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5. 06:21ㆍ■ 인생/사람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2720
조탁(曺倬) 대이(大而), 이양당(二養堂), 치재(恥齋)
시대출생사망경력유형직업성별분야본관
조선 |
1552년(명종 7) |
1621년(광해군 13) |
공조참판, 한성부좌우윤 |
인물 |
문신 |
남 |
역사/조선시대사 |
창녕(昌寧) |
요약 조선시대 경기도관찰사, 공조참판, 한성부좌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대이(大而), 호는 이양당(二養堂) 또는 치재(恥齋). 관찰사 조한필(曺漢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언박(曺彦博)이고, 아버지는 조몽정(曺夢禎)이며, 어머니는 홍신(洪愼)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9년(선조 32)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1595년(선조 28) 의금부도사로 있을 때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서정이 문란하고 피폐해졌으므로 소를 올려 시무십책(時務十策)을 개진하였는데, 그 소가 매우 간곡하였으므로 선조가 가상히 여기고 윤허하였다.
1599년 익위사부수(翊衛司副率)에 제수되었으며, 그 해 가을 문과에 오른 뒤 예조·호조·병조의 좌랑·정랑을 역임하고, 사간원정언·시강원사서를 거쳐, 1603년(선조 36) 강원도암행어사가 되었다.
이어 전적·직강·수찬·교리·필선·사예·장령·사옹원정을 역임하고, 1610년(광해군 2) 우승지가 되었다. 사신이 되어 명나라 연경(燕京)에 다녀왔으며, 황해도관찰사·형조참판·경기도관찰사 등을 거쳐 1612년(광해군 4) 공조참판에 이어 한성부좌·우윤이 되었다.
그 뒤 관직을 떠나 두문불출, 오직 독서에 묻히다가 70세에 죽었다. 그의 집에 소장되어온 『국조보감(國朝寶鑑)』을 나라에 바쳐 임금으로부터 표피(豹皮)를 하사받았으며, 호성(扈聖)·선무(宣武)·정난(靖難)의 공로로 원종1등공신이 되고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의서(醫書)로 『이양편(二養編)』이 전하고 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포저집(浦渚集)』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조탁영어뜻① elaboration ② elaborate ③ carving and polishing 더보기
조탁 – 다음 영어사전 (Daum Korean English dictionary)
1.elaboration 2.elaborate 3.carving and polishing
dic.daum.net
'■ 인생 >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태균 “尹과 공적대화 담긴 휴대전화 4대, 부친 묘소에 묻어놨다” (0) | 2024.11.01 |
---|---|
‘왕대밭에서 왕대가 나온다’ (0) | 2024.10.19 |
현대家 백지연, 호화스러운 환갑파티…노현정→정경호 ★총출동 (0) | 2024.09.15 |
당첨되지 않은 복권에도 가치가 있을까..낙첨복권 40년 모은 수집가 (0) | 2024.09.13 |
尹·조국 다 때리는 진중권 "내가 자리 요구했나, 내 기준은 상식" (0) | 2024.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