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놓인 러시아 수퍼스타 소프라노

2022. 7. 7. 00:25■ 음악/音樂人

 

[시네마 클래식] 기로에 놓인 러시아 수퍼스타 소프라노

김성현 기자 입력 2022. 07. 07. 00:00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연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두 손을 들어 연기를 펼치며 노래하고 있다.

 

러시아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50)는 ‘비욘세에 대한 클래식 음악계의 답변’이라는 뉴욕타임스의 최근 비유처럼 21세기 최고의 수퍼스타로 꼽히는 성악가입니다. 하지만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그는 푸틴 러시아 정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는 서방 음악계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지요. 올해만 해도 이탈리아 명문 라스칼라 극장과 스위스 취리히 오페라 극장, 독일 함부르크 등에서 잇따라 공연이 취소됐지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메트)에서는 아예 2년간의 출연 정지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왜 유독 그에게 서방 세계의 비판이 쏟아지는 걸까요.

네트렙코가 수퍼스타로 발돋움한 건 2000년대 들어서입니다. 특히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테너 롤란도 비야손과 호흡을 맞췄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은 중계 방송과 영상물 등을 통해서 전 세계에 전파되면서 네트렙코의 이름을 알리는 데 톡톡히 역할을 했지요. 데뷔 초기 네트렙코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명문 마린스키 극장에서 주로 활동했지요. 이 극장의 총감독이 바로 푸틴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입니다. 게르기예프는 1994년 불과 22세의 네트렙코를 발탁했던 은인이기도 했지요.

 

문제는 네트렙코가 올해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푸틴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그는 2012년에 이어서 2018년 러시아 대선 당시에도 푸틴의 “강하고 남성적인 에너지”를 격찬하거나 “러시아를 위해서 더 나은 대통령을 생각할 수 없다”는 지지 발언을 했지요. 사실 두 선거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 사이에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강제 병합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지요.

네트렙코는 2014년에도 친러시아계 분리주의자들이 점령한 도네츠크의 오페라 극장을 위해서 미화 1만8500달러를 기부해서 논란을 불렀습니다. 서방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침략을 옹호하는 행동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지요. 하지만 네트렙코는 최근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 인터뷰에서도 “푸틴은 여전히 러시아의 대통령이고 나는 여전히 러시아 국민이다. 따라서 그런 성명(푸틴 비판 성명)을 내는 걸 거부했다”고 발언했지요. 이 때문에 최근 뉴욕타임스는 네트렙코의 처지를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돈벌이가 되는 스타에서 추방자(pariah)의 신세로 전락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게르기예프나 네트렙코가 공인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한, 이들에 대한 비판이나 공연 취소, 출연 정지는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고민거리는 남습니다. 마린스키 극장 총감독이라는 직책을 지니고 있는 지휘자 게르기예프와 달리, 네트렙코는 민간 성악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게르기예프 출연 정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반면, 네트렙코에 대해서는 미국과 유럽 음악계의 입장에도 다소 온도차가 존재하지요. 뉴욕 메트에서는 네트렙코에 대해 2년간의 출연 정지를 이미 공표했고 푸틴 정권에 대한 비판이 없을 경우 앞으로도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입니다. 반면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네트렙코의 개인 리사이틀이 재개됐고 몬테카를로 오페라 극장에도 출연했지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두르고 팬들의 환호에 답하는 우크라이나 소프라노 류드밀라 모나스티르스카.

 

최근 네트렙코가 출연하지 못한 메트의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에는 우크라이나 출신 소프라노 류드밀라 모나스티르스카(46)가 대신 무대에 올랐습니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몸에 두르고 팬들의 환호에 인사하는 모나스티르스카의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당초 국경이 존재할 수 없다던 클래식 음악계가 결과적으로 ‘국가 대항전’으로 비화하는 느낌입니다. ‘침략자를 편드는 성악가를 무대에 세울 수는 없다’는 주장도 옳지만, ‘일일이 민간인에게 정권에 대한 찬반 의사를 물을 수는 없다’는 입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클래식 음악계에도 많은 고민거리를 던지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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