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9. 13:00ㆍ■ 大韓民國/기념일 추모추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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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서부원 기자]
▲ 우리 학교에 설치한 현수막. 시교육청에서 내려보낸 견본이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에, 교사와 아이들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적었다. 이 질문으로 계기 수업을 진행해볼 작정이다. |
ⓒ 서부원 |
다섯 아이들은 '화동' 역할을 맡았다. 기념식 도중 윤석열 대통령과 유족 대표에게 다가가 감사와 위로의 꽃다발을 증정하는 일이다. 쉬는 주말에 참석해야 한다는 게 마뜩잖을 법도 하건만, 국가 주관 행사에 '출연'한다는 설렘으로 들떴다. 다른 때도 아닌 5.18 기념식 아닌가.
6시 30분쯤 도착했더니 두 아이가 먼저 와 있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깔끔한 교복 차림으로, 아침 등굣길의 부스스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방금 다림질한 듯 블라우스에 날이 서 있었다. 하복에 춘추복까지 가방에 챙겨왔다고 했다. 더 단정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7시 10분쯤 기념식장에 닿았다. 인접한 도로에는 경찰 버스가 늘어서 있었다. 그 옆으로 제복 차림의 경찰들이 줄 맞춰서 선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골목 어귀마다 빈틈없이 경찰이 배치되어 교통을 통제했다. 당일 기념식장에 개인 차량으로 접근하는 건 불가하다.
행사 시작 거의 세 시간 전인데도 정문은 경계가 삼엄했다. 소지품 검색 절차는 공항의 그것과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촘촘했다. 숱하게 해외를 다녔지만, 이번처럼 금속탐지기가 살갗을 긁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입장 카드와 비표를 교환한 뒤 드디어 기념식장에 들어섰다.
오전 7시까지 도착해야 한다고 강요하다시피 해놓고선, 정작 도착한 뒤에는 찾는 이가 없었다. 잠깐 대기하고 있으라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초여름 땡볕이 직사하는 곳에서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데면데면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른 학교에서 초청된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 기념식에 참석한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모습. |
ⓒ 서부원 |
정각 8시가 되어서야 전체 리허설을 시작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럴 거였으면 8시까지 오라고 했어야 옳았다. 아이들은 달궈진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죽여야 했다. 그렇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 없었던 건, 우리만 그랬던 게 아니어서다.
말이 좋아 리허설이지, 그냥 줄지어 입장한 뒤 나란히 꽃을 들고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다가가 꽃을 건네면 끝이었다. 복잡한 동선이나 따로 외워야 할 동작도 없었다. 굳이 리허설을 할 필요도 없이, 대기 장소와 함께 이전과 이후의 행사 꼭지만 알려주면 될 일이었다.
더욱 황당한 건, 고작 이걸 위해 평일이었던 전날(16일 금요일) 오후 시간까지 리허설을 위해 아이들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행사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했는데도 막무가내로 국가 행사이니만큼 협조해달라고 요구했다. 국가보훈부와 시교육청이 협의된 사항이라고 명토 박았다.
아이들의 수업 결손 문제를 당사자나 학교가 아닌, 시교육청과 협의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더니, 전가의 보도처럼 국가 주관 행사라는 말만 되뇌었다. 해당 아이들은 모두 학생회 임원으로 교내 5.18 추모 행사도 주관해야 한다며 통사정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의 수업권이 국가보훈부와 시교육청의 '위세'에 눌려 침해당한 셈이 됐다.
수업 결손도 그렇지만, 리허설을 한답시고 전날에도 오후 내내 땡볕 아래에서 시간을 죽여야 했을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더욱이 그들 중 둘은 오후 5시 금남로에서 치러진 5.18 전야제 행사에도 맡은 역할이 있어 발만 동동 굴렀다. 아이들 입에서조차 추모는커녕 '보여주기 행사'일 뿐이라는 조롱이 쏟아져나왔다.
리허설이 대강 마무리된 9시 즈음, 경호원으로 보이는 검은 양복 차림의 훤칠한 이들이 순식간에 기념식장을 뒤덮었다. 대부분 선글라스를 끼었고, 팔에 '근접'이라고 적힌 완장을 두른 이들도 여럿이었다. 발걸음은 분주했고, 움직이는 동안 누군가와 끊임없는 통화를 했다.
이윽고 낯익은 정치인들이 줄줄이 정문을 지나 기념식장으로 들어왔다. 소복을 입은 5.18 유족들과 노란 점퍼 차림의 세월호 참사 유족, 보라색 조끼를 입은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입장했을 때는 미동도 없던 이들이 여야 정치인들의 등장에 부나방처럼 몰려들었다. '보도' 완장을 찬 기자들과 스마트폰 거치대를 쥔 유튜버들이 뒤엉켜 이내 소란스러워졌다.
▲ 이른 아침부터 기념식장 의자를 손걸레로 닦고 있는 국가보훈부 말단 직원의 모습. 정작 중요한 건 놓치고 지엽적인 부분에만 매몰돼있는 것처럼 보였다. |
ⓒ 서부원 |
기념식의 주인공이 더는 유족이 아니었다.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지정된 자리에 앉을 때까지 정치인들 주변은 온갖 사람들로 들끓었다. 유튜버들의 스마트폰 앞에서 스스럼없이 포즈를 취하는 거물 정치인과 그들에게 다가가 눈도장 찍으려는 지방 의회 의원들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추모식이 아니라, 마치 전당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정치인들의 이름을 연호하고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의 소란 속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팬덤'의 환호를 앞세운 그들의 이름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죽어간 5.18 영령들의 모습이 겹치는 그로테스크한 순간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유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손바닥만 한 구름마저 걷히고 하늘엔 오직 해뿐이었다. 초여름 땡볕은 차양 종이 모자까지 뚫어낼 기세였다. 기념식장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도 뜨거워져 앉으나 서나 더위에 지치긴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모두 허기가 진 탓인지 아침나절의 더위인데도 견디기 힘들어했다.
아이들은 지금껏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리허설 대기만 하고 있다. 그들도 나처럼 새벽에 일어났을 테니, 본 행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족히 6시간 넘게 끼니를 굶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 대용 요깃거리 정도는 마련되어 있을 줄 알았다.
손걸레로 열심히 내빈이 앉을 의자를 닦고 있는 국가보훈부 직원에게 다가가 부러 물었다. 아이들이 배고파하는데 간식이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스마트폰에서 무언가를 찾아보더니 그런 계획은 아예 없다고 답했다. 기실 그도 아침을 거른 듯했다.
인솔 교사로서 화가 나 상급자로 보이는 이에게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다. 명색이 정부 기관이 아이들을 휴일 이른 아침에 국가 주관 행사에 동원했다면, 적어도 끼니는 챙겨줘야 마땅하지 않나. 협조 공문에다 학교와 할당 인원수까지 명시해 놓고선, 데려간 그들을 굶기다니...
▲ 기념식이 진행되던 같은 시간, 5.18 구묘역은 참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
ⓒ 서부원 |
9시 40분쯤 되자, 기념식장에 설치된 모든 카메라가 입구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대통령이 등장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서다. 객석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모두 카메라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대통령이야말로 5.18 기념식의 진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순식간에 입구의 그 많던 소지품 검색대가 치워졌고, 경호원들이 홍해 바다 가르듯 사람들을 밀쳐내며 길을 냈다. 전날부터 반복된 리허설도, 깐깐했던 소지품 검색도 모두 대통령을 위한 것이었던 셈이다. 때마침 아나운서는 "대통령의 입장과 함께 행사가 시작된다"고 운을 뗐다.
오전 10시 대통령이 유족 대표의 손을 잡고 기념식장에 들어올 때, 조금은 기이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정치적인 언행은 삼가달라'는 손팻말을 든 사람들이 기념식장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그들이 맨 어깨띠 위에는 '5.18 민주화운동 유족회'라는 글귀가 또렷했다.
5.18 기념식장에서까지 '입틀막 사태' 같은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호소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대통령 경호실의 '전략'이 주효한 셈이 된다.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잠자코 있으라'는 겁박의 메시지에 몸을 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나만의 억측일까.
국민의례와 함께 제44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시작됐다. 유난스러운 분위기 탓인지 객석의 1/3 정도가 비어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추모객보다 국가보훈부 직원과 경찰, 경호원의 숫자가 더 많게 느껴졌다.
▲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 때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라'는 손팻말 시위가 시작됐다. 순식간에 경호원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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