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7. 00:20ㆍ■ 스포츠/축구
가서는 안 될 곳에서, 해서는 안 될 축구를 했다
이정호 기자 입력 2021. 03. 2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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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정 참패한 한국 축구
[경향신문]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25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전에서 0-3으로 완패한 뒤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도쿄 올림픽 홍보의 도구 되고
일본 방역 선전에 이용당할 것”
국민들 우려·경고 무시한 강행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남자축구대표팀이 10년 만의 한·일 평가전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2011년 ‘삿포로 참사’로 기억되는 0-3 스코어가 지난 25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재현됐다. 조직력과 스피드를 앞세운 일본축구의 파상공세에 벤투호는 경기 내내 무기력함을 끊지 못한 채 완패했다.
역사적인 한·일전 패배에 따른 후폭풍은 크다. 한·일전 축구는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흥행 보증수표지만, 이번만큼은 발표 때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코로나19로 A매치를 치르지 못하며 재정난에 빠진 일본축구협회의 제안을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 일정이 연기된 벤투호가 받아들이면서 급히 성사된 한·일전이었다.
왜 무리해서 한·일전을 잡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비판이 거셌다. 대표팀 구성부터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국제축구연맹(FIFA)이 클럽팀에 대표팀 차출 거부권을 주면서 유럽파 주력 선수 선발은 난항이 예상됐다. 황의조(보르도), 황희찬(라이프치히), 이재성(홀슈타인 킬) 등은 소속팀의 대표팀 차출 거부로 무산됐다. 여기에 대표팀 에이스인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황인범(루빈 카잔), 김진수(알 나스르) 등의 부상도 겹쳤다. 대표팀 본연의 경기를 하기에는 애초부터 힘들었다.
우리 선수들이 도쿄 올림픽 강행하려는 일본의 ‘홍보 도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실제 도쿄 올림픽에 적용될 스포츠 이벤트의 선수 ‘방역 절차’가 이번 경기에서 첫선을 보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속 여전히 확진자 증가세에 있는 일본을 굳이 찾아가 경기하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대표팀은 이미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 평가전 추진 과정에서도 무리한 원정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선수를 포함, 10명의 확진자까지 나오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한·일 라이벌전 결과를 넘어 긴장감 높은 양국 상황을 고려하면 연이어 상식을 벗어난 결정을 내린 협회 행정력은 여론의 질타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시하는 벤투 감독. 연합뉴스
우리팀 유니폼에 일장기까지
경기 내용서도 수준 이하 평가
“누구를 위한 원정” 안팎 비난
패배 직후에는 한국 선수들이 일장기가 붙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뛴 것이 알려지면서 비난 수위는 더욱 높아져 있다. 관례적으로 A매치 유니폼에는 양국 국기와 날짜 등 경기 정보가 새겨져 기념한다. 그러나 일본 유니폼에는 일장기만을 달았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까지 계약된 벤투 감독의 리더십도 큰 타격을 입었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 올림픽대표팀, 각 소속팀과의 ‘소통’에도 문제를 드러낸 데다 경기력마저 실망스럽다. 한국축구가 그동안 일본보다 우위를 보였던 피지컬과 투지까지 밀렸다. ‘플랜B’의 부재를 통해 지나칠 정도의 에이스 의존도도 드러났다.
두 번째 골을 넣은 일본 공격수 가마다 다이치(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상대 압박이 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국은)시작부터 맥이 풀린 느낌이었다”고 했다. “지금 세대에 맞지 않는 말일지 모르지만 다리가 부러져도, 몸이 망가져도 한국과의 싸움에서 밀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일본 대표팀 주장 요시다 마야(삼프도리아) 같은 리더도 없었다.
벤투 감독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정당한 패배”라며 고개를 숙였지만, 그가 끌고갈 대표팀에 대한 답답함만 키울 뿐이었다.경기가 열린 25일에는 도쿄 올림픽 성화 봉송이 시작됐다. “코로나19 공포 속에 도쿄 올림픽 성화 봉송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 등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미국 NBC를 비롯한 주요 외신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축구는 일본의 ‘기획’ 안에서 최고의 조연이 됐다. 한국축구는 이번 한·일전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얻은 것일까.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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