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괴짜 화가
2022. 7. 30. 02:42ㆍ■ 문화 예술/영화 이야기
[환경-자연 영화] 30년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괴짜 화가 (daum.net)
[환경-자연 영화] 30년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괴짜 화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입력 2022. 07. 29. 09:59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겪으며 사람들은 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코로나 이전에 집은 실질적으로 잠만 자는 곳이었다. 비몽사몽 간에 침대에서 벗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황급히 때우고, 비슷한 옷차림의 사람들로 가득 찬 전철에 시달리며 출근해 정신없이 업무에 매달린다. 파김치가 된 몸으로 다시 퇴근 트래픽을 버티며 귀가한 뒤엔 TV를 넋 놓고 쳐다보다가 어느새 곯아떨어지고, 곧 또 하루가 시작된다.
일반인의 이러한 생활 루틴에서 집은 식사를 때우고, 잠을 자는 공간일 뿐이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덮친 뒤 재택근무와 사회적 격리가 일상화되면서 집의 역할은 엄청나게 변한다.
PC를 켠 채 업무를 보고, 일의 효율적 처리를 위해 생각과 고민을 하고, 매일 두 끼 이상의 식사를 준비하고, 짬을 내 간단한 운동까지 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일본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
큰 평수의 아파트, 타운하우스, 나아가 전원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집을 바꿀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은 불요불급한 세간을 정리해 활동 공간을 확보하고, 화분을 들여 숨통을 트이게 하고, 매트와 덤벨을 구입해 '확찐자'가 된 몸을 추스리게 됐다.
2년 반에 걸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자 사람들은 공원과 공연장, 공항으로 몰려나오고 있다. 마치 그동안 엄청 부당한 조치를 받아왔고, 이제 그에 대한 큰 보상이라도 받으려 작정한 듯한 모습들이다.
그런데 여기 무려 30년 동안 자기 집 밖을 나오지 않고 칩거한 인물이 있다. 일본의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熊谷守一 (1880~1977)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나이 50이 지나서야 그림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는 그는 42세 때 24세였던 히데코와 결혼하고, 1932년 도쿄도 북서쪽 도시마구豊島區에 자택을 지어 사망할 때까지 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기행奇行에 가까운 그의 삶을 따스하고 유머 있게 담은 작품이 <모리의 정원モリのいる場所> (감독 오키타 슈이치, 2018)이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구마가이가 94세 때인 1974년이다.
영화는 아침 식사 장면으로 시작한다. 식구는 모리카즈(야마자키 츠토무)와 부인 히데코(키키 키린), 그리고 살림을 돕고 있는 중년의 여조카, 이렇게 셋이다.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먹는 즐거움이 필수이듯, 이 영화에서는 유독 먹는 장면이 자주, 세세하게 묘사된다. 별다른 특식도 없고, 대화도 거의 없는, 아주 일상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식사 모습인데, 가만히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간혹 이런 대화가 오간다.
부인: 머리 좀 어떻게 안 돼요? 오늘 손님도 오는데 자고 일어난 머리 그대로잖아요.
남편: 자고 일어난 머리가 그날의 머리 스타일이야.
부인: 뒷머리라도 좀 잘라봐요
남편: 인간은 목 뒤가 급소야. 머리카락으로 이렇게 잘 보호해야 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주는 유머
아침 식사를 마친 화가는 고깔모자를 쓰고 양손에 지팡이를 하나씩 든 채 마당 정원으로 '출근'을 한다. 노부인은 "잘 다녀오시라. 조심하시라"며 배웅까지 한다.
온갖 풀과 나무로 덮여 작은 숲처럼 보이는 정원에서 화가가 하는 일은 나뭇잎을 쳐다보며 "그새 또 자랐구나" 혼잣말하고, 땅바닥에 뺨을 댄 채 엎드려 부지런히 오가는 개미들을 지켜보며, 작은 돌 하나를 주워 손바닥에 놓은 채 한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러다가 아무 데나 덜렁 누워서 하늘을 올려 보거나 잠을 잔다.
30년 넘게 집 안에 머물고 있는 부부지만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이다. 집에는 화가의 글씨를 받으러 온 상점 주인, 카레 음식을 너무 많이 해 나눠 주러 온 이웃 주부, 지나다 들른 동네 사람 등 온갖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이날은 숙박업을 시작하려는 한 자영업자가 화가로부터 현판 글씨를 받기 위해 멀리서부터 신칸센을 타고 방문했다. 부인은 "남편이 연못을 쳐다봐야 해서 글씨 받기 어렵다"고 정중하게 사양했으나, 먼 곳에서 왔다며 사내가 간청하자 남편을 설득한다.
지나다 들른 동네 주민 몇몇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내는 정성 들여 마련해 온 편백나무 현판을 보자기에서 꺼내며 '운수관運水館'이란 글자를 부탁했는데, 정작 화가가 일필휘지로 써 내린 글자는 '무일물無一物', 즉 '가진 게 없다'였다. 화가는 "잘 가라"며 다시 정원으로 사라지고, 둘러앉아 있던 주민들은 "이번 기회에 아예 업소 이름을 바꾸라"고 조언(?)을 한다.
현판 보자기를 들고 집 밖으로 나선 사내를 따라가던 카메라는 화가의 집 나무 울타리에 붙여진 벽보들을 보여준다. "구마가이熊谷의 예술을 지키자! 후대에 부끄러움을 남기지 마라", "아파트 건설 절대 반대", "이 정원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일본 최고의 미술이 태어난다", "일본의 문화를 아파트로 부수지 마라" 등등. 젊은 미술인들이 지역 개발로 인한 화가의 정원 훼손을 반대하며 붙인 벽보들이다. 예술과 현실의 갈등이다.
구마가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로, 30년 동안 집에서 한 발짝도 바깥에 나가지 않으면서 정원의 생물들만을 관찰한다 해서 "신선 아니면 요괴"로 불리고 있었다. 밤마다 '학교'라 부르는 작업실로 들어가 그림을 그린다.
그의 이런 면모를 다룬 TV 프로그램이 방영되자 좋아하며 시청하는 부인, 조카와 지역민들 몰래 혼자 집 밖으로 나온 화가가 얼마 못 가 골목에서 초등생 여자아이와 눈을 마주친 후 도망치듯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도 보여 준다. 집으로 찾아오는 온갖 손님들을 접대하는 부인과 달리 화가 남편은 이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이다.
묵묵히 괴팍한 남편 곁을 지키는 아내 역 키키 키린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가 좋다. 망막 박리에 따른 한쪽 눈 실명과 유방암을 극복하고 연기를 지속했는데, 이 영화가 개봉된 2018년에 사망했다.
<모리의 정원>에서 94세 남편이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살고 싶어. 사는 게 좋잖아"라고 말할 때 아내가 "나는 싫어요. 피곤하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일찍 죽어버렸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장면은 한 예술가의 성취를 위해 주변에서 감내해야 할 희생과 인고忍苦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장면 사이 사이에 온갖 종류의 벌레들과 물고기, 새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새 소리와 바람 소리, 정적 등으로 배경을 채운다. 녹색의 정원 풍경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영화다.
게다가 은근히 코믹하다. 뚜렷한 플롯 전개 없이 소소한 에피소드 몇 개를 이어가는데 자지러지게 폭소를 터뜨리는 게 아니라, 피식피식 코웃음이 새어 나오게 하거나 관객으로 하여금 슬며시 미소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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