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3. 09:23ㆍ■ 大韓民國/福祉
"세금은 이렇게 쓰는 것" 극찬 '그늘막'…처음 만든 사람[아·시·발] (daum.net)
"세금은 이렇게 쓰는 것" 극찬 '그늘막'…처음 만든 사람[아·시·발]
남형도 기자입력 2024. 2. 23. 07:00수정 2024. 2. 23. 09:14
무더위쉼터 개념, 경로당 등 시설에만 갇혀 있던 걸 '바깥'으로 처음 확장해
ㅎ팀장 "주민 입장에서 배려 받는 느낌 들도록 디자인 고민…업체에 만들어달라고 사정"
조 의원 "물은 99도에서 안 끓어, '해결해보자' 하는 게 1도의 정성이지요"
[편집자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이디어의 시작과 발명, 이른바 '아시발'입니다. 시발(始發)은 '처음으로 일어남'이란 뜻입니다.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더 많이,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구청장님이 원하시는 사업이 있는데, 진행이 잘 안 되고 있는 게 있어요. 팀장님이 새로 오셨으니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ㅎ팀장은 그게 뭐냐고 물었다. 일종의 '무더위 쉼터' 같은 거란 대답이 돌아왔다. 업무적 개념에서의 무더위 쉼터는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경로당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했다. 그가 당시를 회상했다.
"원하시는 게 실내 시설이 아니라 그늘막 형태였어요. 인도나, 이런 길에 다닐 때 무더위나 햇빛을 잠깐 피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이었지요."
ㅎ팀장은 상상의 벽에 부딪혔다. 여러 그늘막 형태를 검토하던 이전 자료를 보며 고민을 이어갔다.
무더위 쉼터를 냉방 기능 없이 만들어야 하고, 근거를 찾기도 어렵단 것. 그러니 걱정 됐다. 그와중에 필요성은 일부 느꼈다. 뭐든 일단 검토해보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뭣보다 구청장 의지가 너무 강했다. "무조건 해보라"는 거였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햇볕이 너무 따가운 거예요. 우리 같은 사람은 이제 나이가 있으니 손으로라도 가려야 되거든요. '기미 끼면 어떡하나' 싶잖아요. 저보다 더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어떨까 싶었지요."
첫 아이디어가 그리 나왔다. 떠오른 발상이 사라지게 놔두지 않았다. 실행까지 걸린 시간이 아주 짧았다. 바로 부구청장에게 전화했다. 그가 알겠다고 했다. 주무부서로 아이디어가 내려갔다.
없던 걸 만드는 거라 녹록지 않았다. 조 의원이 말했다.
"제가 어떻게 보면 까다로운 점이 좀 있어요. 기왕이면 도시 미관이 좋았으면 싶었거든요. 시안을 가져오면 맘에 안 들고, 고쳐서 다르게 가져와도 성에 차지 않고요. 담당 팀장도 주무관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요."
구청장이 참여하는 회의가 계속됐다.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 무렵에 온 게 ㅎ팀장이었다. 표류하던 그늘막 아이디어에 대한 고민이, 전환점을 맞아 다시 시작됐다.
그는 신입 공무원 때부터 격려와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렇게들 고생했는데 기왕이면 격려해주면 좋을텐데, 수고했단 말을 아끼지 않으면 좋을텐데, 문제가 뭔지 묻고 함께 해결하면 좋을텐데.' 그런 고민이 배움이 됐다.
하물며 없던 걸 새로 만들 땐 그런 게 더 절실했다.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이게 안 되는 이유를 꼭 얘기해줬으면 좋겠어'라고 하거든요. 그걸 듣고 해소할 방안을 생각하는 거지요. 장애물들을 걸러주는 게 팀장, 과장 역할이잖아요. 혼자서 하긴 너무 어렵거든요."
구청장에 대해서도 그런 믿음이 있었단다. 뭔가 장벽에 부딪히고 문제가 생기면, 그걸 풀어줄 사람이란 확신.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더 애써볼 수 있었다고.
"어디 도시에 가보면 가로등이나 홍보판에 불필요한 디테일의 디자인이 가득했어요. 눈살이 찌푸려지고 주변 경관과 안 어울리더라고요. 돈은 돈대로 쓰고요. 일반 주민 입장에서의 시각이 빠졌단 느낌이 들었지요.
상식선에서 바라보면 된단 설명이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단 걸 알았다. 만들 땐, 만드는 이의 입장이 별수 없이 반영되기에. ㅎ팀장은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늘막을 만들 때도 고민이 이랬단다.
"색감이 좋았으면 좋겠더라고요. 좀 세련되게 말이지요. 햇빛을 피하러 들어갔을 때, 어쩔 수 없이 피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들어오니 괜찮네' 하고 기분 좋게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배려 받는 느낌이 중요했어요."
서초구에 세워진 횡단보도 그늘막, 서리풀 원두막이라 부른다./사진=뉴스1조 의원도 비슷한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었다. 서리풀 축제(서초구 축제) 퍼레이드를 기획할 때 "구청장님이 가장 앞에 서셔야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때 조 의원이 이리 말했단다. 어느 구민이 그걸 좋아하겠느냐고. ㅎ팀장은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었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다시, 해결하지 못한 그늘막 이야기. 여기에도 쓰는 이의 입장이 관건이었다. 그러니 ㅎ팀장은 '디자인'에 골몰했다. 아이디어를 내는 회의를 많이 했다. 새 업무를 구상할 땐 더 그랬다. 신규 직원과 얘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 직원은 아직 공무원 마인드가 없기 때문에, 주민 시각에 가깝다 여겼다고. 신규 직원이 봤을 때도 사업이 이해가 쉬워야 일이 쉬웠단다.
최종 시안 3개를 만들어 가져갔다. 색깔은 초록색과 베이지색으로 했다. 베이지색은 때가 탈 수 있으니, 초록색이 좋겠단 의견이 나왔다. 마침내 조 의원의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나왔다.
1년이 걸린 거였다.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단 원초적인 아이디어부터, 시안이 나오기까지.
2015년 6월, 서초구 양재역 사거리에 시범 설치됐던 횡단보도 그늘막./사진=서초구청시범사업으로 2개를 설치할 예정이었다. 문제는 이를 실제로 만들어줄, 업체가 있느냐는 거였다.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ㅎ팀장이 백방으로 업체를 수소문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시범사업으로 겨우 2개 만드는데, 누가 그 노고를 들이고 싶을까. 이를 넘어선 건 결국 '집요함'이었다.
"'저희를 믿고 한 번만 해주세요. 그러면 사장님도 잘 되실 거예요.' 그렇게 설득했지요. 그런데 다들 힘들다고 하기 싫어하시거든요. 전화를 수십통씩 돌렸지요."
잠시 기다리는 동안 따가운 햇빛을 피할 무언가가 생겼다는 것. 작지만 효과는 큰, 역지사지 행정./사진=뉴스1그러다 해줄 것 같단 느낌이 드는 업체가 생겼다. 전화를 놓지 않고 설득했다. 분명 반응이 좋을 거라고, 홍보 잘하겠다고, 다른 지자체도 이걸 할 수 있도록. 마침내 업체에서 만들어보겠단 승낙이 떨어졌다.
조 의원이 강조하는 '1도'가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말한 게 이랬다.
"제가 맨날 그런 얘길 하거든요. 물이 99도까진 안 끓는다. 마지막 1도를 더해야 액체가 기체가 된다. 그러거든요. 그냥 불편하다, 뭐 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건 99도에요. 뭘 해보자, 더하는 게 1도인 거지요. 그런데 아무거나 붙잡지 않고, 계속 반려하고 그런 과정인 거예요."
ㅎ팀장도 설치된 그늘막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설치 직전까지도 반신반의했거든요. 해놨는데 안 들어가 계시면 어쩌나 하고요. 그런데 그늘막 밑에 다 옹기종기 모여 계시더라고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안도했지요."
서초구민 반응은 뜨거웠다. "맨날 신호등 그늘 찾으려고 버둥댔는데 너무 좋다", "서초구민인데 진짜 좋다", "사람들 다 저 그늘막 아래에 들어가 있다", "횡단보도엔 무조건 있어야 한다", "세금은 이렇게 쓰라고 있는 거다."
확산 과정에선 애로 사항도 생겼다. 조 의원이 말했다.
"시범 사업 2개 땐 눈에 안 띄니까 괜찮았는데, 늘리려니까 못하게 하더라고요. 서울시에서 도로법 위반이라고요. 근데 근거를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주민들이 좋아하지 않느냐, 규제를 위한 행정이다, 라며 밑어부쳤지요. 그러고 나니 다른 구에서 난리가 났어요. 서초구에 가니까 이런 게 있던데, 왜 우린 안 하느냐고."
2017년에 120개를 설치했다. 이름은 '서리풀 원두막'으로 지었다. 겨울엔 트리로 만들었다. 더 만들어달란 주민 요청이 이어졌다. 서초구청 민선 6기 정책 사업 중 주민 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4월엔 행정안전부 '그늘막 지침' 기준으로 서리풀 원두막이 선정됐다. 원두막 아래 의자까지 설치됐다. 점차 진화해, 최근엔 자동으로 접었다 폈다 하는 스마트 그늘막까지 타 지자체에서 나왔다.
서리풀 원두막은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최초·최고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행안부는 지자체와 공공기관 혁신 사례를 발굴하고, 확산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그 전에도 나름대로 검토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늘막을 해본 이후엔, 누가 얘기하면 일단은 검토해요. 제 생각과 달라도요. 그렇게 해보니 의외로 잘 되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당시 가지고 있는 지식 수준에서 '된다', '안 된다'를 판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횡단보도를 건너는 서초구민들./사진=뉴스1잘 된 이야기엔 늘 숨겨진 힘듦이 있는 법. 과정에서의 고됨이 뭐였는지 끄집어내려 조 의원에게도 반복해서 물었었다. 쉬이 나오지 않았다. 긍정적이라 했다. 포기하지 않는 편이란다. 그래도 뭔가 포기하고 싶을 때, 다잡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고 늘어졌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
"힘들 때야 당연히 있겠지요. 왜 없겠어요."(조 의원)
"그럴 땐 그럼 어떻게 하세요."(기자)
"조금 쉬었다가 또 하면 되지요. 포기만 하지 않으면요."(조 의원)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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