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유튜버의 비극

2024. 7. 15. 08:49■ 문화 예술/演藝. 방송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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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1000만 유튜버의 비극

유명인도 피해 가지 못한 교제폭력의 잔인함, 협박과 갈취가 난무하는 무법천지 유튜브 생태계가 드러난 사건이었다. 지난 3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유튜버’ 1위에 오른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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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1000만 유튜버의 비극

양성희2024. 7. 15. 00:35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유명인도 피해 가지 못한 교제폭력의 잔인함, 협박과 갈취가 난무하는 무법천지 유튜브 생태계가 드러난 사건이었다. 지난 3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유튜버’ 1위에 오른 먹방 유튜버 쯔양. 그녀가 4년간 교제폭력에 시달려 왔으며, 남자친구에게 40억원을 갈취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쯔양의 고소로 수사가 시작되자 남자친구가 자살해 사건은 종료됐는데, 이번에는 폭로 영상으로 조회수를 올리는 ‘사이버 레커’들이 달려들었다. 남자친구의 강요로 한때 술집에서 일했던 과거를 폭로하겠다며 거액을 뜯어낸 것이다. 이들 사이버 레커가 평소 신상공개를 통한 ‘정의구현 사적 제재’를 외치며 이름을 얻어온 이들이라 그 추악한 민낯에 충격이 컸다.

교제폭력 피해자였음이 밝혀진 인기 먹방 유튜버 쯔양. 가해자인 남자친구는 쯔양의 수익 40억원도 가로챘다. 남자친구 사망 이후에는 과거를 폭로하겠다는 사이버 레커들의 협박에 시달렸다. [쯔양 유튜브 캡처]

불법 촬영물로 협박하며 업소에 나가게 한 남자친구에게 유튜브라도 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고 시작한 게 먹방이었다. 채널이 인기를 끌자 남자친구는 소속사를 차리고 불공정 계약을 맺어 수익의 대부분을 챙겼다. 1000만 유튜버의 실상이 노예와 다름없는 착취였다니 끔찍한 일이다. 범죄 증거로 쓰인 폭행 녹음 파일만 3800개다. 헤어지려고 하면 폭행이 더 심해졌고, 유명인이란 족쇄는 더욱 이를 감추게 했다.

 

「 쯔양 사태 뒤엔 막장 '사이버 레커'들
폭로 협박이 판치는 유튜브 생태계
규제 및 처벌 강화 더 미룰 수 없어

사건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유튜버 카라큘라·구제역·전국진 3인이 쯔양에 대한 협박을 모의하는 휴대전화 녹음 파일을 공개하며 드러났다. 물론 이 과정에서 쯔양에 어떤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쯔양은 직접 대중 앞에 나와 교제폭력ㆍ협박 등 피해 사실들을 털어놨는데, 그녀로선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던 치부였을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때와 똑같은 방식이다. 당시에도 사이버 레커들이 가해자 신상공개를 하자 대중이 공분하고, 조회수가 치솟고, 채널이 대박 났지만, 정작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때도 일부 가해자 신상공개를 놓고 뒷돈이 오갔다는 의혹이 나왔다.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 측으로 몰기도 했다.
지난 5월 폭로 유튜버 엄태웅은 일명 ‘압구정 롤스로이스남’의 지인에게 두 사람의 친분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3억원을 받아냈다가 구속됐다. 미리 함정을 파 약점을 잡은 다음 돈을 뜯어내고 영상을 내려주는 일도 있다. 누군가의 상처를 먹잇감 삼거나 ‘악인을 벌준다’란 미명 아래 공갈 협박 등 범죄 혐의 행동이 돈 되는 콘텐트이자 사업 모델이 돼버린 셈이다. 허위 영상을 찍어도 낙인찍기 효과 때문에 힘없는 영세업자들은 속수무책이다. 사이버 레커들이 연합 모임을 만들고 불법 정보를 공유하며 덩치를 키워가는 위험성도 있다.
야수들의 돈벌이 판에 유튜브는 손 놓고 있고, 사이버 레커들은 ‘걸려 봤자 벌금 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이 때문에 처벌이 가벼운 명예훼손ㆍ모욕 혐의가 아니라 수익형 범죄로 규정해 처벌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렇게 되면 범죄 수익 몰수ㆍ추징이 가능해져 레커들에게 직접적이고 경제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실제 검찰은 최근 재판에 넘겨진 연예계 대표적 사이버 레커 ‘탈덕수용소’ 운영자의 재산 2억원을 동결 조치했다. 탈덕수용소가 지난 2년간 걸그룹 아이브 멤버인 장원영 등 스타들에 대한 허위사실 조작ㆍ유포로 벌어들인 수익은 2억5000만원에 달한다. 쯔양을 협박한 유튜버 3인에 대한 검찰 수사도 시작됐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자율규제ㆍ사후조치가 전부이지만, 유럽은 유튜브 등 빅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온라인 불법ㆍ허위정보, 폭력적 콘텐트의 폐해가 막심해서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8월부터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에게 온라인 불법 콘텐트 삭제 의무를 강제하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시행하고 있다. 사업자가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최대 연간 글로벌 매출의 6%를 과징금으로 매긴다.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플랫폼 기업들의 불법 콘텐트 면책 특권을 삭제하자는 논의가 초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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