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던 소니 화려한 귀환…전자 버리자 생긴 놀라운 일 | 중앙일보 (joongang.co.kr)

2023. 10. 28. 09:36■ 국제/글로벌 통신

에디터박형수

 질문 하나.
다음 중 소니와 관련 있는 건 무엇일까요. (주의: 풀이 과정에서 ‘세대 인증’ 가능)
① 워크맨
② 플레이스테이션
③ 귀멸의 칼날

사진 소니, 연합뉴스, 에스엠지홀딩스

보기를 보자마자 “1번”을 외친 분은 아마도 X세대(1965~79년생) 또는 그 전 세대가 아닐까 싶네요. 물론 워크맨은 소니의 대표작 맞습니다. 2번 ‘플스(PS)’를 고른 분도 꽤 계실 듯해요. 1994년 첫 발매 후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가정용 콘솔 게임기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니, 2번도 물론 정답이죠.

그럼 3번은 틀렸을까요? 아닙니다. ‘귀멸의 칼날’도 소니와 관계가 깊습니다.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4000만 부 이상 팔린 이 인기 만화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도 제작됐어요. 애니메이션을 제작·배급해 대박을 터뜨린 곳이 소니의 자회사 애니플렉스거든요. 또한 ‘귀칼’은 소니의 PS용 타이틀(‘히로카미 혈풍담’)로 출시돼 한국 게임 유저 사이에서도 제법 인기를 끌었죠. 아마 Z세대(90년대 중후반~2010년 초반) 독자라면 3번도 정답인 걸 금방 눈치채셨을 듯합니다.

이 글에서 저는 워크맨에서 플스, ‘귀칼’로 이어지는 소니의 변천사를 소개하려 합니다. 일본 ‘대장 브랜드’ 격인 소니의 부침·부활을 보다 보면 같은 시기 일본, 세계 경제의 변화도 파악할 수 있어요. 아울러 소니의 부활이 한국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도 살펴보려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워크맨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속한 X세대에겐 소니의 워크맨과 바이오 노트북은 오늘날 Z세대의 아이폰과 맥북을 뛰어넘는 존재였습니다. 뛰어난 기술력에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을 더해 혁신을 이끌던 브랜드로, ‘그 시절의 애플’인 셈이죠.

일본 도쿄 본사의 외관. 연합뉴스

📃목차

◦ 모노즈쿠리+감성… 잡스도 반했다
◦ 미국을 떨게 한 ‘日 전자입국’ 상징
◦ ‘소니 쇼크’ 몰고 온 세 가지 시련
◦ 전자 버리고 미디어 콘텐트 강자로
◦ 소니의 다음 도전은 ○○○
◦ ‘성공 방정식’에 안주하지 마라

모노즈쿠리+감성… 잡스도 반했다

소니가 세계 전자시장을 재패했던 1980~90년대, 소니의 명성을 최정점에 올려놓은 ‘3대장’은 워크맨·바이오노트북·트리니트론 TV입니다.

소니 브랜드의 차별성이자 타사와의 격차는 ‘기술과 디자인의 연결’에 있었습니다. 소니 제품들은 디자인 그 자체로 타사를 압도했고, 소니 특유의 장인정신(모노즈쿠리)에 기반한 제품의 견고한 만듦새와 탄탄한 품질이 브랜드의 매력도를 끌어올렸죠.

1960년대 출시된 컬러TV ‘트리니트론’. 출처 소니

특히 소니가 당시 역점을 둔 건 소형화였습니다. 세상에 없던 물건을 처음 내놓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원래 있던 물건을 작고 휴대가 가능하게 만들면서 디테일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개인화’하는 거였죠. 이런 제품들이 이어지면서 소니만의 스타일이 구축되며 자연스레 브랜드 이미지가 됐던 거죠.

소형화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어요. 소니가 포터블 오디오와 비디오 카메라를 개발할 때 담당 임원들은 시제품을 물을 가득 채운 통에 집어넣곤 했답니다. 시제품에서 공기방울이 부글부글 올라오면 임원들은 엔지니어들에게 호통을 쳤다고 해요. 제품에 더 줄일 만한 공간이 남아 있는데, 왜 그냥 뒀냐는 질책이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소니의 제품들은 글로벌 시장을 재패합니다. 소니의 제품과 기존 가전회사의 상품은 큰 차이가 있었죠. 기존 타사 제품들은 이런저런 기능을 내세워 소비자에게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식이었다면, 소니는 소비자가 “아, 정말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식이었죠.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한 소니 스타일에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도 심취했답니다. 그는 애플의 디자이너들에게 수시로 “소니라면 어떻게 만들지 생각하라”고 닦달했다고 해요. 특히 아이폰의 시제품을 만들 때 디자인 시안에 ‘소니’라고 적어넣은 적도 있어요. 이런 사실은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 때 공개돼 화제가 됐죠.

2020년 11월, 공식 출시를 앞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5 로고가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물론 소니의 이런 방식이 항상 통한 건 아니네요. 모노즈쿠리와 디자인 집착이 도를 넘어 자충수가 된 적도 있죠.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11월 발매된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플스3)입니다. ‘플스의 아버지’이자 ‘소니의 스필버그’로 불렸던 쿠다라기 켄 전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플스3를 ‘가정용 수퍼컴퓨터’라 부를 만한 압도적인 성능으로 개발했습니다. 소니·도시바·IBM 3사가 공동 개발한 최신형 반도체를 넣고 서체 하나, 냉각팬 디자인까지 섬세하게 조율해 가며 ‘하이엔드 끝판왕’으로 만들었죠.

하지만 예상외로 소비자들은 냉담했습니다. 완성도와 ‘고스펙’에 집중하다 보니 가격이 너무 셌죠. 어쩔 수 없이 고사양은 유지한 채 가격만 낮췄고 ‘팔수록 적자가 쌓이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원가절감을 거듭한 끝에 3년 반이 지나서야 역마진 고리를 끊어냅니다. 플스3 사태를 수습했던 히라이 가즈오 소니 전 회장은 “리스크가 너무 컸던 프로젝트”라면서도 “이 역시 끝없이 이상을 추구하는 소니다운 정신이 반영된 제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500자 더: 삼성-애플의 세기의 소송, 뜻밖의 승자는

2012년 삼성과 애플은 세기의 특허권 침해 소송을 벌입니다. 애플은 삼성의 휴대폰과 태블릿이 자사 제품과 너무 닮았다고 주장했죠. 그런데 이 분쟁에서 뜻밖의 승자가 나왔으니, 바로 소니입니다.

2012년 삼성이 법원에 제출한 문서 속 애플의 아이폰 초기 도면. 상품명에 소니라고 적혀 있다. 사진 캘리포니아 법원

삼성은 “애플은 소니 디자인을 참고했고, 이런 방식의 벤치마킹은 업계 관행”이라며 애플에 반격한 겁니다. 삼성이 법원에 지출한 문서를 통해 애플의 아이폰 초기 디자인이 공개됐는데, 이게 업계의 관심을 끌었죠.

문서에 첨부된 애플의 CAD 이미지에는 과거 소니의 PDA 제품인 ‘클리에’에 적용된 조그휠이나 컨트롤휠, 스위치 등을 구현한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모습과 느낌도 흡사합니다. 심지어 애플의 내부 도면 디자인에 ‘소니’라는 상품명까지 적어넣었습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평소 소니의 스타일을 높이 평가하며 아이폰 디자인 과정에서 “소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과제를 던져주었던 것으로 알려졌죠.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2004년 소니가 출시한 클리에 PDA 모델 TH55의 디자인. 인터넷 캡처

미국을 떨게 한 日 전자입국 상징

“온통 일본 제품들이 밀고 들어오니 그 속에 이런 괴물을 숨겼을 수 있다.”

1984년작 미국의 B급 공포영화 ‘그렘린’에 등장하는 대사입니다. 미국시장을 점령한 일본 제품에 대한민국인의 경계심이 반영된 대목이에요. 

1980~90년대 미국 할리우드 영화들 중엔 이처럼 일본·일본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종종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1990년작 SF영화 ‘백투더퓨처3’에선 주인공을 해고한 직장 상사가 일본인으로 나오죠.

영화 그렘린의 한 장면. 인터넷 캡처

당시는 일본 경제의 최전성기였습니다. 미국 뉴욕 5번가의 빌딩 대부분을 일본이 소유하고 있었고, 도쿄 땅을 전부 팔면 미국을 사버릴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죠. 미국 학계에선 경제대국 일본이 최강국 미국을 추월할 수 있나, 없나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곤 했죠.

당시 미국은 일본의 부상을 경계했습니다. 동맹국이긴 하지만 2차대전 전범국인 일본 경제가 미국을 잠식해 오는 상황을 위기이자 공포로 받아들였던 거죠.

이 시기 소니의 기세는 ‘욱일승천(旭日昇天)’ 그 자체였습니다. 소니는 1989년 미국 컬럼비아영화사를 34억 달러(약 4조5500억원)에 인수합니다. 2002년엔 미국 AT&T로부터 뉴욕 매디슨가 550에 위치한 고층빌딩을 사들여 ‘소니 아메리카’ 본사로 사용합니다.

한때 애플의 인수도 검토했다고 해요. 1995년 소니 사장으로 취임한 이데이 노부유키는 ‘향후 10년’이라는 보고서에 “애플을 인수하면 AV(오디오·비디오)는 소니, IT는 애플로 역할 분담이 가능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소니가 정말 맘을 먹었다면 가능했을 법합니다. 당시 소니는 최전성기였고, 애플은 잡스가 축출된 뒤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을 때였으니까요.

소니는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스튜디오이자 세계 빅5로 불리는 컬럼비아 픽처스를 1989년 인수했다. 소니픽처스는 영화 '스파이더맨' 등의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사진 소니픽처스

‘소니 쇼크’ 몰고 온 세 가지 시련

그런데 일본도, 소니도 갑작스레 기세가 꺾였어요. 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버블경제 폭발’로 10년, 아니 20년, 30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침체를 겪게 됩니다. 결국 2011년 일본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지위마저 중국에 내줬죠.

‘전자 제왕’ 소니는 2003년 4월, 불과 이틀 만에 주가가 27% 폭락하는 ‘소니 쇼크’를 맞게 됩니다. 이후 2009~2014년 연속 적자의 늪에 빠졌고, 2011년 최악의 적자(4550억 엔, 약 4조원)를 기록했고요. 급기야 2012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소니의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 수준인 ‘BB-’로 강등했죠.  

일본과 소니는 어쩌다 밑바닥으로 급전직하했을까요. 주된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 미국의 견제입니다. 1980년대 미국은 경쟁국 소련의 해체로 유일한 패권국가가 됐죠. 미국은 플라자 합의(1985년), 미·일 반도체 협정(1986년)을 통해 환율과 관세로 일본을 견제해 10년간 엔화를 70% 절상시킵니다. 이로 인해 일본 제품의 수출 경쟁력은 떨어졌고 일본을 주저앉혔다는 설명입니다.

1985년 9월22일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주요 5개 국가의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이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엔화와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에 합의했다. 중앙포토

둘째, 버블경제의 붕괴입니다. 고도성장으로 무역흑자가 나날이 커져 가던 일본은 규제를 완화하고 저금리 정책을 쓰며 경기 부양책을 시행 중이었죠. 실업률은 낮고 임금은 어마어마하게 높았고 부채 수준은 과도했습니다.

그러다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절상으로 수출이 망가질 수 있다는 판단에 한층 내수 부양에 집중하자, 주식과 부동산에 엄청난 버블이 생겼습니다. 이때 미국이 본격적으로 고삐를 죄면서 일본의 부풀려졌던 자산 가치가 붕괴했고 장기침체에 빠져들었죠.

마지막으로, 일본 경제를 이끌던 소니 등 전자업계가 전 세계적인 ‘디지털 흐름’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1997년 잡스의 복귀 후 절치부심한 애플은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을 출시했고 아이튠즈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형 생태계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죠.

반면에 소니는 과거처럼 소형화와 단순화에 집착해 미니 CD로 음악을 듣는 제품인 미니디스크(MD) 등에만 집중했습니다. 과거 성공의 신화에 취해 시대의 변화를 읽는 데 실패한 거죠.

전자 버리고 미디어 콘텐트 강자로

그랬던 소니가 부활했습니다. 부활의 키워드를 하나 꼽자면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아닐까 합니다.

부활한 소니는 ‘워크맨을 낳은’ 전설의 가전 브랜드가 아닙니다. 세계 3대 음반사 중 하나인 소니 뮤직, 할리우드 5대 메이저 영화사에 속하는 소니 픽처스를 손에 쥔 문화 콘텐트 강자입니다. ‘귀멸의 칼날’ ‘더 라스트 오브 어스’와 같은 인기 PC게임과 드라마 등도 소니의 대표 상품입니다.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그룹 회장의 말처럼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볼 수 있죠.

소니가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엔(약 9조원)을 돌파한 2021년도 실적을 보면 게임·미디어 분야 강세가 두드러집니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으로 처음 선보였던 라스트 오브 어스는 올해 HBO 드라마로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다. 사진 SIEK

전체 매출 중 27%가 게임·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에 음악(11%), 영화(12.2%) 등 미디어 매출을 더하면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게임과 미디어가 차지했죠. 반면에 전기·전자&솔루션 분야의 매출 비중은 23%에 그쳤습니다. 2000년에만 해도 소니 전체 매출 7조3148억 엔(약 66조원) 가운데 69%가 전자였고, 게임(9%)·음악(9%)·영화(8%)의 비중이 미미했던 것과 비교가 됩니다.

소니는 지난해에도 영업익 1조 엔 돌파에 성공했죠.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해 3월 소니의 신용등급을 10년 만에 ‘A3(안정적)’로 끌어올렸다고 하니, 소니 부활이 공식 인증된 셈이죠. 이전까지 일본 기업 중 영업익 1조 엔을 달성한 곳은 도요타뿐이었다고 해요.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정리하면 ‘탁월한 하드웨어 기량과 탄탄한 미디어 콘텐트가 조화를 이룬 기업으로의 진화’가 소니 부활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서 애플·삼성과는 다른 소니만의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죠.

소니의 다음 도전은 ○○○

소니의 다음 도전은 전기차입니다. 90년대 후반 디지털 흐름을 놓쳐 한동안 고생했던 소니로서는 세상을 바꾸는 새 흐름, 전기차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입니다.

소니의 전기차 비전-S 프로토타입이 지난 2020 CES에서 전시됐다. 연합뉴스

소니의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 아필라의 프로토타입이 2023 CES에서 공개됐다. 연합뉴스

소니는 2020년 세계 최대 ICT 전시회인 CES에서 전기차 플랫폼인 비전S 프로토타입을 발표했습니다. 지난해엔 7인승 SUV형 전기차를 선보였고요, 올해엔 혼다·퀄컴과 협력한 첫 전기차 ‘아필라’를 공개했죠. 2025년 아필라의 사전 계약과 양산을 시작하고, 2026년 북미 시장에 내놓는다는 계획이죠.

히라이 전 소니 회장은 저서『소니 턴어라운드』에서 “자동차 세계는 지금 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면서 “소니는 이 패러다임 전환의 파고 속으로 뛰어들려 한다”고 밝혔죠.

외신들은 소니가 가진 디자인과 이미지센서·인공지능(AI) 기술력, 게임·영화·음악 콘텐트가 총합한 ‘소니카’가 등장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궁극의 소비자 경험을 선사할 것”이란 기대감을 보이더군요. 아시다시피 애플도 애플카를 준비하고 있고, 한국 기업들도 관련 분야에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신(新)기술의 총체로 꼽히는 전기차 분야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궁금합니다.

📌700자 더: 로봇개 ‘아이보’ 만든 그 팀, 전기차 미래 이끈다

앞서 소니를 소개하면서 기존에 없던 제품을 개발하는 대신, 있던 제품을 소형화·단순화해 개인화하고 새로운 사용성을 덧입혀 혁신을 끌어낸 기업이라고 했었죠. 이런 소니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제품이 있으니, 바로 반려로봇 ‘아이보’입니다.

2018년 8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이보 팬미팅' 행사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보를 끌어안고 있다. 연합뉴스

1999년 첫 출시 당시 아이보는 25만 엔(약 230만원)이라는 고가에도 20분 만에 3000대가 팔려나가 매진됐습니다. 4개월 뒤 업그레이드 버전도 출시 17초 만에 완판됐고요.

하지만 소니가 경영난에 빠지면서 2006년 판매가 중단됩니다. 이때까지 팔린 아이보가 총 15만 대에 달합니다. 소니가 AS를 멈추자 일본 곳곳에선 고장난 아이보의 합동 장례식이 치러져 화제가 됐죠.

아이보는 2018년 1월 재출시됩니다. 12년 만에 부활한 아이보는 게임, 디지털 이미징, 이미지 센서, 카메라, AI, 클라우드 등 소니의 콘텐트와 기술력을 체현한 걸작이란 평을 받았습니다.

2018년 1월, 12년 만에 재출시되는 아이보를 선보이고 있는 소니의 가와니시 이즈미. 연합뉴스

‘소니 부활의 상징’으로 불리는 아이보 재출시를 주도한 곳이 소니의 AI 로보틱스 비즈니스팀입니다. 그런데 2020년 소니의 전기차인 비전S를 발표한 것도 바로 이 팀이에요. 발표 당시 팀의 수장인 엔지니어 가와니시 이즈미는 자동차와 로봇 강아지는 메커니즘이 다르지만 “주변 상황을 올바로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인다”는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더군요.

‘성공 방정식’에 안주하지 마라

소니와 일본 경제의 부침·부활은 그저 남의 얘기만은 아닙니다. 소니와 일본이 한창 시달렸던 침체가 한국 기업, 한국 경제에도 오는 게 아닐지 걱정이 들더군요.

일본 전문가인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박 교수는 “소니의 추락은 후발 주자인 한국 기업에 자신의 영토를 빼앗겨서가 아니라 미래의 영역인 디지털에서 애플에 밀려나서였다”고 말하더군요.

지금 ‘월드베스트’를 다투고 있는 한국 기업들도 주의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니가 한때 그랬듯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안주하면서 중국 등 후발 주자 따돌리기에만 급급한다면 발전은커녕 제자리도 지키기 어려울 테니까요.

박 교수는 “소니는 결국 소니만의 미래를 찾았을 때, 부활에 성공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궁극적으론 시대의 흐름·변화에 맞는 새로운 판을 짜는 데 성공하는 브랜드, 기업, 국가 경제가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겠죠. 워크맨에서 영화와 게임, 전기차, 로봇개에 이르는 소니의 변천에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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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턴어라운드

소니의 전 회장인 히라이 가즈오가 쓴 소니 부활의 뒷이야기 『소니 턴어라운드』
사원으로 입사해 그룹 총수에 오른 히라이 회장이 ‘소니 부활’을 위해 내렸던 선택과 결단을 소개한다. 항상 이견을 구하고 책임을 미루지 않으며 구성원 가슴에서 ‘열정의 마그마’를 터뜨려내는 그의 리더십도 살펴볼 수 있다. 위기를 맞은 조직을 되살리는 데 필요한 핵심 가치에 대해 고민하면서 읽어 보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