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맹으로 지킨 나라인데… 애국지사 예우 ‘단절’

2024. 8. 14. 11:02■ 大韓民國/대한민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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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맹으로 지킨 나라인데… 애국지사 예우 ‘단절’ [다시, 골목 안 단지동맹]

잘린 손가락은 알아도 ‘단지동맹’은 모르는 게 현실이다. 항일투사 12명이 왼손 무명지(약지)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을 썼던 동의단지회를 기억하며, 현재 그 후손들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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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맹으로 지킨 나라인데… 애국지사 예우 ‘단절’ [다시, 골목 안 단지동맹]

이연우 기자2024. 8. 14. 06:01
 

안중근 필두 12명, 대한독립 쟁취 동맹...왼손 약지 관절 잘라 ‘대한독립’ 혈서
동맹 일원 중 독립운동 상훈 고작 3명...나머지 9명, 이름·생사·거주 등 불분명
조응순 선생 조카 조순호씨, 핏줄이지만 물증 없어 후손 인정 못받아
역사에 대한 관심·적극적 태도 취하고...독립운동가 사료 발굴에 힘써주길

 

잘린 손가락은 알아도 ‘단지동맹’은 모르는 게 현실이다.

항일투사 12명이 왼손 무명지(약지)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을 썼던 동의단지회를 기억하며, 현재 그 후손들의 발자취를 살펴봤다.

13일 국가보훈부 등에 따르면 ‘단지동맹’은 안중근을 필두로 강순기, 강창두, 김기룡, 김백춘, 김천화, 박봉석, 백규삼, 유치홍, 정원주, 조응순, 황병길(가나다 순) 등 12명의 독립운동가가 대한독립 쟁취를 위해 맺은 동맹을 말한다.

(왼쪽)안중근 단지 혈서 엽서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체포되자 미주 한인들이 재판비용을 후원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엽서의 한 가운데에는 ‘대한독립’을 혈서로 쓴 태극기가 있고, 그 옆에는 단지동맹이 피로 쓴 글이라는 설명이 인쇄돼 있다. 독립기념관 제공

 

결의 당시 스물다섯살이었던 조응순 선생은 증언을 통해 “12명의 단원이 각각 왼손 약지를 끊은 뒤에 그 피를 사발에 모아 솜에 적셔 태극기 전면에 ‘대한독립’이라고 쓰고, ‘대한독립만세’를 일제히 세 번 외친 후 천지에 맹세하고 흩어졌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조 선생과 안중근 의사가 1908년 단지동맹 맺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간 흐름으로는 이로부터 1년여 후인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하게 된다.

하얼빈 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 독립기념관 제공

 

현재 ‘단지동맹’ 일원 중 각종 독립운동으로 상훈(賞勳)을 받은 이들은 3명으로 추정된다.

구체적으로 ▲조응순(2017년) ▲황병길(1963년) 등 2명은 ‘건국훈장 독립장’에, ▲안중근(1962년)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각각 추서됐다.

여기서 ‘건국훈장 애족장’에 서훈된 ▲김기룡(2013년) ▲김백춘(2008년) ▲박봉석(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서훈된 ▲백규삼(2008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서훈된 ▲박봉석(1990년) 등 5명은 동명이인으로 추측되며, 동의단지회와는 무관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9명 가량에겐 아직 아무런 상훈이 없는 상태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생사·거주·활동 기록 등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후손의 유무도 불투명하지만, 후손이 있다 쳐도 1937년 소련의 강제이주 명령에 따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흩어져 국내에 머무는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추가 상훈’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안중근 의사의 외손(현 97세 추정)이 수원에서, 황병길 대장의 외손(87)이 시흥에서, 조응순 선생의 조카(70)가 충북에서 과거 거주했거나 현재 거주 중인 것만 전해진다.

독립운동가 조응순 선생의 조카 조순호씨가 가문의 숨겨진 역사를 공개하며 단지동맹 후손이 있다면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사진은 안중근 의사와 함께 ‘단지(斷指)동맹’을 맺고 일제강점기 무장독립운동을 이끈 조응순 선생(왼쪽)과 조카 조순호씨의 모습. 조주현기자

조응순 선생의 조카인 조순호씨는 “저희는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직계가족’임을 인정받은 건 아니다. 둘째큰아버지가 건국훈장을 받았던 것도 올해 4월 우연히 알았다”며 “핏줄이라고 해봤자 딱히 ‘물증’이랄 게 없어서 앞으로도 큰 기대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인터뷰에 나선 이유는, 저희 가족처럼 본인 가족이 독립운동가 후손인 것도 모르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관심받지 못하던 독립운동가에 대한 사료 등을 정부가 찾아줘서 우리 가족들이 우리 땅에 묻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 시점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부분은 현재 정부가 독립운동유공자의 공적을 재평가하고 있다는 점이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앞서 지난해 7월 국가보훈부는 공적심사위원회를 2심제에서 3심제로 확대해 심사의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고, 올해 4월 독립운동에 기여한 외국인 등 그동안 공적 심사에서 비중 있게 검토되지 못했던 영역을 재조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미래 세대에 독립운동의 기억이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올해 하반기부터 세부 방안 마련을 위한 학계 전문가 연구를 거쳐 심사기준 마련 및 재심사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해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유해의 국내 봉환, 독립운동 사료 수집·학술연구 활성화, 독립운동 교육 강화 등을 함께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만일 이 과정에서 ‘단지동맹’ 관련 자료 등이 모인다면 향후 동의단지회에 대한 추가 상훈 여부를 기다려 볼 만하지만 아직은 ‘글쎄’다. 중요한 건 관심과 의지다.

윤원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게 ‘단지동맹’인데도 (단지회 일원에게) 서훈을 전부 하지 못했다면, 그간 발굴되지 않은 독립운동가는 얼마나 많겠는가”라고 반문하며 “훌륭하신 선열 중 국가에게 외면당한 ‘버려진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이번 광복절을 맞아 국민 99%가 모르는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면서 정부도 적절한 움직임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단지동맹 이후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 인물이 많아서 추적이 힘든 상태다. 특히 최근 독립운동사 연구가 완전히 침체된 상황이어서 개별 인물(독립운동가)에 대해 파악하는 게 간단치 않은 문제”라며 “단지동맹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다. 그만큼 다른 독립운동가도 중요하다. 국가 차원에서 역사를 부정하고 소극적으로 나온다면 앞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므로 지금부터 당장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함경남도 갑산 태생인 조응순 선생은 정부가 진행하는 ‘묘소 찾기’ 사업의 대상자로, 국가보훈부가 후손을 찾고 있는 상태다.

단지동맹의 주축이던 안중근 의사도 ‘국권이 회복되면 유해를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순국 114주기인 올해까지 그의 유해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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