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왕국의 수도’ 80% 불타... 바다 뛰어든 사람 대부분 숨져

2023. 8. 12. 05:38■ 국제/미국

 

‘하와이 왕국의 수도’ 80% 불타... 바다 뛰어든 사람 대부분 숨져 (daum.net)

‘하와이 왕국의 수도’ 80% 불타... 바다 뛰어든 사람 대부분 숨져

뉴욕/윤주헌 특파원입력 2023. 8. 11. 21:15수정 2023. 8. 12. 03:08
 
‘불바다’ 하와이 최소 55명 사망… 바이든 ‘중대 재난’ 선포
대피하던 차들까지… - 8일 새벽(현지 시각)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산불이 시작된 지 사흘째인 10일, 섬 서북쪽 해안의 건물들이 모두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해 있다. 해안과 인접한 도로에 서 있는 자동차 상당수도 화재에 훼손돼 있다. 이번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11일 오전 2시 기준 55명까지 늘어났으며, 화재 피해를 입은 건물도 최소 1700여 채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AFP 연합뉴스

8일 새벽(현지 시각)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시작된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55명(11일 오전 2시 기준)까지 늘어났다. 현재 진화 작업에 큰 진척이 없는 데다가 생사가 파악되지 않은 실종자도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망자는 최소 60명을 넘길 것이라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전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산불은 하와이주의 미국 편입 이듬해인 1960년 5월 몰아닥친 쓰나미로 61명이 희생된 이래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불길 속에서 끝내 구조되지 못한 희생자들의 시신이 방파제 주변 바닷가를 떠다니고 있다는 등 참상의 목격담도 잇따르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0일 하와이 산불을 ‘중대 재난’으로 선포했다.

 

이번 화재로 옛 하와이 왕국의 수도이자 대표적 관광지였던 마우이섬의 라하이나는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됐다. 리처드 비센 시장은 10일(현지 시각) 언론 브리핑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It’s all gone)”고 말했다. 주요 외신들은 이번 산불이 하와이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빼어난 자연 절경과 유서 깊은 문화재가 곳곳에 있는 마우이섬은 하와이 제도의 여러 섬 중에서도 반드시 들러야 할 관광지로 꼽혔다. 그런 곳이 아비규환이 되면서 필사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관광객들 상당수는 주도(州都)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섬으로 대피했다. 하와이주 당국은 마우이섬에서 탈출한 관광객들을 위해 호놀룰루 시내 컨벤션센터에 긴급 수용 시설을 마련했다.

그래픽=김성규

하와이 말로 ‘잔인한 태양’이라는 뜻을 가진 라하이나는 마우이섬 서북쪽 해안에 있는 인구 1만2000여 명의 해안 도시다. 19세기 초까지 하와이 왕국의 수도였고, 소설 ‘모비딕’의 배경지로 유명하다. 매년 200만명 이상의 여행객이 찾는 관광 명소다. 하지만 강풍과 함께 몰아닥친 불길은 아름다운 도시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번 화재 희생자 대부분이 라하이나에서 나왔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10일 언론 브리핑에서 “구조 대원들이 라하이나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과 건물을 수색하기 시작해 사망자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희생자가 63년 전 쓰나미 때를 넘어설 것 같다”고 했다. 현지 언론은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불길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닷가로 뛰어든 사람들 중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라하이나의 한 주민은 현지 언론인 ‘하와이 뉴스 나우’에 “바닷가에 있는 방파제에 여전히 시신들이 둥둥 떠 있다”고 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 중 일부가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불길을 피해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라하이나 주민 브라이스 바라오이단은 온라인 매체 ‘뉴스네이션’에 “물 위에 떠 있던 배들이 화재로 폭발했고 기름이 흘러 나와 물에 떠 있던 사람들을 덮쳤다”고 전했다. 불길에 휩싸인 주택 옆 길가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람 등을 담은 영상과 사진이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퍼지고 있다. 그린 주지사는 이번 화재에 대해 ‘폭탄이 터졌다(a bomb went off)’고 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에서 산불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육군 주방위군 치누크 헬기가 상공에서 물을 뿌리고 있다. 전날 시작된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면서 사망자 수가 최소 53명으로 늘었다./EPA 연합뉴스

물적 피해도 막심하다. 라하이나는 오래된 목조건물인 경우가 많아 전체 건물의 80%가 전소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화재 피해를 입은 건물은 최소 1700여 채로 추산되고 있다. 유서 깊은 문화재들도 갑작스레 덮친 불길에 잿더미가 됐다. 마우이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으로 1835년에 선교사가 지은 ‘볼드윈 홈 박물관’과 1873년 인도에서 들여온 미국 최대의 반얀나무가 이번 화재로 소실됐다. 1900년대 초반에 지어져 선원들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던 여관 ‘파이어니어 인’과 와이올라 교회 등도 불길에 사라졌다. 화재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하와이 산불을 중대 재난으로 선포하고 연방 정부 차원의 복구 지원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주방위군 병력 134명과 해군 3함대 등이 현장에 투입됐다. 주방위군의 헬기는 화재 현장에 15만 갤런(약 56만8000L)의 물을 투하했다.

 

군경이 소방과 구조에 투입되는 사이 민간 항공사들이 주축이 된 ‘여행객 탈출 작전’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 주요 항공사들이 마우이의 관광객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항공편을 긴급 편성하면서 마우이섬의 항공 관문인 카훌루이 공항은 전시를 방불케 했다. 하와이안 항공은 호놀룰루를 오가는 6개의 추가 비행편을 운항했다. 알래스카와 델타 항공 등도 마우이에 고립되어 있는 여행객들을 나르기 위해 비행편 지원에 나섰다. 그럼에도 표를 구하지 못한 여행객 1400여 명은 공항 청사에서 밤새 머물며 추가 항공편을 기다렸다. 공항 인근 와일루쿠 등에 마련된 대피소 5곳에서도 약 1350명이 밤새 대기했다. 현지 언론들은 “대피소마저 자리가 부족해 대피소 밖 차 안에서 자는 사람들도 허다했다”고 전했다. 하와이 관광청에 따르면 수요일에는 1만4000명, 목요일에 1만4500명이 마우이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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