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30. 05:28ㆍ■ 인생/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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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조국 다 때리는 진중권 "내가 자리 요구했나, 내 기준은 상식" [더 인터뷰]
유성운2024. 8. 30. 05:01
더 인터뷰 | 우군 없는 '모두까기' 논객 진중권
■ 모두와 불화하는 논객 “내게 중요한 건 상식”
「 ‘모두까기 인형’. 세상은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를 이렇게 부른다. 1990년대 말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시대의 총아였다. 보수우파를 난도질하는 그의 화법은 좌파뿐 아니라 대중도 매료시켰다. 하지만 20여 년 후 그의 칼끝은 반대쪽을 향했다. 한때 친구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후벼 팠다. 요즘 그는 대선 때 우호적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는 왜 모두와 불화할까.
」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인생의 주요 분기점으로 조국 사태를 꼽는다. 그는 3년 전 낸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나라인가』에서 “의로운 친구와 동지로만 알았던 이들의 추악한 민낯을 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내게는 세계가 무너지는 충격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3년간 과거 ‘동지’로 불렀던 이들과 대립하고, ‘적’이었던 이들과 연대해 정권도 바꿨다. 이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5일 서울 마포구 자택 인근에서 만나 들어봤다.
Q : 조국 사태 당시 심경을 “패닉 상태”라고 표현했다.
A :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니 너무나 힘들었다. 그동안 보수 언론의 음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타락하고 새로운 기득권이 된 민주화 운동권의 민낯이었던 거다. 집에서 운동가요를 들으며 펑펑 울기도 하고, 강연하다가도 울컥했다.”
Q : 최근 586을 다룬 드라마 ‘돌풍’이 뜨면서 조국 사태 등이 다시 소환됐다. ‘독재타도’와 ‘민주화’를 외친 이들이 기성 권력으로 바뀌어 가는 내용에 반향이 컸다.
A : “그게 우리의 현실이니까. 좌파라면 노동가치설을 신봉하고 불로소득에 거부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좌파를 자처하던 사람들이 앞장서서 강남 아파트를 사들이고 주식 투자한 것 아닌가. 나는 수십 년째 빌라에 산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학자금 융자를 받는다며 서류를 보내달라고 하더라. 보니까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거다. 그래서 딱 거절했다. ‘아빠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는 거기에 해당이 안 된다’고 했다. 좌파라는 사람들이 다들 나처럼 사는 줄 알았더니 착각이었다.”
Q : ‘네 편 내 편’을 가리지 않고 비판하기 때문에 ‘모두까기 인형’으로 불린다. 오랫동안 ‘같은 편’이었던 사람들도 등을 돌렸다. 외롭지는 않나.
A : “원래 사람을 만나는 걸 즐기지 않는다. 통화하는 사람은 5명 정도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피아노 치고, 프랑스어 다시 공부하고, 프라모델 조립하며 지낸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스탠스가 똑같다. 누군가를 위해 ‘나’를 바꿀 수는 없지 않나. 그게 부담을 준다면 내가 떠나면 된다. 조국 사태 때도 그래서 동양대에 사표를 냈다.”
Q : 공지영 작가나 조국 전 장관 등 한때 가깝게 지냈던 이들과는 앙숙이 됐다.
A : “공 작가는 내가 조국 편을 안 들어주니 갑자기 내 학벌을 건드리면서 급발진하더라. 너무 황당해서 ‘왜 이러지?’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예전에도 그들은 나와 달랐다. 자기들이 추종하는 것에 꽂히면서 확 돌아버린다. 대학교 2학년 때였나, 시위를 하는데 사복 경찰들이 학생으로 섞여 있었다. ‘얼굴을 안다’고 하더니 갑자기 쇠파이프로 그의 머리를 세게 내려치더라. 머리가 터진 거다. 너무 놀라서 그를 의무실로 데려가면서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를 공유하는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던 거다.”
■ 진중권이 지향하는 ‘진보’란
「 해방된 개인들 연대·결사 꿈꿨지만
수령님 모시는 진보정당, 희망 없어
개딸들, 이재명 실각 땐 대상 바꿀 것
」
Q : 운동권에서도 NL(민족해방)계열에 대해선 예전부터 비판적이었다.
A : “일단 그들은 지적이지 않아서 별로다(웃음). 원래 사회주의는 지적이다. 마르크스의 저작물을 보면 얼마나 어렵나. 그런데 NL이 만드는 문건을 보면 사람을 똑똑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바보로 만들더라. ‘김일성 수령이 이렇게 교시했다’고 한다. 그런 건 사회주의도 아닌 괴상한 1인 숭배다. 그러니까 그들 말은 애초에 안 믿었다.”
Q : 어릴 때도 지금처럼 튀는 성격이었나.
A :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갑신정변을 욕하면서 ‘개화파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봐’라고 했다. 다들 눈치를 보는데 나랑 딱 2명이 손을 들었다. 그때 선생님은 성급했다고 비난했지만, 도리어 나는 그들의 급진성이 마음에 들더라. 그것이 진보라는 개념을 좋아했던 첫 기억이다. 진보나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은 고등학교 때 카를 카우츠키 같은 마르크스 연구가의 저작을 번역하면서 길러졌다.”
Q : 당신이 꿈꾸는 ‘진보’는 무엇인가.
A : “예전에 쓴 ‘적녹흑’이라는 칼럼에서 사민주의(적색)-환경주의(녹색)-자유주의(흑색)의 결합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해방된 개인들의 연대와 결사가 꿈이었다. 이것이 결합된 진보정당을 꿈꿨다. 한때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서 정당도 가입하고 도왔던 건데 이건 뭐….”(웃음)
그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정의당 등 오랫동안 진보정당에서 활동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대 대선 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지지 포럼에서 기조발제를 맡는 등 보수정당과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지난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기간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이른바 ‘읽씹’ 논란에서 김건희 여사와 직접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면서다. 친윤 측에서는 한동훈 대표가 배후에 있다며 진 전 교수를 맹비난했다.
Q : 진보를 지향한다고 말하는데, 대선 때 보수정당을 도운 건 모순적 행동 아닌가.
A : “그렇다고 내가 자리나 무언가를 요구했나. 정상적인 보수정당이 나오면 좋은 일이다. 진보정당은 이제 상당히 망가져서 복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조국 전 장관, 이재명 대표 한 사람을 살리겠다고 진보적 가치를 스스로 걷어찼다. 수령님을 모시고 있으니 지금은 희망이 없다.”
Q : 한동훈 대표와 가깝다는 평이다. ‘킹메이커’를 꿈꾼다는 의심도 있다.
A : “황당한 얘기다. 딱 두 번 밥을 같이 먹었다. 한 대표가 법무부 장관 시절이다. 한 번은 조국 사태 때 내가 좌파인데도 그들과 싸운 게 고맙다고, 다른 한 번은 난민 문제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해서 먹었다. 그게 전부다.”
■ 한동훈·김건희 여사와 가깝나
「 한, 언행이 상식에 부합…정책엔 반대
김 여사에 “야당 역할” 조언하자 수긍
이후 180도 다른 행태에 배신감 느껴
」
Q : 어쨌든 한 대표에게 우호적인 건 사실 아닌가.
A : “진보와 보수를 떠나 나에게 중요한 건 상식적으로 행동하느냐다. 한 대표는 한계도 있지만 그래도 언행이 상식에 부합하는 멀쩡한 정치인이다. 난민 문제로 만나 보니 그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자기 견해를 이야기하더라. 팩트와 근거를 갖고 말한다는 점에서 호감을 가진 거고,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같은 그의 보수적 정책 노선은 찬성하지 않는다. 비동의 강간죄 문제로는 꽤 논쟁도 했다. 그래도 논쟁이 가능하다는 게 굉장히 좋았다.”
Q : ‘읽씹 논란’에서 김건희 여사와 한 통화도 공개했다.
A : “김 여사와 한 대표가 나눈 문자를 공개한 친윤 쪽이 도리어 한 대표에게 뒤집어씌우니까 화가 났다. 김 여사와 직접 통화했기 때문에 전말의 사정을 다 알고 있었다. 스페인 여행 중이었는데, 찾아 보니 57분간 통화했더라.”
Q : 당시 무슨 말을 나눴나.
A : “총선 직후였다. 김 여사가 한 대표에게 사과를 못 했는데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했다. 나는 박정희 정부 때 육영수 여사가 ‘야당’ 역할을 했던 것을 참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여사는 ‘알겠다’면서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됐는데, 이후 180도 다르게 전개됐다. 인간적으로 배신감을 느낀다.”
Q : 사람들은 김 여사와 어떻게 가깝게 됐는지 궁금해 한다.
A : “대선 전 윤 대통령이 초대해 서초구 자택에 갔을 때 처음 만났다. 대선 이후 윤 대통령과는 관계가 끊겼고, 여사와는 몇 차례 문자를 주고받았다. 문제의 통화는 거의 2년 만에 한 거다.”
진 교수는 ‘이재명 1극 체제’의 민주당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박용진 같은 상식적인 사람이 있었는데 배제됐다”며 “지금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이 생각했던 민주주의 정당에서 너무 멀리 가버렸다. 전체주의 정당과 비슷해졌다”고 주장했다.
Q : 민주당은 당원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했다고 자부한다.
A : “전체주의 정당의 특징이 ‘민주’를 표방하면서 ‘민중이 직접 결정한다’고 내세우는 것이다. 엘리트를 배제하고 지도자와 민중이 직접 결합하는 거다. 그게 중국의 마오쩌둥이 내세운 정당주의다. 중세 때도 마녀를 처음 꺼내든 건 소수의 수도사들이다. 정작 교황청은 마녀를 말하는 건 이단시했다. 그런데 나중엔 그걸 믿는 대중들에게 떠밀려 교황청이 마녀사냥을 벌였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Q : 개딸이라는 이재명 대표 팬덤은 어떻게 봐야 하나?
A : “그들은 이재명을 좋아서 지지하는 게 아니라 지금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 이 대표밖에 없는 거다. 서로 이용하는 관계인데, 이 대표가 대선 경쟁력을 잃으면 신속하게 바꿀 거다. 팬덤 문화는 그대로 있는데 대상만 바뀌는 거다. 그 많던 ‘문빠’가 다 어디 갔겠나. 지금 이재명을 연호하는 사람들이 과거 문재인 정부 때는 누구보다 이재명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자들이다.”
Q : 논객으로서 30년째 활동한다. 잘 팔리는 비결이 뭔가.
A : “소위 ‘심판자’가 사라진 시대다. 과거엔 시민단체가 그런 역할을 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참여연대가 논평을 내는 거 봤나? 윤석열 정부 되니까 열심히 낸다. 민언련 최민희 같은 인사들이 죄다 정치권으로 갔다. 진영논리에 충실한 유시민을 봐라. 결국 김어준 밑으로 들어가지 않나.”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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