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자리 깔고 발 담그면..뼛속까지 시린 피서 명당"
2022. 7. 18. 10:09ㆍ■ 여행/국내 여행지 소개
"돗자리 깔고 발 담그면..뼛속까지 시린 피서 명당"[투어테인먼트]
강석봉 기자 입력 2022. 07. 18. 04:50 수정 2022. 07. 18. 07:46소문난 계곡피서지 6곳
밀양 쇠점골 계곡. 사진제공|밀양시청
무더위는 제대로 진용을 갖췄다. 매년 이맘때 어김없이 총공세다. 전격전의 돌격 대오는 위풍도 당당하다. 이글거리는 눈 부라리며, 천군의 왕 태양신은 집결호를 울렸다. 고온다습의 침공 전략은 매년 그 기세를 더해간다. 그렇다고 손 놓고 당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바람도 숨죽인 대지를 피해, 깊은 산속에서 바람을 모은다. 나무들이 어깨를 엮어 핵우산 그늘막을 만들었다. 골을 따라 흐르는 계곡 청정수도 대항군을 자처했다. 산새의 응원가는 군악대의 군령이 되어 기죽었던 마음에 힘을 보탠다. 희망이다. 작렬하는 태양의 공성전에 맞서, 든든히 수성전을 준비하는 바캉스족의 안시성, 계곡 여행지 6곳이 여기에 있다.
화림동 계곡 농월정.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용현계곡. 사진제공|서산시청
충남 서산에는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이 있다. ‘서산 마애 삼존불상’으로도 불리는데, 큰 암벽 중앙에 높이 2.8m 석가여래입상이 있고,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 왼쪽에 제화갈라보살 입상이 호위한다.
이들의 미소와 함께 용현자연휴양림까지 약 2.7㎞ 이어지는 도로 왼쪽에 용현계곡이 있다. 이제 더위에 지친 여행객이 웃을 차례다. 가야산이 품은 이 계곡은 수려함에 눈길이 ‘샤방샤방’이다. 용현계곡은 총 길이 약 5㎞에 이른다. 가야산 줄기인 석문봉 아래 옥양봉과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북동쪽 능선과 일락산에서 상왕산으로 연결되는 북서쪽 능선 사이에 길게 매복해 있다. 수량이 풍부하고, 천연기념물 붉은박쥐(황금박쥐)와 수리부엉이, 가재와 반딧불이 등이 서식하는 곳이니, 청정지역임은 두말이 필요 없다.
용현계곡. 사진제공|서산시청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이 물놀이터다. 수심이 무릎 높이 정도라 가족끼리 편안하고 안전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다. 계곡은 휴양림 쪽으로 갈수록 울창하고 깊어진다.
인근에 해미읍성(사적)이 있다.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사적),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사적)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읍성’으로 꼽힌다.
용현계곡. 사진제공|서산시청
해미읍성을 봤다면 개심사 정도는 들러줘야 한다. 주차장에서 개심사 경내까지 멀지 않다. 개심사에 들어서기 전, 외나무다리와 만난다. 외나무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경내에 들 수 있지만, 일부러 찾아온 이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이 풍경에 반해 다리를 건넌다.
개심사는 가람을 받치는 기둥도 볼거리다. 하나같이 굽었고 배가 불룩하며, 위아래 굵기가 다르다. 나무를 전혀 손질하지 않고 원래 모양대로 썼다. 굽은 나무로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화림동 거연정 모습. 사진제공|함양군청
함양군 선비문화탐방로는 화림동계곡의 비경을 엮어 만든 길이다. 블루마블 놀이처럼 여덟 개의 못과 여덟 개의 정자가 연이어 있다. 이 ‘팔담팔정(八潭八亭)’은 선비들이 화림동계곡에서 풍류를 즐긴 전리품이다. 짙은 숲과 맑은 계곡, 단아한 정자가 이 계곡에 스타카토를 찍으며 한 폭의 산수화는 그렇게 완성됐다. 탐방로 전체에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꽃향기가 동행하니 지루한 줄 모른다. 정자에 오르거나, 너럭바위에 쉬어가거나, 얼음 같은 물에 탁족을 즐기면 선비의 풍류가 내 몸에 오버랩된다.
화림동에서 느끼는 선비들의 풍류. 사진제공|함양군청
벼슬길에서 물러난 조선의 선비들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며 후학을 양성했다. 화림동계곡은 선비들 최고의 은신처요 풍류의 요람이었다. 화림동계곡에는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 등 정자들이 줄줄이 이어진 이유다. 무더위쯤은 조상들이 친 이곳의 결계를 뚫지 못한다.
화림동 계곡. 사진제공|함양군청
이들 정자가 옥구슬처럼 꿰어진 선비탐방로는 전체 10㎞가 조금 넘는다. 길은 거의 평지에 가깝다. 걷다가 정자에 올라가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아도 좋고 너럭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헤아려도 좋다. 무장 해제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탁족을 즐겨도 그만이다.
화림동 동호정.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선비문화탐방로는 2코스로 나뉜다. 두 코스다 남녀노소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이지만 한여름에는 1코스를 추천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선비문화탐방로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남계서원과 일두고택까지 둘러보는 것도 좋다. 남계서원은 경남에서 유일하게 서원철폐령에서 살아남은 서원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9개의 서원 중 하나다.
도림사 계곡. 사진제공|곡성군청
산속에 또 산이 들어 있다. 그 깊은 골은 동악산을 냉풍욕장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천혜의 자연이 빚어낸 계곡을 따라 울창한 숲속에 천년고찰 도림사가 웅거해 있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는 여름 내내 무한리필이다.
동악산 남쪽 기슭, 성류구곡에 있는 도림사는 660년(신라 무열왕 7년)에 원효대사가 화엄사에서 나와 지은 절이라고 전해진다. 절을 지은 후 도선국사,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 도를 닦는 승려들이 숲처럼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불리고 있다. 곡성 8경 가운데 하나인 도림효종(道林曉鐘)은 도림사의 종소리가 새벽 기운을 타고 먼 곳까지 은은하게 퍼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도림사가 있는 동악산은 원효대사가 도림사와 길상암을 창건할 때 온 산자락의 풍경들이 하늘의 풍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림사 계곡. 사진제공|곡성군청
도림사 계곡은 전라남도 기념물 101호로 지정된 자연유산이다. 월봉계곡으로도 불리는 도림사 계곡에서는 동악산 남쪽 골짜기를 따라 동악계곡, 성출계곡과 함께 넓은 암반 위로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도림사계곡은 울창한 잡목 숲과 넓은 반석 위로 흐르는 아홉 구비의 계곡물이 용소와 소금쟁이 소 등의 여러 소를 이루며 절경을 이룬다. 푸른 비단을 펼친 듯 계곡을 따라 흐르는 작은 폭포와 솔숲이 어우러진 광경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수려하다. 계곡의 정상에는 높이 4m, 넓이 100㎡에 이르는 신선바위가 있다.
도림사 계곡. 사진제공|곡성군청
예부터 풍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계곡의 9개 넓은 바위에는 선현들이 새겨놓은 글자가 그대로 남아있어 색다른 풍류를 느낄 수 있다. 도림사계곡에는 암반 계류의 절경을 1곡(一曲)부터 9곡(九曲)까지 새겨놓은 작은 바위들이 약 1㎞에 걸쳐 이어진다.
도림사 계곡에는 아이들과 청년들은 수영장처럼 야트막한 웅덩이와 완만하게 다듬어진 바위에서 미끄럼을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
갈론구곡. 사진제공|괴산군청
갈론계곡은 충북 괴산 칠성면에 있다. 갈론계곡에 있는 아홉 곳의 명소를 일컬어 갈론구곡이라 부른다.
갈론계곡은 다른 계곡보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 한적하게 거닐기 좋은 곳이다.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계곡물이 시원하고 맑은 데다 너럭바위가 많아 물놀이를 즐기기도 좋다.
갈론구곡 산책길. 사진제공|괴산군청
갈론계곡은 근처 마을에 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숨어 살았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약 3㎞ 길이의 트레킹 코스에는 기암절벽과 함께 수려한 계곡 풍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1곡부터 9곡까지 바위마다 다양한 서체의 한시가 새겨진 아홉 개 명소는 계곡 곳곳에 숨은 듯 자리해 있다.
갈론교를 건너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20여 분 걷다 보면 병풍처럼 늘어선 바위가 나타난다. 바위에 한자로 새겨진 ‘갈은동문’이라는 글씨가 갈론구곡의 시작을 알린다.
갈론구곡. 사진제공|괴산군청
갈론구곡의 진정한 비경은 3곡 강선대부터 시작된다. 옥녀봉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탐방로 아님’ 표지판 방향을 따라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강선대는 신선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는 뜻이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로 되돌아와 옥녀봉 방면 산길을 1㎞쯤 오르면 계곡 왼편에 4곡 옥류벽이 나타난다.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인 절벽 아래 옥색의 물이 흐르는 풍경이 아름답다.
옥류벽부터는 등산로를 따라 쉬엄쉬엄 걸으며 계곡을 유심히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다. 옥류벽에서 상류 쪽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5곡 금병은 기암절벽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5곡에서 50m 남짓 떨어진 곳에는 거북이 모양 바위가 놓인 6곡 구암이 자리해 있다. 이후 등산로를 따라 한참 오르면 ‘고송 아래로 흐르는 물가에 지은 집’이란 뜻의 7곡 고송유수재, ‘일곱 마리 학이 살던 동네’라는 뜻을 지닌 8곡 칠학 동천, ‘신선이 바둑을 두던 바위’라는 의미의 9곡 선국암이 가까이 모여 있다.
쇠점골 계곡. 사진제공|밀양시청
여름철 트레킹은 덥고 힘들다는 편견을 시원스럽게 깨버리는 곳이 있다. 밀양 쇠점골 계곡 길이다. 가지산에서 흘러내린 투명한 계곡물은 시원하다 못해 시릴 정도다.
쇠점골은 가지산도립공원의 3대 계곡 가운데 하나다. 경상남도 밀양시와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경계에 서 있는 가지산(해발 1241m)은 운문산, 천황산, 간월산, 신불산 등과 함께 영남 알프스를 이룬다.
쇠점골 오천평 반석. 사진제공|밀양시청
먼 옛날 말의 편자를 가는 대장간이 있어 ‘쇠점골’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쇠점골 계곡 길은 조선시대 밀양과 언양을 잇는 옛길을 트레킹 코스로 되살린 길이다. 백연사를 출발해 호박소, 구름다리, 너럭바위를 거쳐 석남터널 입구의 소공원까지 갔다가 다시 백연사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형 코스로 왕복 8㎞,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길이 비교적 평탄한 편이다.
쇠점골 계곡 길은 얼음골 가는 길 끝에 있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호박소 주차장이 넓게 자리한다. 호박소 갈림길에서 구름다리를 건너가면 쇠점골 계곡 길이 시작된다. 길은 계곡을 옆에 끼고 머리에는 짙은 그늘을 이고 내내 이어진다. 중간중간에 폭포, 소, 너럭바위 등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쇠점골 계곡은 유난히 넓고 평평한 바위가 많아 여름철 피서객들이 쉬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계곡 길을 1㎞ 정도 걸으면 넓은 바위가 계곡을 뒤덮고 있는 장관을 만난다. 쇠점골의 명물 오천 평 반석이다. 여기서부터 작은 폭포가 이어지면서 볼거리는 계속된다.
느긋한 여름휴가를 즐기기 좋은 성주 포천계곡. 사진제공|성주군청
성주 한개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주민들이 살며 옛 모습을 지켜가는 전통 마을이다. 한개는 ‘큰 개울’ ‘큰 나루’를 뜻하는 순우리말인데, 과거 마을에 큰 개울이나 나루가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영취산에 둘러싸인 한개마을 전경. 사진제공|성주군청
한개마을은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들어와 개척한 마을이다. 한때 100여 채에 이르던 집은 현재 70여 채 남았다. 이중 대산동 교리댁(경북민속문화재)은 멋스러운 사랑채와 잘 가꾼 정원이 아름답다.
성주의 보랏빛 맥문동 꽃이 흐드러진 성밖 숲의 여름. 사진제공|성주군청
한개마을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 포천계곡이 있다. 가야산이 빚어낸 그림 같은 계곡으로, 반석의 짙푸른 무늬가 베(布)를 널어놓은 것 같다고 포천이란 이름이 붙었다. 7㎞에 이르는 물줄기를 따라 곳곳에 너럭바위와 작은 폭포가 펼쳐져 있다. 포천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꼽은 포천구곡 가운데 9곡에 속하는 홍개동 근처라 풍광이 빼어나다. 성주8경의 하나로 꼽히는 경산리 성밖숲(천연기념물)도 빼놓을 수 없다. 수령 300~500년에 이르는 왕버들 50여 그루가 있는 숲이다. 최근에 왕버들 주변으로 맥문동을 심어 보랏빛 맥문동꽃이 흐드러진 여름 풍경을 눈에 가득 채울 수 있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포천계곡 폭포. 사진제공|성주군청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무더위는 제대로 진용을 갖췄다. 매년 이맘때 어김없이 총공세다. 전격전의 돌격 대오는 위풍도 당당하다. 이글거리는 눈 부라리며, 천군의 왕 태양신은 집결호를 울렸다. 고온다습의 침공 전략은 매년 그 기세를 더해간다. 그렇다고 손 놓고 당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바람도 숨죽인 대지를 피해, 깊은 산속에서 바람을 모은다. 나무들이 어깨를 엮어 핵우산 그늘막을 만들었다. 골을 따라 흐르는 계곡 청정수도 대항군을 자처했다. 산새의 응원가는 군악대의 군령이 되어 기죽었던 마음에 힘을 보탠다. 희망이다. 작렬하는 태양의 공성전에 맞서, 든든히 수성전을 준비하는 바캉스족의 안시성, 계곡 여행지 6곳이 여기에 있다.
■ 가재와 멱감는 청정자연…서산 용현계곡
충남 서산에는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이 있다. ‘서산 마애 삼존불상’으로도 불리는데, 큰 암벽 중앙에 높이 2.8m 석가여래입상이 있고,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 왼쪽에 제화갈라보살 입상이 호위한다.
이들의 미소와 함께 용현자연휴양림까지 약 2.7㎞ 이어지는 도로 왼쪽에 용현계곡이 있다. 이제 더위에 지친 여행객이 웃을 차례다. 가야산이 품은 이 계곡은 수려함에 눈길이 ‘샤방샤방’이다. 용현계곡은 총 길이 약 5㎞에 이른다. 가야산 줄기인 석문봉 아래 옥양봉과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북동쪽 능선과 일락산에서 상왕산으로 연결되는 북서쪽 능선 사이에 길게 매복해 있다. 수량이 풍부하고, 천연기념물 붉은박쥐(황금박쥐)와 수리부엉이, 가재와 반딧불이 등이 서식하는 곳이니, 청정지역임은 두말이 필요 없다.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이 물놀이터다. 수심이 무릎 높이 정도라 가족끼리 편안하고 안전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다. 계곡은 휴양림 쪽으로 갈수록 울창하고 깊어진다.
인근에 해미읍성(사적)이 있다.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사적),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사적)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읍성’으로 꼽힌다.
해미읍성을 봤다면 개심사 정도는 들러줘야 한다. 주차장에서 개심사 경내까지 멀지 않다. 개심사에 들어서기 전, 외나무다리와 만난다. 외나무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경내에 들 수 있지만, 일부러 찾아온 이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이 풍경에 반해 다리를 건넌다.
개심사는 가람을 받치는 기둥도 볼거리다. 하나같이 굽었고 배가 불룩하며, 위아래 굵기가 다르다. 나무를 전혀 손질하지 않고 원래 모양대로 썼다. 굽은 나무로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 선비들의 탁족 명소…함양 화림동계곡
함양군 선비문화탐방로는 화림동계곡의 비경을 엮어 만든 길이다. 블루마블 놀이처럼 여덟 개의 못과 여덟 개의 정자가 연이어 있다. 이 ‘팔담팔정(八潭八亭)’은 선비들이 화림동계곡에서 풍류를 즐긴 전리품이다. 짙은 숲과 맑은 계곡, 단아한 정자가 이 계곡에 스타카토를 찍으며 한 폭의 산수화는 그렇게 완성됐다. 탐방로 전체에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꽃향기가 동행하니 지루한 줄 모른다. 정자에 오르거나, 너럭바위에 쉬어가거나, 얼음 같은 물에 탁족을 즐기면 선비의 풍류가 내 몸에 오버랩된다.
벼슬길에서 물러난 조선의 선비들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며 후학을 양성했다. 화림동계곡은 선비들 최고의 은신처요 풍류의 요람이었다. 화림동계곡에는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 등 정자들이 줄줄이 이어진 이유다. 무더위쯤은 조상들이 친 이곳의 결계를 뚫지 못한다.
이들 정자가 옥구슬처럼 꿰어진 선비탐방로는 전체 10㎞가 조금 넘는다. 길은 거의 평지에 가깝다. 걷다가 정자에 올라가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아도 좋고 너럭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헤아려도 좋다. 무장 해제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탁족을 즐겨도 그만이다.
선비문화탐방로는 2코스로 나뉜다. 두 코스다 남녀노소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이지만 한여름에는 1코스를 추천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선비문화탐방로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남계서원과 일두고택까지 둘러보는 것도 좋다. 남계서원은 경남에서 유일하게 서원철폐령에서 살아남은 서원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9개의 서원 중 하나다.
■ 곳곳에 너럭바위와 소…곡성 도림사 계곡
산속에 또 산이 들어 있다. 그 깊은 골은 동악산을 냉풍욕장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천혜의 자연이 빚어낸 계곡을 따라 울창한 숲속에 천년고찰 도림사가 웅거해 있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는 여름 내내 무한리필이다.
동악산 남쪽 기슭, 성류구곡에 있는 도림사는 660년(신라 무열왕 7년)에 원효대사가 화엄사에서 나와 지은 절이라고 전해진다. 절을 지은 후 도선국사,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 도를 닦는 승려들이 숲처럼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불리고 있다. 곡성 8경 가운데 하나인 도림효종(道林曉鐘)은 도림사의 종소리가 새벽 기운을 타고 먼 곳까지 은은하게 퍼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도림사가 있는 동악산은 원효대사가 도림사와 길상암을 창건할 때 온 산자락의 풍경들이 하늘의 풍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림사 계곡은 전라남도 기념물 101호로 지정된 자연유산이다. 월봉계곡으로도 불리는 도림사 계곡에서는 동악산 남쪽 골짜기를 따라 동악계곡, 성출계곡과 함께 넓은 암반 위로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도림사계곡은 울창한 잡목 숲과 넓은 반석 위로 흐르는 아홉 구비의 계곡물이 용소와 소금쟁이 소 등의 여러 소를 이루며 절경을 이룬다. 푸른 비단을 펼친 듯 계곡을 따라 흐르는 작은 폭포와 솔숲이 어우러진 광경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수려하다. 계곡의 정상에는 높이 4m, 넓이 100㎡에 이르는 신선바위가 있다.
예부터 풍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계곡의 9개 넓은 바위에는 선현들이 새겨놓은 글자가 그대로 남아있어 색다른 풍류를 느낄 수 있다. 도림사계곡에는 암반 계류의 절경을 1곡(一曲)부터 9곡(九曲)까지 새겨놓은 작은 바위들이 약 1㎞에 걸쳐 이어진다.
도림사 계곡에는 아이들과 청년들은 수영장처럼 야트막한 웅덩이와 완만하게 다듬어진 바위에서 미끄럼을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
■ 신선 논다던 옥빛 풍경…괴산 갈론구곡
갈론계곡은 충북 괴산 칠성면에 있다. 갈론계곡에 있는 아홉 곳의 명소를 일컬어 갈론구곡이라 부른다.
갈론계곡은 다른 계곡보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 한적하게 거닐기 좋은 곳이다.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계곡물이 시원하고 맑은 데다 너럭바위가 많아 물놀이를 즐기기도 좋다.
갈론계곡은 근처 마을에 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숨어 살았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약 3㎞ 길이의 트레킹 코스에는 기암절벽과 함께 수려한 계곡 풍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1곡부터 9곡까지 바위마다 다양한 서체의 한시가 새겨진 아홉 개 명소는 계곡 곳곳에 숨은 듯 자리해 있다.
갈론교를 건너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20여 분 걷다 보면 병풍처럼 늘어선 바위가 나타난다. 바위에 한자로 새겨진 ‘갈은동문’이라는 글씨가 갈론구곡의 시작을 알린다.
갈론구곡의 진정한 비경은 3곡 강선대부터 시작된다. 옥녀봉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탐방로 아님’ 표지판 방향을 따라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강선대는 신선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는 뜻이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로 되돌아와 옥녀봉 방면 산길을 1㎞쯤 오르면 계곡 왼편에 4곡 옥류벽이 나타난다.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인 절벽 아래 옥색의 물이 흐르는 풍경이 아름답다.
옥류벽부터는 등산로를 따라 쉬엄쉬엄 걸으며 계곡을 유심히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다. 옥류벽에서 상류 쪽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5곡 금병은 기암절벽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5곡에서 50m 남짓 떨어진 곳에는 거북이 모양 바위가 놓인 6곡 구암이 자리해 있다. 이후 등산로를 따라 한참 오르면 ‘고송 아래로 흐르는 물가에 지은 집’이란 뜻의 7곡 고송유수재, ‘일곱 마리 학이 살던 동네’라는 뜻을 지닌 8곡 칠학 동천, ‘신선이 바둑을 두던 바위’라는 의미의 9곡 선국암이 가까이 모여 있다.
■ 시원한 물따라 트레킹…밀양 쇠점골 계곡길
여름철 트레킹은 덥고 힘들다는 편견을 시원스럽게 깨버리는 곳이 있다. 밀양 쇠점골 계곡 길이다. 가지산에서 흘러내린 투명한 계곡물은 시원하다 못해 시릴 정도다.
쇠점골은 가지산도립공원의 3대 계곡 가운데 하나다. 경상남도 밀양시와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경계에 서 있는 가지산(해발 1241m)은 운문산, 천황산, 간월산, 신불산 등과 함께 영남 알프스를 이룬다.
먼 옛날 말의 편자를 가는 대장간이 있어 ‘쇠점골’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쇠점골 계곡 길은 조선시대 밀양과 언양을 잇는 옛길을 트레킹 코스로 되살린 길이다. 백연사를 출발해 호박소, 구름다리, 너럭바위를 거쳐 석남터널 입구의 소공원까지 갔다가 다시 백연사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형 코스로 왕복 8㎞,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길이 비교적 평탄한 편이다.
쇠점골 계곡 길은 얼음골 가는 길 끝에 있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호박소 주차장이 넓게 자리한다. 호박소 갈림길에서 구름다리를 건너가면 쇠점골 계곡 길이 시작된다. 길은 계곡을 옆에 끼고 머리에는 짙은 그늘을 이고 내내 이어진다. 중간중간에 폭포, 소, 너럭바위 등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쇠점골 계곡은 유난히 넓고 평평한 바위가 많아 여름철 피서객들이 쉬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계곡 길을 1㎞ 정도 걸으면 넓은 바위가 계곡을 뒤덮고 있는 장관을 만난다. 쇠점골의 명물 오천 평 반석이다. 여기서부터 작은 폭포가 이어지면서 볼거리는 계속된다.
■ 안구정화 ‘보라해’ 피서명당, 성주 포천계곡
성주 한개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주민들이 살며 옛 모습을 지켜가는 전통 마을이다. 한개는 ‘큰 개울’ ‘큰 나루’를 뜻하는 순우리말인데, 과거 마을에 큰 개울이나 나루가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한개마을은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들어와 개척한 마을이다. 한때 100여 채에 이르던 집은 현재 70여 채 남았다. 이중 대산동 교리댁(경북민속문화재)은 멋스러운 사랑채와 잘 가꾼 정원이 아름답다.
한개마을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 포천계곡이 있다. 가야산이 빚어낸 그림 같은 계곡으로, 반석의 짙푸른 무늬가 베(布)를 널어놓은 것 같다고 포천이란 이름이 붙었다. 7㎞에 이르는 물줄기를 따라 곳곳에 너럭바위와 작은 폭포가 펼쳐져 있다. 포천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꼽은 포천구곡 가운데 9곡에 속하는 홍개동 근처라 풍광이 빼어나다. 성주8경의 하나로 꼽히는 경산리 성밖숲(천연기념물)도 빼놓을 수 없다. 수령 300~500년에 이르는 왕버들 50여 그루가 있는 숲이다. 최근에 왕버들 주변으로 맥문동을 심어 보랏빛 맥문동꽃이 흐드러진 여름 풍경을 눈에 가득 채울 수 있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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