형이 1년에 네댓 번 말레이시아에 갈 정도로 자식들에게 끔찍한 아빠이자 훌륭한 남편이었다”고 말했다. 구급대원 배씨는 지난 8월 말 결혼해 현재 신혼 2개월째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홍게잡이를 하다 동료 선원이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하자 구조하러 온 헬기에 보호자로 탑승했다가 추락사고를 당한 박씨 선원의 가족도 경북 포항남부소방서를 찾아 오열했다. 박씨의 여동생은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착한 오빠”라고 했다.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윤씨와 박씨는 절친한 동료 사이로 알려졌다.

이들이 탔던 홍게잡이 배 선주는 “윤씨는 평소 선원들을 얼마나 잘 챙겼는지 모른다”며 “만일 이번에 보호자로 나선 박씨가 사고를 당해 헬기에 보호자로 누군가 타야 했다면 윤씨가 자처해서 탔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동해·울릉·독도=백경서·김윤호·최종권·김정석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