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민 반대하던 ‘동양적 건물’이 프랑스 문화유산으로

2024. 10. 3. 15:01■ 문화 예술/미술 그림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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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 반대하던 ‘동양적 건물’이 프랑스 문화유산으로 [특파원 리포트]

프랑스 남동부 해안 도시 니스에서 내륙으로 차로 한 시간쯤 가면 유서 깊은 중세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양방향으로 차가 다니기 어려울 만큼 좁은 산길을 가야 만날 수 있는 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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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 반대하던 ‘동양적 건물’이 프랑스 문화유산으로 [특파원 리포트]

안다영2024. 10. 3. 08:02

 


프랑스 남동부 해안 도시 니스에서 내륙으로 차로 한 시간쯤 가면 유서 깊은 중세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양방향으로 차가 다니기 어려울 만큼 좁은 산길을 가야 만날 수 있는 이 마을들은 특히 예술가들이 사랑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생 폴 드 방스’라는 마을은 샤갈이 화실을 두고, 그림을 그린 곳으로 유명합니다.

‘생 폴 드 방스’ 이웃 마을인 ‘투레트 쉬르 루’에는 한국 최초의 여성 추상화가인 이성자 화백의 화실 ‘은하수’가 있습니다. 이 건물이 올해, 프랑스 정부의 문화유산으로 선정됐습니다. 100년 미만의 건축물 가운데, 건축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대상으로 프랑스 문화부가 지정하는 ‘주목할 만한 현대 건축물’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입니다.

■ 이 화백 작품 세계 그대로 옮겨놓은 화실

1918년 한국에서 태어난 이성자 화백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복잡한 개인사를 뒤로 하고, 홀로 프랑스로 건너갔습니다. 파리에 정착한 이 화백은 미술 공부를 하고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회화와 판화, 공예 등 1만 4천여 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유명한 1세대 재불 화가입니다. 한국과 프랑스 간 문화 교류에 이바지하고 예술적 업적을 쌓은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성자 화백 생전에 작품 활동하는 모습


이 화백은 자신의 작품에서 음과 양, 삶과 죽음, 동양과 서양 같은 상반된 요소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두 개의 반원이 합을 이뤘다, 떨어졌다 하며, 음양을 표현한 것은 이 화백 작품을 상징하는 문양입니다. 이 문양을 그대로 건축물로 옮겨놓은 것이 바로 이 화백의 화실 ‘은하수’입니다. 1993년 완공된 화실은 음과 양을 나타내는 문양과 꼭 닮은 두 개의 반원 건물로 이뤄져 있습니다. 건물 위쪽에 만든 샘에서 내려오는 물은 두 채의 건물 사이로 시냇물처럼 졸졸 흐릅니다. 개울 위로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두 건물을 연결해 줍니다. 그 풍경이 너무나 한국적이라, 이곳이 프랑스가 아닌 한국의 어느 시골 마을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건물부터 개울까지 모두 이 화백이 직접 설계한 것입니다.

이 화백은 과거 인터뷰에서 “내 작품을 평면 위에 그린 것을 조각으로 올린 것이 화실 은하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흐르는 물은 음과 양의 동력, 살아서 움직이는 것, 도시를 둘로 나누는 파리의 센 강, 그리고 5살 때 폭포 아랫마을에 살면서 돌과 돌 사이를 뛰어다니며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도 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가족을 한국에 두고 타국의 외딴 시골 마을에서 홀로 지내며 고향을 그리워했던 마음이 엿보입니다.

이성자 화백 작품 '투레트의 밤'


그래서였을까요?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현대적이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한국적 요소가 곳곳에 묻어납니다. 우선 전통 무늬의 창호가 눈에 띕니다. 창문을 열면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남프랑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주변 자연과 어우러져 하나의 건축물이 되는 한옥의 원리와 비슷합니다. 또 이 화백이 생활하던 공간은 자개장 등 한국적 색채가 강한 가구들로 채워져 유럽의 방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 화백의 손자 신평재 씨는 은하수는 할머니인 이 화백이 평생을 바쳐 이룩해 왔던 예술 세계를 집약해 놓은 곳이라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프랑스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 문화유산 선정, 이유는?

하지만 이 화백의 화실 ‘은하수’를 지을 때 난관도 있었습니다. 붉은 기와 지붕에 외벽은 아이보리색으로 칠한 전형적인 남프랑스 집들과 달라 주변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합니다. 특히 초반에 은하수 외벽을 보라색으로 칠한 점이 반발을 샀는데, 이후 외벽을 흰색으로 바꾸고 나서는 비교적 거부감이 줄었다고 ‘이성자 화실 기념협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다미안 바가리아 전 투레트 쉬르 루 시장은 설명했습니다. 바가리아 전 시장은 처음엔 주민들도 거부감을 나타냈지만, 이제는 마치 마을에 계속 있었던 건물로 생각할 만큼 주변과도 잘 동화되는 건물로 여겨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프랑스 문화부와 프로방스-알프스-꼬따주르 주 정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화실 ‘은하수’에 대해 3년 동안 다각도로 심사를 벌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오히려 초기 이웃 주민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은하수의 이질적인 점에 주목했습니다. 프로방스 지역의 풍경 속에 프랑스 스타일이 아닌 건축물이 들어선 것, 또 화실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주거 공간이었던 점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바가리아 전 시장은 설명합니다. 또 두 채의 반원 건물이 살짝 어긋나게 마주 보고 있으며, 그 사이로 개울이 흐르는 독창적인 구조, 아울러 한국식 전통 창문과 가구들이 보여주는 동양적 아름다움 등이 프랑스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결정적 이유로 꼽혔습니다.

이 화백의 손자, 신평재 씨는 “ 가족 입장에서는 할머니께서 예술가로서 이룬 성취, 그리고 1960년대부터 이어왔던 이 화백과 투레트 쉬르 루라는 도시와의 인연도 높이 평가받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성자 화백의 화실 '은하수'는 두 채의 반원 건물로 구성돼, 그 사이로 시냇물이 흐른다.


■ “작품 탄생 과정 탐색하는 공간으로”

화실 은하수는 이 화백이 2009년 작고하기 전까지 활동했던 작업 환경이 당시 모습 그대로 있습니다. 그녀의 손때 묻은 도구와 판화 작업을 위해 준비해 둔 나뭇조각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런 점에 착안해 ‘이성자 화실 기념협회’ 명예회장인 바가리아 전 시장과 이 화백의 장남은 화실을 대중에게 공개하자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이 화백의 작품 전시를 본 사람들이 작품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논의 끝에 은하수를 프랑스 정부의 문화유산 제도로 신청하기에 이르렀고, 서류 심사와 현장 실사를 거쳐 당당히 ‘주목할 만한 현대 건축물’로 선정됐습니다.

이 화백이 생전에 작업 활동 때 쓰던 도구들이 화실 내부에 그대로 남아있다.


투레트 쉬르 루가 속한 알프스-마리팀 주 의회 문화·예술 담당 부의장은 “남프랑스에서 창작활동을 한 많은 화가들이 생전에 화실을 설계해서 건립하겠다고 했지만, 이성자 화백만이 이를 실천했다”며, 은하수 문화유산 선정에 대한 의미를 전했습니다. 또 바가리아 전 시장은 투레트 쉬르 루는 제비꽃이 많이 피고,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을 배출해, 예술과 제비꽃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은하수가 문화유산으로 선정되면서 예술의 도시 이미지가 한층 더 강화됐다고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프랑스 문화부와 주 정부는 앞으로, 은하수로 가는 길을 설명하는 안내문을 설치하고, 관광청에서는 각종 홍보 활동을 벌이게 됩니다. 또 건물 주변 도로 정비와 함께 건물 보존을 위해 지원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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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영 기자 (browney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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